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작품이든 교사가 그 작품을 시간을 들여 충분히 이해하고 생각했을 때 수업의 초점을 제대로 잡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황지우의 시는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가 주로 다루어져 왔고, '너를 기다리는 동안'을 가르친 건 처음인데 여러모로 미숙했다는 생각이 든다. 작품 속에 흠뻑 젖어들지 못한 수업이랄까. 무언가 작품의 핵심을 관통했다는 느낌이 드는 수업도 있고, 표면만 툭 건드리고 지나간 듯한 느낌이 드는 수업이 있다. 황진이/서경덕에 이어 이 작품도 후자의 아쉬움만 내게 남겼다.
시작은 괜찮았다. 올해 교과서에서 시 작품이 처음이라 학생들에게 아는 시인이 누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윤동주, 이육사, 백석, 한용운, 이상화 등이 나왔고, 나는 여러분이 잘 아는 이 시인들이 모두 일제강점기 작품이라고 이야기해주었다. 그리고 내가 생각해도 이 시대의 시가 최고라는 생각이 든다고, 그 이유를 생각해보니 깊은 고통을 받은 사람이 타인의 마음을 위로해줄 수 있어서 그런 것 같다고, 여러분이 시험을 망쳤는데, 전교 1등이 '괜찮다'고 하면 위로가 되겠냐고, 부모님이 모두 아파 알바를 뛰는 친구가 '야, 시험 그거 별 거 아냐, 괜찮아' 하면 위로가 된다고, 이야기하니 학생들도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면서 해방 이후에도 다양한 시인들의 작품이 있지만, 이 일제강점기의 사회참여적인 시의 계보를 잇는, 굉장히 무게감 있는 시를 쓰는 분이 김수영과 황지우 시인이라고 수업의 화제로 돌아왔다. 그 중에서 '너를 기다리는 동안'은 상대적으로 굉장히 부드럽고 예쁜 시여서 여러분이 쉽게 다가갈 수 있을 거라고 수업 말문을 열었다.
음악을 틀고 다같이 시를 낭송하고 시의 내용을 물으니 다들 '기다림'에 대한 시라고 답했다. 여러분은 누군가를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려봤냐고 물으니 한 녀석이 친구를 한 시간 반 기다렸다고 대답했고, 한 여학생은 아마 3시간 이상은 기다려 주지 못할 거라고 말했다. 내가 '방탄소년단이라면' 하니 여학생들이 금새 태도를 바꾸어 3일은 기다릴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 시의 화자는 어떻게 기다리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들여다보자고 하면서 시상 전개 과정을 따라가보았다.
시의 화자는 떨리고 두근거리고 설레고 '너'가 오지 않을까봐 초조해하다가 문득 태도를 바꾸어 지금 '너'가 보이지는 않지만 조금씩 '너'가 내게 다가오고 있는 중이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오랜 세월을 다하여', '아주 먼 데서' '천천히' 오고 있기 때문에 지금은 만나지 못하고 있지만 '너'는 오고 있고, '너를 기다리는 동안'에 화자 자신도 너에게로 가는 중이라는 것을 깨닫는다는 내용이다.
여기에 대한 토론 과제로 "화자는 왜 너를 기다리는 것이 너에게 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을까"를 제시했는데, 토론이 썩 잘 되지는 않았다. 몇몇은 그것은 화자의 정신 승리일 뿐인 것 같다,, 이렇게 생각했고, 화자의 마음에 좀 근접한 조는 "네가 오는 데 아주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기다리는 것이 곧 네가 오는 것이라는 답을 했다. 토론에 이어 화자의 마음을 잘 대변하는 사진을 고르고 글쓰기 활동을 했는데 생각만큼 다양한 반응이 나오지 않았다.
다시 이 수업을 한다면, "너를 기다리는 것이 왜 너에게 가는 것일까" 이 질문 대신, 더 직접적으로 "화자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길래 너를 기다리는 것이 너에게 가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화자는 아마 아주 오랫동안, 혹은 평생이라도 기다릴 수 있다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는데, 대체 화자가 기다리는 것은 무엇일까" 이러면 추상적인 답변보다 좀 더 구체적인 다양한 말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마무리 활동은 "나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가"로 글쓰기를 했으면 더 나았을 법하다. 학생들의 반응은 다양할수록 좋지만, 질문은 의미가 명확하고 좀 더 "구체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것이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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