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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로 코엘료가 수필집을 냈다. 예상치 못한 일이다(내 예상에 전혀 권위가 없긴 하지만...^^). 소설책에 실린, 어떤 새와 함께 찍혀 있는 코엘료의 사진, 신비로운 풍모의 아름다운 중년 남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들려줄 줄은 몰랐다. 그는 늘 신비에 싸여 있을 것 같았는데...
사실 난 소설가들이 쓴 수필을 좋아하지 않는다. 소설가들의 최고 작품은 역시 소설이고, 그들의 수필은 대개 감상적이거나 진부하다. 수필은 사회과학이나 자연과학 전공자, 정치가, 예술가 등 각 방면의 프로가 쓴 게 내용도 훨씬 풍부하고 남는 게 있다. 예외적 인물은 딱 한 명, 이외수.이외수의 수필은, 자신의 삶 전부와 맞닥뜨리며 겪은 고투가 담긴 단단한 언어라서, 소설과는 다른 무언가를 늘 전해주기 때문에.
이제 여기에 한 명을 더 추가해야겠다. 파울로 코엘료. 그의 첫 수필집, 마음에 들었다. 첫머리를 보면 흔한 이야기인 것 같은데 말미는 그렇지 않다. 늘 코엘료식의 삶을 대하는 관점이 있고 자기 고유의 깨달음이 있다. 이 분의 개성을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소설도 그렇고 수필도 그렇고 굉장히 단순한 구조인데, 다른 이에게 없는 어떤 강한 에너지가 있다. 삶에의 에너지라고 할까. ‘영성’이라고 표현하자. 코엘료의 작품에는 ‘영성’이 깃들어 있다.
기독교와 영지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교조주의와는 거리가 먼, 삶 자체로부터 우러나는 영성. 생의 찬미. 그 자신도 그렇고, 소설의 주인공들도 그렇고 그들 모두는 구도자, seeker다. 그렇다고 저 깊은 산속에서 고고하게 사는 구도자가 아니라, 세상 한복판에서, 밑바닥에서, 시장통에서 사랑하고 투쟁하며 삶의 의미를 묻는 구도자. 그들은 사랑과 진리를 찾아 여행을 하고, 신을 만나고, 생의 본질에 다다른다. 작품에서 하는 이야기는 다 똑같다. 자기 안에서 신성을 발견하라, 소명을 실현하라, 그리고 사랑하라. 의미의 부재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은 그것에 열광한다.
이 책 <흐르는 강물처럼>도 그의 소설을 관통하고 있는 동일한 주제의 연장선상에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 책의 스토리가 작가 자신의 일상과 삶의 작은 경험들이라는 점. 그 속에서 건져 올린 의미의 선율들이 아름다운 변주곡이 되어 흘러간다.
오늘 하루가 무의미한 사람에게, 세상 모든 만물과 우리 내면에 깃든 신성에 귀기울이고 싶은 사람에게, 인간 각자에게 자신이 실현해야 할 가치가 있음을 믿는 사람에게, 혹은 믿지 않는 사람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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