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의 관점에서 보면 소크라테스는 그리스가 보장하는 민주주의 안에서 마음껏 반민주적인 사상을 설파했던 '엘리트' 철학자였다. 민중을 경멸했으며, 모든 그리스인들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덕이자 의무로 생각하고 있던 시대에 그것을 부정했고, 자유 도시의 관점에서 아테네를 바라보지 않고 스파르타를 칭송했다. 그러나 그는 스파르타로 망명갈 생각은 전혀 없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아테네의 직접 민주정치가 이루어지는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하면서, 소크라테스가 과연 어떤 사상을 지니고 살았는지, 왜 그리스 민주정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소크라테스가 위험 인물로 비추어질 수밖에 없었는지를 조목조목 증명한다. 그리고 분명하게 잘라 말한다. 자신은 모든 종류의 독재자가 싫고 소크라테스도 거기에 포함된다고.
그런데 저자가 정말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과거의 소크라테스가 아니라 오늘의 소크라테스, 이른바 프로페셔널이라 불리는 지식인들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모든 방면에 관심을 갖고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 시민의 바람직한 자세라고 여겼다. 민주주의를 하나의 생활방식이라고 이해했으며 시민이라면 누구나 민주정에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모든 것을 위해서 교양을 쌓아야 했다. 그리고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은 무능한 시민으로 간주되었다.
저자는 이러한 그리스의 이상이 사라지고 오늘날은 전문가 특히 교수를 중심으로 하는 엘리트 전문가들이 세상을 지배하는 체제가 되었다고 비판한다. 오늘날의 간접 민주주의와 전문가주의, 관료주의가 그리스 민주주의의 토대가 되었던 아마추어리즘과는 전혀 다른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스인들은 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으로서 민회, 공무, 전쟁 등 공적 업무와 사적 업무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는데, 오늘날 지식인들은 그러한 의미의 자유인이 아니라 권위주의적 사육사, 비민주적 관료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두 가지 의문이 들었다. 지금의 지식인(미국식의 전문가들)들이 앞으로도 과연 사회를 이끌고 나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 노무현 대통령 서거에서 볼 수 있듯이 그들은 안목이 없었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했고, 비전을 제시하지도 못했기에. 두 번째 질문은 소설가 김진명이 지적했듯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위험을 무릅쓰고 행동에 나서는, 새로운 종류의 지식인들이 우리 사회에 출현할 것인지 하는 것.
지금의 우리 사회는 전문가형 지식인들이 세상을 끌어가는 것이 한계에 봉착했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닌지. 그렇다면 그 해결책은, 직접 민주주의의 이상을 조금씩 실현해가는 방향이 아닐지. 노무현 대통령께서 말씀하신 대로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 시민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자유롭게 발언하고 세상의 문제에 참여하며 자기를 실현해가는 그런 세상.
소크라테스의 옳고 그름에 대한 것보다는, 진정한 자유민이었던 그리스인들과 그들의 삶의 방식을 부러워하면서 읽은 책이다. 그리스인들의 그 드높은 자부심은 페리클레스의 다음의 연설이 잘 증명하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아테네의 직접 민주정치가 이루어지는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하면서, 소크라테스가 과연 어떤 사상을 지니고 살았는지, 왜 그리스 민주정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소크라테스가 위험 인물로 비추어질 수밖에 없었는지를 조목조목 증명한다. 그리고 분명하게 잘라 말한다. 자신은 모든 종류의 독재자가 싫고 소크라테스도 거기에 포함된다고.
그런데 저자가 정말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과거의 소크라테스가 아니라 오늘의 소크라테스, 이른바 프로페셔널이라 불리는 지식인들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모든 방면에 관심을 갖고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 시민의 바람직한 자세라고 여겼다. 민주주의를 하나의 생활방식이라고 이해했으며 시민이라면 누구나 민주정에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모든 것을 위해서 교양을 쌓아야 했다. 그리고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은 무능한 시민으로 간주되었다.
저자는 이러한 그리스의 이상이 사라지고 오늘날은 전문가 특히 교수를 중심으로 하는 엘리트 전문가들이 세상을 지배하는 체제가 되었다고 비판한다. 오늘날의 간접 민주주의와 전문가주의, 관료주의가 그리스 민주주의의 토대가 되었던 아마추어리즘과는 전혀 다른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스인들은 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으로서 민회, 공무, 전쟁 등 공적 업무와 사적 업무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는데, 오늘날 지식인들은 그러한 의미의 자유인이 아니라 권위주의적 사육사, 비민주적 관료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두 가지 의문이 들었다. 지금의 지식인(미국식의 전문가들)들이 앞으로도 과연 사회를 이끌고 나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 노무현 대통령 서거에서 볼 수 있듯이 그들은 안목이 없었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했고, 비전을 제시하지도 못했기에. 두 번째 질문은 소설가 김진명이 지적했듯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위험을 무릅쓰고 행동에 나서는, 새로운 종류의 지식인들이 우리 사회에 출현할 것인지 하는 것.
지금의 우리 사회는 전문가형 지식인들이 세상을 끌어가는 것이 한계에 봉착했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닌지. 그렇다면 그 해결책은, 직접 민주주의의 이상을 조금씩 실현해가는 방향이 아닐지. 노무현 대통령께서 말씀하신 대로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 시민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자유롭게 발언하고 세상의 문제에 참여하며 자기를 실현해가는 그런 세상.
소크라테스의 옳고 그름에 대한 것보다는, 진정한 자유민이었던 그리스인들과 그들의 삶의 방식을 부러워하면서 읽은 책이다. 그리스인들의 그 드높은 자부심은 페리클레스의 다음의 연설이 잘 증명하고 있다.
우리의 정치체제는 다른 나라의 제도를 흉내낸 것이 아니다. 남의 이상을 추종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로 하여금 우리의 모범을 배우게 하는 것이다. 소수의 독점을 배격하고 다수의 참여를 수호하는 정치체제, 그 이름을 민주정치라고 부른다. 이 정치체제에서는 모든 시민이 평등한 권리를 갖는다. 공적 생활에 봉사함으로써 주어지는 명예도 세인이 인정하는 그 사람의 능력과 업적에 따라 주어지는 것이고, 출신 가문이나 성장 과정에 따라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설령 빈곤 속에서 입신했더라도, 나라에 유익한 능력을 가졌다면 가난하다는 이유 때문에 그 길이 막히는 일은 없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자유로이 공사에 이바지할 길을 가졌으며, 또 사적인 생활에서도 나날이 완벽한 자유를 누리며 살고 있다. 우리가 누리는 자유는 의심이나 질투가 소용돌이치는 것까지도 자유라고 말할 만큼 완벽하다. ...그러면서도 나날이 수고를 잊게 해주는 교양과 오락을 만끽하고, 경기와 제전을 해마다 정해진 날에 개최하고, 주거도 쾌적하게 정돈하는 것이 중요함을 잊지 않는다... 자녀 교육에서도 상호간의 간격은 크다. 그들(스파르타인을 말함-역주)은 어릴 적부터 엄격한 훈련을 실시하여 용기를 함양하기에 힘쓰지만, 우리는 자유로운 기풍 속에서 자라면서도 위기가 닥쳤을 때는 물러나는 일이 없다. 우리는 시련을 대할 때도 그들처럼 비인간적인 엄격한 훈련을 받은 뒤의 예정된 결과로써 대하지는 않는다. 우리 개개인이 가진 능력을 바탕으로 한 결단력으로 시련을 대한다. 우리가 발휘하는 용기는 관습에 얽매이고 법률에 규정되었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아테네 시민 개개인이 일상생활을 할 때 갖고 있는 각자의 행동원칙에서 생겨난다... 우리는 질박함 속에 미를 사랑하며, 탐닉함이 없이 지를 존중한다. 우리는 부를 추구하지만, 이것은 가능성을 유지하기 위함일 뿐, 어리석게도 부를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다. 또한, 일신의 가난을 인정함을 수치로 여기지 않지만, 빈곤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함은 깊이 부끄러워한다. 우리는 사적인 이익을 존중하지만, 그것은 공적 이익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서다. 사익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사업에서 발휘된 능력은 공적 사업에도 응용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곳 아테네에서는 정치에 무관심한 시민은 조용함을 즐기는 자로 여겨지지 않고, 시민으로서 무의미한 인간으로 간주된다… 종합해서 말하면, 우리 아테네는 모든 면에서 그리스의 학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아테네의 시민이라는 명예와 경험과 자질을 종합체로서, 하나의 완성된 인격을 가지게 된다. 이것이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라 사실을 바탕으로 한 진실이라는 것을, 우리의 이런 사고방식으로 구축된 국력이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 시오노 나나미 - 참으로 격조높고, 이론의 여지가 없는 정론이다. 자유주의자의 바이블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2천 500년이 지나 인류는 진보하고 있을 터인데도, 20세기 말에 살고 있는 우리는 이 페리클레스처럼 간결하고 명쾌하며 품위있는 연설을 할 수 있는 지도자를 과연 가지고 있을까. * 네이버 지식인 - 연설문중 가장 감동적인 연설중의 하나가 아테네의 전성기를 이끈 페리클레스의 연설이다. 기원전 460년경에 있었던 이 연설은 오늘날의 어떤 연설보다도 민주주의의 가치를 감동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오늘날의 어떤 국가도 이 연설 속의 아테네보다 민주적이지 못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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