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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에세이

세상을 만든 여행자들 & 생각 버리기 연습

by 릴라~ 2010. 12. 20.

세상을만든여행자들
카테고리 인문 > 인문학일반 > 인문교양
지은이 한종수 (아이필드,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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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버리기연습
카테고리 자기계발 > 성공/처세 > 자기혁신/자기관리
지은이 코이케 류노스케 (21세기북스,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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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이나 공항에 가면 제일 반가운 곳이 서점이다. 인터넷으로 책을 사면서 오프라인 서점에 갈 일이 없는지라 오래만에 가판에 깔린 책들을 구경하면 즐겁다. 구내서점이 대부분 작은 규모이고 베스트셀러 위주로 깔려 있긴 하지만 살 만한 책은 꼭 있다. 비행기나 기차를 타면서 읽는 책은 평소보다 잘 읽힌다. 창밖으로는 낯선 풍경이 스쳐가고 생각도 일상적 관념에서 풀려나 자유로워져서인지 읽을 때 집중도가 훨씬 높다.

<세상을 만든 여행자들>은 추석연휴에 인천공항에서 발견했다. 뭘 살까 하다가 눈에 띈 책이 이것과 노무현 대통령 자서전 '운명이다'였다. '운명이다'는 나온 지 몇 달 됐지만 읽으면 넘 마음 아플 것 같아서 여태 사지 못한 책이다. 이 참에 읽을까 하다가 그 죽음이 아직 가슴에 못처럼 박혀 있어서 책에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방학 때 시간 많을 때 찬찬히 읽기로 하고 두 번째로 눈이 간 '세상을 만든 여행자들'을 샀다.

여행자들이 세상을 만들다니, 이게 무슨 뜻일까 하며 호기심에 집어든 책이다. 여행이 낳은 위대한 인물, 사마천, 사도 바오로, 호찌민, 체 게바라의 삶을 그들의 여행에 초점을 두어 기술하고 있었다. 아마추어인 작가가 자신이 좋아하는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쓴 점도 신선했고, 그들의 삶을 여행의 측면에서 조망한 점도 좋았다. 사도 바오로의 전도 여행과 체 게바라의 모터싸이클 다이어리는 널리 알려진 이야기라서 가볍게 읽었고, 가장 재밌게 읽은 부분은 사마천과 호찌민이었다.

이천 년도 더 전에 살았던 사마천이 약관의 나이에 2~3년에 걸쳐 만리길을 여행했으며 출사한 뒤에는 한 무제를 수행하며 여섯 차례 이상 중국 방방곡곡을 여행했다는 사실이 신선했다. 사기에 드러난 그의 천재성, 새로운 역사 기술 방식인 기전체의 창조, 사회와 인물을 바라보는 독창적인 관점과 경세가 및 지리학자로서의 면모 등이 모두 그의 대장정과 관련이 깊었다. 또한 그는 어릴 때부터 이상주의자였던 아버지의 도움으로 만 권의 책을 탐독했다고 한다. 고금의 책과 오랜 여행을 통해 형성된 세계관이 '사기' 를 통해 꽃핀 것 같다. 사마천의 내면의 풍경은 중국이라는 거대한 세계를 담을 만큼 깊고 넓었다. 그가 한 무제의 전제주의 대신 혼란스럽지만 자유로웠던 춘추전국시대를 동경했다는 사실, 궁형의 상처가 얼마나 깊었던지 사기 전체에서 환관에 대한 내용은 결코 쓰지 않았다는 사실도 마음에 남았다.

호찌민도 매우 특별한 여행자였다. 그는 조국 베트남을 지배하고 있는 프랑스를 제대로 알고 싶어 프랑스에 갈 여러 방법을 찾다가 21살에 선원 자리를 구해 배에 오르게 된다. 이후 그는 배를 타고 호주를 제외한 전대륙을 여행하게 되는데, 여행지에서의 다양한 경험과 사색을 토대로 형성된 세계관은 그를 레닌과 스탈린 같은 독재자와는 다른 길을 걷게 했다. 그는 도처에서 제국주의의 야만성을 목격했고 백인의 우월성은 단지 일부에 지나지 않았음을 알았다.

이런 경험은 그를 단순히 공산주의자, 민족주의자가 아니라 자신의 내면과 삶을 일치시킨 비범한 지도자의 길로 이끌게 된다. 그는 수십 년의 외국 생활 동안 힘든 노동, 투옥, 게릴라전 등을 견뎌냈을 뿐 아니라 조국의 독립을 위해 피나게 공부한 지식인이었다. 영어, 불어, 중국어, 태국어, 독어, 러시아어 등 외국어에도 능통했는데 이러한 외국어 실력은 그의 세련된 매너, 고매한 인격과 더불어 서방 세계 많은 사람들을 매혹시켰다고 한다.

또한 그는 동지들을 자기 자신처럼 대했다. 베트남전 때도 지압 장군에게 전권을 위임했는데, 지압 장군 역시 자신을 군사전문가에 한정하며 권력을 탐하지 않고 부총리로 은퇴한다. 그래서 베트남에는 소련과 중국에서 벌어진 처절한 권력 투쟁이 없었다고 한다. 호치민의 삶과 인격에서 우러난 힘이 베트남 민중들을 결집시킨 원동력이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불변 응만변(以不變 應萬變), 내 안의 변함없는 원칙으로 만변하는 세상에 대응한다는 말은 호치민이 즐겨 사용한 경구라 한다. '베트남의 아버지'라는 말이 조금도 과장이 아닐 만큼 특이하고 비범한 인물이었다.

<생각버리기 연습>은 대전역에서 발견했다. 이런 종류의 책이 시시한 내용일 경우도 많은데 이 책은 즐겁게,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고 새길 점도 많았다. 불교의 수행 원리를 일상 생활과 연결하여 쉽게 실천하도록 조목조목 잘 설명하고 있는데 저자가 아마 사회 생활을 하고 출가한 이라서 그럴 것 같다. 동경대 출신의 스님이라 하여 일본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한다. 우리의 인체 구조가 생존하기 위해 행복보다는 고통에 쉽게 반응하도록 디자인되어 있다는 사실, 그런 반사적인 뇌의 작용을 이해할 때 자신에게 다가오는 정보를 걸러서 받아들일 수 있다는 내용이 재미있었다. 습관으로 굳어진 무의식적 반응 양식을 의식적인 것으로 바꾸는 다양한 길이 소개되어 있다. 번역도 잘 되어 있는데, 다만 '일체개고'를 '일절개고'로 표기한 것은 너무 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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