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종강. 한 학기가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강의를 원한 것은 아니었는데 교직 과목을 가르칠 강사가 부족하여 - 대부분의 학과에서 10% 학생들이 교직 이수를 하므로- 강좌를 맡게 되었다.
대학생들을 가르치긴 처음이라 긴장하기도 했고, 인문학에 익숙치 않은 학생들이 많아 코드를 맞추기가 어렵기도 했고, 토론이 재미있기도 했고, 때론 피곤하고 지루하기도 했고, 호프집에서 맥주를 기울이며 신나기도 했고, 여러 순간들이 있었다. 그런데 마지막 강의가 끝나고 시험만을 남겨두자 그렇게 허무할 수가 없었다.
모든 게 너무 빨리 끝나서기도 하지만 - 중고등학교에서는 일 년을 데리고 있으므로- 가장 큰 이유는 교직 과목 강의가 어떤 관계도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마치 학원처럼 잠깐 모였다가 흩어지는. 학생들을 개인적으로 챙기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편한 관계지만, 한편으로는 학점만 따면 되는 그런 형식의 만남이었다. 중고등학교는 학생 개개인을 챙기므로 매우 힘든 관계지만, 좀 더 깊고 밀도 있는 관계가 맺어진다. 졸업하고도 지속적으로 연락이 오고, 제자를 키운다는 그런 보람이 그래도 남아 있는 곳이기에,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학생들과 4년을 함께 보내는 전공 과목 교수거나 교양이든 전공이든 프리랜서로서 자신의 전문 분야를 가르친다면 입장이 좀 다를 것도 같다. 그러나 교직 과목은 교원자격증을 따려면 의무로 들어야 하는 과목이다. 물론 그 안에서도 배움의 즐거움과 보람이 살아날 수 있지만, 잠깐 모였다 흩어진다는 형식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것들을 떠맡고 있는 이들이 바로 비정교직 교수, 일명 시간 강사이다.
시간 강사는 십 년을 일해도 의미 있는 관계를 만들어가기 어려워 보였다. 그저 대학이 필요로 하는 시간 만큼만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며 소모품으로 쓰여질 뿐. 내가 학부 시절에 들었던 교양 과목을 생각해봐도, 시간 강사가 맡은 강좌가 많았는데, 관계 맺음을 통한 배움의 형식과는 한참 거리가 있었다. 때로 지적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과목도 있었으나 학원처럼 그렇게 들었던 것 같다. 인간적 교감 없이 강의를 그저 '소비'했다는 의미에서.
돈이 되지 않아도 사람이 남으면 좋은 거다. 전업 비정교직 교수는 그 어떤 것도 얻기 어렵다. 돈도 안 되고, 자기 학문도 안 되고, 사람도 남지 않고. 이와 비교할 때 정규직 중고교 교사에게는 많은 안정적 조건이 주어진다. 어려운 점이 많지만, 아주 나쁜 조건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의를 계속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내 공부와 실력이 많이 부족해서기도 하지만,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며 일회용 소모품으로 쓰일 이유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열악한 조건의 강의조차 얻기 어려워 분투하는 비정규 교수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대학생들을 만나고 그들과 대화하는 것이 매력이 있고 또 그 안에서도 관계를 맺어갈 여지가 있긴 하지만,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너무 많은 품이 든다. 그렇게 정성을 기울이기엔 시간도 체력도 지력도 따라주고, 또 그럴 필요도 없고. 교육학보다는 문학/국어가 좀 더 좋기도 하고.
중고교와 대학, 정규직과 비정규직, 여러 가지 배움의 조건들을 비교해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는 참 좋은 경험이었다.
대학생들을 가르치긴 처음이라 긴장하기도 했고, 인문학에 익숙치 않은 학생들이 많아 코드를 맞추기가 어렵기도 했고, 토론이 재미있기도 했고, 때론 피곤하고 지루하기도 했고, 호프집에서 맥주를 기울이며 신나기도 했고, 여러 순간들이 있었다. 그런데 마지막 강의가 끝나고 시험만을 남겨두자 그렇게 허무할 수가 없었다.
모든 게 너무 빨리 끝나서기도 하지만 - 중고등학교에서는 일 년을 데리고 있으므로- 가장 큰 이유는 교직 과목 강의가 어떤 관계도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마치 학원처럼 잠깐 모였다가 흩어지는. 학생들을 개인적으로 챙기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편한 관계지만, 한편으로는 학점만 따면 되는 그런 형식의 만남이었다. 중고등학교는 학생 개개인을 챙기므로 매우 힘든 관계지만, 좀 더 깊고 밀도 있는 관계가 맺어진다. 졸업하고도 지속적으로 연락이 오고, 제자를 키운다는 그런 보람이 그래도 남아 있는 곳이기에,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학생들과 4년을 함께 보내는 전공 과목 교수거나 교양이든 전공이든 프리랜서로서 자신의 전문 분야를 가르친다면 입장이 좀 다를 것도 같다. 그러나 교직 과목은 교원자격증을 따려면 의무로 들어야 하는 과목이다. 물론 그 안에서도 배움의 즐거움과 보람이 살아날 수 있지만, 잠깐 모였다 흩어진다는 형식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것들을 떠맡고 있는 이들이 바로 비정교직 교수, 일명 시간 강사이다.
시간 강사는 십 년을 일해도 의미 있는 관계를 만들어가기 어려워 보였다. 그저 대학이 필요로 하는 시간 만큼만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며 소모품으로 쓰여질 뿐. 내가 학부 시절에 들었던 교양 과목을 생각해봐도, 시간 강사가 맡은 강좌가 많았는데, 관계 맺음을 통한 배움의 형식과는 한참 거리가 있었다. 때로 지적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과목도 있었으나 학원처럼 그렇게 들었던 것 같다. 인간적 교감 없이 강의를 그저 '소비'했다는 의미에서.
돈이 되지 않아도 사람이 남으면 좋은 거다. 전업 비정교직 교수는 그 어떤 것도 얻기 어렵다. 돈도 안 되고, 자기 학문도 안 되고, 사람도 남지 않고. 이와 비교할 때 정규직 중고교 교사에게는 많은 안정적 조건이 주어진다. 어려운 점이 많지만, 아주 나쁜 조건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의를 계속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내 공부와 실력이 많이 부족해서기도 하지만,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며 일회용 소모품으로 쓰일 이유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열악한 조건의 강의조차 얻기 어려워 분투하는 비정규 교수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대학생들을 만나고 그들과 대화하는 것이 매력이 있고 또 그 안에서도 관계를 맺어갈 여지가 있긴 하지만,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너무 많은 품이 든다. 그렇게 정성을 기울이기엔 시간도 체력도 지력도 따라주고, 또 그럴 필요도 없고. 교육학보다는 문학/국어가 좀 더 좋기도 하고.
중고교와 대학, 정규직과 비정규직, 여러 가지 배움의 조건들을 비교해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는 참 좋은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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