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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기록166

신한촌 기념비에서 만난 고려인 3세 / 블라디보스톡 (4) "신한촌". 블라디보스톡에 있는 옛 코리아타운의 이름이다. 1894년 조선을 여행했던 이사벨라 비숍은 블라디보스톡에 대해서도 흥미로운 기록을 남긴다. 부두에 이르자 수백 명의 조선인들이 활개를 치고 있었으며 몇 명은 자신의 짐을 들어주려고 끈질기게 따라붙었다고. 1853년 블라디보스톡 남쪽 포시예트만에 13가구가 이주한 이래 1890년대에는 2만 5천 명의 조선인이 블라디보스톡에 살고 있었다. 조선인은 짐꾼 노동자로 일하거나 농산물 유통을 담당했고, 농업 이민으로 성공하기도 했다. 러시아는 밀림을 개발하고 철도를 부설하는데 조선 노동자들을 이용했다. 조선이 일본에 병합된 뒤에는 수가 급격히 늘어나 1926년에는 19만 명에 달했다 한다. 이들은 백여 세대 중심으로 정착촌을 이루며 살았다고 한다. 터를 잡.. 2019. 10. 26.
키갈리를 떠나는 날 키갈리를 떠나기 전, 꼭 보고 싶은 얼굴이 있었다. 마을 수돗가의 터줏대감 ‘비비’다. 다른 꼬마들은 물을 길을 때만 수돗가에 오는데 비비는 또래 몇 명이랑 자주 이곳을 본부 삼아 논다. 아이들 중 비비 이름만 기억하는 이유는 비비가 나를 보고 제일 반갑게 인사하기도 하지만 일단 이름이 쉬워서다. 다른 녀석들은 발음이 웅웅거려 들어도 금방 잊어버린다. 키냐르완다어는 스와힐리어와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스와힐리어는 발음이 귀에 쏙쏙 들어오는데 키냐르완다어는 몇 번을 들어도 아리송하다. 떠나기 전날, 남은 폴라로이드 필름과 카메라를 들고 수돗가에 갔다. 비비가 있을까 해서였다. 그 날따라 비비는 없고 다른 녀석들만 모여있다. 고 녀석들만 살짝 찍어주고 돌아가야지 했는데 아뿔싸, 저녁이 한참 남았는데도 사람.. 2019. 10. 26.
아르바트 거리에서 떠올린 독립운동가들 / 블라디보스톡 (3) 블라디보스톡의 중심가, 아르바트 거리는 관광객으로 북적였다. 유럽풍의 건물이 죽 들어서 있지만, 시골 소도시의 중심가 같은 느낌이 더 강했다. 건물 규모가 크지 않고 소박해서다. 그래서인지 관광객 대부분은 가까운 곳에서 온 한국인과 중국인들이다. 지금 우리는 평화롭게 이 거리를 활보하지만, 백여 년 전만 해도 여기엔 거대한 소용돌이가 몰아치고 있었다. 열강들이 치열하게 대립하고 각 민족들이 서로 다른 운명을 맞이하는 무대가 블라디보스톡이었다. 특히 우리 민족에게 블라디보스톡은 각별한 인연이 있다. 러시아가 블라디보스톡을 건설하기 시작한 구한말부터 이 지역에 한인들의 이주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상설, 최재형, 이동휘, 안중근 선생이 이곳을 거점으로 활동했고, 만해 한용운 선생 등 민족의 장래를 고민하던.. 2019. 10. 26.
발해의 흔적, 아르세니예프 향토박물관 / 블라디보스톡 (2) 블라디보스톡이 있는 ‘연해주(프리모르스키)’ 지역은 정확하게 말하자면 유럽이 아니라 '유라시아'다. 유라시아는 지리적인 맥락에서 유럽과 아시아 대륙을 함께 부르는 말이다. 연해주 지역은 유럽과 아시아 문화가 혼재되어 있으므로, 문화적인 맥락에서도 유라시아였다. 사학자 이이화 선생에 따르면, 연해주 일대는 원래 이르쿠츠크에서 하바롭스크 이북까지는 코사크족 거주지였고, 하바롭스크 아래 아무르강에서 두만강 상류까지는 말갈족(나나이족) 거주지였다고 한다. 아무르강 아래 남쪽 영역을 8세기 무렵엔 거의 발해가 차지했다. 고구려는 만주 일대를 거의 차지했지만 아무르강으로는 진출하지 못했고 블라디보스톡 남쪽 동해안까지만 진출했다. 발해가 거란에게 망하자 뒤이어 말갈이 10세기 초에 종족 이름을 여진으로 바꾸어 만주와.. 2019. 10. 26.
이토록 가까운 러시아 / 블라디보스톡 (1) 블라디보스톡행 비행기는 밤 12시에 대구국제공항을 출발했다. 저가항공이라 출발 시각이 별로였지만 블라디보스톡까지는 두 시간이면 충분했다. 한국과 한 시간 시차가 나서 도착 시간은 새벽 3시경. 자동로밍을 신청해서 러시아 여행에 필수라는 막심 택시 어플은 깔지 않았다(러시아 유심이어야 이용 가능). 다행히 그 시간에도 공항 택시 사무소가 운영 중이다. 사무소는 시내까지 가는 택시를 연결해주었고 15분 정도 기다리면 택시가 올 거라고 했다. 공항 밖으로 나가니 한여름인데도 공기가 선선하다. 한국보다 위도가 약간 높은데 날씨 차이가 많이 났다. 공항청사는 새 건물처럼 보였다. 건물 전면에 푸른 불빛의 '블라디보스톡'이라는 글자가 위풍당당하게 반짝인다. 하지만 주변 분위기는 시골 버스정류장 같아서 택시정류장을 .. 2019. 10. 26.
르완다의 전통춤과 예술 르완다의 전통춤은 코이카가 지원하는 농촌마을 행사 때 본 게 제일 인상적이었다. 마을 주민들이 행사를 위해 자발적으로 모여 연습한 것이라 열정과 활기가 있었다. 여성들의 옷차림이 예쁜데 보자기 같은 천을 한 쪽 어깨에 둘러 간편하게 멋을 내는 게 전통의상이다. 남자들은 발목에 방울을 달고 락커처럼 머리를 흔들며 춤을 춘다. 전통북과 피리도 등장한다. 행사 시작과 끝에 참석자들이 모두 춤을 추는 게 특히 재미있다. 나도 자리에 앉아 있다가 내 손을 잡는 아주머니 댄서들에 이끌려 잠깐 춤을 췄다. 고위직 관료들도 의자에 앉아 점잔을 빼서는 안 된다. 모두가 함께 춤을 춰야 한다. 나는 10분쯤 추니까 머리가 어질어질해졌는데 공연하는 마을 여성들은 온몸을 강하게 움직이면서도 지친 기색이 없어 대단하다 싶었다... 2019. 8. 23.
하루 한 시간의 천국 천 개의 언덕이 있는 나라. 르완다 국토 대부분이 산지여서 붙여진 별칭이다. 북서쪽 국경엔 마운틴고릴라가 사는 화산지대(볼케이노 국립공원), 서쪽 국경엔 키부호수, 남서쪽 국경엔 열대우림(늉웨 국립공원), 동쪽 국경엔 사바나와 호수가 있고(아카게라 국립공원), 중앙은 다 산지다. 내륙국가라 바다는 없다. 르완다 커피원두가 단가가 싸지만 항구까지 운송비가 많이 들어 경제성이 높지 않다고 들었다. 해발 1500미터, 우리 같으면 지리산 연봉 쯤 되는 높이의 산에 사람이 다 산다. 우리나라와 달리 바위나 돌이 없고 흙으로만 이루어진 산이다. 사람들은 평지가 아니라 산꼭대기에서부터 집을 짓는다. 물을 얻기는 산 아래가 나은데 날씨가 선선하고 풍토병이 적은 등 다른 장점이 있기 때문이리라 짐작한다. 인구밀도는 아.. 2019. 8. 23.
대사관저 기념식 8월 15일, 대사관저에서 열린 광복절 기념행사에 참석했다. 조촐한 행사였지만, 한국서 공수한 재료로 만든 한식 뷔페가 넘 맛있어 모처럼 행복한 한 때였다. 르완다는 바다가 없어 식재료가 다양하지 않고 레스토랑 수준이 기대에 못 미친다. 지난 3.1절 때는 100주년이라 기념행사를 좀 크게 한 모양이다. 그땐 200여 명 되는 교민이 거의 모였다 한다. 교민사회의 역사는 이제 이십년쯤이라 한다. 반면에 중국과 인도 사람은 영국이 아프리카에 진출할 때부터 들어오기 시작해서 정착한 지 벌써 백 년이다. 화교는 주로 호텔과 아파트 등 건축사업을 많이 하고, 인도인은 의약품 유통 쪽을 차지하고 있다. 한국은 이제 식당부터 시작하는 단계다. 키갈리에 한식당이 세 곳이나 되고 한국인이 운영하는 아프리칸 레스토랑이 .. 2019. 8. 20.
레메라 초등학교 방문 가까운 레메라 초등학교를 방문했다. 같은 아파트에 코이카 봉사단원이 한 분 계시다. 음악교육으로 파견중인 박선생님인데 이분을 통해 학교장으로부터 음악수업 참관을 허락받았다. 르완다는 수도 키갈리에 있는 학교도 대부분 예체능 과목이 개설되어 있지 않다. 이 학교도 음미체가 정규교과에 없어서 일주일에 두 번 박선생님이 방과후 식으로 음악수업을 진행한다. 내가 학교에 도착했을 땐 마침 쉬는 시간이라 아이들이 운동장 가득 놀고 있었다. 나를 보곤 마치 연예인이 나타난 듯 몰려와 신이 나서 악수를 청한다. 다른 선생님이 오셔서 아이들에게 가라고 호령하자 그제야 교무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교무실이래야 교실 한 칸을 그냥 교무실 겸 교사휴게실로 쓰는 것으로 우리 식 교무실 개념은 아니다. 학생들은 예전 우리처럼 한.. 2019. 8. 20.
두 개의 산책로 집 근처에 내가 자주 가는 산책로가 둘 있다. 하나는 돌로 잘 포장된 평평한 길로 정원이 딸린 고급주택가와 국제학교로 이어지는 길이다. 오후 3시 반이 되면 학생들을 픽업하려는 자가용이 학교 앞에 잔뜩 대기한다. 말끔한 차림의 학생들은 자기들끼리 영어로 대화하며 각자의 차로 사라진다. 또 하나는 집 아래 흙길을 따라 내려가 건너편 언덕으로 향하는 길이다. 일반 주택가를 지나면 우리 식으로 달동네 같은 마을이 나온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엔 상하수도 시설이 없다. 르완다 정부는 마을마다 한 곳씩 수도를 설치했고 아침저녁으로 이곳은 사람들이 제일 붐비는 장소다. 어른들은 큰 물통을, 아이들은 작은 물통을 들고 삼삼오오 모여든다. 빨래도 수돗가 근처에서 한다. 마을에서 내게 호기심 가득한 눈길을 보내는 이.. 2019. 8. 20.
나무 자전거 나무자전거를 보았다. 키부호수 일대를 둘러보고 꼬불꼬불 산길을 넘어 키갈리로 돌아오는 길. 풍경을 감상하러 잠시 정차했다가 길 가는 세 명의 소년을 만났다. 그 중 한 아이가 두 바퀴 달린 나무자전거를 갖고 있다. 신기해서 요모조모 살펴보았다. 직접 만들었다고 한다. 멋지다고 마구 칭찬하니 페트병으로 만든 악기도 보여준다. 자랑스레 깜짝 공연까지 곁들이면서. 허락을 구하고 영상을 찍으니 수줍어한다. 모처럼 만난 재미나고 유쾌한 친구들이었다. 도시야 차 있는 사람도 많고 부자도 많다. 허나 이런 오지에선 자전거야말로 필수품이지만 꽤 비싸다. 나무로 정성스레 깎아 만든 자전거와 한 음만 낼 수 있는 페트병 전통악기. 소년들은 싱그럽게 웃으며 제 갈 길을 가는데 나무자전거가 계속 내 뒤를 따라왔다. @2019 2019. 8. 20.
비닐 사용 금지국 르완다는 비닐 사용이 금지다. 마트에 가면 고기를 제외하곤 전부 종이봉투에 담아준다. 쌀이나 설탕, 채소도 종이로 포장한다. 종이가 비닐보다 훨씬 비싼데 그 비용을 감당하는 것이다. 독일 같은 선진국이면 그러려니 할 텐데 국민소득 천 불도 안 되는 나라가 시행중인 선진적 제도가 신선했다. 분리수거는 아직 안 한다. 비닐 사용이 적다보니 개도국 어디나 넘쳐나는 비닐쓰레기가 여긴 잘 없다. 거리 청소도 열심이다. 아프리카에서는 드물게 구역마다 직업청소부가 있고 매월 마지막 토요일(우무간다 데이)은 전국민이 청소하는 날이다. 그러다보니 르완다는 수도나 지방 어디를 가나 깨끗하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삶의 질이 확 올라간다. 물론 이 나라에 난제는 많다. 국가재정의 상당 부분을 원조에 의지한다(약 40%라 들음).. 2019. 8. 10.
옥수수 한 개 르완다 사람들은 하루에 한 끼를 먹는다. 우리 식으로 식탁에 차려진 식사는 저녁 한 끼다. 그 밖에는 옥수수나 고구마 등으로 가볍게 때운다. 굶어죽는 사람은 없다. 거지나 노숙자도 보지 못했다. 자연재해나 내전 등의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면, 현재 아프리카에 기아는 잘 없는 것 같다. 아프리카 대륙이 워낙 넓어 단언하긴 어렵지만 동아프리카쪽은 그렇다. 하지만 식량생산이 충분치 않아 풍족하게 먹지는 못한다. 아이들은 평소에 늘 배가 고프다. 코이카가 원조하는 농촌마을 행사에 갔을 때 점심은 삶은 옥수수 한 개였다. 마을 아이들이 몰려와 옥수수를 서로 받으려고 난리였고 옥수수는 순식간에 동이 났다. 나는 딱딱하고 맛 없어 못 먹겠는데, 늦게 달려와 못 받은 꼬마들도 있었다. 내가 받은 옥수수를 반 잘라 안 먹.. 2019. 8. 10.
말라리아와 키나나무 아프리카 말라리아 모기는 동남아 등 다른 대륙보다 독성이 강하다. 도시는 잘 없는데 시골에선 조심해야 한다. 여기 사람들 얘기론 어릴 때 한두 번은 다들 걸려보았다 한다. 바로 약을 먹으면 낫지만 단순 감기인 줄 알고 방치하면 죽을 수도 있다. 아직 백신이 없어 예방은 안 되고 치료약에 의존해야 한다. 사진은 말라리아 치료제 퀴닌 성분을 추출하는 키나나무. 탄자니아의 킬리만자로 바로 아래 마테루니 마을에서 보았다. 나무에 말라리아 치료 성분이 있는 게 신기했고 식물이 주는 풍부한 혜택에 감탄했다. 말라리아는 지역마다 종류가 다르고 약도 다르다. 2015년 노벨의학상을 받은 중국의 투유유 여사는 개똥쑥에서 기적의 말라리아 치료성분을 추출해냈다. 과학의 눈부신 발전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아직 지구에 얼마나 다.. 2019. 8. 5.
케이프타운 12. 볼더스비치에서 살아남은 펭귄들 아즈마 히로키라는 작가는 '여행'을 새로운 검색어를 찾는 과정이라 표현한다. 일주일 동안 케이프타운 구석구석을 살피며 검색을 많이 했다. '넬슨 만델라' 라는 이름을 제외하고는 남아공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혀 없었기에 어떤 여행보다 검색을 많이 한 여행이었다. 케이프타운이 아프리카 식민화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 도시였고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지배에서 영국식민지, 남아공연방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대략 알게 되었다. 방문한 곳 중 가장 인상 깊은 곳을 들라면 역시 희망봉이다. 대서양에서 인도양으로 바뀌는 길목에 있는 희망봉. 자연도 눈부시게 아름답지만 대항해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세계사적 장소이기도 하다. 희망봉 가는 길에 우리 시대에 더 의미 있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준 장소를 만났다. 희망봉 인근 펄스 만에 .. 2019. 8.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