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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결혼 문제는 사실 절반 이상이 '고용 문제'입니다. 결혼이 어려워진 원인 중 하나는 고용 상황이 악화된 것과 관계 있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일본의 현재 고용 상황은 완전히 국가 주도로 만들어진 상황으로, 청년층이 철저히 착취당하는 고용 환경이지요.
남녀고용기회균등법이라는 법률이 있습니다. 이를 남녀의 차별을 없애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법률'이라고 환영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만, 어째서 재계가 이 법률 제정을 서둘렀을지를 생각해보면 그다지 낙관적 태도를 취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 법률은 단적으로 말해 '저임금 고급 노동자의 대량 공급'을 노린 것입니다. 임금은 낮지만 일은 잘하는, 어떤 고용 조건이라도 받아들이는, 과로사할 때까지 일하는, 그런 임금노동자들을 대량으로 배출해내기 위한 구조인 것이지요. 그런 게 아니었다면 재계에서 지지했을 리가 없습니다.
전후 사회구조의 큰 변화에 남녀의 성 차이를 없애는 흐름이 있기도 합니다. 이 자체는 사회의 근대화 또는 합리화의 귀결이라고도 볼 수 있으니, 이를 시민들이 개인 자격으로 요구하는 것은 타당하다고 볼 수 있지요.
하지만 영리 기업의 경영자들, 수익을 늘리고 주주에 대한 배당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사람들이 일단 입을 열기 시작하면 사정은 달라집니다. 개인의 행복과 자유가 고려될 일은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남녀의 고용 기회를 균등하게 하겠다는 것은 지금까지 남성들에게 치중되었던 고용 기회를 여성들에게도 확대하겠다는 거인데, 쉽게 말하면 '한정된 구인 수에 구직자 수가 두 배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고용자 입장에서 보면 보다 낮은 고용 조건으로 더 유능한 노동자를 채용하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그 징조로 남성과 여성의 사회적 행동과 가치관이 점점 비슷해지는 현상이 있었지요. 성별에 관계없이 너도나도 '돈과 권력, 명예'를 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욕망에 성차가 사라진 것이지요. 이는 자본주의 시장 입장에서 보면 대단히 환영할 만한 전개입니다. 노동자도 소비자도 규격화되어가고 있음을 의미하니까요.
노동자가 규격화, 표준화된다는 것은 '사용하기 편리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업무가 규격화되면 그 부문만 노동자를 대체하거나 외주로 넘기면 되는 겁니다. (...) 규격화된 노동자라는 것은 '언제든지 바꿔 기울 수 있는 노동자'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사용자 측은 구직자들을 가능한 규격화, 정형화, 표준화하고자 하지요.
'노동력의 규격화'는 다른 말로 하면 '소비 행동의 규격화'를 뜻합니다. 노동자들이 닮아가기 시작하면 당연히 노동자들이 소비자로서 행동할 때의 패턴도 닮습니다. 비슷한 상품을 욕망하고 비슷한 유행을 좇게 됩니다. 이처럼 소비 행동이 비슷해질수록 판매자 측의 이익은 늘어납니다. 소비자들이 모두 '비슷한 것'을 욕망하게 되면 상품의 제조 공정이 간단해지고 제조 비용과 유통 비용도 절감됩니다.
소비자가 모두 비슷한 소비 행동을 취한다는 것, 즉 어떤 상품에 대한 욕망이 일시적으로 과열되어 주문이 쇄도하다가 시간이 지나면(그 상품의 재고가 바닥날 즈음) 욕망이 소멸하고 다음 상품에 대한 욕망으로 넘어가는 사이클의 반복이 자본주의 시장의 관점에서는 가장 바람직한 것입니다.
자본주의 시장은 노동자도 소비자도 규격화되고 정형화되기를 원합니다. 오늘날의 일본은(일본만의 이야기는 아니지만요) 이를 위해 사회제도가 설계되어 있습니다. 모두 비슷한 능력과 비슷한 욕망을 가진, 더 이상 구분하기도 어려운 노동자=소비자 집단을 지속적으로 창출해내도록 시장이 요청하고 있습니다. 학교교육도 매스컴도 광고도 모두 시장의 요청에 따라 움직이고 있지요. 이는 원리적으로 글로벌 자본주의의 필연적 결과여서 개인의 노력으로 저항하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이유를 알면 나름대로의 대응이 가능합니다. pp6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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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런 사태를 글로벌 자본주의자들은 별로 상관하지 않습니다. 한 세대 후의 일은 안중에 없기 때문이지요. 당기 이익이 최대가 되어 당기 배당이 최대화되고 자신의 개인 자산이 지금 당장 증가한다면 미래의 일은 어찌되든 상관없는 것입니다. 그들은 정말로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오늘밖에 없는' 사람들이 오늘날의 사회제도를 만들고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청년층의 결혼 문제 따위는 안중에도 없습니다. 정말이에요. 출산이 불가능할 정도로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는 소리를 들어도 "그럼 청년층을 재정적으로 좀 더 지원하자"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노동력이 국내에서 공급되지 않으면 이민을 받아들이면 된다, 해외로 거점을 옮기면 된다, 국내 소비자가 줄어들면 해외시장으로 진출하면 된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
하지만 제가 드리고자 하는 이야기는 정반대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사회의 원리와 '싸우기' 위해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고 교육하겠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왜냐고요?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일은 생물학적 인간으로서 지극히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지요. '예외적인 능력과 재능이 없으면 배우자를 찾지 못한다'는 규칙을 정해 놓고 게임을 한다면 인류는 이미 수만 년 전에 멸종했을 겁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결혼할 수 있다'는 것이 기본값입니다. 적어도 인류이 탄생부터 반세기 전까지는 그랬습니다. 지금이 이상한 겁니다.
그러므로 사회제도를 계속 이 상태로 유지하면서 결혼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개인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가 아니라, 보통의 인간이라면 누구나 결혼해서 유쾌하게 살아갈 수 있기 위해 '사회제도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를 끊임없이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pp67-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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