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생활자가 된 지 3년째, 시시때때로 교통정체가 일어나는 앞산순환도로를 통과하며 50분을 운전해야 하는 출퇴근길이 부담스러워 1시간 남짓 걸리는 지하철을 택하게 되었습니다. 시간 맞춰 나가기 좋고, 기름을 길에 뿌리고 다니지 않아도 좋지만, 바깥 풍경을 보지 못하고 땅 밑에서 땅 밑으로만 이동한다는 게 제일 큰 단점입니다. 하루 두 시간을 지하에서 보내다보니 계절의 변화를 실감하지 못합니다. 집에서 지하철 역까지 잠깐, 역에서 내려 직장까지 잠깐 걷는 시간이 매일 보는 풍경의 전부라 할 수 있어요. 출발역과 도착역 '사이'는 달콤하거나 차가운 이 세상의 감촉으로부터 멀리 물러나 있는 밋밋한 시공간입니다. 사라진 공간이자 사라진 시간인 셈이지요.
4월 어느 날, 급히 다녀갈 데가 있어서 차를 몰고 출근한 적이 있습니다. 그 하루의 출퇴근길은 그야말로 세상에 다시 없는 황홀한 시간이었어요. 마침 벚꽃이 피어나기 시작한 때였는데, 월드컵 경기장에서 지산까지, 그리고 수성못 양 옆 대로변이 모두 꽃천지였습니다. 한 그루 벚나무도 예쁘지만, 넓은 도로 양 옆을 시야가 허락하는 끝까지 벚꽃이 만개해 늘어서 있는 광경엔 비할 바 못 될 것입니다. 그 나무들 덕택에 그 길은 도심이지만 도심이 아니었고, 저 머나먼 산중에 도착한 것 이상으로 '넘쳐흐르는 삶'의 생동감을 제게 불러일으켜 주었습니다. 마치 팝콘이 투두둑 터지듯이, 갈색의 마른 나뭇 가지 위로 마구 부풀어 피어오른 그 하얀 꽃송이 송이들의 아름다움을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길이 있을까요. 비록 한 때이긴 하지만 그 꽃들은, 도로를 메운 차들이나 그 옆의 아파트와 빌딩 같은 모든 것을 무색하게 할 만큼, 이 세상의 주인은 오직 자신들임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이 봄의 주인공은 단연 그들이었어요. 올 봄이 다 지난 후에도 마음에 남을 어떤 영원한 이미지를 그 날 만난 벚꽃이 전해주었습니다.
최근엔 철쭉의 향연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붉은 철쭉이 곱다 한들 흰 철쭉의 청순한 아름다움을 넘어설 수 있을까요. 한 송이만 보면 붉은 빛이 돋보이지만, 무리지어 피어 있을 때는 하얀 빛깔이 훨씬 찬연합니다. 타인에게 자신을 과시하지 않는 은은함을 간직한, 세상에서 가장 기품 있는 환한 빛입니다. 붉은 색의 아름다움이 이 지상에 만족하는 듯한 아름다움이라면, 흰 색의 꽃들은 이 지상의 것을 넘어서는 아름다움,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알 수 없는 곳 혹은 천국에 도착한 것 같은 그런 느낌을 불러일으킵니다. 영혼을 움직이는 아름다움입니다.
그래서 전 이 봄, 이 하얀 꽃들에 넋이 나가 있습니다. 이 꽃송이 송이들 곁을 지날 때마다 제가 미처 알지 못한 어떤 낙원에 발을 디딘 것 같습니다. 저는 비록 그곳의 영구한 주민은 되지 못할 것이지만, 그 곁을 지나는 잠시 동안만은 그 향기를 슬쩍 맛보아도 좋다는 권리를 허락받은 것 같습니다. 우리 곁에서 가만가만 움직이고 있었으나 우리가 미처 그 존재를 발견하지 못한 나라, 꽃이 주인이고 우리는 지나가는 손님에 불과한 그 어떤 신비한 나라에 잠깐 초대된 것 같습니다.
(폰 사진이라 화질이 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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