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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소설, 시96

토지 2권, 평사리 사람들 2권을 다 읽은 지 2주가 지났다. 생각보다 속도가 붙지 않는다. 재미 있는데 띄엄띄엄 보다보니 그렇다. 2월까지 20권을 다 읽을 수 있으려나. 아무튼 천천히라도 꼭 완독할 예정. 2권에서는 사건이 굉장히 빠르게 전개된다. 최치수의 죽음, 윤씨 부인의 비밀(1권인지 2권인지 헛갈리네), 용이와 월선의 사랑이 주축을 이루면서 인물들의 캐릭터가 생생히 부각되고 그들의 내면이 잘 묘사되어 있다. 김훈장, 몰락양반 김평산, 용이, 칠성 등 평사리 농민, 목수 윤보와 강포수, 함안댁, 임이네, 강청댁 등 여인들 각각의 성격과 개성도 훌륭하게 묘사되어 있다. 인물들의 다양한 욕망과 그들이 지키려는 가치관이 실감나게 전달된다. 최치수의 죽음은 한 시대의 몰락으로 읽혀졌다. 젊고 똑똑하고 냉철하며 시대 변화를 보면서.. 2021. 12. 13.
토지 1권, 말꽃으로 수놓은 거대한 화폭 요즘 유투브를 만들다보니 책에는 손을 놓고 있다. 이런저런 잡다한 책들은 이제 재미가 없고 긴~~ 장편소설을 한번 읽어야겠다 싶어 '토지'를 손에 들었다. 대학 때 3, 4권까지 보다 말았던 책이다. 그땐 딱히 재미있지도 재미 없지도 않았는데 바쁘다 보니 손을 놓게 되었다. 봄에 하동 최참판댁 다녀와서 꼭 봐야지 했는데 이제사 시작한다. 겨울까지 다 볼 수 있으려나. 중년에 다시 '토지'를 집어들며 소설 내용과는 별개로 한 문장, 한 문장을 읽는 것이 그냥 행복했다. 번역문이 아닌, 모국어 문장이 주는 감칠맛이다. 마치 음식을 꼭꼭 씹어먹는 것 같았다. 박경리 선생이 말로 된, 말꽃으로 거대한 화폭을 수놓으셨구나 싶었다. 그 말로 된 꽃들을 하나하나 음미해간다. 1권에서는 한가위를 묘사한 대목이 찡했다... 2021. 11. 8.
파친코 1~2 / 김민진 __ 여러모로 아쉬운 작품 "읽는 여러분을 한국인으로 만들기 위해 이 소설을 썼어요." 유튜브에서 재미교포 김민진 작가의 인터뷰를 보고 기대가 컸다. 소설을 쓰는 이유는 그 소설을 읽는 사람을 이 세계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다. 그러므로 독자를 한국인으로 만들기 위해 소설을 썼다는 김민진 작가의 말은 탁월한 답변이었다. 소설 '파친코'를 꼭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도서관에서 한 달을 기다려서 '파친코' 1권을 받았다. 1권은 흡입력이 대단했다. 부산 영도를 배경으로 주인공 순자의 가족사와 일본으로 이주하기까지의 여정을 속도감 있게 그려내었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전개가 인상적인데, 이것이 2권에 가서는 큰 약점으로 작용할 줄은 몰랐다. 1권에서는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의 '품격'이 잔잔하게 가슴을 파고들고 긴 여운을 남긴다. 순자의 .. 2021. 7. 6.
몽실언니 | 권정생 _ 아동문학을 뛰어넘은 20세기 한국문학의 걸작 대체 나는 예전엔 이 이야기를 왜 그리 건성으로 읽은 것일까? 올해 안동의 권정생 선생 생가를 방문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권정생님 작품을 몇 개 다시, 제대로 읽으려고 방학 때 사둔 책이 다. 이렇게 몰입할 줄은 몰랐다. 저녁 나절에 잠깐 훑어보려고 펴들었다가 끝까지 다 읽었다. 228쪽에 접어들 땐 나도 모르게 엉엉~ 눈물을 훔치면서. 그리고 알았다. 권정생님이 얼마나 위대한 작가인가를. 는 아동문학의 테두리에 가둘 수 없는 작품이다. 내가 읽은, 문학사적 평가를 높게 받는 그 어떤 한국소설보다도(많이 읽은 편이 아니라서 쫌 그렇지만) 못하지 않으며 오히려 낫다고 생각한다. 해방 전후와 6.25 전쟁 시기의 삶을 너무 잘 그리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시대 삶과 전쟁을 바라보는 작가의 윤리의식과 '몽.. 2021. 4. 19.
꽃들에게 희망을 | 트리나 포올러스 ㅡ 인생책 연말이면 책을 보내주는 지인이 있습니다. 올 겨울에 받은 책은 잘 알려진 고전, 리커버판입니다. 짧은 우화 속에 인간 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삶의 위대한 가능성을 동시에 새겨넣은, 고전 중의 고전이죠. 이야기속엔 줄무늬, 노랑이, 이렇게 두 마리 애벌레가 등장합니다. 줄무늬 애벌레가 세상에 태어나 목격한 모습은 이렇습니다. 다른 애벌레들이 모두 줄을 지어 어딘가로 가고 있습니다. 한 방향으로 끝없이 이어진 애벌레들의 행렬, 그 행렬 끝에는 놀랍게도 거대한 애벌레 기둥이 있습니다. 애벌레들이 높은 데로 올라가려고 서로의 몸을 밟고 밟으며 만들어낸 기둥이죠. 기둥 위엔 뭐가 있는지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습니다. 줄무늬는 호기심에 기둥에 뛰어들지만 거기서 노랑 애벌레를 만납니다. 차마 노랑이를 밟고 올라서.. 2021. 1. 21.
심신단련 & 깨끗한 존경 | 이슬아 ㅡ 일상을 소설처럼 재미나게 이야기하기 세바시에서 이슬아 작가가 강연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젊은 친구 치고는 글쓰기에 대한 철학이랄까 통찰이 놀랍구나 싶었다. 자신이 매일 쓴 수필을 이메일로 발송하고 한 달에 만 원의 고료를 받는다는 발상도 참신했다. 언젠가 기회 되면 이 분 책을 한 번 봐야겠다 싶었지만 이삼십대의 관심사가 나와 겹치는 부분이 크게 있을까 싶어서 책을 사진 않고 이름만 기억해둔 작가다. 마침 어제 후배가 이슬아 작가가 쓴 두 권의 책을 빌려주었다. '심심단련'은 수필집이고 '깨긋한 존경'은 인터뷰집이다. 한 권의 수필을 금새 읽으면서 놀랐다. 젊은 친구가 필력이 대단하구나 했다. 일상 이야기는 사실 공감을 불러오긴 쉽지만 그만큼 흔하고 우리의 주의와 관심을 크게 끌지는 않는다. 그런데 작가는 일상의 작은 일들을 그만의 섬.. 2020. 10. 7.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에서 꽂힌 한 대목 오래 전에 읽은 책을 다시 펼쳐든다. 재미로 같은 책을 두 번 세 번 보는 건 어릴 때 일이고, 지금은 그런 일이 거의 없다. 공부하거나 논문 쓸 때, 내용을 다시 정확히 확인하려고 자료를 다시 찾을 뿐. 하지만 가끔은 예전에 그 책을 읽었을 때의 신선한 느낌을 다시금 맛보고 싶어서 책장을 펼칠 때가 있다. 파울로 코엘료의 가 그날 그랬다. 이 책을 처음 읽은 때는 2004년, 갓 서른을 통과할 때다(블로그에 리뷰가 있어서 앎). 아직 삶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움츠러들기 전이다. 그 시기에 이 소설은 주인공이 온갖 모험을 겪으며 자기만의 고유한 다르마를 찾아가는, 삶의 '지도'에 대한 이야기로 읽혔다. 그 지도는 매력적이었다. 그런데 살아보니, 언제부터인가 삶에서 더 나은 무언가를 기대하는 것이 점점 버.. 2020. 8. 28.
귤의 맛 | 조남주 ㅡ 청소년 소설로는 많이 아쉬운 작품 기대가 커서였을까. 의 작가, 조남주의 첫 청소년소설. 개인적으로 별 매력을 못 느낀 소설이다. 서사의 힘은 있어서 끝까지 다 읽기는 했지만. 일단 캐릭터의 개성과 매력이 약하다. 네 명의 여중생이 주인공인데, 중학생의 특징도 잘 드러나지 않고, 네 명이 가정환경과 성적만 다를 뿐 다 비슷비슷해서 구분이 잘 안 간다. 두 번째는 소설의 플롯인데, 또래집단인 여중생 넷이 같은 고등학교에 가기 위해 벌이는 사건들이 다분히 작위적으로 느껴졌다. 자연스럽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소설의 주제. 성장소설을 기대했는데, 그 성장의 구체적 내용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이 면에서는 개인적으로 '체리새우'가 훨씬 좋았다. 제목이 왜 '귤의 맛'인지도 모르겠고, 문장이 썩 매끄러운 편도 아니다. 넘 혹평했나. 아무튼 내게 '.. 2020. 6. 24.
마녀식당으로 오세요 | 구상희 & 체리새우 | 황영미 ㅡ 재기발랄한 청소년 소설 두 권 동아리 시간에 읽을 '재미있는' 한국 소설을 찾다가 레이다에 잡힌 책. '알로하 나의 엄마들'에 이어 일단 이 두 권이 당첨이다. 한 권 더 찾아서 총 4권을 정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청소년소설을 그렇게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인물 묘사가 덤벙덤벙하고 스토리의 얼개가 좀 성근 편이어서 솔직히 성인인 내게는 재미가 없어서 그간 잘 읽히지 않았다. 이 두 권을 보고 좀 적극적으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좋은 소설이 많이 나오는구나 싶다. 는 일단 재밌다. 친숙한 음식이라는 소재로 마법을 불러오는 것도 재밌고,소원을 빌려고 마녀식당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의 이야기 하나하나가 우리 이웃의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여서 공감을 준다. 소설에 끝에 이르러 어떤 특별한 감동이나 깨달음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그 이웃.. 2020. 6. 2.
먼 바다 | 공지영 ㅡ 오랜만에 읽는 공지영의 신작 시간의 기억에서 당신을 지우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No day shall erase you from the memory of time. 뉴욕 9/11 메모리얼 파크에 있는 버질의 시라고 한다. 이 소설 속에 자주 등장하는데, 소설의 주제를 한 마디로 압축한 구절이라 하겠다. 공지영의 '먼 바다'는 약 환갑에 이른 주인공이 40년 전 첫사랑을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교수단의 뉴욕 연수길에, 마침 연락이 닿은 스무살 시절의 옛사랑과 만날 약속을 하고 여행(연수)을 나선다. 여행 도중에 과거의 이야기들이 회상을 통해 하나둘씩 떠오르고 그래서 첫사랑 이야기지만 가볍고 담담하게 읽힌다. 회상 부분에서 문득문득 비수 같은 아픔이 느껴지지만 전체적으로는 맑고 담담한 소설이다. 제목 '먼 바다'처럼 기억 저편에서 .. 2020. 6. 1.
알로하, 나의 엄마들 | 이금이 — 백 년 전 하와이 이주 여성들의 삶 겨우 40쪽을 넘어가고 있을 때부터 울컥, 눈시울이 찡해졌다. 아직 특별한 스토리가 전개되는 것도 아닌데, 그냥 일제강점기 그 시절 작은 마을의 어디에나 있었을 법한 평범한 여인들을 묘사하고 있는데, 계속 마음이 흔들거렸다. 아마도 그것은 이 이야기가 우리들의 어머니, 더 나아가서는 할머니 세대의 이야기이기 때문이었으리라. 저녁 나절에 단숨에 다 읽었다. 착하고 속깊은 버들이, 씩씩하고 대범한 홍주, 숫기 없는 여린 송화. 가난했지만 세상 물정 모르는 이 순박한 여인들이 사진 한 장 보고 하와이에 시집가면서 벌어지는 삶의 역정. 도착 첫날부터 산산이 깨어진 꿈. 이민자로 살아가는 일의 힘겨움. 가족 이상으로 끈끈한 자매애, 밑바닥 노동자지만 고향과 조국에 대해 품었던 애틋한 마음씨. 이 모든 것이 한 편.. 2020. 5. 29.
별을 스치는 바람 | 이정명 ㅡ 후쿠오카 감옥의 윤동주 시인을 만나는 반가움 재작년 후쿠오카 여행을 갔을 때 윤동주 시인을 생각한 적이 있다. 교토 릿쿄대에서 수학 중이던 윤동주 시인은 민족주의 학생운동 혐의로 체포되어 1944년 후쿠오카 감옥에서 옥사했다. 지금 감옥은 없어졌다고 들었지만 그 장소에 한 번 가볼까 하는 생각이 여행 준비 중에 들었다. 2박 3일의 짧은 일정이라 직접 찾아가 보지는 못했지만. 이 책 을 읽는 내내 내가 가보지 못한 후쿠오카 감옥에서 윤동주 시인을 만났다. 이야기가 처음부터 끝까지 후쿠오카 감옥 안에서 펼쳐진다.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과 허구적 상상을 넘나든다. 감옥 안에서 일어난 의문의 살인 사건을 추적하며 벌어지는 이야기지만 소설을 읽는 내내 내 시선은 추리소설의 플롯이 아니라 딴 곳에 가 있었다. 내 관심은 그곳에서 윤동주 시인이 무엇을 생각하고.. 2019. 11. 10.
제7일 | 위화 — 노벨상 타셔도 될 것 같다 지하철에서 별 생각없이 첫 장을 펼쳐들었다가 순간 몰입하여 내려야 할 역도 놓치고 우왕좌왕. 집에 돌아와 엉엉 울면서 마저 읽었다. 망자들의 세계를 이처럼 따스하게 그린 작품이 있을까. 주인공 양페이의 죽음 뒤 7일간을 그린 소설. 그 이레 동안 양페이는 자신의 삶을 스쳐간 모든 사람들을 그의 마음에서, 혹은 저승에서 소환하고 재회한다. 따스함과 유머, 어리석음과 비극이 점철된 보통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 그 배경에 흐르는 중국 현대사회의 모습도 인상 깊다. 그리고 마지막에 우리를 감동시키는 건 이십대에 철길에서 양페이를 주워 평생을 성실하게 길러낸 그의 아버지와 이웃들의 진한 인간미다. 책장을 펼치면 멈출 수 없는 소설. 대단한 필력. 작가 위화는 아직 중년인데 머잖아 노벨상 타셔도 될 것 같다. 2019. 10. 11.
세 여자(1~2) | 조선희 ㅡ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던 조선의 여성 혁명가들 이 책에 나오는 남자들은 거의 다 아는 인물들이다. 그런데 나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들 곁에 있었던 여인들의 존재를. 단지 혁명가의 아내 혹은 내조자가 아니라 그 서슬 퍼런 시대에 혁명을 꿈꾸고 사회주의 독립운동에 거침없이 뛰어들었던 씩씩한 여인들의 존재를. 주세죽, 허정숙, 고명자. 댕기머리를 싹둑 잘랐던 그들의 첫 번째 선택은 이후 그들의 삶을 역사의 가장 험하고 거친 굴곡 속으로 데리고 간다. 상해, 블라디보스톡, 모스크바에 이르는 여정까지는 그런가보다 하면서 읽었다. 하지만 그분들의 여정이 조선의용군이 싸운 타이항산(태항산) 일대와 스탈린 치하 카자흐스탄 유형지에 이를 때에는 나도 모르게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렇게 두 권의 소설을 가끔씩 멈추고 심호흡을 하며 읽었다. 1920년대 일제 치하에서.. 2019. 3. 4.
아무도 기억하지 않았다 | 안재성 ㅡ 실화를 재구성한, 분단이 가져온 고통의 기록 공선옥의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를 읽으며 '무당의 공수' 같은 소설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한 세대 여성들의 구비구비 굴곡진 처절한 삶을 무당의 공수처럼 토해낸 소설. 읽는 과정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하지만 그 여인들의 상처와 슬픔을 듣는 그 시간이 '치유'의 시작임을 느끼게 해준 소설이었다. 이미 모든 사건은 벌어졌고, 또 지나갔지만, '이야기'를 통해 그 사건이 다시 우리 앞에 놓일 때, 우리 혼의 일부가 치유되는 것 같다. 그 이유는 나도 잘 모른다. 이야기가 우리 내면의 메마르고 딱딱한 껍질을 부수어주기 때문일까, 아니면 넓은 맥락에서 그들과 우리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일까. 안재성 작가가 신작 소설 '아무도 기억하지 않았다' 후기에서 작가가 자신을 '글 무당'이라 소개해서 반가웠다. .. 2018. 11.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