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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기록205

비 오는 날의 운문사 장마가 계속되는 날이면 한옥집이 생각난다. 대청 마루에 앉아서 처마 밑으로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고운 벗과 차 한 잔 나누고 싶다. 아침부터 장맛비가 내리던 일요일, 먼 데서 손님이 찾아와서 비 오는 날이면 더욱 운치가 있는 절, 운문사에 들렀다. 운문(雲門), 구름문.... 극락교, 일반인은 들어갈 수 없어 더욱 아쉬웠을까.. 저 문 너머로 걸어가면 딴 세상과 마주칠지도... 만세루에 앉아서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친구는 이제 '낙숫물'이란 말이 사라질 것 같다고 한다. 대웅보전 지붕 위의 이끼가 정답다. 안녕, 친구... 그대의 익살스러운 표정이 맘에 드네.. 저 꽃문을 열면... 저녁 공양을 위해 아궁이에는 불이 타오르고... 불이문 안을 엿보며... 不二, 둘이 아니라 하나인 세.. 2005. 7. 5.
경주 일대를 돌아보고 토함산의 일출...황홀함에 넋을 잃다 경주 일대를 돌아보고 ▲ 봄향기가 찾아든 불국사 삼십대에 들어와 달라진 것이 있다면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예전에 나를 떠밀었던 많은 것들이 이젠 다소 시들해졌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한층 더한 무게감으로 다가오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인연이다. 인연은 예상치 못한 신비로운 모습으로, 때로는 커다란 숙제로 내게 다가오곤 한다. 우연한 기회에 국토사랑방 회원님들과 인연이 닿아서 오랜만에 답사 여행을 떠났다. 도시 계획 쪽의 일을 하시는 분들, 그리고 우리 옛집에 관심이 있는 분들과 함께 경주 일대를 돌아보게 되었다. 예년 같으면 벚꽃이 다 피었을 텐데 아직 꽃 소식이 요원한 3월 마지막 주말, 그래서인지 대구에서 경주까지 가는 길은 전혀 막히지 .. 2005. 4. 9.
겨울 속 겨울로의 여행 - 금강산에서 띄우는 짧은 편지 '05 겨울 속 겨울로의 여행 금강산에서 띄우는 짧은 편지 ▲ 구룡연에서 2월, 추위가 마지막 기승을 부립니다. 며칠간 내린 폭설로 금강산은 이름 그대로 설봉산, 눈천지가 되어 있었습니다. 단풍으로 물든 숲과 흐르는 계곡물 소리, 햇살에 반짝이던 옥빛 담소와 봉우리를 신나게 오가던 구름, 정다운 온갖 것들이 한바탕 잔치를 벌였던 가을 풍악산과는 달리 설봉산은 겨울 속의 겨울, 말이 없습니다. 구룡연 코스에서 상팔담은 고사하고 구룡폭포까지만 간신히 다녀온 산행이었습니다. 영하 14도, 바람이 몰아치면 입술이 얼 지경입니다. 겨울의 자연은 혹독하지만 아름답습니다. 하늘의 해조차 눈처럼 시린 흰 빛이며, 바람은 때때로 하얀 눈보라를 일으키고 지나갈 뿐입니다. 단순하고 고적합니다. ▲ 옥류동 계곡 ▲ 옥류동 계곡 기대.. 2005. 2. 25.
'미리내'에서 인생의 가을을 보다 _ 미리내 성지와 유무상통 마을 '미리내'에서 인생의 가을을 보다 미리내 성지와 유무상통마을을 다녀와서 늙어서 아름다운 건 나무밖에 없다고 어머니는 말씀하시곤 했다. 세월의 풍상을 이겨낸 고목의 의연한 자태, 그가 드리우는 그늘의 넉넉함을 보노라면, 사람도 저렇게 늙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늙어갈수록 고목만큼 넓은 정신의 그늘을 세상에 드리울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게 쉽지는 않은 듯하다. 경기도 안성 미리내 실버타운의 원장으로 계시는 방상복 신부님과의 인연으로 그곳에서 하루를 묵어갈 기회가 생겼다. 무의탁 노인들과 치매 환자들을 위한 시설을 운영해오시던 신부님께서 경제적 여유가 있는 분들도 노후를 거룩하게 보낼 수 있도록 6년 전에 세운 집이 미리내 실버타운. 바로 근처에 미리내 성지도 있어 순례차 함께 들르게 .. 2004. 10. 27.
관동별곡은 과장이 아니었다! - 금강산 육로관광을 다녀와서 '04 관동별곡은 과장이 아니었다! [여행기] 금강산 육로 관광을 다녀와서 ▲ 금강산에도 가을이 찾아들기 시작했다 금강산에서 꿈 같은 일박 이일을 보냈다. 육로 관광이 시작된 지 일년여 만에 드디어 북한 땅을 밟게 된 것이다. 세상 어떤 땅보다도 더 멀어 보였던 그곳은 그렇게 지척에 있었다. 먼 것은 인간의 마음이지 땅이 아니었다. 새벽 여섯 시, 고성 금강산 콘도에서 관광증을 받은 우리 가족은 민통선을 지나 통일 전망대 근처에 있는 동해선 출입국 사무소에서 수속을 밟고 배정받은 버스에 올랐다. 비무장지대의 철조망과 그 너머 북녘 땅을 눈 앞에 두고 마음은 다소 긴장되었다. 출발 전에 직원 분으로부터 여행에 필요한 설명을 들었다. 북한 사람들은 남북이 하나의 나라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관광 지구 내에서는 ‘북한,.. 2004. 10. 4.
짦은 산책 긴 여운 - 운문사에서 잠시 머물며 짧은 산책, 긴 여운 운문사에서 잠시 머물며 태풍으로 쏟아지는 비에 연이은 흐린 날씨는 지리산으로 가려 했던 나의 발을 묶고 말았다. 그래서 나는 가까운 청도 운문사로 방향을 돌렸다. 매표소를 지나자마자 소나무 터널이 눈을 시원하게 한다. 이 솔숲길을 걸어갔으면 더 좋으련만 차로 지나치게 됐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돌담을 따라 걷는다. 담 안으로 보이는 절은 주위를 둘러친 산의 품에 안긴 듯 포근하다. 운문사는 신라 때 창건된 천년고찰로 고려조에는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 스님이 주지로 머물기도 했으며, 지금은 승가대학이 자리잡고 있다. 오륙년 전에도 이곳에 한 번 간 적이 있다. 그때만 해도 나는 운문사에 별다른 감흥을 받지 못했기에 특별한 인상이 남지 않았다. 아마 가까운 친구에게 "거기 별로 볼 게 .. 2004. 8. 24.
아름다움과 진실을 만나는 남도 여행 아름다움과 진실을 만나는 남도 여행 남도로 떠난 수학여행 ▲ 보리밭 5월의 남도는 가도 가도 보리밭, 이처럼 보리밭을 많이 보긴 처음이다. 햇살을 받아 엷게 빛나는 누런 보리의 물결과 갓 물대기 시작한 논의 아름다움에 취해 나는 차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뉘 부르는 소리 있어 나를 멈춘다. 옛 생각이 외로워 휘파람 불면 고운 노래 귓가에 들려온다. 돌아보면 아무도 보이지 않고 저녁 놀 빈 하늘만 눈에 차누나.' 어느 결에 내 기억 속에선 잊고 있었던 노래 하나 피어오른다.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종달새도 한 마리 파르르 날아오를 듯하지만, 그건 이미 내 어머니의 기억 속에서나 존재하는 세상이다. 우리 엄마 어렸을 적엔 아이 어깨까지 올라오는 보리 사이를 걸어다니곤 했다 하는.. 2004. 6. 7.
10년만에 애인을 만나러 떠났다 ㅡ 지리산에서 참으로 오랜만에, 아름다운 이를 만나고 왔다. 지리산, 그리운 지리산. 장엄함으로 친다면 남한에서 그를 따를 곳이 있을까. 십 년만의 재회였다. 그는 여전히 거기 있었다. 언제나 그 자리에, 시류에 흔들리지 않는 진중함을 지닌 채로, 모든 존재를 품에 안아 줄 듯한 넉넉한 가슴까지 아마도 나는 이만한 애인을 쉽게 찾지는 못하리라. 산 같은 사람이 얼마나 그리웠던가. 산의 마음, 변함 없는 그 마음이. 작은 이익에도 쉽게 부서지고, 가랑잎처럼 이리저리 흩날리는 마음들을 보며, 산처럼 든든할 수 있기를 바랐다. 자신을 바로 세우기 어려운 세상살이 속, 산의 굳건한 어깨를 바라볼 때면 항상 깊고 따스한 위로를 받았다. 갖가지 업무로 복잡한 날들의 연속인 지난 주에는 정말 어디론가 탈출하고픈 마음 뿐이었다. 인.. 2003. 12. 1.
도시민 유혹하는 산골마을 예술성당 여름축제 도시민 유혹하는 산골마을 예술성당 여름축제 올 여름엔 평창 대화로 오세요 ▲ 대화성당 전경 ⓒ 대화성당 예술 작품이라는 것은 그것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우리들에게 힘을 곁들여 주는 것이다. - 시몬느 베이유 강원도 산골 마을에 이렇게 예쁜 성당이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소문을 듣고 찾아간 대화성당은 예술성당이라는 별칭만큼이나 구석구석 섬세한 손길이 미치지 않은 데 없는 하나의 완벽한 예술 작품이었습니다. 아름다움은 그 자체로 힘이고 생기입니다. 불교 신자가 아니지만 명산 자락에 조화롭게 들어앉은 우리네 절집들은 늘 내게 평온과 위안을 안겨 줍니다. 그에 반해 20세기 사람들이 돈으로 새단장한 무술 영화 세트장 같은 사찰들, 첨탑이 그저 눈을 아프게만 하는 국적 불명의 교회 건물들은 우리에.. 2003. 8. 7.
천 년의 숲으로 우리 꽃을 보러 오세요 - 평창 한국자생식물원 천 년의 숲으로 우리 꽃을 보러 오세요 평창 한국자생식물원 ▲ 재배 단지 오대산을 몇 번이나 지나가면서도 이곳을 알지 못했어요. 지난 주말 평창에 들렀다가 야생화 집산지라는 그 지역 분의 소개 말씀을 듣고서야 비로소 발걸음이 미쳤습니다. 강원도 평창군 오대산 자락에 위치한 한국자생식물원, 특별히 우리 고유의 꽃들만 모아 놓은 곳이랍니다. 우리 엄마 어렸을 적에는 도랑 가에 지천으로 널린 것이 야생화였다지요. 계절마다 온갖 꽃들이 피고 지고, 가을에는 갈대가 무성하고, 습지마다 풀꽃이 가득했다 하는데, 패랭이 같은 건 흐드러지게 피었다 하는데, 그 모습 지금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하세요. 산에 가도 외래종들에 밀려 우리 꽃을 보기가 쉽지 않다고 하세요. 그래서 그런지 식물원에서 엄마는 내내 옛 추억에 빠져들.. 2003. 7.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