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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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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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사는 것은 좋은 일이다. 좋은 책은 사서 서가에 꽂아두어야 한다. 왜냐하면, 한참의 시간이 지난 어느 날, 우연히 그 책을 다시 집어들었을 때, 우리는 그 책에서 예전과 전혀 다른 의미를 길어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 사이의 간격을 체험한다. 그렇게 우리는 자기 자신과 새롭게 만난다. 한 권의 책을 통해서.
이 책을 읽은 지 칠팔 년은 되었지 싶다. 우연찮게 펼쳐들었는데 단숨에 끝까지 읽어내려갔다. 전에도 나는 이 책을 읽고 감동을 받은 것 같다. 군데 군데 줄이 그어져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 때는 어렸고, 모리 교수의 삶이 감동적이긴 했지만, 그의 메세지가 다소 평범하게 느껴졌던 것도 사실이다.
다시 읽으니, 학교를 졸업하고 바쁜 삶 속에 치여 살다가 16년만에야 옛스승과 재회하게 되는 저자 미치 앨봄의 목소리가 나 자신의 이야기처럼 절절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모리 교수의 짤막한 진술들이 얼마나 주옥 같은 말인지도 깊이 느끼게 되었다. 사람은 그냥 늙는 것이 아니다. 생애 말년에 그가 들려주는 삶에 대한 통찰은 심금을 울린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늙을수록 더 추해지긴 하지만.) 번역도 훌륭하다.
모리 선생님은 물었다.
"마음을 나눌 사람을 찾았나?"
"지역 사회를 위해 뭔가 하고 있나?"
"마음은 평화로운가?"
"최대한 인간답게 살려고 애쓰고 있나?"
미치는 생각한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고. 수많은 꿈들을 두둑해진 월급 봉투와 맞바꿔 버렸다고. 그리고 루게릭병으로 죽어가는 모리 선생님과 미치의 마지막 수업이 시작된다. 매주 화요일마다.
"우리의 문화는 우리 인간들이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게 하네. 우린 틀린 것들을 가르치고 있다구. 그러니 제대로 된 문화라는 생각이 들지 않으면 굳이 그것을 따르려고 애쓰지 말게. 그것보단 자신만의 문화를 창조하게."
"의미 없는 생활을 하느라 바삐 뛰어다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아. 자기의 인생을 의미 있게 살려면 자기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을 위해 바쳐야 하네. 자기가 속한 공동체에 헌신하고, 자신에게 의미와 목적을 주는 일을 하는 데 헌신해야 하네."
"내가 이 병을 앓으며 배운 가장 큰 것을 말해줄까? 사랑을 나눠주는 법과 사랑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거야."
"우린 그냥 생활을 지속시키기 위해 수만 가지 사소한 일들에 휩싸여 살아. 그래서 한 발자국 물러서서 우리 삶을 관조하며, '이게 다인가? 이게 내가 원하는 것인가? 뭔가 빠진 것은 없나?'하고 돌아보는 습관을 갖지 못하지. 누군가 그런 방향으로 이끌어줄 사람이 필요하네. 혼자선 그런 생각을 하며 살기는 힘든 법이거든."
"불교도들이 하는 것처럼 하게. 매일 어깨 위에 작은 새를 올려놓는 거야. 그리곤 새에게 '오늘이 그날인가? 나는 준비가 되었나? 나는 해야 할 일들을 다 제대로 하고 있나? 내가 원하는 그런 사람으로 살고 있나?'라고 묻지."
"그럼 죽음과 직면하면 모든 게 변하나요?"
"그럼. 모든 것을 다 벗기고, 결국 핵심에 초점을 맞추게 되지. 자기가 죽게 되리라는 사실을 깨달으면 매사가 아주 다르게 보이네."
"가족이 지니는 의미, 그냥 단순한 사랑이 아니라 지켜봐주는 누군가가 거기 있다는 사실을 상대방에게 알려주는 것이라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내가 가장 아쉬워했던 게 그거였어. 소위 '정신적인 안정감'이 가장 아쉽더군. 가족이 거기서 나를 지켜봐주고 있으리라는 것을 아는 것이 바로 '정신적인 안정감'이지. 가족말고는 그 무엇도 그걸 줄 순 없어. 돈도, 명예도."
"타인에 대해 완벽한 책임감을 경험하고 싶다면, 그리고 사랑하는 법과 가장 깊이 서로 엮이는 법을 배우고 싶다면 자식을 가져야 하네."
"경험하라고 하면서 또 벗어나라고 하는 말은 도대체 어떻게 된 거죠?"
"음. 자네도 거기에 대해 생각을 하고 있었군. 하지만 벗어난다고 해서, 경험이 우리를 꿰뚫고 지나가지 못하게 한다는 뜻은 아니야. 반대로 경험이 자네를 온전히 꿰뚫고 지나가게 해야 하네. 그렇게 해야만 거기서 벗어날 수 있어."
"삶에서 의미를 찾았다면 더 이상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아.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하지. 더 많은 것을 보고, 더 많은 일을 하고 싶어하지. 아마 65살이 되고 싶어 견딜 수 없을 걸."
"이 나라에선, 우리가 원하는 것과 우리에게 필요한 것 사이에 큰 혼란이 일어나고 있네. 자네에게 진정으로 만족을 주는 게 뭔지 아나?"
"뭐죠?"
"자네가 줄 수 있는 것을 타인에게 주는 것."
"사랑이란 우리가 이 세상을 뜬 후에도 그대로 살아 있는 방법이지."
"난 자네 세대가 안쓰럽네. 이런 문화에서는 다른 사람과 사랑하는 관계를 발견하기란 참으로 힘들지. 왜냐면 문화가 우리에게 그런 걸 주지 않으니까. 요즘 가여운 젊은이들은, 너무 이기적이어서 진심으로 사랑하지 못하든가, 아니면 성급하게 결혼하고는 대여섯 달 후에 이혼을 하든가 둘 중 하나를 택하네. 그들은 상대방이 뭘 원하는지 몰라. 자기가 진정 누구인지 몰라. 그러니 결혼하려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알겠나?"
"사랑과 결혼에 대한 진실이라고 할 만한 몇 가지 규칙은 있네.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으면, 큰 문제가 그들 사이에 닥칠지도 모른다. 타협하는 방법을 모르면 문제가 커진다. 두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일을 터놓고 이야기하지 못하면 또 커다란 문제가 생긴다. 그리고 인생의 가치가 다르면 엄청난 문제가 생긴다는 사실이야. 그래서 두 사람의 가치관이 비슷해야 하네."
"그런데 미치,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그것은 결혼의 중요성을 믿는 것이라네."
"대개 사람들은 위협당할 때 형편없어지네. 그런데 우리 문화가 사람들을 협박하거든. 우리 경제도 그렇고. 우리 경제 체계에서는 직장을 가진 사람들까지도 위협을 느끼지. 언제 직장을 잃을지 모르니까 걱정이 되어서 말이야. 그리고 사람은 위협을 받기 시작하면 자기만 생각하기 시작하네. 돈을 신처럼 여기기 시작하는 거야. 그게 다 우리 문화의 속성이라구."
"내 말은 스스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라는 뜻이야. 물론 사회의 규칙을 모두 다 무시하라는 뜻은 아니야. 예를 들면 나는 벌거벗은 채 돌아다니지도 않고, 신호등이 빨간 불일 때는 반드시 멈춘다네. 작은 것들은 순종할 수 있지. 하지만 어떻게 생각할지,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여길지 등 줄기가 큰 것들은 스스로 결정을 내려야 하네. 다른 사람이-혹은 사회가- 우리 대신 그런 사항을 결정하게 내버려둘 순 없지."
"사람들에게 애정을 쏟게. 자네가 사랑하고 자네를 사랑하는 작은 공동체를 세우란 말일세."
"사업에서 사람들은 서로 이기기 위해 협상을 벌이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협상을 하네. 어쩌면 자네는 거기에 너무 익숙해졌는지도 몰라. 사랑은 다르다네. 자기 상황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상황에도 마음을 쓸 때 그게 바로 진정한 사랑이지."
사람이 한 생을 살고 나서 이처럼 삶 전체에서 따스한 사랑의 기운과 지혜의 빛을 발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특히 자기 삶의 고통에 대한 모리 선생님의 진솔한 모습은 깊은 인상을 주었다.
"그래서 내가 그 선생님에게 이런 답장을 해주었습니다."
모리 선생님은 천천히 코와 귀에 안경을 걸치면서 말했다.
"친애하는 바바라....귀하의 편지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선생님이 한쪽 부모를 잃은 아이들과 해온 작업이 매우 중요하게 느껴집니다. 나 또한 어린 나이에 한쪽 부모를 잃었답니다....."
카메라가 계속 돌아가고 있는데, 갑자기 선생님은 안경을 고치셨다. 그는 말을 멈추고 입술을 깨물었다. 목이 막히기 시작했다. 눈물이 흘러내렸다.
"어릴 때 어머니를 잃었는데....내게는 타격이 컸습니다....당시에 선생님 학급 같은 학급이 있어서 나도 슬픔을 털어놓을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나 역시 그 학급에 들어가고 싶었을 겁니다. 왜냐면....."
그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왜냐면 난 너무도 외로웠으니까요....."
"모리,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70년이나 지났잖습니까. 한데 아직도 그 고통이 계속되고 있습니까?"
코펠이 물었다.
"그럼요."
우리 선생님이 속삭였다.
* * * * *
책장을 덮으려는 찰나, 마지막 장에 적혀 있는 이 메모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난 내가 이 책을 산 줄 알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선물 받은 것이었다. 지난 날이 가슴을 파고든다.
내 언어의 꽃밭에
어느 날 (정말 어느 날)
시멘트가 부어지고
쓰레기 소각장이 들어선 모습을 보며
진한 추억의 다발을 주워보려고 서성인다.
내가 2년간 근무했던 첫 직장, 모 사립 고등학교에 있을 때, 버려진 학교 공터에서 꽃밭을 가꾸었다. 스무 평쯤 되었을까. 그보다 작았을까. 아무튼 꽤 큰 땅이었다. 어려서 일에 대한 겁이 없을 때였다.
무식하게도 온갖 종류의 꽃씨를 사서 자갈밭에 신나게 뿌리고는 싹이 나길 기다렸지만, 될 리가 있나. 잡초 같은 코스모스 싹만 돋아날 뿐, 다른 건 소식이 없어서, 결국은 산에서 흙을 가져와 자갈밭을 덮고 씨를 다시 뿌리고 철늦은 것은 모종을 옮겨 심었다. 그렇게 해서 나의 작은 동산이 태어났다.
보충수업 때문에 오전 7시엔 학교에 도착했다. 그 학교의 조직 문화에 철저하게 적응하지 못했던 나는 아침마다 꽃이 새로 피어나는 걸 확인하는 게 유일한 위안이었다. 새벽에 막 피어난 채송화 꽃잎, 파르르 떨리던 그 꽃잎 속살 하나하나의 아름다움을 목격하던 순간, 내가 받은 신선한 충격은 지금도 내 마음에 강렬한 흔적으로 남아 있다. 백일홍(나무 말고) 겹꽃은 또 얼마나 고상하고 아름답던지.
5월 한창 가물 때는 아침 저녁으로 물 주느라 고생했고... 산에서 돌멩이를 가져와 중간에 작은 길도 만들었고...거름 때문인지 가을엔 코스모스가 사람 키만큼 자라서 그 사이를 헤치며 걸었다. 모든 꽃들이 시들어갈 무렵 난 어쩌면 이 꽃밭이 올해로 마지막일 거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리고 겨울, 교원정년단축으로 공립학교 교사 수요가 갑자기 늘어나게 되었고, 그 답답한 곳을 떠나 좀 더 자유롭게 가르치고 싶어서 급작스럽게 사표를 쓰고, 임용시험을 준비하게 되었다.
그 겨울에 내가 가꾼 꽃밭 자리엔 쓰레기 소각장이 들어서게 되었고, 시멘트가 부어졌고, 나는 학교를 떠나게 되었다. 친했던 동료 선생님이 그 모습을 이야기한 것이다. 오래 잊고 있던 기억이다. 앞으론 누군가에게 책을 선물할 때, 꼭 몇 마디 인사를 곁들여 적어야겠다. 한 권의 책이 이처럼 많은 것을 떠올리게 할 줄이야.....
모리 선생님의 이 말이 긴 여운을 남긴다.
"사랑이 이기지. 언제나 사랑이 이긴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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