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에 초판이 나왔으니 십 년이 훌쩍 넘은 책이다. 개정증보판을 다시 읽으며 놀랐다. 십 년 전보다 공감 가는 부분이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예전에 머리로 읽었다면, 지금은 한 부분 한 부분이 내 삶의 경험과 얽혀 있는 느낌이다. 페미니즘 분야의 고전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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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성역할 노동을 거의 하지 않으며, 노동 시장에서 남성들과 함께 일하지 않는다. 주로 여성들과 지내는 내게 삶의 억압은 성차별이 아니라 나이, 계급 등 여성들 간의 차이다. 마흔을 앞둔 나는 여성이라는 사실보다 나이 든다는 것이 더 두렵고, 우리 사회의 연령주의에 자주 분노하곤 한다. 이처럼 여성은 여성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여성들은 계급, 인종, 민족, 나이, 장애 여부, 동성애자냐 이성애자냐 등의 성정체성에 따라 각기 다른 종류의 억압을 경험한다. 흑인 여성이 경험하는 사회적 고통은 페미니즘만으로 설명할 수 없으며, 어떠한 맥락에서는 인종주의가 성차별주의보다 더 우선한다. 일차적인 억압이 여성에 대한 남성의 억압이 아니라 흑인에 대한 백인의 억압이라면, 어떻게 백인 여성과 흑인 여성의 억압이 같은 방식으로 이론화될 수 있겠는가?
물론, 남성들도 같지 않다. 남성들 중에는 좌파도 있고 우파도 있고, 가난한 사람도 있고 부자도 있고, 지식인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그러나 남성들은 개인 혹은 인간으로 간주되지만, 여성들은 여성으로 여겨진다. 여성이나 페미니즘이 다 똑같다고 생각하는 것은 타자 내부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억압이다. 여성들 간의 차이를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여성 해방이다. 여성을 여성으로 환원하는 것은 가부장제이기 때문이다. pp2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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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은 정체성의 정치를 벗어나야 하고, 실제로 정체성의 정치 그 이상의 세계관이다. 마르크스주의는 노동자만의 것이 아니라 인류 보편의 철학인데, 왜 여성만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하는가. p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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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서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여성운동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편견은, 가부장제는 독자적인 모순이 아니라 자본주의를 작동케 하는 구조의 일부에 불과하며, 페미니즘은 중산층 여성들의 주장이라는 것이다. 마오쩌둥, 마르크스 모두 중산층 지식인이었지만, 언제나 페미니스트만 중산층 지식인인 것이 시빗거리가 된다. pp4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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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학이나 물리학의 '어려움'은, 그 학문을 비판하는 이유가 되지 않는다. 언제나 여성학이 어려운 것만 문제가 된다. 나는 여성학은 어려워야 하고, 어려운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것은, 학문이 어렵고 고급스러워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러한 기존 학문은 지배 계급의 도구였다. 만일 여성학이 어렵다면 그것은 여성학자가 현학적이어서가 아니라 여성주의가 익숙하지 않은 세계관이기 때문이다. (...) 여성학이 쉽다면, 이는 우리 사회의 통념에 도전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고, 그런 여성학은 존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p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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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은 사람이기 때문에 모든 남성 명사에는 '인'이 붙지만, 여성 명사에는 '녀'가 붙는다. 우리말 여성형 지칭에서 유일하게 인자가 붙는 경우는 미망인(남편을 따라 죽지 않은 여자)뿐이다. p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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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몸은 남성들 간 권력 관계의 표지이며 점령지로 간주된다. 남성 정치학의 연대와 계승은 '전쟁시'에는 적군이 소유한 여성에 대한 집단 강간을 통해, '평화시'에는 부계 가족을 통해 어머니의 몸을 빌려 작동한다. 모성은 본능이 아니라 정치학이다. 모성은 어머니와 자녀의 관계를 설명하는 말이 아니다. 모성은 남성과 여성의 관계를 의미한다.
만약 모성이 본능이라면, 미혼모도 어머니이므로 차별받아선 안 된다. 미혼모에 대한 우리 사회의 부정적인 인식은 합법적 아버지가 있어야 어머니와 자녀도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함의한다. 남성과 연결되어 있지 않은 여성은 존재의 근거도 의미도 없다. p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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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제는, 가족은, 국가는, 민족은,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통제하고 활용, 매개, 동원함으로써만 유지된다. 우리 사회가 여성을 그토록 어머니로 호명하고 싶어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머니로 간주되는 여성은 성적 주체가 될 수 없고, 자신의 몸을 가질 수 없다. 그녀의 몸은 남성만이 주체가 되는 가족과 국가의 소유다. p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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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노동이 여성에 대한 통제와 착취라는 것은 새삼스럽지 않다. 한국이 국방비 지출 세계 10위권 국가이면서도 이 정도의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사회 복지 비용을 여성들이 가족 내 무보수 노동으로 대체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현실을 문화, 미풍양속, 전통으로 합리화한다. 군비 축소, 반전 반핵, 평화 통일 운동은 여성의 성역할에 대한 도전과 파괴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pp67-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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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근대적 인권 개념과, 인간의 범주에서 여성을 제외하려는 가부장제 사이의 모순은, 모성의 발명으로 극복되었다. '아동기'와 '모성'의 창조는 남성 가장 노동자를 개인으로 상정한 가부장적 자본주의의 전개를 위해서도 필수적인 것이었다. 서구에서 존 로크 이전 바로 1세기 전까지만 해도 세상에 태어난 아이는 원죄에 의해 오염되어 있다고 믿었다. 오늘날과 같은 모성 이데올로기는 '아이들은 어머니가 어떤 것이라도 쓸 수 있는 백지 상태'라는 관점과 함께 탄생한 것이다. 이후 어머니는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아이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엄청난 부담감과 죄의식에 시달리게 되었다.
어느 누구도 타인의 인생을 대신 살 수 없지만, 유독 어머니만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머니는 남편을 출세'시키고' 자녀을 좋은 대학에 '보내야' 한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맞으면서도 그를 변화시켜야 하고(피해자는 해결사가 되어야 한다), 어머니는 생명을 위협하는 폭력 앞에서도 자녀들에게는 모성애를 발휘해야 한다. 아이를 남기고 폭력 가정을 탈출하는 여성에게 쏟아지는 비난은, 순결이 그러하듯이 모성애 역시 여성의 목숨과 맞바꿔야 한다는 남성 사회의 메시지다. 훌륭한 어머니가 되려는 여성은 자신을 파괴하는 유전자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어머니는 남을 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p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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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 지배와 압축 '성장'을 특징으로 하는 한국 현대사는 남성과 여성에 대한 '한국적 젠더'를 생산했다. 나약하고 무기력하나 폭력적인 아버지 혹은 그러한 아버지의 부재와 억척스럽고 생활력 강하며 아버지를 뒤에서 티나지 않게 조종하는 '지혜로운' 어머니상은 서구의 젠더 이미지와는 차이가 있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어머니들은 존경받아 왔다. 이제까지 어머니의 지위는 여성이 거의 유일하게 도달할 수 있는 존경받을 만한 사회적 권력이었다.
문제는 어머니의 권력과 여성의 권력은 정반대라는 것이다. 어머니의 지위가 높은 사회일수록 여성의 지위는 낮다. 어머니는 아들의 대리인이다. 고부 갈등은 여성과 여성의 갈등이 아니다. 시어머니/며느리는 여성의 관점에서 비롯된 정체성이 아니라, 여성이 남성과 맺고 있는 힘의 관계를 설명할 뿐이다. 어머니의 권력은 결국 출세한 아들의 권력에서 나온다. 어머니의 행복한 삶은 잘난 아들을 통해서(정확히 말하면 아들의 아내의 노동을 통해서) 보장된다. 그런 어머니가 남녀고용평등법을 찬성할 리가 없다.
그래서 우리 사회의 교육 문제는 결국 젠더 문제다. 여성의 자아 실현과 인생의 성공은 자녀 교육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 한국의 사회적 합의다. 어머니가 자녀 교육에 '목숨을 걸고', 과외비 마련을 위해 '파출부', 주부 매춘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여성은 공적 영역에서 성공하더라도 어머니의 정체성과 역할이 우선적으로 강조된다. p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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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의 아줌마에 대한 혐오 담론은, 그들이 모성(남을 보살핌)과 섹슈얼리티라는 핵심적인 여성성을 상실한 집단이라는 인식에서 온 것이다. 젊음과 미모라는 여성의 가치를 상실한, 섹슈얼리티가 이미 훼손된, 따라서 아무나 '건드릴 수' 있는, 아무나 건드릴 수 있지만 스스로 성적 욕망을 표현해서는 안 되는, 집안의 정숙한 중산층 여성이 아니라 집 밖에서 노동하는 여성이라는 이미지에서 기인한다. pp7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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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이 사건에 대한 비판 담론의 목적이 다시는 이러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면, 위안부 누드에 대한 시민의 분노와 그로 인한 시장의 외면이 왜 'O양', 'B양' 등 여성 연예인 비디오 피해 사건에는 동일하게 작동하지 않았는지부터 질문해야 한다. 한국 사회는 성폭력 피해 여성의 인권에 관심이 없으며, 성폭력과 성관계를 구분하지 않는다. 가장 섹시한 성관계는 성폭력이라고 믿고 있다. 일본 제국주의에 성폭력당한 것은 정치적인 이슈/인권 문제이고, 한국 남성에게 성폭력당한 것은 개인적인 일인가? '위안부 누드'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것은 민족의 명예를 모욕하는 일이고, 여성 연예인의 사생활을 몰래 찍고 팔고 돌려보는 것은 '즐거운 일인가? 이런 의미에서 나는 '위안부 누드' 제작 행위뿐만 아니라, 이 문제에 대한 한국사회의 해석, 한국인(남성)들의 분노는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두렵기까지 하다. p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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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후보는 여성이 아니다. 주민등록번호 뒷자리 첫 숫자가 '2'라는 사실 외에는, 여성과 가장 거리가 먼 여성이다. 그녀는 여성도 국민도 대변하지 않는다. 그녀의 몸은 '아버지 박정희'를 매개한다. 이런 현상이 바로 '화신'이다. 이는 시비나 호오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반드시 인식해야 할 중요한 사실일 뿐이다.
세습에 대한 세간의 혐오는 북한에만 해당하는 듯하다. 재벌 세습이나 부녀 간 세습에는 관대하거나 심지어 부러워한다. '아버지의 딸'은 남녀 모두가 욕망하는 가부장제의 아이콘이다. 부자 간 세습은 이들의 자질과 무관하게 부정적 이미지가 강하지만, 딸은 가문을 재건하고 부패, 추문, 잔학성, 과대망상 같은 아버지의 남근성을 희석한다. p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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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제 여성들은 더 이상 '성공에 대한 공포' 때문에 자신의 커리어를 포기하지 않는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가시화되고 성 평등 의식이 확산되면서 여성들이 보살핌 노동을 거부하기 시작하자, 모든 사람이 외로운 이른바 전 사회적인 '보살핌의 위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p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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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강력한 가족주의 사회지만, 당위적으로 가족의 가치를 강요하고 신화화할 뿐이다. 가정폭력의 심각성은 말할 것도 없고, 가족은 친밀성과 자발적인 상호 보살핌의 공간이 아니라 지나치게 도구적이다. '기러기 아빠'는 이 문제를 가장 잘 드러내는 사례이다. 이는 남성이 희생하는 현상이라기보다는, 가족이 자녀 교육의 성공, 즉 출세 지상주의와 경쟁 논리로 가득 찬 공적 영역에 얼마나 종속적인지를 보여준다. pp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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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아내를 때리다가 죽이는 것은 '과실치사'지만, 아내가 정당방위로 남편을 죽이는 것은 '살인'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때리는 남편이 가정파괴범이 아니라, 폭력에서 탈출하는 피해 여성이나 이들을 돕는 여성운동가가 가정파괴범이다. 이러한 모든 상황은 가정폭력이 범죄가 아니라 일상이며, 일탈적 사건이 아니라 규범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인류가 발명한 제도 중에서 가장 폭력적인 것은 전쟁이고 그 다음이 가족이라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시대와 지역, 종교, 인종, 계급, 교육 수준, 일부일처제와 일부다처제를 막론하고 인류가 공통적으로 경험한 유일한 역사가 있다면 그것은 가정폭력일 것이다. pp137-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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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정도 권력 관계가 작동하는 인간 사회인 이상, 폭력이 발생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반대로 가정에는 폭력이 없을 것이라는 이데올로기가 가정폭력의 발생 기제라고 본다. 폭력으로 평화로운 가정이 깨져서 문제가 아니라, 여성의 생명을 위협하는 폭력으로도 (남성 중심적) 가정이 깨지지 않는 것이 더 문제다. pp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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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간이 인권을 갖는다는 근대적 인권 개념의 보편주의는, 진보적인 동시에 문제적인 사유 방식이다. 보편적 인권 개념은 칼날과 칼자루와 같은 양면성을 지닌다. 인권 개념의 보편성은, "여자도 인간이다.", "동성애자도 인간이다." 등 사회적 약자에게도 평등하게 적용될 수 있다는 의미에서는 이상적인 가치이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적용된다는 보편적 인권 개념이, 현재 우리 사회에서 주장되고 있는 '성폭력 가해자의 인권'이나, '이성애자의 인권', '자본가의 인권', '백인의 인권'처럼,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하기 위한 '강자의 인권'일 경우에도 진보적 가치가 될 수 있을까? 비슷한 예로, 백인이 흑인을 '야만인'으로 재현하거나, 여성의 몸을 남성의 성 활동의 도구로 삼는 남성 시각의 포르노그래피 제조를 '표현의 자유'라고 할 수 있을까? 김정일에 반대한다는 '반김'과 미국에 반대한다는 '반미'가 '평등한' 논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성폭력 가해자를 처벌하라는 여성들의 요구를 '성폭력 가해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언설이라고 주장하는 일부 남성들의 주장은, 여성 인권이 실현되는 과정의 어려움과 특수성을 잘 보여준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는 성폭력 특별법의 제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피해 여성의 진술보다는 가해 남성의 주장을 신뢰하는 분위기기 팽배하다. 그렇게 때문에 성폭력은 범죄 사실이 인지, 인정되는 것 자체가 대단히 어렵다. 성폭력은 절도나 사기 등 다른 범죄와는 달리, 언제나 "강간이냐, 화간이냐?"라는 식으로, 피해 사실을 둘러싼 객관성 논쟁에 휩싸인다. pp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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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인권 개념의 보편성은 사회적 약자에게 적용될 때만 '인권으로서 의미'를 갖는다. 포르노그래피가 '표현의 자유냐, 여성 인권 침해냐'란 논쟁도 이 문제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사례이다. 원래 권리로서의 표현의 자유 개념은 근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강력한 국민국가가 탄생한 뒤, 거대한 국가 권력에 비해 취약한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었다. 집회의 자유, 사상의 자유 역시 같은 맥락의 권리들이다. 즉, 표현의 자유는 아무 때나 누구나 주장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지배 규범에 대한 사회적 약자의 저항일 때만 권리로 존중될 수 있다. pp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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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역할 수행자로서 여성'은, 곧 여성이 사적인 존재로 간주됨을 의미한다. 가정은 사회와 배타적인 영역으로 설정되어, 모든 면에서 사회와 다른 원리가 적용된다. 가정은 남성의 입장에서 공적인 곳과 달리 경쟁이나 권력 관계, 노동이 없는 평화로운 안식처로 여겨진다. 때문에, 가족은 비정치적인 공간이어서 법이 적용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처럼 공사 영역 분리 이데올로기의 실제는, 공적인 영역의 시각에서 사적인 영역이 규정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 공적 영역의 정치적, 갈등적 성격에 비해 사적인 것은 동의가 전제되는 영역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사적인 영역에서는 폭력과 강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적인 것에 대한 이러한 관념은 가정폭력 피해 여성에게 '왜 떠나지 않는가?'와 같은 질문을 하게 한다. 국가폭력이나 학교폭력, 전쟁의 피해자에게는 이런 질문을 하지 않는다. 여성의 삶에서는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이 구별되지 않는다. 여성의 입장에서는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
남성과 여성의 관계는 다른 권력 관계와 다르게 성애화(sexualized)되었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식되어 이제까지 정치적 분석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여성주의자들은 '무엇이 정치적인 문제인가, 그리고 그것은 누가 정하는가' 자체를 질문하기 시작했다. pp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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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서 노인은 기본적으로 계급적 개념이자 범주이다. 지식인, 여성 지식인, 게이 지식인이란 말은 있지만 노인 지식인이란 말은 없다. 지식인이나 정치인, 재벌 등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은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노인이라고 불리지 않으며 그들도 스스로를 노인으로 정체화하지 않는다. 우리는 서민에게만 노인이란 칭호를 붙인다. 노인이 되는 것은 보통 사람들에게만 문제가 된다. 이것은 나이듦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자연스러운, 생물학적 현상이 아니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pp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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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항공사 승무원들은 중/노년의 남녀인 경우가 많은 데 반해, 한국이나 동남아시아의 항공사 승무원은 '젊고 예쁜' 여성 일색이다. 이러한 대비는 서구 항공사 노동자들이 벌인 노동운동의 성과이기도 하지만, 성별화된 오리엔탈리즘의 산물이기도 하다. 국제 관광 산업에서 항공사 승무원들은 각국의 이미지를 대표한다. 남성적 서구의 타자로 적합한 아시아는 여성의 이미지를 지니는데 이런 식으로 기표화된, 본질화된 '진정한' 여성은 어리고 예쁜 여성이다. pp192-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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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면에서 한국 사회는 계엄령이 필요없는 사회다. 사회 구성원들의 상상력, 용기, 소망은 나이에 따라 철저히 제한되어 있다. 우리는 대단히 자발적으로 나이 듦에 대한 지배 이데올로기-누가 지배하는지 모르는-를 수용하고 있으며 나이 든 자, 나이 든 여성을 혐오한다. 일상의 아주 감정적인 차원에서부터 나이 듦에 대해 동일한 해석 틀을 지니고 있으며, 미세한 검열과 규율에 예속되어 있다. 나이에 따라 삶의 가능성이 체계적으로 억압된 사회, 이것은 '고도로 조직화된 조용한 폭력'이다. 나이 든 사람을 바라보는 나 자신의 시선을 다시 바라보는 것에서부터 반연령주의 정치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pp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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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진주의 페미니스트들이 성매매를 반대하는 것은 성 보수주의자이기 때문이 아니다. 성매매는 성 보수주의나 윤리의 문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성매매는 기본적으로 성별 권력 관계의 문제이다. 성매매와 포르노그래피는 남성이 여성의 몸을 사용하는 것을 정상화, 정당화하는 남성 중심 시스템의 핵심이다. 성매매는 성폭력과 다르지 않다. (...) 성매매는 강간할 권리를 사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직업은 '창녀'가 아니라 포주다. 이는 성 판매 여성이 성을 파는 것이 아니라 팔리는 상품이라는 의미이다. 즉, 성매매는 여성이 남성에게 파는 것이 아니라 남성이 (여성을) 남성에게 파는 것이다. 특히, 빈부 격차가 극심해지고 있는 글로벌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매매는 더욱 인신매매적 성격을 띠고 있다. pp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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