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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소설, 시96

[책] 가재가 노래하는 곳 / 델리아 오언스 경이로운 작품이었다. 소설이라는 장르가 사람들을 매혹하는 힘은 개성 있는 시공간, 캐릭터의 매력, 튼튼한 서사, 그리고 주제의식에서 비롯된다. 아프리카 등지에서 평생을 생물학 연구로 보낸 저자가 70세에 쓴 이 소설은 놀랍게도 이 모두를 하나도 빠짐없이 꽉 채워서 깊은 감동과 여운을 주었다. 뉴올리안스의 광활한 습지를 배경으로 버림받아 홀로 살아야하는 여주인공 카야를 통해 인간의 고독과 정신적 성장 과정은 물론 가정폭력, 인종차별, 여성 인권, 사회적 편견, 자연보호 등의 다소 무거운 주제를 한 올 한 올 섬세하게 짜올린 작품. 특히 묘사의 힘이 대단하다. 작가는 습지의 생태계와 소녀의 내면의 고독을 바로 곁에서 지켜보듯이 생생하게 전달하고 살인사건의 범인을 찾는 과정은 이야기에 더욱 빠져들게 만든다. .. 2023. 6. 25.
그 여름의 끝, 우리는 / 권재원 주말 오전,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었는데 여운이 남는다. 사실 소설적으로는 그렇게 잘 짜여진 작품이 아닌데 무언가 찡하고 뭉클하다. 아마도 이 책이 와니와 써니, 두 여교사의 성장기를 다루었기 때문인 듯하다. 두 인물들의 경험 세계가 나와 겹쳐지는 것은 많지 않지만, 그들의 고군분투가 내 젊은 날의 아련한 기억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인 것 같다.  전혀 다른 성장 배경을 지닌 와니와 써니, 중학교 같은 반 친구인 둘은 교직에서 서로 만난다. 유복했던 와니는 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교사가 되었고, 형편이 어려웠던 써니는 기간제를 거쳐 우여곡절 끝에 몇 년 늦게 발령을 받는다. 그렇게 교단에서 만난 둘은 서로를 보듬으며 학교와 교실에서 맞닥뜨린 현실을 헤쳐나간다. 각각의 캐릭터가 매력적이면서도 사실적이고, 이들의.. 2023. 5. 21.
[책] 정거장에서의 충고 / 박해현 외 기형도 시인에 대한 평론가들의 평론을 모은 책이다. 500페이지 가까이 되는 두꺼운 책을 다 읽은 건 아니지만 (사실 매우 듬성듬성 읽었지만) 여러 책 중에서 기형도 시인에 대해 대략적인 이미지를 그려낼 수 있었던 유일한 책이다. 책장을 덮으며 한 청년이 마음속에 떠오른다. 노래 부르기와 음악을 좋아했던 활달하고 유쾌한 청년, 그의 마음에서 끊임없이 속삭여오는 아픈 유년의 그림자, 가난과 가족의 병고로 인해 외로움으로 점철됐던 어린 날,, 학교에서 받은 상장을 아무도 알아줄 이 없어 종이배로 접어서 개천에 띄워버릴 만큼.. 중풍으로 드러누운 아버지, 비극적 사고로 죽은 누이, 여공으로 일한 다른 누이들과 힘겹게 생계를 꾸려가던 채소장수 어머니... 그는 인생이 주는 실존적 물음에 그 자신이 해답을 찾는 .. 2023. 3. 19.
[책] 시인을 만나다 / 이운진 내일 반납인데 다 읽을 시간이 없다. 기형도 시인 수업을 해야 해서 이 부분만 캡처해둠.. 2023. 3. 13.
[책] 국어교과서 작품 읽기 (중3 시) / 김규중 외 엮음 2023. 3. 8.
[책] 국어시간에 세계시 읽기 / 전국국어교사모임 예쁜 시가 넘 많다. 꼭꼭 씹어읽고픈.. 2023. 3. 5.
다시, 헤세를 읽다 교과서에 헤르만 헤세 단편이 나온다. 작가 소개를 하려고 집에 있는 헤세 책을 찾아보니 5권이나 되었다. 유리알유희만 십 년 전쯤 다시 읽었었고, 나머지는 약 30년만에 펼쳐보는 책들이다. 종이가 누렇게 바랬다. 헤세를 잊고 산 지 오래되었는데 책장을 펼치니 이 작가의 어떤 점이 그토록 매혹적이었는지 알 것 같았다.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방랑하는 영혼, 성과 속 사이의 경계에 선 인간, 자기다움이란 무엇이며 사랑과 깨달음에 이르는 길은 무엇인가. 작가가 자기 생애 전반에 걸쳐 묻고 또 물었던 '구도'의 과정이 크눌프와 데미안과 싯다르타의 입을 빌어 쓰여 있었다. 특히 데미안의 첫 문장은 지금봐도 후덜덜~~"나는 정말 나의 내면에서 저절로 우러나는 대로 살려고 노력했을 뿐이다. 그런데 왜 그것이 그렇게.. 2022. 11. 3.
하얼빈 / 김훈 "안중근을 그의 시대 안에 가두어놓을 수는 없다. '무직'이며 '포수'인 안중근은 약육강식하는 인간세의 운명을 향해 끊임없이 말을 걸어오고 있다. 안중근은 말하고 또 말한다. 안중근의 총은 그의 말과 다르지 않다." (p307 작가의 말에서)  그의 다른 작품보다 더 간결하고 절제된 느낌을 주는 소설이다. 화려한 미사여구 없이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 두 사람의 최후의 동선을 따라가는 여정. 거의 그들에 독백에 의지해 소설이 전개되는데 한 권을 순식간에 읽어버린 건 김훈 작가의 필력 때문일 것이다. 장편소설인데 마치 단편소설을 읽은 듯 이야기가 금방 끝이 났다. 다만 소설 전체가 ‘작가의 말’에 담긴 주제의식에 못 미친다. 좀 더 절절하게 묘사했더라면 하는 바람이 들 만큼 너무 소략한 대목이 많다. 이순.. 2022. 8. 15.
태백산맥 3~4부(6~10권) 분단과 전쟁, 완독 소감 드디어 이 걸작을 다 읽었다. 3부와 4부는 6.25 전쟁에서 휴전, 그 사이 지리산 빨치산 투쟁과 소탕이 이야기의 줄기다. 스무 살에 읽었을 때는 역사적 사실을 잘 모른 채 그저 이야기의 흡입력에 정신없이 빨려들어가 읽었다면, 지금은 소설의 배경이 되는 사건들을 대부분 알고 있어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다.  보도연맹 사건, 국민방위군 사건, 거창양민학살사건, 거제 포로수용소 등 굵직한 사건들을 대부분 알고 있고, 지리산의 주요 골짜기, 백무동, 뱀사골, 피아골, 빗점골, 주요 봉우리 천왕봉, 반야봉, 노고단, 인근 화엄사, 의신마을 등을 모두 알고 있기에 더 생생하게 읽혔다. 지리산이 지금 올라가도 얼마나 돌투성이고 힘든 길인지, 지리산 겨울이 얼마나 매섭고 추운지 잘 알기에 그곳에서 버틴 빨치산들의 고.. 2022. 7. 25.
태백산맥 2부 (4~5권) 민중의 불꽃 방학하고 아침으로 빵을 먹다가 오랜만에 흰 쌀밥을 지어 밥을 한 그릇 푸는데 문득 뭉클했다.  소설 태백산맥 때문이다. 이 밥 한 그릇에 얼마나 많은 한과 눈물이 담겼던가. 수천 년간 이 밥 한 그릇에 삶의 모든 고락이 달려 있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 밥 한 그릇을 보며 그저 무량했다. 문학의 힘이 실로 대단하다.  태백산맥 2부 4~5권은 해방 후 토지개혁을 둘러싼 갈등을 세세하게 다룬다. 국민의 8할 이상이 농민이었고, 그 농민의 다수가 또 소작인이었던 시절. 해방 후 사회갈등의 근본은 지주와 소작인의 대립이었다. 아무리 열심히 농사를 지어도 소작료로 다 징수되고 춘궁기, 추궁기엔 굶기가 여사였던 시절, 소작 부치던 그 토지마저 없으면 굶어 죽어야 했던 시절, 땅은 사람들에게 꿈과 한의 결정체였.. 2022. 7. 24.
태백산맥 1부 (1~3권) 한의 모닥불 스무 살 때 읽고 이십 년 넘는 세월을 훌쩍 건너 뛰어 다시 손에 잡은 소설 태백산맥. 벌교 여행을 다녀와서 이틀 만에 3권까지 읽었다.기대 이상으로 재미있었다. 일단, 소설의 주요 장소인 벌교읍내, 현부자집, 술도가, 보성여관(옛 남도여관), 금융조합, 홍교, 중도방죽 등을 직접 보고 온 터라 읽으면서 장소가 환히 떠올라서 좋았고,, 주인공들이 오고가는 인근 선암사와 고흥, 순천 일대까지도 이번 여행을 통해 지리가 환히 그려져서 좋았다. 고흥 과역면은 3권에서 한 줄 나오는데 과역면에서 여행 중 가장 맛있는 밥을 먹어서 그것도 기억에 남았다. 가 진도가 잘 안 나가서 힘겹게 붙들고 있던 참이라 이 더 기대 이상인 듯도 하다. 조정래 씨 필력이 대단하다.스무 살 때만큼은 아니지만(그땐 밤새워가며 읽음) .. 2022. 7. 22.
패배의 신호 / 프랑수아즈 사강 __ 프랑스 부르주아 소설은 내 취향이 아니네 오랜만에 읽는 프랑스 소설. 처음엔 프랑스 소설에서 흔히 보는, 부르주아적 생활상에 대한 묘사가 썩 와닿지 않았는데.. 캐릭터가 워낙 흡입력이 있어서 끝까지 몰입해 읽었다. 책장을 덮으니 루실, 샤를, 앙투안, 디온, 이 네 사람을 직접 곁에서 만난 것 같았다. 그 집에서 같이 생활한 듯한 느낌이 들 만큼 인물과 그들을 둘러싼 공간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가 탁월하다. 과연 천재 작가라는 말을 들을 만하구나 싶었다. 내일에 대한 계획이 없는, 오늘의 따스한 햇빛에서 삶의 모든 행복을 얻는 서른의 루실. 그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며 경제적 뒷받침을 해주는 능력 있고 사려 깊은 오십의 애인 샤를. 사교계의 여왕이자 세련되고 아름다운 마흔의 디온. 디온의 애인이자 그녀의 경제적 후원을 받는, 작가 지망생이면서 진.. 2022. 5. 21.
중년 독서, 레미제라블 얼마 전 동기들 만났을 때 기억에 남는 말이 있었다. 지금까진 부모님께 받은 사랑과 젊음의 에너지로 버텨왔다면 그게 다 고갈되는 시기가 중년이라고. 자신에게 힘을 줄 수 있는 새로운 뭔가가 필요하다고. “나도 중년이 처음입니다” 예전에 서점에서 책 제목만 보고 읽지는 않은 책이지만 제목엔 공감이 갔다. 청년도 중년도 노년도 어떤 시기건 맞닥뜨리는 이들에겐 다 처음이다. 처음이라서 허둥대고 실수하고 자책한다. 중년에 지혜가 늘고 심리적 안정을 얻은 분들도 계시겠지만 오히려 번아웃이나 정신적 공허를 느끼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허기진 마음을 인스턴트식품이 아닌, 집밥 같은 걸로 좀 배부르게 채우고 싶다는 친구에게 소설 레미제라블을 권했다. 5권 짜리다. 중년이면 이것저것 잡다한 독서보다 한 시대를 관통하는.. 2022. 2. 7.
토지 4권, 용정촌의 삶과 서희와 길상의 사랑 4권은 용정촌에 이주한 평사리 사람들의 생활상이 자세히 그려져 있다. 새로운 인물들도 많이 등장하는데 교육운동을 하는 송장환, 줏대 없는 인물 윤이병, 그리고 평사리를 도망치듯 떠난 뒤 용정촌에 모습을 드러낸 김두수, 월선의 삼촌 공노인 등이다. 김두수는 일본의 첩자 노릇을 하며 주변 사람들을 자기 이익을 위한 먹잇감으로만 삼는 간악한 캐릭터의 대표격이다. 뭐니뭐니해도 4권을 끌어가는 중심 이야기는 서희와 길상의 애증이다. 서희보다는 길상의 심리 상태가 더 섬세하고 설득력 있게 묘사된다. 평생을 모셔왔던, 수천 수만 번도 얼굴을 더 봤던 애기씨, 그러나 그 둘 사이에 늘 있었던 보이지 않는 벽. 신분 차이라기보다는 오랜 시간 그렇게 일정한 거리를 둔 그들 사이의 거리가 일순간에 허물어질 수는 없는 노릇이.. 2022. 1. 10.
토지 3권, 평사리를 떠나는 사람들 3권은 이동진의 눈에 비친 블라디보스톡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곳을 방문한 적이 있고 최재형 선생의 삶을 인상적으로 보았던 터라 재미있게 읽기를 시작했다. 3권에선 대기근으로 농민들이 아사하는 장면이 나온다. 먹을 게 없어 하나 둘 굶어죽으면서도 곡식을 쌓아둔 양반집을 털 생각을 못하는 저항의 dna가 아예 실종된 듯한, 체념에 가까운 삶을 산 농민들을 보며 무엇이 이들을 그렇게 만들었나 의문이 들었다. 작가도 그 부분은 시원히 밝혀주지 못한다. 다만 그네들은 긴 세월 그렇게 살아왔노라고. 3권은 스토리가 긴박하게 전개된다. 역병으로 윤씨 부인, 김서방, 봉순네 등이 세상을 뜨고 서희는 천애고아가 되며 조준구는 최부잣집 재산을 날로 먹으려 한다. 고통 속에 살던 서희는 의병활동으로 평사리를 쫒겨난 농민.. 2022. 1.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