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장 쓰기 쉬우면서도 한편으론 가장 잘 쓰기 어려운 글이 에세이다. 기타노 다케시의 <생각노트>는 요즘 유행하는 가벼운 에세이, 비슷비슷한 성공담들 속에서 단연 돋보이는 에세이였다. 젊은 날의 고민으로부터 시작해서 자신의 어머니의 삶의 방식과 당대의 가치관, 열정적으로 일했던 시간들에 대한 회고와 현재의 교육 및 문화에 대한 생각들, 그리고 영화 이야기.... 가볍게 풀어놓은 이야기 속에 묵직한 어떤 것이 곳곳에 박혀 있는 글이었다.
유명 코미디언이자 영화 감독이라 그런지 인간의 본성과 삶에 대한 이해가 남달랐다. 다소 가부장적인 면이 있고 세대 차이도 느껴지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믿는 관념은 과연 옳은지 다시 점검하는 기회가 되었다. 그리고 소위 성공한 사람들이 지니는 그 어떤 나르시즘도 없이 자신을 그처럼 객관화해서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이 신선했다. 그가 만든 영화를 한 편도 본 적이 없는데 한번 보고 싶어졌다.
축구가 부자유한 스포츠라는 건 어느 나라 사람이건 직감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거꾸로 말하면, 펠레나 마라도나가 얼마나 대단한 선수인지는 축구를 잘 모르는 사람이어도 누구나 한눈에 알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은 세계적인 슈퍼스타인 것이다. 호나우지유의 패스와 슛이 그렇게도 아름다운 것은 축구라는 틀이 있기 때문이다. 빛과 그림자처럼, 부자유한 틀 속에서 싸우고 있기 때문에 자유가 더욱 빛난다. 중력에 이끌려 지면을 벗어나지 못하는 인류에게 하늘을 나는 것이 오랜 꿈이었듯이.
하지만 현대의 교육은 완전히 거꾸로 가고 있다. 아이에게 자유의 귀함과 기쁨을 가르쳐주고 싶다면 먼저 제대로 된 틀을 주어야 한다.
두꺼운 벽이 눈앞에 있으면 아이들은 내버려두어도 어떻게든 그곳에서 자유로워지려고 발버둥친다. 벽을 부수려는 녀석도 있고, 벽 밑에 구멍을 파는 녀석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벽 안쪽에서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자유를 발견하는 녀석도 있을 것이다.
인간의 지혜와 상상력은 장애물이 있을 때 더욱 풍부하게 발휘된다. 지혜와 상상력으로 벽을 넘은 곳에 자유의 기쁨이 있다. 무엇이든 자유롭게 허락된 세계에서는 지혜도 상상력도 발휘할 필요가 없다. 아무렇게나 뒹굴면서 먹고 싶은 거나 먹고 텔레비전이나 보는 것이 고작이다. 요즘 아이들에게는 의욕이 없다고들 하는데, 어쩌면 그건 당연한 결과다.
게임에 열중하는 마음도 이해가 간다. 게임의 세계를 이루고 있는 것은 이바라 성이니 드래곤이니 하는 장애물들이다. 아이들은 너무 자유로운 나머지 무엇을 해야 좋을지 모르는 진짜 현실에서 빠져나와, 보잘것없는 가상 현실에서 벽을 넘는 자유를 맛보고 있다. 물론 그런 자유는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 게임 속의 모든 괴물은 쓰러뜨릴 수 있게 만들어졌다. 아이가 아무리 지혜를 발휘하여 곤경을 극복하는 기쁨을 맛보았다 해도 그것은 미리 프로그래밍되어 있는 승리에 불과하다.
요즘 아이들은 그런 장소에서밖에 자유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게 아닐까? 이 모든 게 부모가 아이를 무조건 자유롭게 키우는 교육의 어리석음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학교 선생님이 무서웠기 때문에, 학교에 칼을 갖고 가는 정도의 불량한 행동만으로도 영웅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학생을 때리면 폭력 교사가 되는 오늘날 학교에서는 그 칼로 사람을 찌르지 않으면 영웅이 될 수 없다. (pp79-80)
하지만 현대의 교육은 완전히 거꾸로 가고 있다. 아이에게 자유의 귀함과 기쁨을 가르쳐주고 싶다면 먼저 제대로 된 틀을 주어야 한다.
두꺼운 벽이 눈앞에 있으면 아이들은 내버려두어도 어떻게든 그곳에서 자유로워지려고 발버둥친다. 벽을 부수려는 녀석도 있고, 벽 밑에 구멍을 파는 녀석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벽 안쪽에서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자유를 발견하는 녀석도 있을 것이다.
인간의 지혜와 상상력은 장애물이 있을 때 더욱 풍부하게 발휘된다. 지혜와 상상력으로 벽을 넘은 곳에 자유의 기쁨이 있다. 무엇이든 자유롭게 허락된 세계에서는 지혜도 상상력도 발휘할 필요가 없다. 아무렇게나 뒹굴면서 먹고 싶은 거나 먹고 텔레비전이나 보는 것이 고작이다. 요즘 아이들에게는 의욕이 없다고들 하는데, 어쩌면 그건 당연한 결과다.
게임에 열중하는 마음도 이해가 간다. 게임의 세계를 이루고 있는 것은 이바라 성이니 드래곤이니 하는 장애물들이다. 아이들은 너무 자유로운 나머지 무엇을 해야 좋을지 모르는 진짜 현실에서 빠져나와, 보잘것없는 가상 현실에서 벽을 넘는 자유를 맛보고 있다. 물론 그런 자유는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 게임 속의 모든 괴물은 쓰러뜨릴 수 있게 만들어졌다. 아이가 아무리 지혜를 발휘하여 곤경을 극복하는 기쁨을 맛보았다 해도 그것은 미리 프로그래밍되어 있는 승리에 불과하다.
요즘 아이들은 그런 장소에서밖에 자유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게 아닐까? 이 모든 게 부모가 아이를 무조건 자유롭게 키우는 교육의 어리석음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학교 선생님이 무서웠기 때문에, 학교에 칼을 갖고 가는 정도의 불량한 행동만으로도 영웅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학생을 때리면 폭력 교사가 되는 오늘날 학교에서는 그 칼로 사람을 찌르지 않으면 영웅이 될 수 없다. (pp79-80)
300x25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