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을 맡던 처음 몇 년간 내가 골몰한 일 중 하나는 학생들의 자리 배치였다. 매주 한 줄씩이 아니라 전체를 무작위로 바꾸는 것이어서 손이 많이 갔다. 일 년 동안 학급내 모든 친구들과 골고루 앉아보게자는 취지에서였는데 한번 시작하고는 늘 후회했다. 지난 좌석표를 죄다 훑어보면서 이번 주에 새로운 짝과 앉을 수 있게 자리를 배정하는 것이 꽤 품이 드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매주 일요일 저녁이면 나는 속으로 몹시 귀찮아하며 새 좌석표를 만들곤 했다.
어쩌다 내가 잊어버리고 그냥 출근해서 월요일에 자리를 못 바꾼 날이면 학생들은 아우성을 쳤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하루만 기다리라면서 아이들을 달래곤 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어떤 반은 한 달 내내 자리를 안 바꾸어도 학생들의 불만이 없는데, 우리 반은 한 번 바꾸기 시작하니, 아이들은 매주 월요일마다 자리 타령이었다.
처음엔 좀 산만하지만 몇 달 지나면 모두가 친해진다는 장점이 있었다. 물론 늘 성공하는 건 아니다. 더 산만해지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그 해 3학년 3반에서는 꽤 효과를 발휘했다. 처음에 학생들은 몇 개의 그룹으로 갈라져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전체적으로 친해지게 되었다. 수업 시간에 좀 시끄러운 녀석은 조용한 학생들 사이에 자리를 배정했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은 누구누구가 완전히 포위되었다면서 자기들끼리 키득거리곤 했다.
당시 우리 반에는 또래보다 조금 부족한 아이가 몇 있었다. 경덕이와 만수가 아이들의 말을 빌자면 우리 반의 대표적인 ‘dump and dumper’였다. 둘 다 체구가 작았고, 학습도움실에 갈 정도는 아니었지만, 또래보다 정신연령도 많이 낮았다. 하지만 아이들은 결코 이 두 친구를 놀리거나 하지 않았다. 경덕이와 만수의 행동 방식을 그 아이들의 독특한 개성의 일종으로 받아들였을 뿐 부족함으로 여기지 않았다. 아이들은 이 두 친구를 동생처럼 대하며 귀여워했는데 이는 남학교에서는 사실 드문 일이었다.
한번은 수업 시간에 이런 일이 있었다. 과거에 알았던 사람 중에 지금 다시 만나보고 싶은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을 던졌는데, 마침 경덕이가 대답할 차례였다. 나는 경덕이가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조금 염려했는데, 경덕이의 입에서 자그마한 목소리로 다음의 대답이 흘러나왔다.
“엄마요.”
순간 장난끼 넘치던 교실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갓 초등학교를 졸업한 중학교 1학년이라면 이런 대답을 할 법도 하다. 그러나 자의식이 생긴 중학교 3학년이라면 잘 내어놓지 않는 종류의 대답이다. 나는 부드럽게 다시 물었다. 아마 이혼 등으로 어머니와 헤어졌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엄마를 제일 보고 싶구나. 어머니랑 언제 헤어졌니?”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경덕이는 뜻밖의 대답을 했다. 자기를 낳고 9개월쯤 되었을 때 엄마가 떠나고 할머니가 키워주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엄마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꼭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 거였다. 이 화제에 더 집중했다가는 아이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것 같았다. 그래서 “그래, 많이 보고 싶겠구나” 라고 대답하고는 부드럽게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학년말에 경덕이의 할머니가 학교에 찾아오신 일이 있다. 고등학교 진학 문제 때문이었다. 경덕이는 거의 꼴찌였기에 갈 수 있는 학교가 J공고밖에 없었다. 할머니는 그 학교에 가려면 버스를 두 번 갈아타야 한다면서 집안 형편에 부담이 된다고, 다른 학교는 없냐고 하셨다. 정식으로 인가된 고등학교 중에서는 J공고밖에 없었고, 그밖에는 학력인정이 되는 K정보고가 남아 있었다. 그래도 정규학교가 낫지 않겠냐며 할머니를 돌려보내고 다른 선생님들과 의논을 했다.
경덕이가 워낙 체구가 작아서 공고에서 거친 애들 틈에서 적응 못하는 것보다는 K정보고에서 미용을 배우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있었다. 남녀공학이고 미용과 등이 있어서 아주머니들도 다니는 학교여서 경덕이가 더 편안하게 학교생활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집에서도 가깝고 버스를 두 번 타지 않아도 되었다. 그렇게 경덕이는 K정보고에 진학했다. 염려가 좀 되었는데 다행히 학교에 잘 다니고 있으며 여자 친구도 사귀었다는 이야기를 다음 해에 다른 아이로부터 전해 들었다.
만수는 일 년 내내 우리에게 많은 웃음을 준 친구다. 준비물이라면 만수는 단연 우리 반 1등이었다. 하루에 여러 과목이 들어 있다 보니 아이들이 챙겨야 할 것을 빠트리는 게 비일비재한데, 만수는 언제나 완벽하게 준비해왔다. 만수의 가방 안에는 가위고 뭐고 없는 게 없었다. 아이들은 늘 뭐가 필요하면 만수를 찾고 만수에게 빌렸다. 만수 어머니께서 얼마나 철저하게 만수를 돌보고 계신지 그것만 보아도 짐작할 수 있었다.
만수는 숙제도 완벽하게 해왔다. 그러다보니 성적도 꼴찌보다는 한참 앞이었다. 만수 어머니는 대체 멀쩡한 애들이 우리 만수보다 공부를 못하는 게 이해가 안 가노라고 말씀하셨다. 만수는 아주 고지식할 만큼 선생님의 모든 지시를 곧이곧대로 따르는 아이였다. 수업 시간에 가끔 만수가 정답을 맞힐 때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우리 반 아이들은 아주 재밌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선생님, 거 보세요. 만수는 숨겨진 천재라니까요. " 라고 웃곤 했다.
경덕이와 만수가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었던 것은 그 해 우리 반이 넉넉한 마음씨를 지닌 아이들로 구성되었기 때문이었다. 의젓한 모범생 정현이, 최도사라 불렸던 개성만점 태식이, 경덕이와 만수에게 '덤 앤 더머' 라는 별칭을 붙였지만 그 아이들을 동생처럼 귀여워했던 은수, 덩치는 크지만 뭔가 허술한 구석이 있어 우리에게 웃음을 주었던 시형이, 평소엔 장난꾸러기지만 발표 때마다 한없이 진지한 태도를 보여 그게 더 우스웠던 원준이. 만약에 세상이 그 해의 우리 반과 같다면 경덕이와 만수는 사회에서도 편안하게 자기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파라다이스는 어쩌면 이런 게 아닐까. 우리를 둘러싼 관계가 부드럽고 우리가 우리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그런 사람들 속에서 평온하게 살아가는 것.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자신을 발견할 수 없다. 우리는 우리가 우리 자신일 수 있는 든든한 관계 속에서 힘을 얻고 자신을 되찾는다. 나는 삶에서 이보다 더한 축복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3학년 3반, 그 의젓한 아이들의 우정은 지금도 정답게 이어지고 있다. 원준이와 태식이는 군대도 함께 갔다. 친구끼리 동반입대를 할 수 있는 제도가 있다고 했다. 그리고 스물일곱 살인 지금까지도 서로 절친한 친구로 지내고 있다. 얼마 전엔 정현이가 결혼한다고 연락이 왔다. 이 아이들을 보면 학교가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우정'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들의 우정이 평생 이어지기를 소망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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