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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에세이

낯선 시선/ 정희진

by 릴라~ 2018. 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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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제, 다르게 생각하기가 생존의 문제가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지식 정보화 사회의 '진정한' 의미는, 언어/사유의 힘이 중대해졌다는 사실, 그리고 사회적 약자가 자기 언어를 갖지 않으면 존재 양식을 잃는 시대라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돈이나 물리력이 없다. 절대 다수인 사회적 약자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자원은 윤리와 언어뿐이다. 그리고 남녀를 불문하고 여성주의는 이 과정에 '지름길'이 될 것이다. 이것이 여성주의 윤리학과 정치학이 모델로 하는 메타젠더이다. p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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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의제가 무너진 지 오래지만,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자기 이익을 대변할  사람보다는 자신이 욕망하거나 동일시하는 사람에게 표를 주기 시작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나 안철수 '현상'이 대표적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이보다 어리석은 일은 없다. 직업 정치인의 기업인화, 연예인화. 이것은 정치 자체의 붕괴다. p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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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둘 곳, 마음을 두는 곳은 어디인가. 나는 한때 이데올로기에 마음을 두었고, 한때는 사람에게 마음을 두었지만 지금은 없다. 나의 거처는 나 자신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니 나 역시 있을 곳이 없다. 옆을 기웃거리게 된다. 외로움과 혼자임은 무관하다. 문제는 자기 충족적인 건강한 외로움이 아니라 불안하고 고립된 느낌이다. 외로운 사람이 취약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외로워서가 아니다. 외로움 자체는 죄가 없다. 사회가 따뜻하다면, 외로움은 절실한 연대의 근거가 된다. 그런데 경험하다시피 현실은 외로운 사람을 이용한다. (...)


나를 포함해서 마음 둘 곳도 몸 둘 바도 없는 이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많은 젊은이들이 자신이 잉여 신세임을,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음을 알고 있다. 자기 계발도, 힐링도 속임수라는 것을 안다. 거기에 투자할 돈도 없다. 다른 쪽 사람들, 고령화 사회에서 나이 들어 가는 이들의 심정은 또 다른 서러움이다. 세상이 계속 '당신의 존재 자체가 사회 문제'라고 하면? 고령화 대책은 좋은데, 그럴 때마다 '실제' 고령인 사람의 심정은 어떻겠는가. 나는 그들과 동일시된다.


나의 결론. 한 사람에게라도 의미 있는 사람이면 되지 않을까. 쓸모가 '생산과 건설'로 지구를 망치는 일이라면, 쓸모의 의미를 재규정하면 되지 않을까. 내 마음 둘 곳을 찾지 말고, 쉽지 않겠지만 남들이 마음을 둘 수 있는 사람이 되어보자. 이렇게라도 생각을 묶어 두어야 새해를 감당할 수 있을 것 같다. pp195-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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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전 대통령의 '치적' 중 하나는 특정 캐릭터를 사회적 현상으로 정착시켰다는 점이다. 그것은 뻔뻔스러움이다. 그는 이를 스스로 체현하고 제시함으로써 이 시대를 '살아낼 수 있는 인성'이란 무엇인가를 증명했다. 내 생각에 그는 역대 대통령 중에서 가장 표정이 없는 정치인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장례식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과 대조를 이루던 그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이것은 두 인물의 정치적 성향 차이나 고 노무현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인생은 연극이고 우리는 배우라는 비유에 기댄다면, 그들은 전혀 다른 캐릭터였던 것이다. pp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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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고난이 정신적 면역력을 압도할 때 인간은 자살한다. 암으로 사망하는 경우를 선택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자살은 질병사다. 그런 면에서 사회적 타살과 개인적 자살의 원인은 같다. (...)


자살의 이유가 개인적이냐 사회적이냐의 구분은 자살에 대한 몰이해의 첫 단추다. 자살 여부를 결정짓는 것은 고통에 대한 몸의 면역력이지, 개인의 나약함이나 사회적 억압 자체가 아니다. 사회와 생물은 상호 작용한다. 생물학은 환경에 대한 생명체의 적응과 변화를 연구하는 학문 아닌가. pp225-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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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경제적 지위가 바닥인데 성과 사랑에서만 평등이 가능할 수 있을까. 이때 여성은 성별화된 자원(젊음과 외모)을 내세울 수밖에 없다. 성 역할 - 이성애 - 결혼 제도 - 성매매의 연속선 개념이 여기서 나왔다. 한국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었다는 말만큼 유언비어인 것도 없다. 여성 노동의 증가를 지위 향상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가 남녀 임금 격차를 발표한 2000년부터 부동의 1위를 지켜왔다. 2014년도 역시 압도적 1위였다. 한국 여성은 남성보다 36.7퍼센트 덜 받는다. 2015년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한 유리천장 지수에서도 한국은 29개 조사국 중 29위를 기록했다. 세계경제포럼의 성차별 지수 역시 145개국 중 115위다. p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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