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여성신학에 관한 대표적인 저서라 할 만하다. 유니온 신학대학 종신교수인 정현경의 박사논문을 번역한 책인데, 저자가 그 후에 이름을 현경으로 바꾸고 낸 책, <결국은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거야>, <미래에서 온 편지> 등이 더 유명하지만 나는 이 책이 가장 마음에 든다. 저자의 문제의식이 집약적으로 담겨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 여성 신학은 그들의 ‘찢어진 몸’에서 시작된다. 고난이 그들 삶의 경험의 중심적 요소이다. 그들은 ‘민중 속의 민중’이며 ‘한맺힌 사람들 중에서 가장 한맺힌 사람들’이다.
아시아 여성들에게 필요한 하느님은 ‘고난 받는 종’으로의 예수, ‘주님’ 예수가 아니다. 아시아 여성들에게는 그들을 해방으로 이끄는 완전한 인간성의 상징 예수가 필요하다. 해방자/혁명가로서의 예수, 한을 풀어주는 어머니/여성/무당으로서의 예수, 일과 식탁에서 느끼는 노동자/곡식으로서의 예수이다. 순종적 여성인 마리아가 아니라, 자기를 정의할 줄 아는 여성, 생명을 주는 어머니, 다른 여성과 연대하는 자매로서의 마리아다.
저자는 아시아 여성들이 종교 안에서 더욱 억압받았지만, 그들 스스로도 자신의 재능을 특정 역할에만 한정시키고 참된 정체성을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그리고 인간이 되기 위한 아시아 여성들의 투쟁을 ‘다시 태양이 되기 위한 투쟁’이라고 불렀다. 기존의 억압적인 힘을 보기 위해 비판적 반성이 필요하다면, 참된 자아를 발견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창조성이다. 비판적 반성이 자기 각성으로 이끈다면 창조성은 우리 존재를 긍정하게 한다. 자기 각성, 자기 긍정을 이룬 여성들은 그들의 개인적/정치적 관계들을 변화시킨다.
저자가 보기에 해방의 길을 찾아나서는 아시아 여성들의 영성은 사회적 상황 속에 놓인 한 인간의 몸과 영혼을 모두 고려하는 구체적/전체적인 것이며, 가부장적 금기를 깨는 창조적이고 유연한 것이고, 제 3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억압과 착취에 대항하는 예언자적/역사적인 것이고, 남성적 하느님상에 머물러 있지 않고 자연 안에 내재하는 ‘위대한 여신’을 만나는 초교파적/우주적/생명 지향적/창조 중심적인 것이다.
저자는 신학 역시 새롭게 씌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스도교의 정체성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강요된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 민중들의 종교적 지혜에 의해 변화되는 모험을 감행해야 한다고. 그것은 역사적 현실에 뿌리내리면서도 신비와 환상의 힘을 포함하는 비전(vision)적인 신학이어야 한다고.
여성을 위한 새로운 영성을 찾아 나섰던 저자는, 출발은 그리스도교였으나 결국 그리스도교의 틀을 벗어나게 된다. 이 책 이후로 저자는 에코페미니즘 안에서 새로운 영성의 비전을 발견했고 그것을 확장시켜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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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자신이 텍스트이고, 성서와 그리스도 교회 전통은 우리 신학의 콘텍스트이다. (pp207)
진정한 하느님의 백성의 기억은 결코 2000여년 전에 끝난 것이 아니며, 그리스도교의 정경 속에 갇혀 있을 수도 없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하느님의 계시의 본문은 우리의 몸 속에, 그리고 생존과 해방을 위한 민중들의 나날의 투쟁 속에 쓰여진다. (pp208)
원래 여자는 태양이었다 그는 참 인간이었다 그런데 이제 여자는 달이 되었다 그는 다른 것에 기대서 살며 다른 빛을 반사해서 빛을 낼 뿐이다 그의 얼굴은 창백한 병색이다 이제 우리는 감추어진 태양을 다시 찾아야 한다 “숨겨진 우리 태양을 밝히고 본래 우리의 선물을 다시 찾자!“ 이것은 우리 마음 속에 끝없이 울리는 외침이다 이것은 누를 길 없는 억누를 수 없는 우리의 욕구이다 이것은 우리의 마지막 완전한 그리고 유일한 본능이다 이를 통해 우리의 온갖 찢겨졌던 본능들이 하나가 된다 (pp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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