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 내내 세렝게티 대평원이 내려다보였다. 르완다 키갈리에서 탄자니아 킬리만자로 공항으로 향하는 아침 비행기는 세렝게티 대평원 바로 위로 지나간다. 운좋게도 날씨가 화창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세렝게티는 연두빛과 초록빛이 듬성듬성 섞인 황토빛이었다. 르완다의 오밀조밀한 산들만 보다가 광활한 대지를 보니 이제야 진짜 아프리카에 온 것 같았다. 가슴이 뛰었다.
비행기가 세렝게티 평원 위를 한참 지날 무렵, 승무원의 안내 방송이 나왔다. 지금 비행기가 응고롱고로 분화구 위를 지나가고 있다는 방송이었다. 날씨가 좋아 킬리만자로도 볼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킬리만자로의 두 봉우리 키보(5895m)와 마웬지(5254m)가 구름 위로 살짝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킬리만자로 산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지금 우기철이라 날이 흐리면 현지에 가서도 킬리만자로를 못 볼 수도 있다. 그 경우엔 지금 이 풍경을 마음에 담아가면 되겠다 싶었다.
킬리만자로 공항에서 인접한 도시 아루샤까지는 한 시간 반 정도 걸렸다. 킬리만자로 공항은 세렝게티로 가는 관문인 아루샤와 킬리만자로산으로 가는 관문인 모시 사이에 있다. 어느 한 쪽이라도 가까우면 편리하련만 두 도시가 서로 공항을 유치하려고 했을까. 킬리만자로 공항은 아루샤와 모시 사이 허허벌판에 있었다. 사람들이 아프리카에서 가장 깨끗하고 좋은 공항이라고 말할 때는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나중에 잔지바 공항과 다르에스살람 공항을 거치고 나서야 그 의미를 알게 되었다.
아루샤의 여행사에 들러 사파리 세부 일정을 조율했다. 이메일로 대강의 이야기는 나누었지만 내가 미리 예약한 숙소 때문에 스케줄에 차질이 생겼다. 숙소까지 포함해서 전체 패키지로 예약할 수도 있지만, 원하는 숙소에 묵고 싶어 나는 숙소를 따로 인터넷으로 예약해둔 상태였다. 1박은 세렝게티 내 롯지, 2박은 응고롱고로 게이트 근처의 카라투에 예약했는데, 카라투가 게이트 밖에 있는 게 문제였다. 세렝게티 국립공원은 응고롱고로 보존지구를 통과해서 들어가게 되어 있다. 그리고 응고롱고로는 게이트 입장료와 분화구 입장료를 따로 받는다. 둘째 날, 응고롱고로 안에서 자야 셋째 날 분화구를 볼 때 게이트 입장료를 다시 내지 않아도 된다.
카라투 숙소를 포기하고 응고롱고로 안에서 자려니 롯지 추가 비용이 너무 비쌌다. 여행사에서 대안을 제시했다. 둘째 날 응고롱고로에서 캠핑을 하고 카라투 숙소는 셋째 날로 미루라는 것이다. 지금 비수기여서 사람이 다 찰 일은 없다고. 전일정 캠핑이면 요리사가 동행하는데, 우리는 첫날은 세렝게티 내 롯지 숙박이라 요리사가 필요 없었다. 여행사에서는 옆 팀에서 음식을 얻어주겠다고 했다. 그래서 140불 추가해서 둘째 날은 캠핑으로, 셋째 날은 아루샤 대신에 카라투에서 묵기로 했다.
아루샤에서 세렝게티까지는 8시간 거리였다. 아침 7시에 출발해서 점심도 차 안에서 먹으며 잠시도 쉬지 않고 달린 끝에 오후 3시에 겨우 세렝게티 국립공원 나비게이트에 도착했다. 아루샤에서 응고롱고로 인근까지 3시간은 포장도로였고 이후는 비포장도로였다. 응고롱고로 분화구 일대의 오르락내리락 언덕길을 통과하자 비로소 거대한 세렝게티 대평원이 눈앞에 나타났다. 이동의 힘겨움 때문에 경비행기로 세렝게티 국립공원 안에 있는 세로네라 공항으로 들어오는 이들도 있다. 이 경우엔 비용도 너무 많이 들고 응고롱고로에 들를 수 없어서 우리는 차량 이동을 선택했다. 마침 비수기여서 단독 차량 투어지만 합리적인 가격에 올 수 있었다. 세렝게티 일대는 입장료 자체가 비싸서 여행사와 흥정할 때 더 깎을 만한 것도 없었다.
세렝게티 국립공원은 24시간마다 입장료가 부과된다. 나비게이트에 도착한 시간이 3시이므로 다음 날 3시, 우리는 나비게이트를 나와야 한다. 세렝게티는 경상북도 정도의 크기이다. 이 짧은 시간이면 세렝게티를 봤다기보다는 그저 잠깐 세렝게티 귀퉁이에 한 발 디뎠다가 나왔다는 표현이 맞다. 그럼에도 세렝게티는 충격적으로 아름다웠고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한 감동을 주었다. 거기서 머문 한 순간 한 순간이 축복이었다.
*2019년 4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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