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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이야기/인도, 네팔20

[네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를 걷다 '01 바라나시에서 국경 도시 소나울리까지 덜컹거리는 버스로 꼬박 하루가 걸렸다. 밤이 되어서야 소나울리에 도착했다. 날은 이미 어두웠다. 두 발로 걸어서 국경을 넘었다. 어둠 속에서 관문을 지날 때 무척 감격했다. 드디어 네팔, 히말라야에 한 걸음 다가온 것이다. 북인도 도시의 매연에 지쳐 있었기에 산이 더욱 그리웠다. 국경 사무소에서 비자를 발급받고 그날은 그곳에서 묵었다. 날이 밝자 포카라행 버스에 올랐다. 산길을 굽이굽이 돌아가며 마주치는 시골 풍경은 인도와 그리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버스에 속속 올라타는 이들의 얼굴은 한결 친숙했다. 꼭 한국 사람같은 몽골리안들도 더러 있었다. 포카라의 레이크 사이드는 이름난 관광지임을 실감케 했다. 서구풍의 건물과 레스토랑들이 빼곡이 들어차 마치 다른 나라에 온 것.. 2001. 2. 28.
[인도] 체념이 흐르는 강, 갠지스 '01 바라나시에서 우리가 느낀 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바라나시는 혼돈 그 자체였다. 우리가 21세기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수 있는 그 무엇도 거기엔 없었다. 갠지스 강을 따라서 어쩌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버린 것인지도... 릭샤를 타고 힌두교 사원을 몇 군데 돌면서 나는 내 느낌의 정체를 파악하려고 애를 썼다. 내세가 현세를 완전히 뒤덮은 곳, 인도. 마음을 다해 신께 기도하는 누추한 사람들의 눈빛에서 내가 본 건 체념이었다. 거기엔 어떤 희망의 자취도 찾아볼 수 없었다. 삶은 고통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것을 목격하는 것이 내게 고통이었다. 어서 이 도시를 벗어나고 싶었다. 갠지스강을 인도 사람들은 강가라고 부른다. 강을 따라 계단으로 된 가트가 죽 이어져 있다. 우리는 릭샤꾼의 안.. 2001. 2. 27.
[인도] 바라나시 가는 길 '01 바라나시 가는 길은 해프닝의 연속이었다. 어머니의 강 갠지스는 쉽게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문제는 붓다가야에서 기차가 아니라 버스를 택한데서 시작되었다. 관광 안내소에 문의하니 버스도 기차처럼 네 시간이면 간다고 했다. 그래서 여정에 지친 우리는 새벽 기차 대신 낮에 여유있게 버스 정류장으로 간 것이다. 정류장에서부터 황당한 일이 펼쳐졌다. 시골이라 아무도 영어를 못한다. 다들 우리를 에워싼 채 인도인 특유의 표정으로 재미었어 죽겠다는 표정들이었다. 서로 자기 버스에 타라고 난리였다. 우리는 바라나시만을 외쳤고 몇 번이나 맞다고 다짐을 받은 끝에 한 버스에 올랐다. 그렇게 버스를 타고 몇 시간을 달려갔다. 버스엔 시골 사람들이 계속 오르고 내렸다. 영어를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기사에게 .. 2001. 2. 27.
[인도] 붓다가야, 부처님이 열반하신 곳 '01 인도의 안개, 오전 10시까지 짙게 내리깔리는 그 안개를 처음 본 게 붓다가야지 싶다. 차분하고 부드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내 마음을 무겁게 가라앉게 하던 안개. 캘커타를 떠나 밤새도록 달린 기차는 어스름한 새벽녘, 가야에 닿았다. 가야 역에서 내려 붓다가야까지 오토 릭샤를 타고 가면서 우리는 안개 속에서 북인도의 농촌 풍물을 구경할 수 있었다. 초가집들, 소와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 벽이며 담벼락에 덕지덕지 달라붙은 소똥, 그리고 아이들의 천진한 눈동자. 강변을 따라 늘어선 나무들.... 안개 자욱한 아침의 표정은 차분하고 고요했다. 부처님이 도를 닦을 만한 곳이란 느낌도 얼핏 들었다. 마을 옆으로 강이 흐르며 몽실몽실한 산도 저 멀리 보인다. 한 시간 쯤 후 작은 마을 붓다가야에 도.. 2001. 2. 27.
[인도] 캘커타, 마더 하우스를 찾아가다 '01 내게 인도에 대한 지워지지 않는 첫인상을 심어 준 캘커타의 첫 모습은 무척 낯설었다. 공항을 빠져나와 만난 가느다란 다리의 남루한 택시 운전사들, 시내로 진입하면서 본 거리의 풍경들, 그토록 많은 거지들, 그들의 무섭도록 슬픈 검은 눈동자들.... 캘커타에서의 사흘은 우리의 눈이 그 모습에 익숙해지는 과정이었다. 배낭 여행자들이 몰리는 서더스트리트는 많은 여행자들과 상인들로 활기에 넘쳤기에 우리 마음을 다소나마 안정시켜 주었다.  여장을 풀고 거리에 나서자 맨발의 인력거꾼들이 눈에 들어왔다. 거리에서 물펌프질을 하며 몸을 씻는 아이들도. 영화 '시티 오브 조이'의 장면 그대로다. 캘커타가 바로 그 영화의 무대였다.영화도 감동적이지만 원작 소설이 더 좋았던 기억이 난다. 우리 나라엔 '목마른 사람들'이란 .. 2001. 2.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