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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550

대학에 가는 AI vs 교과서를 못 읽는 아이들 | 아라이 노리코 ㅡ AI가 하지 못하는 일은? ## 10!20년 후에도 남아 있을 직업의 공통점을 한번 살펴보자.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나 이해력이 필요한 일자리, 곁에서 돌보기나 논두렁의 풀베기처럼 유연한 판단력을 필요로 하는 육체노동 직종이 많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이는 앞서 2장에서 살펴본 AI가 잘하지 못하는 분야와 일치한다. 요컨대 고도의 독해력과 상식, 아울러 인간 특유의 유연한 판단력이 필요한 분야다. p174 ## [표3-7]은 가장 최근의 RST 분야별 정답률이다. 먼저 의존 구조 해석과 조응 해결은 이미 AI의 사정권 안으로 들어온 표층적인 읽기를 묻는 문제다. 이 두 가지는 인간 수험자도 AI와 비슷한 수준으로 그럭저럭 잘 맞췄다. 그러나 기뻐해서는 안 된다. AI와 비슷한 수준이라는 말은 AI로 대체될 수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2019. 11. 14.
별을 스치는 바람 | 이정명 ㅡ 후쿠오카 감옥의 윤동주 시인을 만나는 반가움 재작년 후쿠오카 여행을 갔을 때 윤동주 시인을 생각한 적이 있다. 교토 릿쿄대에서 수학 중이던 윤동주 시인은 민족주의 학생운동 혐의로 체포되어 1944년 후쿠오카 감옥에서 옥사했다. 지금 감옥은 없어졌다고 들었지만 그 장소에 한 번 가볼까 하는 생각이 여행 준비 중에 들었다. 2박 3일의 짧은 일정이라 직접 찾아가 보지는 못했지만. 이 책 을 읽는 내내 내가 가보지 못한 후쿠오카 감옥에서 윤동주 시인을 만났다. 이야기가 처음부터 끝까지 후쿠오카 감옥 안에서 펼쳐진다.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과 허구적 상상을 넘나든다. 감옥 안에서 일어난 의문의 살인 사건을 추적하며 벌어지는 이야기지만 소설을 읽는 내내 내 시선은 추리소설의 플롯이 아니라 딴 곳에 가 있었다. 내 관심은 그곳에서 윤동주 시인이 무엇을 생각하고.. 2019. 11. 10.
마흔, 역사를 알아야 할 시간 | 백승종 ㅡ 한국사를 좌우한 15인에 대한 평전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알았다. 제목이 왜 '마흔, 역사를 알아야 할 시간'인지를. 대개 사람들의 삶은 마흔 이전과 이후로 나뉘는 것 같다. 마흔 이전은 그저 앞을 향해 달리는 시간이고, 마흔이 되어서야 우리는 지난 날 나의 선택을, 내가 살아온 세상에 대해 내가 취한 스탠스를 성찰하기 시작하므로. 우리 삶은 직선이 아니라 구불구불, 많은 도전과 동시에 많은 오류로 채워진다는 것을 알게 되므로. 이 책은 한국사에 깊은 영향을 미친 열다섯 명 위인들에 대한 간략한 평전이다. 한 명 한 명에 대한 서술이 길지 않지만 그렇다고 얕지도 않다. 이들이 시대적 격변기에 내린 선택이 역사를 좌우하는데, 그 선택에 영향을 준 한 인물의 개인적 특성과 생애사를 분석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지닌 장점과 더불어 그들이 지닌 시.. 2019. 11. 9.
동학에서 미래를 배운다 | 백승종 ㅡ 동학사상에 대한 최고의 입문서 동학 사상에 대한 최고의 입문서. 구어체로 알기 쉬우면서도 깊이 있게 서술되었다. 우선 동학이라는 종교/사상이 태동하게 된 배경으로서 조선사회(지배층과 농민)에 대한 주류와는 다른, 그러나 근거가 있는 매우 설득력 있는 분석과 주장이 인상적이다. 저자가 중세 이후 유럽 농촌사회를 관심 있게 연구해온 학자이기에 가질 수 있는 관점이다. 그 중 특히 눈여겨볼 만한 것은 마을 두레에 기반한 농민 조직, 그리고 평민지식인의 새로운 등장이었다. 그들이 어떤 철학으로 새로운 세상을 열고자 했는지, 최제우, 최시형, 손병희의 삶과 각각 조금씩 차이 나는 주장을 이 책은 섬세하게 다룬다.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서방 열강과 일본이 온통 뒤흔들고 있던 난세에 그들이 품은 포부와 그들이 열어가고자 한 세상의 모습에 마음 깊.. 2019. 10. 14.
프로이트의 환자들 | 김서영 ㅡ 라캉을 쉽게 해설한 2부가 백미 1부와 3부, 프로이트가 직접 꿈을 분석한 사례들은 잘 읽히지 않았다. 쉽게 잘 쓴 책이지만 내가 심리학 전공자가 아니다보니 그 많은 꿈의 사례들에서 별 의미를 느끼지 못했다. 이 책에서 가장 좋은 건 2부. 저자가 프로이트, 라캉, 자아심리학자들, 융의 사상이 어떻게 겹쳐지고 어떻게 갈라지는지 해설한 부분이다. 특히 라캉의 기본 관점에 대해서라면 이 책만큼 쉽게 해설한 책이 없을 것 같다. 2부가 짧아서 아쉬웠다. 저자의 책을 그간 몇 권 읽었는데 제대로 공부한 분이란 생각이 든다. 신간이 나오면 챙겨 보는 저자다. sheshe.tistory.com/922 프로이트의 편지 / 김서영 ㅡ 프로이트 심리학 전반에 대한 가장 쉽고 친절한 해설서 프로이트의 "동일시 이론"을 중심으로 프로이트가 말한 자아 이론.. 2019. 10. 13.
제7일 | 위화 — 노벨상 타셔도 될 것 같다 지하철에서 별 생각없이 첫 장을 펼쳐들었다가 순간 몰입하여 내려야 할 역도 놓치고 우왕좌왕. 집에 돌아와 엉엉 울면서 마저 읽었다. 망자들의 세계를 이처럼 따스하게 그린 작품이 있을까. 주인공 양페이의 죽음 뒤 7일간을 그린 소설. 그 이레 동안 양페이는 자신의 삶을 스쳐간 모든 사람들을 그의 마음에서, 혹은 저승에서 소환하고 재회한다. 따스함과 유머, 어리석음과 비극이 점철된 보통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 그 배경에 흐르는 중국 현대사회의 모습도 인상 깊다. 그리고 마지막에 우리를 감동시키는 건 이십대에 철길에서 양페이를 주워 평생을 성실하게 길러낸 그의 아버지와 이웃들의 진한 인간미다. 책장을 펼치면 멈출 수 없는 소설. 대단한 필력. 작가 위화는 아직 중년인데 머잖아 노벨상 타셔도 될 것 같다. 2019. 10. 11.
청와대 정부 | 박상훈 _ 최소 정부와 최대 정부 사이 저자의 모든 인식에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문재인 대통령 지지자의 경우 단순히 '묻지마 지지'의 경향이라기보다는 노대통령 서거의 경험, 가짜 뉴스 및 기울어진 언론 환경 등에서 나온 반응이 많다고 본다), 한국의 정치 현실을 민주주의의 본질의 측면에서 해석한다는 점에서 탁월한 저작이 아닐까 생각한다. 대통령제의 한계를 비롯해서 여러 모로 생각해볼 지점이 많았다. 강추하는 책. ## '일상생활의 정치화' 주장과 '정치의 생활화' 주장 사이에 존재하는 매우 큰 차이를 모르는 바는 아니나,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은 그런 차이가 아니다. 일상 속에서 변혁적 감수성을 지키고 키우는 '생활의 정치화'와, 좋아하는 정치인을 지키고 보호하는 일에서 삶의 보람을 찾는 '정치의 생활화'는 근본적으로 다르지만, 그들이 일상의 .. 2019. 9. 22.
어떤 글이 살아남는가 | 우치다 타츠루 ㅡ 살아가는 힘을 높여주는 말을 하자 ## 마음을 다해 이야기하는 것! '마음을 다하는' 태도야말로 독자를 향한 경의의 표시인 동시에 언어가 지닌 창조성의 실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창조는 '당치 않게 새로운 것'을 언어로 표현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런 식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언어가 지닌 창조성은 독자에게 간청하는 강도와 비례합니다. 얼마나 절실하게 독자에게 언어가 전해지기를 바라는지, 그 바람의 강도가 언어 표현의 창조를 추동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학교교육에서는 아이들에게 '마음을 다해 이야기하는' 언어 실천을 추구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경의의 표현은 단지 '존댓말을 쓰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이것은 커다란 잘못입니다. 시라카와 시즈카 선생에 따르면 '경'이라는 글자의 원뜻은 "신을 섬기고 신을 .. 2019. 8. 28.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 박진영 — 자존감은 삶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이다 ##오랫동안 '나'라는 그릇을 채우는 '내용'이 문제라고 생각해왔다. 그릇 속을 더 반짝거리는 것들로 채우면 언젠가는 행복해질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것들로 그릇을 채워도 쉽사리 행복해지지 않았다. 나의 내용이 아니라, 내가 나를 바라보는 '태도'가 문제였기 때문이다. p5 ## 중요한 것은 건강한 방법으로 높은 자존감을 유지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건강하지 않은 방법으로 높은 자존감을 유지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이다. 즉 높은 자존감은 자존감 추구 과정의 결과일 뿐 그 자존감 추구법이 '건강한가'를 보장하지 않는다. 높지만 전혀 건강하지 않고 심지어 장기적ㅇ로는 자신과 타인에게 해로울 수도 있는 자존감이 존재한다는 것이다.따라서 크로커 등의 학자들은 자존감의 높낮이보다 자존감을 '어떻게 추구하.. 2019. 8. 23.
제국의 위안부 | 박유하 ㅡ 끔찍한 위선으로 점철된 책 예상보다 훨씬 처참한 책이었다. 한 마디로 말해 내가 목격한 '가장 끔찍한 위선'이었다. 피해자를 위하는 척 하면서 두 번 죽이는. 읽으며 내내 고통스러웠다. 지식인이라는 사람이,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이, 자신의 유려한 말발로 이렇게 진실을 호도해서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주어도 좋은가? 일단 책 전체가 논리적 비약과 확대 해석으로 가득차 있어 학술서 수준이 못 된다. 사료를 공정하게 다루는 게 아니라 자신의 입맛에 맞는 사료를 취사선택하여 위안부에 대한 새로운 이미지 정립을 시도하는 책이다. 문제는 박교수가 그려내는 위안부의 이미지가 그가 공격하는 기존의 위안부 이미지보다 훨씬 진실과 멀다는 점이다. 몇 년 전 이 책이 논란이 되었을 당시엔 관심이 없었다. 제목부터 마음에 안 들었기 때문이다. '.. 2019. 7. 31.
약한 연결 / 아즈마 히로키 __ 난 이런 종류의 독창적 사유가 좋다 이런 책 참 좋다. 편안하고 일상적인 이야기 속에 번득이는 사유를 녹여넣은 책. 학창 시절에 배운, 경수필 아닌 중수필의 좋은 예이다. 처세와 관련된 인생관이 아니라 독창적 사유가 담겨 있는 책. 일본 저자들이 이런 책을 꽤 쓰는 듯. ## 막대한 수의 사람들이 이곳에서 살해당했다. 내가 갔을 때는 소각로 주변을 조금만 파도 사람 뼈가 드러났다. 정말이다. 해가 저물어 어두워질 무렵 숲 속을 거닐고 있자니 작은 독일어 간판이 있었다. '여기에서 나치스는 유대인 지방으로 비누를 만들었다'라는 뜻이 아닐까라고 겨우 독해하고 건너편을 보니 커다란 둥근 수조가 있다. 그 분위기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발가벗은 '죽음'이 여기저기 뒹굴고 있었다고나 할가. 기이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오컬트를 믿지 않지만, 지박령.. 2019. 6. 10.
교육과정에 돌직구를 던져라 | 정성식 ㅡ 교육과정에 삶을 담자 ## 교육청에서 단위 학교로 들어오는 돈은 크게 학교기본운영비와 목적사업비로 구분된다. 학교기본운영비는 교육청에서 목적 지정 없이 총액으로 교부되며 단위 학교 실정에 따라 자율적으로 집행할 수 있는 운영비이고, 목적사업비는 단위 학교 목적사업 수행을 위해 교부되기에 반드시 이 목적으로만 사용할 수 있다. 따라서 기본운영비를 높이고 목적사업비를 줄이는 것이 학교 교육재정 운영의 자율성과 직결된다. 학교의 목적사업비 비중이 얼마나 될 것 같은가? 주위 몇몇 교사들에게 물어보니 많아야 30퍼센트 정도 될 거라는 대답이 많다. 놀라지 마라. 절반을 훌쩍 넘는다. 인건비와 급식비, 방과후학교 운영비, 각종 공모사업비 등이 목적사업비로 배부되니 이를 제외하고 나면 기본운영비는 절반도 안 된다. 6학급 규모의 작은 .. 2019. 6. 6.
아주 사적인 신화 읽기 / 김서영 __ 프로이트, 라캉의 관점에서 들려주는 감동적인 신화 이야기 초등학교 시절 읽은 그리스, 로마 신화. 마음에 고요한 파장을 일으켰던 이야기는 제우스나 헤라, 기타 영웅들이 아니었다. 인류에 불을 가져다주고 고난에 처한 프로메테우스의 용기와 판도라의 상자에 마지막으로 남은 희망이었다. 이 두 이야기는 삶의 보이는 것 너머에 있는 어떤 차원을 살며시 건드려주는 면이 있어 어린이의 마음에 신비로움을 남겼다. 이 책 '아주 사적인 신화 읽기'는 신화 속 다양한 인물들을 정신분석학과 분석심리학을 동원하여 재해석한 책이다. 그래서 일반적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들 사이의 경쟁과 대립 이야기에 머물지 않고 더 깊고 따스하게 우리 내면의 힘을 이야기하는데 신들을 동원한다. 어릴 때 느꼈던 그 신비로운 느낌을 차근차근 친절하게 풀어 설명해주는 것 같은 책이다. 북유럽 신화와 인도 .. 2019. 3. 7.
세 여자(1~2) | 조선희 ㅡ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던 조선의 여성 혁명가들 이 책에 나오는 남자들은 거의 다 아는 인물들이다. 그런데 나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들 곁에 있었던 여인들의 존재를. 단지 혁명가의 아내 혹은 내조자가 아니라 그 서슬 퍼런 시대에 혁명을 꿈꾸고 사회주의 독립운동에 거침없이 뛰어들었던 씩씩한 여인들의 존재를. 주세죽, 허정숙, 고명자. 댕기머리를 싹둑 잘랐던 그들의 첫 번째 선택은 이후 그들의 삶을 역사의 가장 험하고 거친 굴곡 속으로 데리고 간다. 상해, 블라디보스톡, 모스크바에 이르는 여정까지는 그런가보다 하면서 읽었다. 하지만 그분들의 여정이 조선의용군이 싸운 타이항산(태항산) 일대와 스탈린 치하 카자흐스탄 유형지에 이를 때에는 나도 모르게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렇게 두 권의 소설을 가끔씩 멈추고 심호흡을 하며 읽었다. 1920년대 일제 치하에서.. 2019. 3. 4.
불교정신치료 강의 / 전현수 마음의 작동 원리를 이토록 쉽고 간명하게 설명하는 책이 있을까. 정신과 의사로서의 경험과 지식, 개인적 불교 수행을 접목해서 쓴 책이라 귀에 쏙쏙 들어온다. ## 이제 마음에 어떤 속성이 있는지 보겠습니다. 마음 역시 몸처럼 두 가지 속성을 갖고 있습니다. 첫째 속성은, 마음이 언제나 대상에 가 있다는 것입니다. 대상에 가 있지 않은 마음은 없습니다. 마음은 언제나 대상에 가서 그 영향을 받습니다. 따라서 정신이 건강하려면 자기 마음이 어느 대상에 가서 어떤 영향을 받는지를 하루 종일 봐야 합니다. 그런데 사실 대상 자체는 건전하고 불건전하거나, 좋고 나쁘고가 없습니다. 건전 불건전, 좋음 나쁨은 마음이 대상을 향할 때 어떤 주의를 기울이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지혜로운 주의를 기울이면 그 대상이 건전하.. 2019. 3.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