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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이야기/일본

란덴 열차 타고 아라시야마 가는 길 / 교토 광륭사, 금각사, 용안사, 천룡사

by 릴라~ 2018. 6. 1.

'철도의 나라'라는 별칭답게 일본 철도는 아주 다양한 노선을 자랑한다. 

각 철도 회사의 주인이 달라서 통합 패스가 없으면 

지하철 환승을 할 때마다 돈을 따로 내야 한다는 굉장한 번거로움이 있지만, 

관광지의 경우 기차가 닿지 못하는 곳이 거의 없는 점은 큰 장점이다.

자가용 여행이 아니고서도 일본 구석구석까지 돌아볼 수 있다. 

교토에는 관광용 꼬마 기차 '란덴 열차'가 있어 교외 유적을 연결해준다. 

교토의 시조 오미야 역에서 출발하여 아라시야마까지 가는 이 관광기차를 타면 

교토 '낙서 지역' 유적들을 대부분 만나볼 수 있다. 

낙서 지역의 유적을 하루 동안 다 들르기엔 벅차 보여서 

나는 꼭 봐야 할 장소 네 곳을 뽑았다. 

광륭사, 금각사, 용안사, 그리고 아라시야마의 천룡사였다. 

광륭사에는 그 유명한 '목조미륵반가사유상'이 있고 

나머지 사찰은 선불교의 영향이 짙은 일본 정원의 독창적 스타일을 대표하는 곳이다. 

란덴 열차가 처음 안내한 광륭사(고류지)는 기차역 바로 앞에 있었다. 

경내는 무료지만 미륵반가사유상이 있는 '신영보전'은 입장료를 따로 받고 있었다. 

광륭사는 신라 도래인 진하승이 세운 절에서 기원했기에 

신영보전에는 진하승 부부의 상도 있었다.

목조미륵반가사유상은 딱 봐도 국립중앙박물관의 금동미륵반가사유상과 

쌍둥이처럼 닮았다. 동일 인물이 만든 작품 같았다. 

약간 기울인 고개와 부드러운 어깨 곡선, 턱을 괸 손의 자태...... 

바로 옆의 다른 불상과 확연히 다른, 마치 살아있는 듯한 생생한 아우라가 

느껴진다. 누가 봐도 걸작 중의 걸작이다. 

크기는 금동미륵반가사유상보다 훨씬 컸다. 

실물 크기의 부처라 더 큰 감동을 받았다. 

아쉽게도 사진 촬영은 금지였다. 그래서 한참을 바라보기만 했다. 

표정이나 자태 모든 것이 내겐 한국적인 정취를 전해주었다. 

완벽한 열반에 든 모습이라기보다는 고민하고 진리를 궁구하는 

학승의 느낌이 나서 더 인간적인 느낌도 받았다. 

다음으로 간 곳은 용안사(료안지). 

기차역에서 내려 15분 정도 걸어가야 한다. 

용안사는 15세기 무로마치 시대의 걸작인 마른산수 정원 즉 석정으로 유명하다. 

입구의 방장 건물은 마치 숲속에 있는 듯 녹음에 둘러싸여 있었다. 

규모도 굉장히 컸고 넓은 내부 공간을 칸막이로 나눌 수 있는 구조였다. 

방장 건물을 보면 일본 목조 건축이 우리와 달리 스케일이 굉장히 크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시원하고 호쾌한 맛이 있다. 

방장 정원인 석정은 영화에서도 본 적이 있는데 실제가 더 멋이 있었다. 

어떻게 그 시대에 마른 모래와 돌과 이끼만으로 정원을 구성할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이처럼 현대적이고 세련된 감각을 가질 수 있었을까?

유홍준 선생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교토편'에서 

한국도 불교가 굉장히 번성했고 학문적으로도 최고의 경지에 올랐지만 

그것이 문화적 양식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고 말한다. 

반면에 일본은 선불교를 체화하여 자기만의 독자적인 건축과 정원 양식으로 

발전시켜 간다. 불교와 일본 문화의 결합이 새로운 문화를 탄생시킨 것이다. 

일본적인 '양식'이 있다는 것이 일본 문화의 진정한 저력이었다. 

용안사 석정은 서구의 많은 예술가들을 매료시켰지만 그 미감의 본질은 

서구인보다 유홍준 선생이 더 잘 포착하고 있었다. 

석정은 '비운 공간'이 아니라 '꽉 채워진 공간'이었다. 

채우는 방식이 서양과 다를 뿐. 

석정은 빈 공간을 모래로 빈틈없이 채워서 완성시키고 그것을 관조하게 한다. 

금각사도 역에서 십여 분 걸어가서 만났다. 

작은 절집이지만 주변 연못과 자연 경관과 어우러져

마치 산 속에 있는 작은 보석 같다.

규모는 그와 비교가 안 되지만 인도의 타지마할처럼 예뻤다.

금을 칠한 집이 무겁거나 둔중하지 않고 마치 성냥갑처럼 날렵하다.

꿈 속의 한 장면 같은 신비로운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마지막으로 도착한 아라시야마는 가쓰라강을 끼고 있는 작은 시골 마을이다. 

주변 산세가 편안하고 아늑해서 휴양지 느낌이 났다.

 아라시야마에 오후 네 시가 넘어 도착하는 바람에 

일본 정원의 효시라 불리는 천룡사(텐류지)는 30분밖에 보지 못했다. 

모래 정원과 물이 흐르는 지천회유식 연못이 어우러진 

천룡사의 소겐치 정원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정원 자체가 훌륭한 미술 작품이어서 '일본식 정원'이 유명세를 얻을 만하다 싶었다. 

천룡사의 모래 정원에서 바로 석정이 시작되었다 한다. 

선불교의 참선의 전통이 '관조의 기쁨'에 주목하는 

정원 예술로 발전했다는 것이 흥미롭다. 

그리고 이 '보는' 즐거움은 일본의 디자인과 예술 곳곳에 스며 있다. 

예술가가 설계하고 가꾼 '정원'보다는 

업자들이 공사한 엇비슷한 '공원'에 익숙했던 내게 

금각사와 용안사, 천룡사 정원의 아름다움은 신선한 문화적 충격이었다. 

사상이 학문적 담론의 차원에 머물지 않고 시대에 맞는 예술적 양식으로 진화하여 

기층 민중의 문화에까지 뿌리내린 것이 일본 문화의 저력이었다.



*2017/2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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