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아주 좋은 책을 읽었다. 학술적인 참신한 지식을 담고 있으면서도 대중적으로 쉽게 쓰인 책. 이 책은 상식적인 심리학 차원에서 행복을 다루고 있지 않다. 오랜 진화의 과정을 통해 형성되고 굳어진 인간 행동 방식의 기제를 밝힘으로써 왜 우리의 행복이 늘 예측을 빗나가는지를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1. 인간은 왜 미래를 상상하는 것일까? 동물에게는 시간 개념이 없으며 그들은 ‘영원한 현재’에 갇혀 있다. 무언가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 때문에 불행해하는 일도 없다. 오직 인간만이 ‘다음’을 생각한다. 미래를 생각하는 인간의 능력은 뇌의 전두엽과 관련이 있는데 이 부분이 손상된 환자는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불안을 느끼지도 않는다고 한다. 이 책은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을 미래를 예측하고 미래에 영향을 주고 자신의 통제력을 발휘하는 것에서 기쁨을 느끼는 존재라고 보고, 왜 미래가 우리의 예상을 벗어나는지를 쉽게 설명하는 책이다.
2. 행복은 비교가능한 것인가? 샴쌍둥이 로리와 레바의 예를 보자. 로리와 레바가 생일케이크에서 느낀 행복을 8점 척도에서 8점이라고 표현했다면 다음과 같은 가정이 가능하다.
첫째, 언어-축소 가설. 로리와 레바가 생일케이크에서 느끼는 행복의 강도는 우리가 케잌에서 느끼는 4점과 같지만 그들은 다양한 경험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의 8점에 해당하는 행복의 느낌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는 굉장한 오류가 있는데, 우리 역시 로리와 레바만 경험할 수 있는 동반자적 사랑과 일치감 등을 결코 알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굉장히 기쁘다고 말해도 그들보다 한 수 아래일 수 있다. 또한 우리 자신의 경험들만 비교해 보아도 예전에 행복하다고 평가했던 것을 새로운 경험을 한 후에는 그것이 진짜 행복이 아니었다고 말하는 일이 종종 있는데, 저자에 따르면 이 역시 잘못된 판단일 수 있다.
두 번째, 경험-확장 가설. 생일케이크에 대한 로리와 레바의 느낌의 강도 8과 우리의 느낌의 강도 4는 다르지만, 생일케이크에서 그들이 느끼는 행복의 감정은 우리가 호주의 해변에서 느끼는 감정과 동일하다는 가설. 즉 자신에게 부족한 경험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 그 경험을 해본 사람보다 덜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로리와 레바가 느끼는 8점이 우리가 느끼는 8점과 같은지 다른지는 영원히 밝힐 수 없다.
3. 그렇다면 우리는 자신의 느낌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인간은 진화 과정에서 생존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하여 대상이 무엇인지 충분히 모르면서도 행동에 뛰어들도록 설계되었다. 어떤 물체를 보면 그것이 무엇인지 알기도 전에 호르몬이 분비되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의 정서 상태와 느낌의 정체에 대해서도 잘 모를 수 있으며, 자신이 실제 경험하는 감정을 자각하지 못할 수도 있다. 우리의 시각 경험과 그 경험에 대한 자각은 뇌의 서로 다른 영역에서 이루어지는데, 감정 경험 역시 경험과 그 경험에 대한 자각이 분리될 수 있다. 무감각 혹은 감정 표현 불능증이다.
4. 우리가 미래를 ‘상상’할 때 저지르는 실수는 세 가지, 현실주의, 현재화, 합리주의이다.
첫째, 우리는 현실과 주관적 경험을 혼동한다. 우리가 접촉하는 모든 정보를 처리할 수 없기 때문에 뇌는 중요한 몇 가지로 정보를 압축하고 빈 부분을 스스로 채워넣는데, 우리들 대부분은 뇌가 채워 넣는 상상을 현실로 착각한다. 우리가 미래를 상상할 때도 이 방식은 작동하여 미래의 어떤 상황에 대해 상상할 때 우리는 세부 사항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그래서 실제로 닥쳤을 때 당황하게 된다.
둘째, 우리는 현재의 기준으로 미래를 착각하고 과거를 착각한다. 두뇌에서 지각을 담당하는 부분과 상상을 담당하는 부분이 동일하다. 따라서 우리는 미래를 상상하면서 경험하는 정서적 상태와 미래에 닥친 정서적 상태와 같을 것이라고 착각한다. 현재 상태가 좋은 사람은 미래를 훨씬 낙관적으로 예상하고 반대로 현재 우울한 사람은 밝은 미래를 상상하기가 어렵다.
시간을 공간적인 것으로 유추하여 상상하기 때문에 판단이 틀리는 경우도 생긴다. 습관의 지루함을 이기는 방법으로 인간은 '다양성'을 선호하지만, 사이사이에 시간 간격을 충분히 두었을 때는 동일한 것이 오히려 만족감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시간은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에 우리는 미래를 언제나 현재와 비슷한 경향으로 상상하게 된다.
셋째, 우리의 뇌는 경험의 모호함을 해소하기 위하여 사실을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왜곡하며 고통스러운 경험에 대해서는 심리적 면역 체계를 작동시킨다. 따라서 우리는 행동하지 않은 것보다 행동한 것에 대해, 약간 짜증나는 경험보다 아주 고통스러운 경험에 대해, 빠져나올 수 있는 상황보다 그럴 수 없는 상황에 대해 더 긍정적인 관점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5.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착시를 교정할 수 있을까. 행복에 대한 거짓 신념 체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저자는 다른 사람의 경험이야말로 우리의 미래 감정을 예측하는 손쉽고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조언한다. 다른 사람의 정서적 경험을 통해 가보지 않은 미래를 좀 더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과거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기억의 왜곡 때문에 그들의 말을 전적으로 믿을 수는 없다. 그러나 그들이 현재의 자신의 주관적 상태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꽤 신뢰할 수 있다. 저자는 미래의 우리 감정을 예측하기 위해 오류가 많은 자신의 상상을 동원하지 말고 이미 경험한 다른 사람의 경험을 우리의 경험처럼 사용하라고 조언한다.
인간의 행동 방식에 대한 다각적인 분석에 비해 저자의 결론이 지나치게 단순하게 여겨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행복이 주관적인 것이고 미래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이처럼 불완전한 것이라면, 겸허히 타인의 삶의 경험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 다음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미래를 예상할 때 시간에 따른 변화 및 세부 사항을 좀 더 고려하는 것, 인간의 뇌가 원래 한 것보다 하지 않은 것을 더욱 후회하도록 세팅되어 있으므로 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미련을 떨쳐버리는 것 정도일 것이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미래는 우리의 예상과 정확히 일치하지 않으므로 다가오는 모든 것들에 마음을 열고 삶의 '우연'을 즐기면 된다. 이 책의 원제 Stumbling on happiness는 행복에 걸려 비틀거린다는 뜻도 있지만 우연히 찾아오는 행복이라는 뜻도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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