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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에세이

가난뱅이의 역습 - 마쓰모토 하지메

by 릴라~ 2010. 12. 3.

가난뱅이의역습
카테고리 정치/사회 > 사회학 > 사회학일반 > 사회비평에세이
지은이 마쓰모토 하지메 (이루,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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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읽은 책 중 가장 신나고 재미있고 유쾌한 책. 한 시간 읽는 동안 내내 혼자 키득키득거렸다.

올 가을 저자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우리 정부의 입국 금지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어서 공항에서 억류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 사건을 다룬 기사를 우연히 보고 저자를 알게 되었다. 호기심에 사본 책인데 이렇게 유쾌할 줄이야. 대체 테러리스트도 아니고 이런 사람을 입국 거부하는 울 정부도 대책없게 웃긴다.

저자는 나와 동갑내기. 그런데 참~ 다르게 살았다. 안정직이라 일컫는 공무원과 정반대되는 삶. 임금노동을 거부하고, 가난한 백수로, 아나키스트, 데모 주동자로 살았고 현재는 재활용 가게 '아마추어의 반란' 점장이다. '자발적 가난'을 택했다는 말로는 저자의 삶을 다 설명할 수 없다. 이이는 괴짜 중의 괴짜다. 가는 곳마다 사건을, 가난뱅이들의 신나는 축제를 만들어가면서, 유쾌하고 시끌벅적하게, 제멋대로 살았다. 조직적인 운동 방식이 아니라 그때 그때 떠오르는 영감에 의해 찌개 집회, 카레 데모, 맥주 파티 투쟁 등 기발하고 배꼽 잡는 갖가지 시위를 주도하여 세상을 시끌벅적하게 만들었다.

그가 반란을 일으키기 시작한 계기는 호세 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다. 저자에 따르면 당시 호세 대학은 가난하지만 무언가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분위기였는데, 대학의 경영진이 갑자기 돈벌기 노선으로 갈아타면서 기업에 도움이 되는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목표 아래 산더미 같은 교칙을 만들고 학생들의 자유로운 연구와 자치 활동을 제한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강의가 끝났으면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빨리빨리 집으로 가라는 식이었다나.

저자는 '알찬' 대학 생활을 보내기 위해 매일 저녁 광장에서 난로를 피우고 찌개를 끓이고 고기를 구웠단다. 그러면 귀가 중인 학생들이 신나서 다가오고 밥통을 들고 오는 놈, 텔레비전을 들고 오는 놈, 별의 별 놈이 다 생기면서 흥겨운 잔치가 벌어진다고. 그래서 저녁이면 늘 어디선가 연기가 피어올랐고 지나가는 사람 누구나와 대화를 나누었고 걸어다니기만 해도 친구가 생겼다고.

학생 식당 밥값 인상에 반대해서 식당 앞에서 카레 수백 그릇을 100엔에 파는 투쟁을 벌이기도 하고, 호화판 빌딩은 필요 없다며 신축 건물 스카이라운지에 모인 총장과 재계 인사들에게 페인트를 투척해서 몇 달간 감방 생활을 하기도 했다. 오죽했으면 수업을 거의 듣지 않았음에도 학점을 대량으로 받아서 강제 졸업을 당했을까. ㅋㅋ 졸업 이후에는 '가난뱅이 대반란' 집단을 결성해 거리에서 경찰의 혼을 빼놓는 데모를 하며 놀았다. 길목 좋은 곳에서 데모해 보겠다고 구의원 선거에 입후보해 선거판을 백수, 가난뱅이, 프리터들의 신나는 해방구로 만들기도 했다.

사람들이 세상살이를 하며 여러 가지 부조리를 느끼지만, 세상을 향해 표현할 통로를 찾지 못할 때, 그것은 개인적 울분에 그치고 마는 수가 많다. 저자는 빈부 격차라는(저자는 일본을 10대 90의 사회라고 보고 있다) 사회의 기본적 모순 앞에서, 10에 편입되기 위한 노력이 소용도 없고 의미도 없음을 꿰뚫어보고, 체제 전체에 반항하는 다른 삶의 길을 택했다. 그가 택한 반항은 조직적인 투쟁이 아니라, 친구들과 벌이는 신나는 놀이였다. 대기업을 폭파하겠다거나 하는 과격한 방식이 아니라, 이 꽉 짜여진 세상에서도 제멋대로 신나게 살 수 있음을 보여주는 간단하면서도 즐겁게 할 수 있는 반란. 필요한 건 돈이 아니라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밝고 씩씩한 마음임을 알려주는 반란.

우리들 대부분은 부자는 아니라도 무언가 조금은 가졌다고, 그래서 살 만하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월급이 많다 하더라도 당장 일을 그만두면 얼마 못 버티는 사람을 모두 '가난뱅이'로 규정한다. 저자의 기준에 따르면 임금 노동을 하고 있는 자 대부분이 가난뱅이인 셈이다. 이 책을 읽으며 그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모두가 별 수 없는 가난뱅이란 사실을 인정할 때, 세상을 다르게 살 수 있는 길이 열리지 않을까. 그때에야 비로소 사회의 가치관을 답습하는 대신 이 세상에 작은 차이를 풀어놓는 길을 시도하게 되지 않을까. 저자처럼 말이다.


덧붙임) 냥냥군은 이 책을 읽고 일본은 그래도 지역 공동체가 살아 있고 그 점이 부러웠다고 했다. 우리 의 경우 지역 공동체가 부재한 자리를 교회를 비롯한 종교 단체가 차지하고 있는데,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지역 공동체가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유럽도 지역 공동체가 살아 있는데, 우리는 아파트 부녀회, 각종 계모임은 활성화되어 있으나 지역 공동체는 없다. 우리의 도시화는 그것을 철저하게 부수면서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이룩한 경제성장을 그렇게 찬탄해야 할 필요가 있을지도 의문스럽다. 경제적 가치가 다른 모든 가치를 집어삼킨, 물신주의가 이토록 팽배한 천박한 사회를 살게 되리라고는 90년대까지만 해도 예상하지 못했다. 나 자신 그 때보다 훨씬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지만, 그 때보다 더 행복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보다 드높은 정신적 자유, 인권, 평등, 예술과 창조 그런 것들에 경제가 충분히 봉사할 때만, 물질적 풍요로움은 우리에게 혜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근데 요즘 같은 세상에 ‘제대로’라는 게 뭐지? 말도 안 되는 저임금에 일만 죽도록 하다가 피로 좀 풀려고 거리에 나가면 이거 사라, 저거 사라, 귀가 따갑다구. 신상품이 발에 채여 괜히 사고 싶은 마음만 들잖아. 월급이 쬐끔 많은 놈이라도 어쩌다 보면 돼먹지 못한 비싼 전자레인지 같은 걸 사는 데 보너스도 다 써버리고 무일푼이 된다구. 그런 꼴 당하기 싫어서 어디 가서 좀 쉬려고 둘러보면, 공원 벤치엔 요사안 팔걸이를 만들어서 낮잠도 잘 수 없고, 기차역 대합실이었던 자리에는 어느새 스타벅스가 들어앉아 있으니...쳇, 재수 없어... 돈이 떨어져서 할 수 없이 집에 들어가잖아? 텔레비전을 켜보라구. 사채 광고가 왕왕 돈을 빌려준다고 난리를 떤다구. 예쁜 아가씨가 돈 빌려주는 줄 알고 입을 헤벌리고 돈 빌리러 가보라구. 사람은 코빼기도 안 뵈고 기계만 떡하니 버티고 있다구. 그 다음엔? 필요 이상으로 험상궂은 아저씨들이 빚 받으러 찾아 오신다구. 여하튼 돈은 안 빌리더라도 말이지, 매일 죽어라 일해서 PDP 사고, 세탁건조기 사고, 돈 모아서 도요타 자동차 사고(물론 대출 받아서), 불경기로 찌부러진 치바나 사이다마 근처 땅에 30년 상환 조건으로 내 집 사고, 마지막으로 퇴직금을 탈탈 털어서 자기가 들어갈 무덤을 산단 말이지... 결국 죽을 때 가져갈 땡전 한 푼 없이 써버리는 것, 그게ㅐ 바로 제대로 된 ‘격차 사회’고 ‘더 나은 생활’이란 말이야... 흥, 이거 뭐야! 시시해, 답답해!!!

말하자면, 정사원으로 일하면서 결혼하고 아이 키우고 집도 사고 해서 이제는 ‘우등반’에 들어갔다고 생각하는 자네! 우쭐거릴 일이 아닐세! 안 된 얘기지만, 자네도 이미 각 잡힌 가난뱅이란 말씀이야. 진짜 ‘우등반’이란 말이지, 잠깐 일을 쉬거나 몇 년쯤 아무것도 안 해도 저절로 돈이 굴러 들어오는 시스템을 만들어놓은 놈들이라구. 이런 놈들은 무지무지 노력하고 무지무지 재수가 좋아야 해. 그리고 남을 벼랑에서 밀어 떨어뜨릴 용기가 있어야 한단 말이야. 그러니까 보통 사람한텐 무리지. 게다가 아무것도 안 하는데 돈이 들어온다는 말은 누군가 대신 일을 하고 있다는 말이니까, 시대를 잘 타고났기에 망정이지 옛날 같으면 가난뱅이들이 멍석말이를 해서 먼지 나도록 흠씬 두들겨 패주었을 것이라는 말씀.

그런데 우리가 손가락 까딱 안 하고 빈둥빈둥 놀면 어떻게 되지? 백발백중 눈 깜짝할 새 돈이 떨어져서 찍소리도 못하게 될 거란 말이야. 페달을 밟지 않으면 쓰러져버리는 자전거 같은 우리 인생은 자타 공인 가난뱅이란 말씀. 아니 현재 일본 사회의 90퍼센트 이상은 가난뱅이 계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걸! 모범수냐 문제아냐 그런 차이는 있겠지만, 결국은 강제노동수용소에 갇혀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는 거야. 흐음, 이거 그렇다면 탈출해야 하는 거 아냐?

이기는 사람도 없는 경쟁사회에 휘둘리기는 죽기보다 싫으니 말이야! 그런데 마음대로 살 거라고 선언이라도 해보라지. 좀 더 노력해보라는 둥, 세상을 위해서 일하라는 둥 설교하려는 놈들이 나타나기 마련이라구. ‘사회를 위해 고생이 되더라도 노력한다 →세상이 나아진다→떡고물을 얻어먹는다’는 건 부자들이 듣기 좋으라고 내뱉는 말이지. 이렇게 하면 우수한 노예가 될 뿐이야... 거짓부렁! 뻥이야! 그만두는 게 좋다구. 고생은 고생대로 다 하고 나중에는 새 발의 피 같은 돈 부스러기나 얻어 쓸 수 있을 뿐이니까.

그에 비해 ‘하고 싶은 일을 한다→좀 곤란한 일에 부딪힌다→몸부림친다→어떻게든 된다(무슨 수든 쓴다)’는 생각을 해봐. 이게 세상을 살아가는 일반적인 방식 아냐? 이거야말로 얼마나 인간답고 즐거우냔 말이야.

조오타. 이렇게 된 바에야 멋대로 살아볼까! 야호! 시시한 놈들이 지껄이는 말은 듣지 말고 씩씩하게 살아보자. 우리 가난뱅이가 이 세상을 한바탕 걸지게 뒤집어보자! 좋아 좋아! 정했어! 축제란 말이다! 시끌벅적 한판이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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