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희망도서로 신청해 놓고는 도서관에 찾으러 가는 걸 깜박했다. 그 사이 이 책은 계속 '대출중', '예약중'이었고, 한 달이 훨씬 넘게 지나서 간신히 내 손에 들어왔다. 이 책은 단지 건축에 대한 것이 아니라 건축을 기반으로 하는 '도시'와 그 도시에서의 우리의 '삶'을 들여다보는 책이다. 이때 건축은 삶의 철학과 동의어가 된다. 모든 내용이 흥미로웠지만 특히 기억에 남는 건 두 부분이다. 첫째는, 예전에 일본 여행을 하면서 일본의 목조 건축이 우리와 비교도 안 될만큼 발달한 것을 보면서 놀란 적이 있었다. 일본이 거대하고 화려한 복층 건물을 짓는 동안 왜 우리는 단층밖에 짓지 못했는가. 목재가 흔치 않아서인가, 건축 기술이 부족했는가, 혼자 생각하다 말았는데 그 이유에 대한 답을 이 책에서 우연히 얻었다. 둘째는, 학교 건축에 대한 저자의 이념이다. 학교 건물이 왜 2층 이하여야 하고, '시설'과 같은 하나의 큰 건물이 아니라 스머프 동산처럼 잘게 나뉘어진 집들이 연결되어야 하는지를 명쾌하게 설명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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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적으로 보면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은 이유는 우리나라의 '온돌' 난방 시스템 때문이다. 앞서 설명했듯이 도시의 고밀화는 신흥 계급을 만들고 근대화로 이어진다. 온돌을 사용한 우리나라는 단층짜리 주거지에 머물 수밖에 없었고 고밀화 도시를 만들 수 없었다. 아마도 일본도 우리의 온돌 시스템을 수입하였을 테지만 잦은 지진으로 구들장이 내려앉아서 무거운 온돌 시스템을 사용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일본은 가벼운 다다미방에 '화로'를 놓는 난방 시스템을 사용하였다. 덕분에 일본인들은 우리보다 수백 년 앞서서 2층집을 지을 수 있었다. 몇 백 년 전에 지어진 교토의 주거에 이미 2층짜리 주거 형식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고밀화된 도시 덕분에 두터운 상인 계층이 생겨났고, 중국의 도자기 공장이 파괴된 틈을 타서 일본은 유럽으로 도자기도 수출하였다. 이런 배경으로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먼저 개항을 한다. 아마 일본에 지진이 없어서 온돌을 사용했다면 상인 계층도 일찍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고, 도자기 수출도, 근대화도 우리보다 늦어졌을지도 모른다. pp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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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새로운 학교를 만드는 시도를 해 본 적이 있다. (...) 이때 주요 콘셉트는 아이들에게 자연을 돌려주자는 것이었다. 우선 중고등학교 운동장을 가운데에 위치한 숲 공원으로 옮기는 계획을 세웠다. 이렇게 되면 아이들은 지금처럼 방음벽 옆에서 축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숲속 나무에 둘러싸여 뛰놀 수 있게 된다. 이 운동장은 방과 후에 자연스럽게 지역 주민들이 와서 사용하게 된다. 학생들은 체육 시간에 먼지 날리는 운동장을 뺑뺑이 돌며 뛰는 대신, 숲속에 놓인 조깅 코스에서 뛸 수 있다. (...) 이렇게 운동장이 가운데 공원으로 빠지게 되면 학교 부지가 여우로워져서 비로소 학교는 저층화될 수 있다. 필자는 서너 개의 교실을 모아서 1,2층 주택 같은 크기의 교실동을 만들고, 그 앞에는 각기 다른 모양의 마당이 있는 스머프 마을 같은 학교를 디자인하였다. 학교 건물은 주택만 한 크기로 분절되어야 한다. 과거 아파트에 주택에서 몇 번 번갈아 가면서 살아 보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마음에 남는 추억은 모두 주택에 있을 때의 기억뿐이다. 아파트는 내 집 같다는 생각이 잘 들지 않는데, 그 이유는 아파트 건물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수십 채의 집이 모여 하나의 건물을 이루는 아파트는 나의 감정과 연동되지 않는다. 하지만 주택은 마당에서 여러 가지 추억을 쌓을 수 있는 과하지 않은 크기의 건물이기에 '내 집'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학교 건물은 보통 한 사람 몸 크기의 580배 정도 된다. 이런 건물은 너무 커서 우리 아이들이 정을 붙이기 어렵다. 이런 건물은 일종의 '시설'로 느겨진다. 대부분의 인격 형성이 이루어지는 시기의 아이들이 이런 시설에서 자라고 있는 것이다.
학교 건물은 저층화되고 분절화되어야 한다. 아이들은 사람 몸의 50배 정도 크기의 주택 같은 교사가 여러 채 있고 그 앞에서 다양한 모양의 마당이 있는 공간에서 커야 한다. 그래서 1학년 때는 삼각형 모양의 마당에서 놀다가, 2학년이 되면 연못 있는 마당에서 놀고, 3학년이 되면 빨간색 경사 지붕이 있는 교실 앞마당에서 놀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이 아이들이 다양하고 아름다운 추억을 가진 정상적인 인격으로 클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아이들은 거의 대부분 획일화되고 커다란 아파트 건물에서 산다. 적어도 학교에서만큼은 그런 전체주의적 '시설' 같은 건물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 지그미의 아이들은 학교 정문에 들어서면 운동장과 하나의 건물, 주로 'ㄱ' 자로 만들어진 교사 건물의 풍경을 본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백 미터를 뛰어가도 보이는 풍경은 똑같다. 그 옆으로 뛰어가도 학교는 똑같아 보인다. 똑같은 공간에서 12년을 지내는 아이들이 정상적인 인격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다. 우리 아이들이 같은 반 친구를 왕따시키고, 폭력적으로 바뀌는 것은 학교 공간이 교도소와 비슷해서다. 학생들에게 생겨나는 병리적인 사회현상은 교도소에서 일어나는 현상과 비슷하다. 사람은 건축 공간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학교에는 다양한 건물군과 다양한 모양의 마당이 있어야 한다. 몇 발자국만 옮겨도 변화하는 마을 같은 풍경 속에서 아이들이 자라나게 해 주어야 한다. pp3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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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제약 회사에서 신약을 잘 개발하는 연구원의 특징을 조사한 적이 있다. 그들의 모든 습성을 조사해 본 결과 창의적인 사람들은 자신과 상관없는 사람들과 쓸데없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는 점이 밝혀졌다. 예를 들면 청소부와 떠든다든지, 자신의 업무와 상관없는 다른 부서의 사람들과 잡담을 많이 한다는 것이다. 다양한 생각을 접할 수 있는 사람들이 새로운 생각에 열린 마음을 가지고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처럼 고층화된 학교에서 교실에 갇혀 지내는 아이들에게 정상적이고 다채로운 교우 관계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항상 똑같은 교실이라는 시끄럽고 먼지 날리는 실내 공간에서 쌓는 교우 관계와 계절과 날씨의 변화가 있는 자연 속 공간에서 만들어 가는 우정 중 어떤 것이 더 좋은 영향을 미칠지는 뻔하다. 변화하는 자연 속에서 인간관계를 쌓은 사람이 어른이 돼서도 다양한 사람과 생각을 교류하고 소통할 수 있을 것이다. p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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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골목길은 동네 이웃이나 친구들과 함께 놀기도 하고 이야기하는 공간이었다. 쓰임새를 보면 마당은 사적인 정주 공간이고 골목길은 공적인 정주 공간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골목은 주차 공간이 되었다. 공간적으로 승용차는 밖에서 안을 보기 힘들고 허락 없이 들어갈 수 없는 작은 사적 공간이다. 우리는 차 안에서 조용히 혼자 음악을 들을 수도 있ㄷ고 친구와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 승용차는 방 같은 공간이다. 그래서 골목길에 주차된 차는 이전에 공적인 공간이었던 골목길을 사적인 공간으로 변형시킨다. 우리 도시에서 차도가 차지하는 면적은 점점 넓어졌다. 차도 면적이 넓어진다는 것은 전체적으로 이동 공간이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도시의 시민 입장에서 본다면 정주하는 공간은 그만큼 빼앗긴 것이다.
사적 공간의 비율이 늘어나는 것은 슬픈 일이다. 왜냐하면 어떤 공간이 누군가의 사적 공간이 되면 내가 갈 수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서울 같은 대도시가 이렇게 넓고 고층 건물이 많아져도 사실 내가 가서 정주할 수 있는 공간의 총량은 더 줄어든 것이 사실이다. 자가용으로 채워진 테헤란로 같은 대로 역시 공적이라기보다는 사적인 공간이다. 우리 도시의 삶에서 공적인 정주 공간은 과거에 비해 다 사라지고 없다. 한강 시민공원 정도만 남은 듯하다. 도시 내에서 내 소유의 공간이 부족한 사람들은 머무를 공간을 찾아다닌다. 그래서 사람들이 주말마다 산에 가는 것이다. 왜냐하면 도심 속에는 정주할 공간이 없어서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우리나라 대부분의 녹지 공원은 경사져 있다는 점이다. 경사졌다는 것은 앉아 있지 못하고 계속 이동해야 하는 공간이라는 뜻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경사면 때문에 산은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그러니 서울 주변에 아무리 좋은 산이 많아도 우리는 공적인 정주 공간에 목이 마른 것이다. 공공의 정주 공간이 사라지니 우리가 공간을 점유하려면 사적으로 돈을 내야 하는 사회가 되었다. 카페를 비롯해 비디오방, 노래방, 찜질방도 마찬가지다. 모텔이 가장 재미있다. 특이하게 우리나라에서는 모텔방을 하루 종일 빌리는 경우는 적다. 대신 몇 시간씩 빌리는 '대실'을 한다. 시간 단위로 내 방을 만드는 것이다. 이처럼 갈 곳이 적은 우리나라에서는 시간당 공간을 빌리는 비즈니스가 발달해 있다. pp10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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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속에서 공간을 완전히 소유할 수도 없고, 공부로 일등을 할 수도 없는 청소년들은 점점 게임 속 사이버공간으로 내몰리고 있다. 지금은 작디 작은 스마트폰 스크린 속 공간으로 숨고 있다. 이런 안타까운 현실을 보면 차라리 30년 전 학교에서 밤 10시까지 붙잡혀 있던 야간 자율 학습실이 그리울 정도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야간 자율 학습실은 청소년기에 공식적으로 부모를 떠나 있을 수 있게 해 준 우리들만의 거실이었다. 우리나라에서 비용 대비 공간을 빌리는 순서는 가장 저렴한 편의점부터 PC방, 카페, 노래방, 모텔 순서다. 우리의 주거 공간에 사적 공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청소년은 편의점과 PC방으로 가고 대학생은 카페와 모텔로 가고, 직장인은 차를 산다. pp108-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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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쇼핑몰에는 변하하는 자연이 없다 보니 사람을 끌어당기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쇼핑몰은 몇 년에 한 번씩 대대적인 인테리어 리모델링을 한다. 그리고 더 잦은 변화를 위해 수시로 변화하는 콘텐츠인 멀티플렉스 극장을 도입한다. 계절이 바뀌는 대신 상영하는 영화를 바꿔주는 것이다. 요즘에는 그것도 부족해서 대형 서점이나 도서관을 유치하거나 만든다. 코엑스몰에는 영풍 문고가 있고 최근에는 '별마당 도서관'을 만들었다. 쇼핑몰에 대형 서점이나 멀티플렉스 극장이 필요한 것은 변화하는 자연이 없기 땜누이다. 현대사회의 공간적 특징은 "변화하는 미디어가 자연을 대체하고 있는 것"이라고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pp124-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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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을 영원하지 않다. 특히나 현대사회에서 미디어를 통해 만들어지는 권력은 찰나성이 더욱 심하다. 우리는 건축과 미디어를 통해 권력을 만드는 법을 안다. 이제 더 중요한 문제는 그렇게 만들어진 권력을 어떻게 잘 분배해서 균형을 맞추고 상호 견제하게 만드느냐다. 그리스는 인류 역사 최초로 객석과 무대로 구성된 극장을 만듦으로써 시민사회를 완성했다. 지금은 우리 사회를 한층 더 성숙시킬 수 있는 새로운 건축 장치가 필요한 때다. pp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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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항상 20대 동안으로 살고 싶은 모양이다. 그런데 그 노력이 심해지면 과도한 성형시술을 받은 얼굴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서울은 6백 년 된 역사와 전통이 있는 도시 치고는 너무 어려 보인다. 도시는 살아 있는 유기체이기 때문에 성장하고 발전해야 한다. 당연히 오래된 것들은 없어지고 새로운 세포가 생겨나야 한다. 하지만 어느 것이나 적당해야 한다. 시간이 흘러서 나이를 먹으면 적어도 얼굴에 주름이라는 것은 남겨두어야 한다. 지금 40년 된 건물 중에 좋은 건물들을 남겨 놓으면 백 년 후에는 이 시대를 대표하는 남대문 같은 문화재가 될 수 있다. 그 건물들은 아름답게 나이 든 오드리 헵번의 주름 같은 것이다. 지금 같이 눈앞의 개발이익 때문에 모두 부수고 새로 지으면 이 시대를 대표하는 건축 문화재는 하나도 남지 않을 것이다. 이래서는 가짜 에펠탑이 있는 디즈니랜드는 만들 수 있어도 파리 같은 도시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pp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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