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옮긴 지 딱 한 달이 지났다. 그래도 명색이 광역시인데 학교 급간 교육 시설 차이가 이렇게 큰 줄은 몰랐다. 사물함도 없고 청소용구함도 없고 칠판은 낡아서 글씨가 잘 쓰이지 않고 뒷게시판은 부직포... 아직도 이런 걸 쓰는 데가 있다니... 아, 참, 교실에 컴퓨터도 없다. 교사가 노트북을 들고 다니는데 영 불편하다. TV도 넘 작고 초라하고... 같은 세금 내고 이럴 수가 있나 싶었다.
교실 환경의 열악함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그곳을 지배하고 있는 어떤 무기력한 분위기였다. 학생들은 가정 환경이 어려워서 생기가 부족한 듯 싶었다. 학비 지원 신청서를 지난 십여 년간 쓴 것보다 올해 더 많이 썼다. 대부분의 사유는 장기간의 실직, 그로 인한 병고였다. 그러다 보니 암 걸린 이도 많고 중풍에 각종 사고로 인한 생활고까지. 험한 일을 하는 이들이 많다보니 그런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습관화된 게으름과 거짓말 등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에게는 어떤 성장의 여지가 있었다. 문제는 학교 분위기였다. (모든 전문계고가 다 우리 학교와 동일하지는 않을 것이다. 저마다 차이가 있는데, 우리 학교가 대구에서 성적이 가장 낮은 클래스에 속해서 그런 지도 모르겠다.) 학생들이 애착을 가지고 학교에 나올 수 있는 어떤 것이 여기엔 없었다. 그 결과는 잦은 지각과 결석이다. 한 반이 아니라 전교에서 벌어지는 현상이라면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한다.
먼저 교육 목적의 부재. 이 배가 어디로 가는 지 방향을 알 수 없었다. 기술을 열심히 익히면 어떤 결과가 오는지 무엇이 보장되는지 확실치 않았다. 먼저 온 선생님들께 물어보니 우수한 몇몇을 제외하고는 전망이 밝지 않다고 했다. 얘들은 졸업 후 곧 군대에 가기 때문에 중소기업에서 뽑으려 하지 않는다는 거다. 그래서 80% 정도가 자신들을 받아주는 전문대학에 들어간다고 했다. 우리 나라의 산업 구조가 빠른 속도로 재편되고 있는 현실에서 공고의 입지가 불분명했다. 그 대안으로 나온 것이 전문 기술자를 양성하는 마이스터고인데 이제 시작이라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 알 수 없다.
교육과정 편성 문제도 심각했다. 인문 교과가 이렇게 적은 줄은 몰랐다. 1학년 때 국어가 단 2시간이며 집중이수제로 인해 1학기에는 사회도 과학도 배우지 않는다. 고등학교로 학업을 마치는 학생들도 있고 또 학교교육이 아니면 인문학적 교양을 쌓을 다른 기회가 없는 학생들이 많기 때문에 인문 과목을 더욱 중시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이건 뭐, 교육과정 자체가 애들을 바보로 만드는 것 같았다. 게다가 실습 과목을 2교시에서 7교시까지 달아서 배정하는 건 뭔지. 열심히 가르치는 교사도 있지만 마지막 시간은 청소하고 이런 식으로 시간을 때우기 쉬운 구조였다. 다른 교과의 경우도 50분을 다 채우지 않는 듯한 분위기였다. 이 학생들은 성적이 낮다는 이유만으로 법이 보장한 '학습권'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있었다.
이 와중에서도 열심히 대안을 만들어가는 훌륭한 교사들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몇몇 개인의 탁월함보다는 시스템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학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전공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업무 중심으로 진행되는 것도 아니고, 이 조직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모호했다. 그저 메신저로 전달되는 내용에 따라 각자 자기 할 일을 할 뿐. 학년 협의회도 없고 수업/교과를 위한 협의도 없고. 그냥 뭐든 맘대로 해도 된다는 점에서는 큰 장점이지만, 늘상 협의 속에서 살아왔는지라 이 풍토가 참 낯설었다. 무언가 '함께' 한다는 느낌이 없었다.
선생님들은 다들 좋으셨는데, 이 '좋음'이 일로 부딪히는 일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무언가를 계획해서 진행하다보면 부딪힘이 뒤따를 수밖에 없기에. 다시 말해 이곳의 '좋음'은 무슨 일을 함께 추진하고 그런 것이 없음에서 나오는 것 같기도 했다. 내가 전공 과가 아니라 인문 교과라서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지만, 무언가 '포기한 듯한' 그런 분위기가 있었다.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듯한, 이곳만 따로 떨어진 듯한, 흐르지 않는 고인 물 같은 어떤 것.
지나치게 기계적이고 획일적이며 성과 중심적인 조직 풍토를 못 견뎌했는데, 이곳의 '느슨함'에도 문제가 있었다. 에너지가 결여되었다고 할까. 8시 20분에 일과가 시작되면, 다함께 교실에 들어가 싹~ 시작해줘야 하는데, 반마다 시작 시간이 다르고 그 사이 아이들도 등교 시간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서 지각생이 속출했다. 1교시 지나서 오거나 오후가 되어서야 나타나는 넘까지.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기본적 힘을 길러주지 못하고 있었다. 음악도 춤도 부족하고, 무기력한 학생들에게 살아가는 즐거움을 불러줄 수 있는 그런 프로그램도 턱없이 부족했다.
세상이 그리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이곳 아이들의 현실과 학교의 현실을 직접 경험한다는 것은 내게 참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4년간 의미 있게 살아낼 지는 미지수였다. 내가 뭘 해야 하나, 뭘 할 수 있을까 싶기도 했다. 이 아이들의 어려운 환경을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장래를 보장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학교 시스템을 고칠 역량도 없으므로. 우선 네 가지만 잘 지키기로 마음먹었다.
1. 이곳의 모든 '차이'를 긍정적으로 볼 것. 이 아이들의 부족함조차 이 세상의 다양성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그 차이들을 긍정할 것.
2. 아이들을 최대한 인간적으로 대접할 것. 이 학생들은 장차 사회의 노동 계층으로 편입될 가능성이 많다. 여기 있는 동안 충분히 인간적 존중을 받을 때 밖에 나가서도 그것을 요구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학생들을 '서울대생'으로 생각하고 그렇게 대해줄 것.
3. 50분 수업 시간을 최대한 알차게 쓸 것. 잘하는 학생들이라면 오히려 문제만 던져주면 되고, 스스로 정리할 시간을 주는 게 좋은데, 여기서는 함께 공부하면서 시간을 꽉 채우는 편이 나아 보였다. 스스로 공부하지 않고 집에 가서도 따로 책을 챙겨 읽지 않는 학생들이기 때문에 더더욱.
4. 정말 많이 웃을 것. 우리 학교 학생들은 확실히 잘 웃지 않았고 어떤 것에 대한 반응 정도도 낮았다. 그 분위기 속에 있노라면 나 자신도 우울해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부터라도 최대한 많이 웃고 즐겁게 생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할 듯 싶었다. 지식도 중요하지만, 가타리가 말한 '즐거움의 정치학'을 우선 순위에 놓아야 할 것 같다. 즐거움의 생산하는 일에 주력해야 할 것 같다.
교실 환경의 열악함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그곳을 지배하고 있는 어떤 무기력한 분위기였다. 학생들은 가정 환경이 어려워서 생기가 부족한 듯 싶었다. 학비 지원 신청서를 지난 십여 년간 쓴 것보다 올해 더 많이 썼다. 대부분의 사유는 장기간의 실직, 그로 인한 병고였다. 그러다 보니 암 걸린 이도 많고 중풍에 각종 사고로 인한 생활고까지. 험한 일을 하는 이들이 많다보니 그런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습관화된 게으름과 거짓말 등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에게는 어떤 성장의 여지가 있었다. 문제는 학교 분위기였다. (모든 전문계고가 다 우리 학교와 동일하지는 않을 것이다. 저마다 차이가 있는데, 우리 학교가 대구에서 성적이 가장 낮은 클래스에 속해서 그런 지도 모르겠다.) 학생들이 애착을 가지고 학교에 나올 수 있는 어떤 것이 여기엔 없었다. 그 결과는 잦은 지각과 결석이다. 한 반이 아니라 전교에서 벌어지는 현상이라면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한다.
먼저 교육 목적의 부재. 이 배가 어디로 가는 지 방향을 알 수 없었다. 기술을 열심히 익히면 어떤 결과가 오는지 무엇이 보장되는지 확실치 않았다. 먼저 온 선생님들께 물어보니 우수한 몇몇을 제외하고는 전망이 밝지 않다고 했다. 얘들은 졸업 후 곧 군대에 가기 때문에 중소기업에서 뽑으려 하지 않는다는 거다. 그래서 80% 정도가 자신들을 받아주는 전문대학에 들어간다고 했다. 우리 나라의 산업 구조가 빠른 속도로 재편되고 있는 현실에서 공고의 입지가 불분명했다. 그 대안으로 나온 것이 전문 기술자를 양성하는 마이스터고인데 이제 시작이라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 알 수 없다.
교육과정 편성 문제도 심각했다. 인문 교과가 이렇게 적은 줄은 몰랐다. 1학년 때 국어가 단 2시간이며 집중이수제로 인해 1학기에는 사회도 과학도 배우지 않는다. 고등학교로 학업을 마치는 학생들도 있고 또 학교교육이 아니면 인문학적 교양을 쌓을 다른 기회가 없는 학생들이 많기 때문에 인문 과목을 더욱 중시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이건 뭐, 교육과정 자체가 애들을 바보로 만드는 것 같았다. 게다가 실습 과목을 2교시에서 7교시까지 달아서 배정하는 건 뭔지. 열심히 가르치는 교사도 있지만 마지막 시간은 청소하고 이런 식으로 시간을 때우기 쉬운 구조였다. 다른 교과의 경우도 50분을 다 채우지 않는 듯한 분위기였다. 이 학생들은 성적이 낮다는 이유만으로 법이 보장한 '학습권'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있었다.
이 와중에서도 열심히 대안을 만들어가는 훌륭한 교사들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몇몇 개인의 탁월함보다는 시스템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학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전공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업무 중심으로 진행되는 것도 아니고, 이 조직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모호했다. 그저 메신저로 전달되는 내용에 따라 각자 자기 할 일을 할 뿐. 학년 협의회도 없고 수업/교과를 위한 협의도 없고. 그냥 뭐든 맘대로 해도 된다는 점에서는 큰 장점이지만, 늘상 협의 속에서 살아왔는지라 이 풍토가 참 낯설었다. 무언가 '함께' 한다는 느낌이 없었다.
선생님들은 다들 좋으셨는데, 이 '좋음'이 일로 부딪히는 일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무언가를 계획해서 진행하다보면 부딪힘이 뒤따를 수밖에 없기에. 다시 말해 이곳의 '좋음'은 무슨 일을 함께 추진하고 그런 것이 없음에서 나오는 것 같기도 했다. 내가 전공 과가 아니라 인문 교과라서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지만, 무언가 '포기한 듯한' 그런 분위기가 있었다.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듯한, 이곳만 따로 떨어진 듯한, 흐르지 않는 고인 물 같은 어떤 것.
지나치게 기계적이고 획일적이며 성과 중심적인 조직 풍토를 못 견뎌했는데, 이곳의 '느슨함'에도 문제가 있었다. 에너지가 결여되었다고 할까. 8시 20분에 일과가 시작되면, 다함께 교실에 들어가 싹~ 시작해줘야 하는데, 반마다 시작 시간이 다르고 그 사이 아이들도 등교 시간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서 지각생이 속출했다. 1교시 지나서 오거나 오후가 되어서야 나타나는 넘까지.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기본적 힘을 길러주지 못하고 있었다. 음악도 춤도 부족하고, 무기력한 학생들에게 살아가는 즐거움을 불러줄 수 있는 그런 프로그램도 턱없이 부족했다.
세상이 그리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이곳 아이들의 현실과 학교의 현실을 직접 경험한다는 것은 내게 참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4년간 의미 있게 살아낼 지는 미지수였다. 내가 뭘 해야 하나, 뭘 할 수 있을까 싶기도 했다. 이 아이들의 어려운 환경을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장래를 보장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학교 시스템을 고칠 역량도 없으므로. 우선 네 가지만 잘 지키기로 마음먹었다.
1. 이곳의 모든 '차이'를 긍정적으로 볼 것. 이 아이들의 부족함조차 이 세상의 다양성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그 차이들을 긍정할 것.
2. 아이들을 최대한 인간적으로 대접할 것. 이 학생들은 장차 사회의 노동 계층으로 편입될 가능성이 많다. 여기 있는 동안 충분히 인간적 존중을 받을 때 밖에 나가서도 그것을 요구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학생들을 '서울대생'으로 생각하고 그렇게 대해줄 것.
3. 50분 수업 시간을 최대한 알차게 쓸 것. 잘하는 학생들이라면 오히려 문제만 던져주면 되고, 스스로 정리할 시간을 주는 게 좋은데, 여기서는 함께 공부하면서 시간을 꽉 채우는 편이 나아 보였다. 스스로 공부하지 않고 집에 가서도 따로 책을 챙겨 읽지 않는 학생들이기 때문에 더더욱.
4. 정말 많이 웃을 것. 우리 학교 학생들은 확실히 잘 웃지 않았고 어떤 것에 대한 반응 정도도 낮았다. 그 분위기 속에 있노라면 나 자신도 우울해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부터라도 최대한 많이 웃고 즐겁게 생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할 듯 싶었다. 지식도 중요하지만, 가타리가 말한 '즐거움의 정치학'을 우선 순위에 놓아야 할 것 같다. 즐거움의 생산하는 일에 주력해야 할 것 같다.
300x25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