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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이야기/여행 단상

경찰청 인권센터로 바뀐 남영동 대공분실

by 릴라~ 2018. 10. 27.

 

한 시대를 한 마디 말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시대의 다양한 표정을 한 마디로 포괄하기도 역부족이고 역사를 단순화해서 바라볼 위험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논란을 넘어서 한 시대의 본질적인 부분을 슬쩍 통찰하게 하는 장소와 유물이 있다. 남영동 경찰청 인권센터가 내겐 그런 곳이었다. 

 

경찰청 인권센터에 가려고 서울역에서 남쪽으로 한 정거장 아래인 남영역에 내렸다. 인권센터는 남영역 바로 근처에 있었다. 지금은 경찰청 인권센터로 쓰이지만 원래 군사독재 시절에는 남영동 대공분실이 있던 곳이다. 1987년 박종철군이 고문으로 숨진 곳이자, 정지영 감독의 영화 <남영동 1985>의 무대가 되는 곳. 지금은 인권센터 바로 맞은 편에 호텔이 몇 채 들어서 있어서 격세지감을 느끼게 했다. 입구 사무실에서 출입허가증을 받고 마당에 들어서니 검은 벽돌로 지어진 ㄱ자의 꽤 오래된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검은 색의 육중한 외벽이 위압적인 느낌을 준다. 

 

이곳에서 관람객이 볼 수 있는 곳은 1층과 4층, 5층이었다. 1층에는 인권 센터의 간략한 역사가 소개되어 있다. 원래 이곳은 1976년에 2층과 5층이 붙어 있는 ㄱ자 건물로 지어졌다가 80년대에 5층 건물만 7층으로 증축했다고 한다. 

 

4층에 있는 박종철 기념관을 보고 5층으로 올라갔다가 깜짝 놀랐다. 5층에는 수십 개나 되는 작은 방이 복도 양 옆으로 죽 이어져 있다.  내가 그곳에 머문 시간은 길지 않았다. 아니, 속이 울렁거려 오래 머물 수 없었다. 잠깐 둘러보았지만, 본 것으로 충분했다. 남영동 대공분실은 군부독재가 어떤 시대였는가 하는 내 질문에 충분한 답이 되었다. 

 

그 많은 방 중에서 박종철이 숨진 9호실은 옛모습 그대로 두었지만 다른 방들은 모두 말끔히 정리된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빈' 방들은 비어있지 않았다. 그 시대의 공기를 아직도 담고 있었다. 창문 없이 햇빛 한 자락만 간신히 들어올 수 있는, 창이라 하기엔 어설픈, 길고 좁은 틈새로 빛이 들어오는 곳. 세면대가 있던 자리 말고는 아무 것도 없지만 그곳에는 여전히 그때의 공포가 자리하고 있었다. 아니, 그 방에 갇히기만 해도 공포에 떨 것 같았다. 그 수십개의 방 하나하나마다 누군가가 갇혀 낮인지 밤인지 모를 불면과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거짓 자백서를 썼을 것이다. 남영동 대공분실은 군부독재의 권력이 어떻게 집행되는가를 가장 명징하게 보여주는 장소였다. 부당할 뿐 아니라 음습하고 악한 권력의 증거였다. 

 

이 건물은 건축가 김수근이 지었지만 그의 작품 연보에는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김수근이 이 건물이 고문 용도로 쓰이는지를 알았는지 확인할 길은 없다. 하지만 건축가 조한(서울, 공간의 기억, 기억의 공간)은 이 건물을 "건물의 외부 형태에서 실내 공간에 이르기까지 건축가 김수근의 건축 언어를 통해 ‘고문’의 기능이 치밀하게 녹아 있다"고 단언한다. 5층은 승강기나 1층에서부터 연결된 원형 계단을 통해서만 접근할 수 있는데, 고문 피해자들은 입구에서 구타당하고 둥글둥글 위로 올라가는 원형 계단을 타고 고문실로 올라가서 그곳이 몇 층인지 인지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렇게 도달한 5층은 마치 지하로 느껴질 만큼 어둡고, 색상도 크기도 똑같아 어디가 어디인지 알 수 없는 취조실로 보내진다. 취조실의 창문이 사람 머리도 통과하지 못할 정도로 좁고 길게 난 까닭은 창밖으로 뛰어내려 자살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라고 한다. 취조실에는 샤워실과 세면대가 있는데 당시 일반 가정에 샤워실이나 욕조가 없었으므로 물고문을 위한 용도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건축가 조한은 그래서 이 장소를 "시각적으로나 청각적으로나 세상으로부터 완벽하게 고립된 환경으로 감시와 고문을 위해 최적화된 장소"라고 평가한다. 그리고 건축학적으로 이렇게 아름다운 건물이 이렇게 잔인한 용도로 사용되는 것에 충격을 표시한다. 건축에 문외한인 내가 보아도 5층은 오래 머물지 못할 만큼 정서적으로 힘겨운 장소였는데, 이 건축물에 배어 있는 거장의 솜씨를 하나하나 확인하는 그의 충격은 짐작할 만하다. 고 김근태 의원 또한 이곳에서 고문당했다고 한다. 

 

박정희 시대(와 이어진 전두환 시대)는 경제개발의 시대인가, 인권 유린의 시대인가. 아직 이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있다면 남영동 대공분실을 보라고 말하고 싶다. 추악한 권력과 그 권력에 봉사한 거장의 솜씨가 녹아 있는 곳에서 그 시대를 지탱해온 두 개의 얼굴을 선명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독립된 제 나라의 빈천이 남의 밑에 사는 부귀보다 영광스럽고 희망이 많다는 김구 선생의 말이 떠오른다. 사람을 짓밟으며 이룩한 경제 개발은 다음 세대에 아무런 희망도 비전도 줄 수 없음을 다시금 생각한다. 

 

2018/9

 

 

 

*사진-웹 검색에서

sheshe.tistory.com/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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