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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역사, 인물71

한국의 레지스탕스 | 조한성 _ 우리의 오늘을 만든 사람들 1945년 광복을 생각할 때,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갑작스럽게 맞이한 해방'이다. 35년간 독립투쟁은 계속되었지만 그것이 결실을 보지도 못한 채 외부에 의해 갑작기 찾아온 해방. 그래서 우리민족이 해방의 주체가 못 되고 이후 분단과 6.25 내전을 거치면서 내내 강대국의 입김에 휩쓸려가는 듯한 느낌. 이 책을 읽고 알았다. 태평양전쟁의 패배로 갑자기 해방이 찾아온 것은 사실이지만 독립운동가들의 노력, 민중계몽운동과 교육운동, 무력투쟁, 임시정부, 조선건국동맹 등 그 모든 것이 없었다면 우리는 해방을 맞이해서 제대로 된 나라를 세울 수 없었을 거란 사실이다. 그들의 노력이 민중들에게 서서히 스며들면서 새로운 국가를 위한 꿈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 모든 분들은 '우리의 오늘'을 만든 분들.. 2021. 4. 22.
역사가 당신을 강하게 만든다 | 최중경 _ 조선은 첫단추를 잘못 꿴 나라 소소하게 조금씩 역사 공부를 하며 든 생각이 있다. "이게 나라냐" 내 의구심과 한탄의 대상은 대개 조선 왕조다. 아니, 그렇게 예를 중시한다고 하면서 남의 나라(청나라) 황제 생일날에 참석해서 절 안 하고 버티는 건 대체 무슨 예의란 말인가. 명나라는 청과의 전쟁도 불사할 만큼 지고지순으로 섬기면서 청은 왜 오랑캐라고 멸시하는가. 사실 만주족의 뿌리는 고구려와 닿아 있어서 청나라는 고구려의 후예라고 봐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닌데 말이다. 그래놓고는 오랫동안 오랑캐라고 멸시했던 일본은 왜 또 그렇게 갑작스럽게 섬기면서 나라를 갖다 바치나. 도무지 논리적 일관성이 있어야 말이지. 힘 센 놈을 다 섬기는 것도 아니고. 이런 내 의구심을 해소해준 책이 있다. 외교관 출신의 저자가 쓴 . 도서관에서 처음 봤을 때.. 2021. 4. 20.
도시로 보는 유럽사 | 백승종 _ 유럽사를 보는 시야를 터주는 책 유홍준 선생이 예전에 연대기 중심의 역사 공부에 대해 비판한 적이 있어요. 연대에 대한 이해는 물론 필요하지만, 연대기적으로 나열된 추상적 사건을 공부하는 것보다는 '유물'이나 '유적'을 중심으로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 역사를 훨씬 생동감 있게 공부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이죠. 이 책이 바로 그런 책입니다. 여행기의 형식을 취하지만 여행기의 느낌은 한 20퍼센트? 나머지는 역사 이야기예요. 저자가 유럽사에서 의미 있는 지위를 차지하는 18개 도시를 방문하면서 그 도시의 역사를 들려주는 책입니다. 저자와 함께 여행을 떠나는 느낌이 들면서, 각 나라마다 두터운 역사가 있는 유럽사를 그 본질만 간추려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장점이 많은 책이죠. 저자는 유럽사를 각각의 도시와 그 도시를 만든 시민.. 2021. 4. 2.
조선, 1894년 여름 | 에른스트 헤세-바르텍 — 격변의 시대에 조선을 여행한 오스트리아인 1894년은 우리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해죠. 세도정치 백 년 끝에 이미 나라는 허물어지기 직전, 민초들의 마지막 개혁의 몸부림인 동학농민전쟁을 진입하려고 조정이 외세에 끌어들여 이 땅에서 청일전쟁까지 벌어졌죠. 그 격변의 시대를 마치 영화를 보듯 생생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여행기가 있습니다. 오스트리아 귀족, 헤세-바르텍의 기록인데요. 헤세-바르텍은 세계일주 여행 중에 일본에 들렀다가 조선이라는 미지의 나라에 대한 호기심으로 배를 타고 부산항에 내립니다. 청일전쟁의 위협 때문에 조선을 남에서 북으로 종단하지는 못하고, 배로 제물포까지 가서 서울과 인근 도시들을 여행하고는 아쉬움을 삼키며 일본으로 돌아가는데요. 그 경험을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여행기라기보단 민속지라 생각될 만큼 매혹적인 보고서입니다. .. 2020. 12. 31.
나라말이 사라진 날 | 정재환 — 한글로 나라와 문화를 일으키다 "대일본 황국신민으로서 조선말은 무엇 때문에 연구하며, 조선글은 무엇 때문에 연구하느냐? 철자법은 통일해서 무엇을 하며, 표준어는 사정하여 무엇에 쓰자는 것이냐? 한글 잡지는 무슨 목적으로 만들어내며, 조선말 사전은 무슨 필요로 만들자는 것이냐? 한글날은 무슨 뜻으로 기념하며, 한글 노래는 무슨 의도로 지어냈느냐? 여름마다 각지로 다니면서 한글 강습은 왜 하는 것이며, 틈틈이 기회만 있으면 학술 강연을 ㄹ빙자 삼아 눈가림의 집회는 왜 자꾸 하려 하느냐? 신문 잡지에 이러이러한 글은 무슨 의도에서 써냈으며, 사전 원고에 이러이러한 문구는 고의적인 민족사상의 고취가 아니냐?" -- 일제 고문경찰의 취조, 책에서 우연히 책광고를 보고 북펀드에 참여한 책. 이런 책을 읽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 조선어학회 사건과.. 2020. 11. 9.
조선과 일본에 살다 | 김시종 ㅡ 재일조선인 작가의 해방 전후사에 대한 특별한 기록 한 소년이 있었다. 식민지 시대 황국신민을 꿈꾸던. 그는 학교 다니는 것이 즐거웠고, 일본 창가의 서정성에 매혹되었으며, 일어를 잘하려고 무척이나 노력했다. 그리고 그러면 그럴수록 3.1운동에 참가한 적이 있던 아버지와 점점 멀어졌다. 학교를 졸업할 무렵에는 태평양전쟁에 자원 입대하려 했으나 단 하나뿐인 아들을 죽게 놔둘 수 없다는 부모님의 반대로 사범학교에 진학하면서 내심 아쉬워한다. 시대가 그랬던 탓에 소학교에서 학생들은 조선어 수업을 하찮게 여겼다. 그마저도 나중에는 없어지고 말았지만. 조선어를 가르치던 선생은 두상이 좀 삐딱해서 외모 때문에 더욱 아이들의 놀림을 받았다. 그런 선생이 어느 날 교실에서 펑펑 통곡하는 일이 벌어진다. 시험 날이었다. 그림을 보고 '잔치를 합니다'라는 문장에서 '잔치'.. 2020. 10. 4.
100년 전 영국 언론은 조선을 어떻게 봤을까 | 최성락 ㅡ 이코노미스트에 실린 구한말 조선의 모습 근현대사 관련 1차 사료는 눈에 띌 때마다 보는 편이다. 원전을 직접 볼 때 누군가의 해설로 만들어진 이미지 너머의 실재에 조금은 근접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이 책은 반 년만에 문을 연 고산도서관에서 기웃거리다가 우연히 발견했다. 저자는 100년 전 영국 '이코노미스트'에 실린 조선 관련 기사들을 소개한다. 기사가 많지는 않으며 길이도 짧다. 하지만 그 조각들을 이리저리 모아놓고 보니, 한중일의 시선이 아니라 당대 서구가 조선이란 나라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는가를 알게 된다. 그들의 시각이 당연히 모두 옳지는 않지만, 이코노미스트는 주의,주장 없이 일어난 사실 중심으로 건조하게 기사를 쓰는 편이라 당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지 당대 현실을 좀 더 객관화해서 바라보는데 도움이 되었다. 번역된 기사도.. 2020. 7. 18.
다시 일본을 생각한다 | 서경식 ㅡ 열린 사회에서 식민주의로, 일본이 택한 변화 흥미진진하다. 재일교포 철학자 서경식 선생이 비판하는 대상은 일본 우파가 아니다. 일본에서 진보적인/리버럴한 편에 서 있는 지식인의 ‘애매한’ 태도를 문제 삼는다. 90년대부터 지금까지 지난 이십년간 일본사회 내부에 이런 정치적/문화적 변화가 일어난 줄은 몰랐다. 패전 후 평화를 기조로 삼았던 열린 사회였던 일본이 과거 식민주의로 퇴행하고 있었다. 저자는 자신은 이 모든 변화를 경험했지만 지금 일본 젊은이들은 최근의 분위기밖에 모른다는 점이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중요한 얘기다. 2017년 출간. 마치 지금의 한일 관계를 예언하는 듯한 책. 2020. 5. 25.
마흔, 역사를 알아야 할 시간 | 백승종 ㅡ 한국사를 좌우한 15인에 대한 평전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알았다. 제목이 왜 '마흔, 역사를 알아야 할 시간'인지를. 대개 사람들의 삶은 마흔 이전과 이후로 나뉘는 것 같다. 마흔 이전은 그저 앞을 향해 달리는 시간이고, 마흔이 되어서야 우리는 지난 날 나의 선택을, 내가 살아온 세상에 대해 내가 취한 스탠스를 성찰하기 시작하므로. 우리 삶은 직선이 아니라 구불구불, 많은 도전과 동시에 많은 오류로 채워진다는 것을 알게 되므로. 이 책은 한국사에 깊은 영향을 미친 열다섯 명 위인들에 대한 간략한 평전이다. 한 명 한 명에 대한 서술이 길지 않지만 그렇다고 얕지도 않다. 이들이 시대적 격변기에 내린 선택이 역사를 좌우하는데, 그 선택에 영향을 준 한 인물의 개인적 특성과 생애사를 분석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지닌 장점과 더불어 그들이 지닌 시.. 2019. 11. 9.
동학에서 미래를 배운다 | 백승종 ㅡ 동학사상에 대한 최고의 입문서 동학 사상에 대한 최고의 입문서. 구어체로 알기 쉬우면서도 깊이 있게 서술되었다. 우선 동학이라는 종교/사상이 태동하게 된 배경으로서 조선사회(지배층과 농민)에 대한 주류와는 다른, 그러나 근거가 있는 매우 설득력 있는 분석과 주장이 인상적이다. 저자가 중세 이후 유럽 농촌사회를 관심 있게 연구해온 학자이기에 가질 수 있는 관점이다. 그 중 특히 눈여겨볼 만한 것은 마을 두레에 기반한 농민 조직, 그리고 평민지식인의 새로운 등장이었다. 그들이 어떤 철학으로 새로운 세상을 열고자 했는지, 최제우, 최시형, 손병희의 삶과 각각 조금씩 차이 나는 주장을 이 책은 섬세하게 다룬다.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서방 열강과 일본이 온통 뒤흔들고 있던 난세에 그들이 품은 포부와 그들이 열어가고자 한 세상의 모습에 마음 깊.. 2019. 10. 14.
제국의 위안부 | 박유하 ㅡ 끔찍한 위선으로 점철된 책 예상보다 훨씬 처참한 책이었다. 한 마디로 말해 내가 목격한 '가장 끔찍한 위선'이었다. 피해자를 위하는 척 하면서 두 번 죽이는. 읽으며 내내 고통스러웠다. 지식인이라는 사람이,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이, 자신의 유려한 말발로 이렇게 진실을 호도해서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주어도 좋은가? 일단 책 전체가 논리적 비약과 확대 해석으로 가득차 있어 학술서 수준이 못 된다. 사료를 공정하게 다루는 게 아니라 자신의 입맛에 맞는 사료를 취사선택하여 위안부에 대한 새로운 이미지 정립을 시도하는 책이다. 문제는 박교수가 그려내는 위안부의 이미지가 그가 공격하는 기존의 위안부 이미지보다 훨씬 진실과 멀다는 점이다. 몇 년 전 이 책이 논란이 되었을 당시엔 관심이 없었다. 제목부터 마음에 안 들었기 때문이다. '.. 2019. 7. 31.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 | 이사벨라 버드 비숍 ㅡ 영국 지리학자의 구한말 조선에 대한 종합적 보고서 이 책은 단순한 여행기가 아닙니다. 저자가 밝힌 대로 조선에 대한 한 지리학자의 '연구서'예요. 영국 태생의 지리학자이자 여행가인 그녀는 1894년 조선에 첫발을 내딛은 이래 4년간 조선을 네 차례 방문하고 조선 각지의 문물, 역사, 풍습, 정치, 지리에 대한 기록을 남깁니다. 책장을 넘기며 곳곳에서 감탄했어요. 저자의 놀라운 관찰력과 묘사의 치밀함 때문이었죠. 한 사회를 겉에서만 보는 게 아니라 그 사회를 작동하고 있는 정치, 사회적 구조까지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저자의 여행기를 따라가노라면 어느새 구한말 조선의 풍경 속에 풍덩 빠져들게 됩니다. 명성황후 시해 사건에 대한 묘사를 보노라면 당시 조선이 얼마나 위태로운 상황이었나 절감하게 되고, 국권을 잃어가는 과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길이었는가를 또렷이 .. 2019. 1. 8.
조선, 그 마지막 10년의 기록 | 제임스 게일 ㅡ 조선의 보통사람, '상놈'에 대한 애정어린 기록 사람들은 다양한 목적으로 책을 읽는다. 내 경우 개인적으로 관심 있는 주제를 추적하기도 하고, 내가 하는 일과 관련된 자료 조사를 위해서 읽을 때도 많다. 그런데 내게 있어 가장 큰 독서의 즐거움은, 단 한 사람의 시선을 통해서 그 시대의 풍경 속으로 풍덩 빠져들 때다. 그 풍경은 객관적인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이 자신의 뜨거운 감성으로 느끼고 소화한 '내면의 풍경'이다. 작가의 내면의 풍경 속으로 초대되는 순간이면 나는 언제나 말로 표현하기 힘든 기쁨과 감동을 느낀다. 이는 자주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이 책 은 그런 드문 경험을 제공하는 책이고 그래서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길 때마다 가슴이 울렸다.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을 쓴 이사벨라 비숍 여사는 자신의 책에서 조선에 관해서라면 제임스 게일만큼 .. 2018. 12. 23.
광주백서 | 소준섭 _ 기억이 힘이다 본문 뒤에 실린, 박학모 "5.18민주화운동의 왜곡과 '기억의 형법'"에서 ## 앤서니 캠프는 과거를 짐으로 바라보는 문화는 역사를 단절과 망각과 경멸로 대하기 때문에 반역사적이며, 결국 역사의 비인간화와 기억을 왜곡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한다. 반면 역사를 사회적 기억으로 유지하는 문화에서 역사는 사회적 기억의 논리적 귀결을 따르게 하는 기능을 한다. 제노사이드 연구자 허버트 허시에 따르면, 역사와 시간을 대하는 단절적 패러다임만이 기억을 조작하는 것이 아니다. 기억은 무엇보다 정치권력에 기여하도록 조작되며, 기억을 조작하는 능력은 그 자체로 권력의 수단이 된다. pp158 ## 독일에서는 최근 홀로코스트 부인 금지의 정당화 근거는 기존의 형법적 법익론의 카테고리 너머에서 찾아야 한다는 견해들이 유력하게.. 2018. 12. 21.
중국에서 만나는 한국 독립운동사/ 윤태옥 두 번째로 읽은 중국 대륙 독립운동 답사기. 사실 출판된 것이 두 권 뿐이다. 먼저 읽은 책은 작년에 나온 국어 교사가 쓴 . 이 책은 올해 나온 따끈따끈한 책으로 저자가 중국에서 십 년 이상 다큐멘터리 작업을 해온 중국통 PD다. 두 책은 색깔이 많이 다르다. 전자가 관련 일화들을 풍부하게 스토리텔링하여 소개하는 반면 저자의 역사관은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은 저자가 자기만의 분명한 관점을 갖고 역사를 평가한다. 그러다보니 우리 독립운동사의 맥락이 더 잘 드러나는 장점이 있었다. 두 책이 서로 보완이 되었다. 저자의 답사는 독립운동 1세대인 왕산 허위 선생과 우당 이회영 선생에서 시작한다. 허위 일가는 이회영 일가와 함께 집안 전체가 독립운동을 한 대표적 명문가인데, 구미가 고향이었다. 구.. 2018. 9.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