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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550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에서 꽂힌 한 대목 오래 전에 읽은 책을 다시 펼쳐든다. 재미로 같은 책을 두 번 세 번 보는 건 어릴 때 일이고, 지금은 그런 일이 거의 없다. 공부하거나 논문 쓸 때, 내용을 다시 정확히 확인하려고 자료를 다시 찾을 뿐. 하지만 가끔은 예전에 그 책을 읽었을 때의 신선한 느낌을 다시금 맛보고 싶어서 책장을 펼칠 때가 있다. 파울로 코엘료의 가 그날 그랬다. 이 책을 처음 읽은 때는 2004년, 갓 서른을 통과할 때다(블로그에 리뷰가 있어서 앎). 아직 삶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움츠러들기 전이다. 그 시기에 이 소설은 주인공이 온갖 모험을 겪으며 자기만의 고유한 다르마를 찾아가는, 삶의 '지도'에 대한 이야기로 읽혔다. 그 지도는 매력적이었다. 그런데 살아보니, 언제부터인가 삶에서 더 나은 무언가를 기대하는 것이 점점 버.. 2020. 8. 28.
100년 전 영국 언론은 조선을 어떻게 봤을까 | 최성락 ㅡ 이코노미스트에 실린 구한말 조선의 모습 근현대사 관련 1차 사료는 눈에 띌 때마다 보는 편이다. 원전을 직접 볼 때 누군가의 해설로 만들어진 이미지 너머의 실재에 조금은 근접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이 책은 반 년만에 문을 연 고산도서관에서 기웃거리다가 우연히 발견했다. 저자는 100년 전 영국 '이코노미스트'에 실린 조선 관련 기사들을 소개한다. 기사가 많지는 않으며 길이도 짧다. 하지만 그 조각들을 이리저리 모아놓고 보니, 한중일의 시선이 아니라 당대 서구가 조선이란 나라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는가를 알게 된다. 그들의 시각이 당연히 모두 옳지는 않지만, 이코노미스트는 주의,주장 없이 일어난 사실 중심으로 건조하게 기사를 쓰는 편이라 당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지 당대 현실을 좀 더 객관화해서 바라보는데 도움이 되었다. 번역된 기사도.. 2020. 7. 18.
귤의 맛 | 조남주 ㅡ 청소년 소설로는 많이 아쉬운 작품 기대가 커서였을까. 의 작가, 조남주의 첫 청소년소설. 개인적으로 별 매력을 못 느낀 소설이다. 서사의 힘은 있어서 끝까지 다 읽기는 했지만. 일단 캐릭터의 개성과 매력이 약하다. 네 명의 여중생이 주인공인데, 중학생의 특징도 잘 드러나지 않고, 네 명이 가정환경과 성적만 다를 뿐 다 비슷비슷해서 구분이 잘 안 간다. 두 번째는 소설의 플롯인데, 또래집단인 여중생 넷이 같은 고등학교에 가기 위해 벌이는 사건들이 다분히 작위적으로 느껴졌다. 자연스럽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소설의 주제. 성장소설을 기대했는데, 그 성장의 구체적 내용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이 면에서는 개인적으로 '체리새우'가 훨씬 좋았다. 제목이 왜 '귤의 맛'인지도 모르겠고, 문장이 썩 매끄러운 편도 아니다. 넘 혹평했나. 아무튼 내게 '.. 2020. 6. 24.
완벽하지 않을 용기 | 우치다 타츠루 ㅡ 교사는 부모와 다른 말을 해주는 사람 우치다 타츠루의 신간이 나왔다. 일본 사회의 변화 과정이 우리와 닮은 꼴이기에, 그리고 그 변화를 관찰하는 안목, 그 변화에 대처하는 방식에 대하여 경험과 지성과 연륜에서 우러난, 다른 곳에서 결코 들을 수 없는 견해를 들려주기에, 이 작가의 책은 꼭 챙겨보게 된다. 이 책도 역시 실망시키지 않았다. ## 짐작컨대, 양국의 학교교육이 안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점은 '학교교육을 시장원리에 기초해서 말하고 사고하는' 방식이지 않을까 합니다. '학교교육을 시장원리에 기초해서 말하고 사고한다'는 것은, 교육을 이야기할 때 시장이라든지 수요, 비용 대비 효과와 조직관리, 공정관리와 같은 공학적, 시장적인 용어를 반복해서 입에 담는다는 의미입니다. p7-8 ## 학교의 인류학적 기능은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바로.. 2020. 6. 18.
마녀식당으로 오세요 | 구상희 & 체리새우 | 황영미 ㅡ 재기발랄한 청소년 소설 두 권 동아리 시간에 읽을 '재미있는' 한국 소설을 찾다가 레이다에 잡힌 책. '알로하 나의 엄마들'에 이어 일단 이 두 권이 당첨이다. 한 권 더 찾아서 총 4권을 정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청소년소설을 그렇게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인물 묘사가 덤벙덤벙하고 스토리의 얼개가 좀 성근 편이어서 솔직히 성인인 내게는 재미가 없어서 그간 잘 읽히지 않았다. 이 두 권을 보고 좀 적극적으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좋은 소설이 많이 나오는구나 싶다. 는 일단 재밌다. 친숙한 음식이라는 소재로 마법을 불러오는 것도 재밌고,소원을 빌려고 마녀식당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의 이야기 하나하나가 우리 이웃의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여서 공감을 준다. 소설에 끝에 이르러 어떤 특별한 감동이나 깨달음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그 이웃.. 2020. 6. 2.
먼 바다 | 공지영 ㅡ 오랜만에 읽는 공지영의 신작 시간의 기억에서 당신을 지우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No day shall erase you from the memory of time. 뉴욕 9/11 메모리얼 파크에 있는 버질의 시라고 한다. 이 소설 속에 자주 등장하는데, 소설의 주제를 한 마디로 압축한 구절이라 하겠다. 공지영의 '먼 바다'는 약 환갑에 이른 주인공이 40년 전 첫사랑을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교수단의 뉴욕 연수길에, 마침 연락이 닿은 스무살 시절의 옛사랑과 만날 약속을 하고 여행(연수)을 나선다. 여행 도중에 과거의 이야기들이 회상을 통해 하나둘씩 떠오르고 그래서 첫사랑 이야기지만 가볍고 담담하게 읽힌다. 회상 부분에서 문득문득 비수 같은 아픔이 느껴지지만 전체적으로는 맑고 담담한 소설이다. 제목 '먼 바다'처럼 기억 저편에서 .. 2020. 6. 1.
알로하, 나의 엄마들 | 이금이 — 백 년 전 하와이 이주 여성들의 삶 겨우 40쪽을 넘어가고 있을 때부터 울컥, 눈시울이 찡해졌다. 아직 특별한 스토리가 전개되는 것도 아닌데, 그냥 일제강점기 그 시절 작은 마을의 어디에나 있었을 법한 평범한 여인들을 묘사하고 있는데, 계속 마음이 흔들거렸다. 아마도 그것은 이 이야기가 우리들의 어머니, 더 나아가서는 할머니 세대의 이야기이기 때문이었으리라. 저녁 나절에 단숨에 다 읽었다. 착하고 속깊은 버들이, 씩씩하고 대범한 홍주, 숫기 없는 여린 송화. 가난했지만 세상 물정 모르는 이 순박한 여인들이 사진 한 장 보고 하와이에 시집가면서 벌어지는 삶의 역정. 도착 첫날부터 산산이 깨어진 꿈. 이민자로 살아가는 일의 힘겨움. 가족 이상으로 끈끈한 자매애, 밑바닥 노동자지만 고향과 조국에 대해 품었던 애틋한 마음씨. 이 모든 것이 한 편.. 2020. 5. 29.
다시 일본을 생각한다 | 서경식 ㅡ 열린 사회에서 식민주의로, 일본이 택한 변화 흥미진진하다. 재일교포 철학자 서경식 선생이 비판하는 대상은 일본 우파가 아니다. 일본에서 진보적인/리버럴한 편에 서 있는 지식인의 ‘애매한’ 태도를 문제 삼는다. 90년대부터 지금까지 지난 이십년간 일본사회 내부에 이런 정치적/문화적 변화가 일어난 줄은 몰랐다. 패전 후 평화를 기조로 삼았던 열린 사회였던 일본이 과거 식민주의로 퇴행하고 있었다. 저자는 자신은 이 모든 변화를 경험했지만 지금 일본 젊은이들은 최근의 분위기밖에 모른다는 점이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중요한 얘기다. 2017년 출간. 마치 지금의 한일 관계를 예언하는 듯한 책. 2020. 5. 25.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 | 김성우, 엄기호 ㅡ 리터러시의 본질을 고민하는 책 유튜브에 대해 논하는 책이 아니다. 이 책은 영상 매체가 점점 압도적 우위를 차지하는 이 유튜브 시대에 문해력, 즉 리터러시의 본질을 묻고 있다. 우리가 텍스트를 읽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텍스트를 읽는 힘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 평소 내가 늘 고민하던 주제라서 재미있게 읽었다. 우리가 책을 읽고 세계를 읽고 맥락을 읽는 것은 결국 타자의 세계를 이해하고 그에게 다가가는 과정이다. 글에 대한 표면적, 단선적 이해로는 거기에 이를 수 없으며 깊이, 흠뻑 빠져들어 읽어야 한다. 타인에 대한 진실한 이해는 언제나 자신에 대한 새로운 발견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타인을 아는 만큼 자신을 알며 자신을 아는 만큼 타인을 이해할 수 있기에. 그래서 읽기는 처음엔 저자와 그가 보여주는 세계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하.. 2020. 5. 11.
페다고지 | 파울로 프레이리 | 다시 읽기 ㅡ 교육의 소명은 '인간화' 페다고지의 부제 '억눌린자를 위한 교육'이 순간 '억눌린 교사를 위한 교육'으로 읽히다니!!! 최근 스트레스를 어지간히 받았나보다. 온라인개학과 함께 밀어닥친 온갖 공문과 세부 지침, 수정 공문에 넌덜머리가 난다. 기본만 정해주고 자율적으로 좀 하면 안 되나. 시수 계산이 그렇게 중요한가. 초임교사 시절에 읽은 이 오래된 고전을 다시 펴든 이유는 뭔가 위로가 필요해서였다. 무엇이 교육이고 교육이 아닌가. 복잡하고 혼란한 상황에서 마음의 줄기를 잡아주는 것은 언제나 교육철학이다. 그게 철학의 역할이기도 하고. 물론 지금은 프레이리가 과거 브라질에서 목격했던 것과 같은 종류의 억압은 없다. 그러나 지금 이 디지털시대에는 억압이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미시적 통제이다. 강하게 군림하는 권력은 없지만 온갖 세부.. 2020. 4. 12.
윌리엄 파이너와 교육과정이론 | 윌리엄 파이너 ㅡ 무엇이 가치있는 지식인가? 파이너의 책은 두 권이 번역되었다. '교육과정이론이란 무엇인가'가 쿠레레를 다각도로 설명한다면, 이 책은 좀 더 문학적인 에세이이어서 파이너의 문제의식이 섬세하게 감지된다. 교육은 궁극적으로 주체를 형성하는 것이고 그것은 외부 세계나 사회체제에 대한 관심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으며 개인의 목소리를 회복하는 과정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한다. 그가 자서전적 방법(쿠레레)에 천착하는 이유이다. 파이너에 따르면 외부 세계가 내게 어떤 흔적을 남겼는가를 분석하지 않고는 자신도 세상도 변화시킬 수도 없다. 파이너의 책을 더 읽고 싶은데 원서는 엄두가 안 나고...ㅠㅠ 이 두 권에 만족하려니 너무 아쉽다. 번역은 이 책도 별로다. ## 항상 위험스러운 모든 것을 자신과 연결 짓는 강박으로 나타나는 자기애적 수용에 국한된.. 2020. 3. 27.
교실 속으로 간 이해중심 교육과정 | 온정덕 외 ㅡ '핵심질문'으로 수업을 설계하기 이 책에서 볼 만한 부분은 이해중심 교육과정을 설명한 1부이다. 그런데 내용이 좀 소략한 것이 아쉽다. 이론은 이론 그 자체로 풍부하게 설명해주어야지 뒤에 실천 편이 있다고 해서 개념이 잘 와닿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이 책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실전 편은 초등에서 이해중심 교육과정 설계의 실제를 보여주는 것인데, 학교 급이 달라서 그런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해중심 교육과정은 한국 현실에서 매우 큰 의미가 있다. '핵심질문'을 중심으로 수업내용을 설계하는 것은 그간 많이 언급되어 왔으나, 이해중심 교육과정에서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수업에서 단편적 지식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배운 지식이 개념과 원리로 확장되어 삶의 다양한 상황, 자신에 대한 성찰로 이어지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이.. 2020. 3. 27.
교육과정이론이란 무엇인가 | 윌리엄 파이너 ㅡ "복잡한 대화"로서의 교육과정 내가 학교 일로 우울할 때마다 가끔 들쳐보는 책이다. 교육과정을 짤 때 평가 중심의 '목표-실행' 패러다임을 금과옥조처럼 받드는 분위기에 답답함을 느끼다가 이 책을 읽으면 숨통이 트인다. 그리고 내가 틀리지 않았음을 재확인한다. 올해도 학년 초라 여러 가지 계획서를 내는데 동료 중 국가교육과정의 지침을 '성서'처럼 여기는 분이 있어 속터져 하다가 다시 이 책을 손에 잡았다. 교육과정의 성취기준은 관련 전문가(?)들이 특정한 관점에 의거하여 정한 것으로 그것이 절대적 진리가 아니다. 그것에만 초점을 맞추다가는 국어교육이 산으로 간다. 그건 기본적 지침일 뿐 실제 수업에서는 교사가 학생의 성장과 발달에 맞게 다양하게 변주하는 게 맞다. 성취기준을 구체화하는 것은 교사의 몫이다. 파이너는 교사가 학교 교육과정.. 2020. 3. 26.
아동과 교육과정, 경험과 교육 | 존 듀이 ㅡ 다시 읽는 교육학 고전 어쩌다보니 대학원을 10년 다녔다. 직장생활 하며 다니다 보니 중간에 휴학도 하고, 논문 주제 찾는데도 시간이 오래 걸려 석사 마치고 박사학위 받기까지 딱 10년이 걸렸다. 이래저래 교육학 관련 책은 꽤 구경한 셈이다. 물론 학자 한 명 한 명 다 두께가 만만치 않아 깊이 있게 보는 건 엄두도 못 내고 잘 알지도 못한다. 하지만 다양한 책을 구경한 기회는 된 것 같다. 그 중에서 교육적으로 가장 영감을 받은 사람을 꼽으라만 들라면 존 듀이다. 듀이는 내가 관심 있게 공부한 사람도 아니고, 기껏해야 강의 한두 개 듣고, 그의 책을 읽은 게 전부지만, 교육에 관한 기본적 관점을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가장 중요한 학자라고 생각한다. 특히 '아동과 교육과정(The child and the curriculum)'은.. 2020. 3. 18.
불협화음론자 비고츠키 | 박동섭 ㅡ 인간의 마음은 어떻게 구성되는가 ## 바흐친과 많은 부분에서 공명하는 관점으로, 개체 혹은 개인의 머릿속에만 관심을 갖는 전통적인 주류 인지심리학에 반기를 들며, 인간의 마음 형성 혹은 행위에 있어서 상황과 만남 그리고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한 새로운 심리학을 창시한 러시아의 심리학자 비고츠키는 인간의 정신기능 혹은 마음이 단독으로 완결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역사적, 제도적, 문화적 상황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으면서 구성되어 가는가를 밝히려고 하였다. p59 ## 비고츠키는 인간정신을 행위와 실천적 활동으로서 본다. 그런데 심리학에서는 주체 측의 실천적 행위는 연구대상으로서 대접을 받지 못했다. 오히려 심리학에서는 상식으로 생각해서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해온 근대이성주의의 발상에 터해서 대상을 지적으로 이해하는 것(에 주력하고--->문장 .. 2019. 11.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