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뢰즈와 문학이 만나 만들어낸 유쾌한 변이. 철학과 문학의 '사이'에 선 비평서. 보르헤스, 울프, 스위프트 등의 작품들이 들뢰즈의 개념으로 재창조되어 새로운 기계로 우리와 접속한다.
1부 이진경의 글. 들뢰즈의 문학-기계 이론을 친절하게 설명한다. 낯설고 신선한 개념이다. 적극적인 의미에서 문학을 한다는 것은 다른 삶을 사는 것이고, 작품은 욕망과 그 욕망이 방향지워지는 삶이 출현하는 장소로서, 언제나 외부의 요소들, 독자, 환경, 다른 책과 접속하여 작동하는 삶의 특정한 배치 안에서 작동하는 기계다.
문학성은 문학-기계의 능력으로 다른 종류의 삶을 생성할 수 있는 능력이다. 다양한 배치 안에서 접속하여 작동할 수 있는, 기계의 변환가능한 폭을 말한다. 따라서 모든 적극적인 문학은 정치적이다. 서로 다른 경계와 영토를 횡단하면서 도래할 다른 삶, 다른 민중을 촉발해낸다.
작품 비평 중에선 체르니셰프스키의 소설, '무엇을 할 것인가'를 비평한 고미숙의 글 '꼬뮨주의적 사랑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매우 인상적으로 읽었다. 한 세기 전에 쓰여진 이 뛰어난 소설을 꼭 읽어봐야겠다.
저자가 지적했듯 우리 시대의 사랑과 연애는 참으로 통속적이다. 사랑이 생명의 호소, 스피노자가 말한 기쁜 능동촉발이 아니라 인정 욕구에서 비롯하며 결국 그렇고 그런 희생과 연민, 권태의 공식을 따라가는 걸 숙명으로 여기는 듯 하다. 그래서 사랑이야말로 영구 혁명을 필요로 하며, 혁명은 사랑법을 바꾸는 일이기도 하다.
주인공 베라, 로뿌호프, 끼르사노프, 이들 유물론자들은 전혀 다른 사랑법, 전혀 다른 삶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자기 동일성으로의 요구가 아니라 그의 본성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하도록 하는 것, 예속과 집착을 넘어서 우리 신체가 기뻐할 수 있는 길을 따라 걷는 것, 그러한 사랑. 사랑의 무상함, 그 변화무쌍함의 한복판을 헤엄쳐 가며 그들이 이루어내는 능동적인 변이의 선, 깊은 유대, 눈부신 생명의 흐름에서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들은 결코 그렇게 높은 곳에 있지 않다.
다만 여러분이 너무도 낮은 곳에 서 있을 뿐이다. 이제 여러분들은 그들이
이 땅 위에, 대지 위에 두 발로 굳게 버티고 서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마일 그들이 구름 속을 날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것은 여러분들이 너무도 초라한 땅굴 속에 앉아 있는 탓이다.
그들이 서 있는 고지에 이제 모든 사람들이 서게 될 것이다......
자유롭게 밝은 세상으로 나가라!
그런 세상에서 사는 것은 좋은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는 길은 이미 열려 있다.....
인생을 주의 깊게 관찰해 보라. 그것을 관찰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그리고 생각하라. 기쁨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전부이다. 어떤 희생도 있어서는 안 된다.
더욱이 어떤 박해도 요구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것들은 필요치 않다.
오직 행복해지도록 노력하라! 그것이 전부이다.
오직 그러한 욕망만이 요구될 자격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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