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sheshe.tistory.com

영화 이야기/영화, 드라마102

신의 소녀들 — 일상성 속에 깃든 폭력 거장들의 영화를 보는 것이 조금씩 부담스러워지고 있다. 보고 나서 마음에 남는 어떤 불편함 때문이다. 이 영화들은 스토리가 강렬한가 온화한가에 상관 없이 그 안에 예리한 비수 하나씩을 품고 있다. 우리 사는 세상에 대한 어떤 통렬한 시각 같은 것.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눈길은 그다지 예리하지 못하기에, 감독이 드러내는 세상의 풍경이 마치 칼날에 손을 벤 것 같은 그런 날카로운 궤적을 남기고 가는 것이다. . 2012 칸 영화제 각본상을 받은 크리스티안 문주 감독의 작품이다. 영화의 배경은 루마니아 정교회의 한 작은 수도원. 우리가 흔히 보는 유럽의 수도원보다 훨씬 중세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곳이다. 이곳에서 평안을 얻고 고요히 살아가는 보이치타에게 보육원에서 같이 자랐던 단짝 친구 알리나가 그녀를 찾아오.. 2013. 1. 8.
레미제라블 — 사람이 사람에게 대선 끝나고 봐서인지 참 많은 걸 생각하게 하는 영화. 보면서 많이 울었다. 자비 없는 법 때문에 19년을 갇힌 장발장의 한과 가엾은 팡틴의 가난 때문에 울었고, 이러한 민중의 삶을 배경으로 솟아난 프랑스 대혁명의 정신 때문에 울었고, 미리암 주교의 자비와 자베르를 용서한 장발장의 관용 때문에 울었다. 레미제라블에 담긴 사상적 풍요로움을 생각할수록 지금, 여기의 척박함에 가슴이 무너져왔다. 톰 후퍼 감독의 은 처음부터 끝까지 노래로만 전개되는 뮤지컬 영화이다. 노랫말 하나하나가 인물의 내면과 그 시대의 분위기를 집약해서 전하고 있어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레미제라블을 표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연기도 노래도 훌륭하며(노래가 뮤지컬보다는 많이 못하다고들 하는데 현장녹음이라 하니 이 정도면 만족함) 영화의.. 2012. 12. 23.
남영동 1985 | 정지영 감독 — 그 슬픔은 과연 끝났을까 영화를 다 보고 극장 문을 나섰을 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예전과 달리 느껴지게 하는 그런 영화가 있다. 극장 밖의 햇살이 한층 눈부시게 빛나고 이 순간 내가 자유롭게 숨쉬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게 되는 그런 영화. 가 바로 그러했다. 이 영화는 두 시간의 러닝타임 동안 우리들을 1985년 9월 남영동 대공분실 505호의 작은 방에 가두어둔다. 영화는 매우 건조하게 전개된다. 첫째 날, 둘째 날, 셋째 날..... 그리고 스물 넷째 날. 날이 더할수록 고문의 강도는 세어지고, 물고문, 고춧가로 고문을 지나 전기 고문을 가하는 장면에선 나도 모르게 눈을 감고 말았다. 이 비극이 사실임을, 인간이 다른 한 인간에게 이토록 끔찍한 고통을 가할 수 있음을 도저히 믿을 수 없어 하면서. 고문 없이는, 철.. 2012. 12. 14.
멜랑콜리아 — 우울에 대한 독특한 시 '우울'에 대한 한 편의 독특한 시. 서사는 다소 난해하지만 그 점이 몰입을 방해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매우 독창적이고 아름다운 영화이며 몇몇 장면은 가슴을 친다. 구성이 다소 특이한데, 인트로, 1부, 2부로 이루어져 있다. 십여 분간 이어지는 인트로부터 범상치 않다. 어두운 밤하늘 아래 벌판에 갈 곳을 잃고 서 있는 인물들, 결코 빠져나갈 수 없는 늪 속으로 찬찬히 가라앉는 듯한 이미지들이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비장한 음악과 함께 느리게 흘러가면서 '우울'의 심상을 호소력 있게 전달한다. 우울을 개인이 겪는 어떤 문제로 보는 게 아니라 그것에 시대적이고 종말론적인 색채를 부여하고 있는 점이 이 영화가 그려내는 미학적 지점이다. 영화의 주 무대는 18홀 골프장을 지닌 대저택이다. 영화 는 드.. 2012. 12. 1.
더 레이디 — 운명을 살아간다는 것 개인적으로 양자경의 연기가 아쉬웠다. 언론은 호평했으나, 실제 인물 아웅산 수치 여사의 표정의 깊이를 드러내기엔 역부족인 듯. 사진으로 본 수치 여사의 얼굴은 굉장히 여성스러운 데가 있다. 풍만한 여성성은 아니고, 가냘프고 섬세하고 소녀 같은 부드러움이 있는 얼굴이다. 눈빛엔 깊은 슬픔이 담겨 있지만 또한 연민이 있고 한 가닥 미소도 배어나온다. 이에 비해 영화속 양자경의 표정과 눈빛은 상당히 직선적이고 남성적이었다. 여리여리하면서도 꺾이지 않는 꼿꼿함이 있는 수치 여사의 아우라에 비한다면 지나치게 당당해 보였고 평면적인 인상을 넘어서지 못했다. 이 점을 제외한다면 는 아웅산 수치 여사의 한 여성으로서의 삶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 있게 본 영화다. (아웅산 수치. 양자경과 외모는 닮았으.. 2012. 9. 30.
피에타 | 김기덕 감독 — 김기덕이 그려내는 구원의 이미지 이런 영화를 한국말로 들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다. 얼마 전 TV에 출연한 김기덕 감독은 왜 잔인하고 어두운 영화를 자꾸 찍느냐는 질문에 이 세상엔 '그늘'도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었다. 그렇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엔 깊은 그늘이 존재한다. 영화를 보며 그 그늘을 풀어가는 감독의 영상 언어에 탄복했다. 지금까지 그가 제시하는 '구원'의 방식에 누군가는 동의하고 누군가는 동의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영화 의 경우, 청계천 상가라는 공간, 돈 때문에 저질러지는 악, 엄마와 아들이라는 관계의 설정은 보다 보편적인 공감을 이끌어내기에 충분해 보인다. 선과 악의 문제를 이처럼 정면으로 제기한다는 것은 사실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다. 그것을 단지 사회학적으로 풀어가지 않고 거기에 윤리적/신학적 깊이를 담.. 2012. 9. 6.
폭풍의 언덕 — 바람처럼 우리를 휩쓴 사랑 두 시간의 러닝타임 동안 요크셔 황야 위로 불어오는 바람을 온 몸과 마음으로 맞았다. 캐서린과 히스클리프의 격정적인 사랑도 그 바람의 일부로 느껴질 만큼 이 영화가 시종일관 그려내는 건 스산하고 황량한 '폭풍의 언덕'의 풍광과 그 언덕 위를 떠돌던 두 사람의 혼이다. 영화는 에밀리 브론테의 원작과 달리 캐시가 죽는 부분에서 끝이 난다. 캐시를 떠나보낸 히스클리프가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홀로 풀숲을 허위허위 걸어가는 마지막 장면은 영화의 주제를 압축해서 보여주었다. 시작도 끝도 없이, 이리저리 휘몰아치는 바람처럼 그 뱡향을 가늠할 수 없었던, 사랑의 거센 소용돌이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빨려들어갔던 두 사람의 이야기. 고통이 세월에 따라 바래는 것이 아니라 세월의 깊이만큼의 그림자를 새겨넣은 히스클리프의 얼.. 2012. 8. 18.
야곱 신부의 편지 — 지상에서 받은 마지막 선물 핀란드 영화는 처음 보는데 영상이 굉장한 깊이감이 있다. 한 장면 한 장면이 사람을 빨아들이는 놀라운 흡입력이 있었다. 피아노 선율과 함께 천천히 보여지는 이미지들, 사제관 앞의 숲길, 잡초가 우거진 마당, 낡아서 빗물이 새는 사제관 내부는 시간의 깊이를 드러내주었다. 그것은 평생을 그곳에서 살아온, 이제는 죽음을 앞둔 한 사제의 삶의 시간을 느끼게 한다. 영화 는 그 낡고 오래된 집에서 마주친 두 사람의 이야기다. 일흔은 족히 넘었을 것 같은 노사제와 무기징역수였다가 사면 받고 출옥한 중년 여인. 주인공 역을 맡은 두 주연 배우들의 연기는 감히 연기라고 칭할 수 없는, 최고의 집중력을 보여주었다(다른 영화와 비교 불가). 그들이 보여주는 건 다름 아닌 인간의 '진심'이다. 그들이 자신의 삶과 정면으로 .. 2012. 7. 23.
<프로메테우스>, 인류의 기원과 종말에 대한 질문들 인류의 기원과 종말에 관한 이야기는 신화와 문학, 그리고 영화에서 반복되는 주제다. 그것은 과학자들이 아프리카 구석에서 원시 인류의 뼛조각을 찾거나 고대 유적의 비밀을 파헤치는 과정으로 그려지기도 하고, 신의 뜻을 찾아서 미지의 어둠을 통과하는 고난과 순례의 여정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영화 에는 이 두 가지가 섞여 있다. 2094년의 과학자들은 고대 유적을 탐사하는 과정에서 그 유적들의 공통점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유적들이 한결같이 묘사하고 있는 별자리를 우주 스캔을 통해 찾아내고 지구를 떠나 머나먼 그 별을 향해, 그 별에 살고 있는 '엔지니어'(외계인, 조물주)를 만나기 위해 여행을 시작한다. 그것은 인간이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떠나는 가장 먼 곳으로의 여행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유독가스로 뒤덮힌 .. 2012. 7. 7.
<점프 아쉰>, 자신의 길을 걷는다는 것 살다 보면 길을 잃고 헤맬 때가 있다. 세상이 어둡거나, 아니면 우리들 마음이 어두워서. 세상의 어둠이 이유라면 어둠이 걷힐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이다. 하지만 돌이켜보건대 대부분의 방황은 나 자신의 무지와 몽매에서 비롯되었다. 그 어떤 훌륭한 가르침도 나를 그것에서 꺼내주지 못했다. 그것은 우리들 각자가 겪어내야 하는 것이었다. 청춘을 방황의 시기라 부르는 건 그 때문이리라. 은 자신의 진정한 소망을 깨닫기까지 한 청년이 겪어야했던 길고 혹독한 방황을 다룬 영화다. 주인공 아쉰은 어릴 때부터 체조에 전부적 재능이 있었지만 한쪽 다리가 짧다는 신체적 핸디캡과 생활고를 겪는 어머니의 반대로 체조를 중단한다. 그리고 어머니의 구멍가게에서 일하며 배달일을 한다. 아쉰은 그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2012. 5. 19.
<열두 살 샘>, 오늘을 영원히 사는 법 사람이 영원히 살 수 있는 길이 있을까? 삶이 지금처럼 익숙해지기 전엔 이같은 질문을 좀 더 자주 던졌던 것 같다. 물론 물리적 시간 안에서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며, 죽은 후 천국과 지옥 같은 물리적 장소에 간다고 생각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런 물리학적 시간과 공간의 차원을 넘어서 삶의 영원성이 실재한다는 느낌은 분명히 받았다. 영화 . 백혈병으로 학교에 가지 못하는 샘과 펠릭스 둘만을 위한 수업에서 선생님은 말한다. 인류가 아주 오랫 동안 그 방법을 찾아왔는데 모두가 동의하는 건 단 한 가지라고. 영원히 사는 길은 이 세상에 무언가를 남기고 가는 것이며 그건 바로 예술이라고. 선생님의 조언으로 샘은 자신의 일상을 노트에 기록하고 비디오로 촬영하는 작업을 시작한다. 소아 백혈병 환자의 .. 2012. 5. 12.
<온 투어>, 화려한 성공은 없지만... 별 볼 일 없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다. 전직 TV 프로듀서였으나 이제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쇼감독 조아킴, 그리고 풍만한 몸매를 지닌, 젊지도 늙지도 않은 뉴벌레스크 댄서들. 이들의 스트립쇼는 전혀 선정적이지 않다. 타인에게 섹시하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성들이 그들 자신의 감성으로 무대를 채우기 때문이다. 음악에 맞춰 흔들리는 가슴도 야하지 않았다. 그건 살아있는, 자연스러운, 인간의 몸이었다. 따라서 이들이 눈에 띄는 성공을 거두기는 어렵다. 미국에서 프랑스까지 댄서들을 데리고 온 조아킴은 빠리 입성을 꿈꾸지만 지인들은 차갑게 거절한다. 이들의 무대는 프랑스의 소도시를 전전하다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야 할 운명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비관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이 빛나는 별이 아님을 알고 .. 2012. 5. 11.
<건축학 개론>, 스무 살 그 시절에 대한 기억 단지 첫사랑이어서가 아니다. 스무 살 새내기지만 이들이 공유했던 '꿈' 때문이다. 그래서 두 사람은 서로를 잊지 못한다. 음대생인 서연이 꿈꾸던 이층집, 그리고 그 집을 지어주고 싶어했던 새내기 건축학도 승민. 이들이 꿈꾼 집은 단순히 건축물이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미지의 나날에 대한 설렘과 기대를 포괄한다. 그들은 젊었다. 그래서 그들은 알지 못한다. 그 만남이 흔치 않게 주어지는 축복이라는 것을. 진심을 품을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다는 것을. 이들은 자신들의 감정이 사랑인지 아닌지조차 정확히 인식하지 못한다. 열정은 있으나 이해와 인식이 부족한 시절이다. 그래서 그 만남과 교감의 소중함을 인식하지 못한 채 서로를 떠나보낸다. 사랑은 리듬이다. 박자가 딱딱 맞듯이 서로의 감정선이 일치하는 계기가 필요.. 2012. 5. 6.
<멋진 악몽>,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해학 이미 죽어 저 세상으로 떠난 이들을 이 세상에 불러낼 수 있다면? 유령을 법정 증인으로 채택하여 그의 증언을 판결에 반영할 수 있다면? 영화 은 그런 독특한 상상에서 출발한다. 그렇다고 비현실적이거나 허무맹랑한 내용은 아니다. 삶에서 우리가 겪는 자잘한 성공과 실패, 법정에서의 진실 찾기, 죽음에 대한 고민과 사랑에 대한 깨달음까지 우리 삶 구석구석을 훑어가며 관객들을 웃게 만든다. 이 웃음은 잠깐의 폭소에 뒤이어 쓸쓸한 끝맛을 자아내는 웃음이 아니라 보는 이를 내내 흐뭇하게 하는 미소다. 법정 영화답게 긴장감이 있으며 마지막 장면에서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허물면서 우리 인생 전체를 감싸안는 따스한 웃음으로 관객을 눈물짓게 한다. 유머의 정수를 보여주는 영화라고 말하고 싶다. 일본 영화라서 웃음의 코드가.. 2012. 5. 5.
<디어 한나>, 치유에 대한 정직한 이야기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했다. 장면이 딱히 잔인하거나 비참하거나 슬프거나 해서가 아니다. 화면은 오히려 상당히 절제되어 있다. 하지만 그 사이사이에서 언뜻언뜻 내비치는 주인공들의 아픔이 비수처럼 마음에 스며든다. 우리의 감성을 만족시켜 줄 그 어떤 아름다운 장치도 등장하지 않는다. 이 영화의 불편함은 환상이 제거된, 생의 본모습 그대로가 전달되는 데서 비롯되는 것 같다. 주인공 조셉의 일상은 영국 노동 계층이 처한 삶의 조건을 보여준다. 그의 삶엔 출구가 없으며 삶에 대해 더는 아무 기대를 할 수 없다. 조셉의 가슴엔 분노가 차곡차곡 쌓여가지만 그는 자신의 분노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모른다. 다만 주변 사람들에게 닥치는 대로 그것을 표출할 뿐이다. 또 다른 주인공 한나는 유복한 중산층이다. 그녀의 삶 .. 2012. 4.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