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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영화, 드라마

남영동 1985 | 정지영 감독 — 그 슬픔은 과연 끝났을까

by 릴라~ 2012. 12. 14.

 

 

 

 

 

 

영화를 다 보고 극장 문을 나섰을 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예전과 달리 느껴지게 하는 그런 영화가 있다. 극장 밖의 햇살이 한층 눈부시게 빛나고 이 순간 내가 자유롭게 숨쉬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게 되는 그런 영화. <남영동 1985>가 바로 그러했다.

 

이 영화는 두 시간의 러닝타임 동안 우리들을 1985년 9월 남영동 대공분실 505호의 작은 방에 가두어둔다. 영화는 매우 건조하게 전개된다. 첫째 날, 둘째 날, 셋째 날..... 그리고 스물 넷째 날. 날이 더할수록 고문의 강도는 세어지고, 물고문, 고춧가로 고문을 지나 전기 고문을 가하는 장면에선 나도 모르게 눈을 감고 말았다. 이 비극이 사실임을, 인간이 다른 한 인간에게 이토록 끔찍한 고통을 가할 수 있음을 도저히 믿을 수 없어 하면서.

 

고문 없이는, 철권 통치 없이는 유지될 수 없는 독재권력. 단 한 명의 희생자가 있다 하더라도 그 권력은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 '남영동'이라는 공간은 그 권력과 결부된 모든 사람이 단연코 물러나야 하고 그 죄값을 톡톡히 치러야 함을 가장 분명하게 증언하는 곳이었다. 어떤 정치적 논리도 이념도 윤리도 필요치 않다. 영화를 본 이라면 누구나 그 독재권력의 부당함을 우리들의 가슴으로부터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의 실제 주인공 고 김근태 선생은 작년에 고문후유증으로 작고하셨다. 그를 고문했던 고문기술자 이근안은 출소 후 목사가 되었다가 네티즌들의 항의로 목사 지위를 박탈당하고 지금은 행방이 묘연하다 한다. 영화의 마지막에는 당시 남영동에 끌려가 고문을 당했던 분들의 짤막한 소회가 이어진다. 울컥 하며 단 한 마디도 못하는 이도 있었다. 그 한 분 한 분의 얼굴은 여전히 그 시간의 흔적과 고통의 자취들을 표정 안에 간직하고 있었다(그 가운데 이재오가 나와서 깜놀. 저 혼자 얼굴이 번드르르하더라). 그 억울함과 분노,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어떻게 감내했을까.

 

시간은 모든 것을 휩쓸어간다. 그 흘러가는 물리적인 시간 속에서 무언가를 기억하고 회상하고 기리는 일은 인간이 시간을 새롭게 창조하는 행위이다. 고통의 역사를 기억하고 간직하고 그것이 오늘에 주는 의미를 되짚어보는 일은 그 어떤 미래에 대한 구상보다 더욱 미래지향적인 행위이며, 우리를 인간답게 해주는 일일 거라 생각한다. 슬픔은 단지 슬픔이 아니라 우리가 그 슬픔으로부터 벗어나야 하고, 그 슬픔보다 더 큰 기쁨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알려주는 표지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남영동 1985>는 2012년 12월 오늘, 우리가 그 슬픔으로부터 과연 해방되었는지를 진지하게 되묻고 있다.

 

 

덧붙임) 영화에서 주인공들의 '대사'가 주는 울림이 약한 것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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