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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일상의 기록

대선, 그리고 아듀 2012

by 릴라~ 2012. 12. 31.

 

 

 

1. 기억의 왜곡

 

노인들의 반란이 하도 믿기지 않아서 아버지께 여쭤보았다. 과거에 대한 향수 이런 것 말고, 아주 객관적으로, 정직하게 이야기해 달라고. 70년대는 어떤 시대였냐고. 강한 어조로, 단 한 마디로 답하셨다.

 

"단 하루도 마음 편할 날 없었다."

 

70년대에 이십대에서 삼십대로 넘어간 분의 말씀이다.

어머니께 여쭤보았다.

 

"말도 마라. 좋긴 뭐가 좋아. 애들 키워서 어떻게 학교 보내나 싶었다. 데모할까봐."

 

그리고 그때 너무 고생해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 하셨다.

 

아버지는 유신 헌법이 제정될 때의 체육관 선거를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아는 사람이 선거 안 하면 불이익 있다고 반드시 해야 한다고 했지만, 유신은 정말 아니라고 생각해서 투표 안 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회사에서도 별 말 없었다고. 찬성이 92%인가 되는 투표에서 기권했다고 자랑하심.

 

1970년대,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에게도 좋은 시절 아니었다. 과거에 대한 향수,,, 이건 핑계일 뿐이다. 급격하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삶의 방향을 잃은 자들의 과거 회귀 본능일 뿐. 우리 사회가 사람들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삶의 안정성을 구축하고 있지 못하다는 증거이기도 하고.

 

 

2. 우리가 살고 싶은 나라

 

대선후유증이 이렇게 클 줄은 몰랐다. 마음 뿐 아니라 몸이 아팠다. 일주일을 앓고 기침이 이제 조금 사그러들고 있는 중이다. 충격이 컸던 이유는 대한민국 사람들의 상식을 믿었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도 독재자의 딸을 뽑지는 않으리라 국민의 힘을 믿고 있었다. 그것은 착각이었음이 밝혀졌고, 우리 사회가 많이 병들었다는 사실,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의 온도를 나 자신 몰랐다는 사실을 수용하는 것이 힘들었다.

 

선거 전략의 실패 등등의 이야기는 정치인들이 하는 것이고, 박근혜와 문재인 중에서 누가 대통령으로 더 적합한가, 누가 더 공명정대하게 일할 사람인가는 3초만에 답이 나오는 문제이다. 후보들의 정책을 검토하기 이전에, 누가 더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인가는 우리가 살아온 경험에 비추어 바로 알 수 있는 것. 이번에 알았다. 많은 국민들은 스스로 참여하고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인들의 입에 발린 달콤한 말과 악수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결국 선거는 매체를 통한 아젠다세팅과 지역 조직이 얼마나 가동하는가의 문제였고 이성적 판단보다는 오프라인의 끈끈한 유대가 더 힘이 세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고통이 이렇게 구체적인 이유는 우리가 품었던 희망이 구체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경제가 지금 당장 나아질 리는 없지만 적어도 언론 환경은 이명박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기에 문재인 정부를 학수고대했다. 지난 5년간 저질러진 부정과 편법도 개선될 것이고, 사회가 당장 좋아지진 않겠지만 기초 체력이 어느 정도 회복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했다. 급격히 벌어지고 있는 빈부 격차가 완화될 수 있는 토대 정도는 마련할 수 있으리라 보았고 복지에 대한 제대로 된 고민도 시작될 수 있을 것 같았다. 희망이 분명했기에 좌절이 더욱 고통스러웠다.

 

언론은, 표현의 자유는 우리가 숨쉬는 대기처럼 우리 곁에 존재하는 것이다. 노인들에게 그것은 생존의 문제와 상관 없는, 경제와 직접적으로 관련되지 않는 문제인지 모르지만, 언론 환경은 마치 공기처럼 우리 정신이 늘 호흡하는 것이며, 그 공기가 나빠졌을 때 우리 정신의 생명력은 시들게 된다. 그것은 당장 눈에 띄지는 않지만 장기적으로는 우리의 건강과 직결되는 문제다. 문재인이 집권한다고 해서 내 삶이 확 달라질 일은 없지만, 우리 정신이 좀 더 자유로운 대기 속에서 살 수 있다는 것, 그것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이다.

 

빨갱이, 종북세력, 북한 퍼주기 등등의 구호에 묻힌 선거였고 이러한 선동에 대항할 수 있는 힘 있고 아름다운 언어를 이쪽 진영에서 생산해내지 못했다. 저쪽은 선동이었고 이쪽은 지나치게 이성적이었다. 1950년대도 아니고 이런 언어가 버젓이 나도는 것 자체가 파시즘과 매카시즘에 다름 아니고 헤게모니 싸움에 진 것. 선거를 떠나서 이런 선동을 태연히 구사하는 무리에게 나라를 맡긴다는 것 자체가 비극이다. 이명박 5년이 그러했듯 박근혜 5년이 우리의 언어를 얼마나 오염시킬까. 사고력이 약한 사람들의 정신은 그러한 구호성 언어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고 그 언어가 담지하는 사고의 획일성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들도 살아온 세월이 있을 터인데 그 세월에서 우러난 감수성의 결핍이 안타깝다. 감수성이라는 것도 우리가 쓰는 언어와 뗄 수 없는 것인 모양이다.

 

결과를 떠나서 이번 선거는 과정이 전혀 공정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에 대한 적절한 비판 없이,, 당선되었으니 잘하길 빈다는 둥, 앞으로 희망이 있다는 둥의 언사를 내뱉는 원로들은 뭐하는 사람들인지. 사람들이 결과에 쉽게 승복하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히 졌기 때문이 아니라 무언가 억울하기 때문이다. 온갖 부정, 편법이 동원되고도 이기면 다인지. 절차의 공정함이 담보되지 않고 대화와 합의의 정신이 사라진 민주주의는 승자 독식의 무자비한 게임과 과연 무엇이 다를까.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이 선거 구호가 마음을 울리는 이유이다.

 

안철수는 대체 왜 나왔는지 모르겠다. 민주당 경선에 참여해서 경선을 통과하든가 아니면 신당을 창당하든가 하면 누가 뭐라 하는가. 이도 저도 아닌 개인 자격으로, 자신이 어떤 세력을 대표하는지 모호한 상태에서의 단일화 논의도 웃기고, 그 긴~~ 과정을 마음 졸이며 지켜보는 건 더욱 힘들었다. 앞으로 혹시 잘할 지도 모르니(기대는 안 하지만) 더 이상 비난은 안 하겠다마는, 선거 때만 되면 갑자기 나타나서 룰을 깨는 사람들이 부담스럽다. 박근혜-문재인 두 명을 제대로 비교하고 사고할 시간이 사람들에게 충분치 못했기 때문이다. 문재인은 5060에게도 호감을 줄 수 있는 이미지라 여겼는데, 안철수 현상으로 젊은 층 결집에 대한 노인들의 불안감이 가중되는 결과를 가져오고 필요한 중도층은 끌어오지 못했다. 단일화는 보수층의 결집만 불러왔다.

 

안철수는 새누리를 공격하고 중도층을 설득하는 게 아니라 괜히 당내 기득권 어쩌고 하면서 친노 계파 문제 삼아서 전쟁 직전에 장수 갈아치우고 민주당만 흔들었다. 안철수가 그런 의도를 품었기 때문이 아니라 정치판에 처음 뛰어든 그의 역량의 한계 때문일 수도 있고, 이 모든 변수가 없더라도 새누리의 강고한 세력 때문에 졌을 수도 있으므로 불필요한 마녀사냥은 경계해야 하리라. 하지만 대구 지역 여론만 본다면 "안철수, 이정희 덕분에 이겼다"고들 하므로 아쉬움이 남는 건 사실이다. 친노가 무슨 큰 잘못을 했다고 무슨 기득권이 있다고 노상 친노 타령인지. 인물이 없어서 친노가 앞장선 것일 뿐. 우리가 가진 자원 중에서는 가장 나은 인물들인데 좌우 양쪽에서 못 죽여서 난리인지 모르겠다. 법륜스님 좋은 일 많이 하시는 것 알지만 친노 계파 때문에 민주당이 문제라는 정치적 인식에는 동의할 수 없다. 들리는 소문에는 후보만 열심히 뛰고 선거 때 협조 안 한 의원들이 많다고 하더라. 가슴을 칠 일이다.

 

기득권과 정통성은 다른 문제이다. 정통성은 어떤 가치를 물려받고 지켜가고 계승하는 것이다. 친노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는 그들이 대변하는 '가치'에 대한 지지이고 그 가치는 그들이 살아온 삶에서 우러나온다(안철수의 새정치는 그래서 울림이 약하고 추상적이며 모호하다). 문재인 등의 친노를 뺀다면, 김대중/노무현 등의 어른들이 돌아가신 마당에 민주당이 지향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불분명해진다. 그런 의미에서 문재인 후보가 참여정부를 좀 더 적극적으로 방어해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민주정부 10년의 가치를 제대로 계승하고 공과 중에서 공을 제대로 부각시키지 않고 어떻게 정권을 되찾을 수 있을까.

 

안철수는 지금까지 보여준 게 없다. 보여준 게 있다면 전형적인 장사치의 행동. (아버지는 왜 법륜스님이 청춘콘서트 한다고 하면서 안철수를 키웠냐며 분통을 터뜨리시더라. 안철수 때문에 졌다고.) 물론 앞으로 개과천선해서 대구 국회의원이나 지자체장으로 출마해서 이 지역 구도를 깨트리는데 기여한다면 그때는 인정하고 지지해 줄 수 있다. 아니면 박근혜에 맞서 5년간 잘 싸워준다면.

 

윤봉길 의사의 손녀가 친일파 재산 환수에 반대하고 백범 선생의 손녀가 새누리 선거 운동을 하는 세상. 이미 도덕성도 가치도 실종되고 선거 때마다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잘못된 역사. 독재자의 딸 박근혜와 그 독재와 맞서 싸운 인권변호사 문재인 구도는 분단과 분단 때문에 유지될 수 있었던 독재의 해묵은 잔재들이 청산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는데 날려보냈다. 그저 정권 교체가 아니라 박정희 신화를 극복하고 우리의 미래의 방향성을 고민하고 결정할 수 있는 보기 드문 기회. 처음 한 걸음이 이후 백 년을 좌우하는 게 역사가 주는 교훈이다. 그런 기회는 역사에서 자주 주어지지 않는다. 더 늦기 전에 단지 정권이 아니라, 우리의 가치를, 혼을 되찾아왔으면 싶다.

 

살아 있는 동안 내가 바라는 세상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받아들인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은 극복하고 넘어서야 할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도달하지 못한 미래라고 한 명계남씨의 말에 동의한다. 그 미래가 단지 투표에 의해 도래할 수 있다고 믿은 것이 순진한 착각이었던 것 같다. 세상의 모습이 곧 우리들의 모습의 반영이므로 지금의 현실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하지만 오늘의 이 현실에 휩쓸려가지 않고, 우리 정신을 밝혀주는 사상과 언어로 우리 삶을 채우면서, 우리 앞에 놓인 이 시간을 최대한 풍요롭고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이 있으리라. 그저 말뿐인 덧없는 희망이 아니라, 우리의 한계와 고통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가운데, 그 고통이 지배자가 되지 않게 하고, 그것을 물리칠 수 있을 만큼의 기쁨을 우리 삶 속에서 새롭게 길어내고 만들어낼 수 있는 삶. 고통을 수용하고 이해하는 데서 비롯된 희망만이 구체적이고 힘이 있다. 우리들의 아픔이 망각 속으로 길을 떠나지 않고 그것으로부터 튼실한 희망을 길어올릴 수 있기를. 새해의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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