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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기록/대구, 동네 산책22

[대구 여행] 이른 봄의 산책, 불로동 고분군 https://youtu.be/3uT3XrSkRJg 대구 불로동(不老洞). 팔공산에 갈 때 늘 지나가는 동네다. 바로 근처에 대구공항이 있고 신도시 이시아폴리스가 들어서긴 했지만 전통시장을 비롯하여 여전히 서민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동네다. 불로동의 이름에도 오랜 역사의 흔적이 남아 있다. 불로동은 후백제와 고려의 격전지였다. 왕건이 후퇴하다가 여기 오니 어른들은 모두 도망가고 아이들만 남아있어서 늙지 않는다는 뜻의 불로동이라 불렀다 한다. 이 불로동에 왕건이 활약한 시대보다 훨씬 오래된 유적이 있다. 5세기 전후에 축조된 고분 200여 기가 발굴된 ‘불로동 고분군’이다. 근처 봉무동 고분을 더하면 300기가 넘는다고 한다. 고분 하나하나의 크기는 경주 왕릉과 비교되지 않지만 산등성이를 따라 길게 이.. 2020. 3. 10.
이름 모를 민초들의 마음이 새겨진 장소, 최제우나무 / 대구 근대골목 대구 근대골목에 자리한 종로초등학교에는 특별한 나무가 있다. 수령 사백 년이 되는 회화나무, 이 나무의 이름은 '최제우나무'다. 왜 나무에 동학의 창시자 수운 최제우 선생의 이름이 붙었을까. 대구 종로초등학교는 옛 경상감영의 감옥이 있던 자리다. 바로 근처에 1601년 선조 때 세워진 경상감영이 있다. 경상감영은 경주, 안동 등을 옮겨다니다가 선조 때부터 대구에 완전히 정착했다. 종로초등학교의 회화나무 수령이 4백년쯤이니 이 나무도 경상감영이 자리잡을 즈음에 생겨났으리라 여겨진다. 이 경상감영에 1864년 경주에서 체포된 한 남자가 이송된다. 100일간의 고문에도 자기 뜻을 굽히지 않았던 그는 그 해 4월 봄날, 혹세무민을 이유로 사형을 선고 받는다. 그가 참형을 당한 장소는 경상감영에서 그리 멀지 않은.. 2019. 9. 14.
걷기가 주는 선물 - 팔공산 평광동에서 "이십대 때는 혼자 여행하는 것이 엄두가 안 났어요. 그런데 서른을 넘으니 많은 것들이 편안해지고 혼자서도 어디든 떠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길에서 만난 아리따운 이의 말이었다. 눈빛이 맑았다. 일찍 결혼했고 아이는 없다고 했다. 나는 답했다. "저랑 반대네요. 저는 이십대엔 부닥치는 모든 것들이 새롭고 독특했기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혼자 길을 나섰지요. 그런데 서른을 넘으니 동행이 없는 것이 아쉬웠어요. 경험을 더불어 나누고 싶어졌거든요." 혼자 여행한다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을, 혹은 세계를, 혹은 세계 속의 자신을 '깊게' 만나고 싶다는 소망의 발로이다. 누군가는 십대나 이십대에, 누군가는 삼십대 혹은 사십대에, 또 누군가는 노년에 그런 소망을 품는다. 어느 시기가 되면 우리의 .. 2009. 8. 29.
움직이지 않는 여행 - 욱수골에서 숲에서 한 달쯤 생활하면 어떨까. 외로울까. 사람이 그리울까. 어떤 낯선 순간들을 맞이하게 될까. 무엇을 더 강렬하게 느끼고 무엇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될까. 숲 가운데 정자에 앉아 쉬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니, 다가오는 어느 방학 때쯤 한번 떠나볼까 싶다. 지리산 자락 아래도 좋고, 강원도 좋고, 네팔 산자락이나 동남아의 작은 해변 마을도 좋을 것 같다. 최근 필리핀 팔라완의 포트바튼이라는 곳이 마음에 다가오고 있다. 먼 거리를 주파하는 여행도 좋지만, 요즘은 한 곳에 머무는 여행, 그런 것에 끌린다. 작년 봄, 함양에 갔을 때다. 버스 타고 가는데, 캠핑카 하나가 옆으로 지나갔다. 기사님이 그걸 가리키면서 외국애들 셋이 지난 겨울에 함양에 내려와서 세 달째 죽치고 논다.. 2009. 8. 11.
욱수골을 온종일 걷다 산이라고 생각하면 조금 아쉽고, 걷기 코스라고 생각하면 만족스러운 길이다. 욱수골은 400미터 정도의 나즈막한 야산이지만 대구와 경북의 경계 지점이라 골이 매우 깊다. 겹겹의 산들이 끝모르게 이어진다. 그동안 나는 이 산을 좋아하지 않았다. 잡목이 너무 많아서 어두컴컴하고 답답한 느낌이 있었기 때문이다. 구청에서 등산로를 정비하면서 근래에 산이 많이 좋아졌다. 나무들을 솎아내면서 숲이 훨씬 밝고 건강해졌다. 더 푸르러지고 싱싱해지고. 체육공원까지 가로등을 설치한 것은 마음에 안 들지만, 전체적으로는 숲도 좋아지고 등산로도 잘 정비되었다. 욱수체육공원에서 만보정, 욱수정 지나서 경산 성암산을 거쳐 덕원고교까지 약 여섯 시간 정도 걸은 것 같다. 큰 산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집 가까이 이렇게 길게, 종일 .. 2009. 8. 9.
다시 봄이 우리 곁에 - 금호강에서 12세기에 살았던 힐데가르트 폰 빙엔은 하느님을 ‘녹색의 영’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녀는 하느님의 푸르름에 매혹되었고 세상을 푸르게 하는 그 힘이야말로 모든 선의 모범이라고 여겼지요. 중세의 교조적인 사회 분위기를 감안하면 혁명적인 영성입니다. 4월 첫째 주, 봄햇살, 봄기운으로 가득한 금호강변을 걸으며 푸르름을 깊이 사랑하고 푸르름이 곧 신이라고 말했던 힐데가르트를 떠올렸습니다. 울창한 여름도 좋지만 새봄에 막 피어난 꽃과 연둣빛 잎사귀들, 대지를 점령해가는 푸릇푸릇한 기운, 이들이 뿜어내는 생동감은 특별합니다. 천지만물에서 신이 태어나는 순간입니다. Original blessing이지요. 내 가슴에서도, 그대 가슴에서도, 새로운 봄이 시작되기를. 2009. 4. 14.
도심 속 작은 자연, 금호강변을 걷다 대구 녹색소비자연대에서 찾은 걷기 좋은 길, 금호강변을 걷다. 2~3시간 동안 강을 따라 걸으면서 이 거대한 콘크리트 더미 속에서 그래도 살아있는 ‘작은 자연’을 만났다. 도시는 자연과 완벽하게 격리된 공간이다. 가로수가 늘어서 있고 꽃이 피어나고 공원과 호수가 있지만 그 모두는 인공적인 세계 속에 갇혀서 저마다 따로따로 서 있을 뿐 이 도시에 자연은 없다. 자연은 하나의 전체적인 세계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움직이는 세계, 인간의 법칙이 아니라 자연의 법칙이 작동하는 세계. 강물이 굽이쳐 흐르고 새가 날아들고 그 옆으로는 갈대와 풀이 무성하고 이 모두가 서로 어울려 계절마다 다른 소리를 내는 것, 하나의 완전한 세계, 그것이 자연이다. 이 자연이 금호강을 따라서 애처로울 정도로 희미하게 살아 있었다. 조.. 2009.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