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이야기/르완다19 르완다 영상 — 8개월의 추억을 모아봅니다 | 키갈리, 무산제, 키부예, 아카게라 등 https://youtu.be/d2knjYiP2hc 2020. 10. 27. 키갈리를 떠나는 날 키갈리를 떠나기 전, 꼭 보고 싶은 얼굴이 있었다. 마을 수돗가의 터줏대감 ‘비비’다. 다른 꼬마들은 물을 길을 때만 수돗가에 오는데 비비는 또래 몇 명이랑 자주 이곳을 본부 삼아 논다. 아이들 중 비비 이름만 기억하는 이유는 비비가 나를 보고 제일 반갑게 인사하기도 하지만 일단 이름이 쉬워서다. 다른 녀석들은 발음이 웅웅거려 들어도 금방 잊어버린다. 키냐르완다어는 스와힐리어와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스와힐리어는 발음이 귀에 쏙쏙 들어오는데 키냐르완다어는 몇 번을 들어도 아리송하다. 떠나기 전날, 남은 폴라로이드 필름과 카메라를 들고 수돗가에 갔다. 비비가 있을까 해서였다. 그 날따라 비비는 없고 다른 녀석들만 모여있다. 고 녀석들만 살짝 찍어주고 돌아가야지 했는데 아뿔싸, 저녁이 한참 남았는데도 사람.. 2019. 10. 26. 르완다의 전통춤과 예술 르완다의 전통춤은 코이카가 지원하는 농촌마을 행사 때 본 게 제일 인상적이었다. 마을 주민들이 행사를 위해 자발적으로 모여 연습한 것이라 열정과 활기가 있었다. 여성들의 옷차림이 예쁜데 보자기 같은 천을 한 쪽 어깨에 둘러 간편하게 멋을 내는 게 전통의상이다. 남자들은 발목에 방울을 달고 락커처럼 머리를 흔들며 춤을 춘다. 전통북과 피리도 등장한다. 행사 시작과 끝에 참석자들이 모두 춤을 추는 게 특히 재미있다. 나도 자리에 앉아 있다가 내 손을 잡는 아주머니 댄서들에 이끌려 잠깐 춤을 췄다. 고위직 관료들도 의자에 앉아 점잔을 빼서는 안 된다. 모두가 함께 춤을 춰야 한다. 나는 10분쯤 추니까 머리가 어질어질해졌는데 공연하는 마을 여성들은 온몸을 강하게 움직이면서도 지친 기색이 없어 대단하다 싶었다... 2019. 8. 23. 하루 한 시간의 천국 천 개의 언덕이 있는 나라. 르완다 국토 대부분이 산지여서 붙여진 별칭이다. 북서쪽 국경엔 마운틴고릴라가 사는 화산지대(볼케이노 국립공원), 서쪽 국경엔 키부호수, 남서쪽 국경엔 열대우림(늉웨 국립공원), 동쪽 국경엔 사바나와 호수가 있고(아카게라 국립공원), 중앙은 다 산지다. 내륙국가라 바다는 없다. 르완다 커피원두가 단가가 싸지만 항구까지 운송비가 많이 들어 경제성이 높지 않다고 들었다. 해발 1500미터, 우리 같으면 지리산 연봉 쯤 되는 높이의 산에 사람이 다 산다. 우리나라와 달리 바위나 돌이 없고 흙으로만 이루어진 산이다. 사람들은 평지가 아니라 산꼭대기에서부터 집을 짓는다. 물을 얻기는 산 아래가 나은데 날씨가 선선하고 풍토병이 적은 등 다른 장점이 있기 때문이리라 짐작한다. 인구밀도는 아.. 2019. 8. 23. 대사관저 기념식 8월 15일, 대사관저에서 열린 광복절 기념행사에 참석했다. 조촐한 행사였지만, 한국서 공수한 재료로 만든 한식 뷔페가 넘 맛있어 모처럼 행복한 한 때였다. 르완다는 바다가 없어 식재료가 다양하지 않고 레스토랑 수준이 기대에 못 미친다. 지난 3.1절 때는 100주년이라 기념행사를 좀 크게 한 모양이다. 그땐 200여 명 되는 교민이 거의 모였다 한다. 교민사회의 역사는 이제 이십년쯤이라 한다. 반면에 중국과 인도 사람은 영국이 아프리카에 진출할 때부터 들어오기 시작해서 정착한 지 벌써 백 년이다. 화교는 주로 호텔과 아파트 등 건축사업을 많이 하고, 인도인은 의약품 유통 쪽을 차지하고 있다. 한국은 이제 식당부터 시작하는 단계다. 키갈리에 한식당이 세 곳이나 되고 한국인이 운영하는 아프리칸 레스토랑이 .. 2019. 8. 20. 레메라 초등학교 방문 가까운 레메라 초등학교를 방문했다. 같은 아파트에 코이카 봉사단원이 한 분 계시다. 음악교육으로 파견중인 박선생님인데 이분을 통해 학교장으로부터 음악수업 참관을 허락받았다. 르완다는 수도 키갈리에 있는 학교도 대부분 예체능 과목이 개설되어 있지 않다. 이 학교도 음미체가 정규교과에 없어서 일주일에 두 번 박선생님이 방과후 식으로 음악수업을 진행한다. 내가 학교에 도착했을 땐 마침 쉬는 시간이라 아이들이 운동장 가득 놀고 있었다. 나를 보곤 마치 연예인이 나타난 듯 몰려와 신이 나서 악수를 청한다. 다른 선생님이 오셔서 아이들에게 가라고 호령하자 그제야 교무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교무실이래야 교실 한 칸을 그냥 교무실 겸 교사휴게실로 쓰는 것으로 우리 식 교무실 개념은 아니다. 학생들은 예전 우리처럼 한.. 2019. 8. 20. 두 개의 산책로 집 근처에 내가 자주 가는 산책로가 둘 있다. 하나는 돌로 잘 포장된 평평한 길로 정원이 딸린 고급주택가와 국제학교로 이어지는 길이다. 오후 3시 반이 되면 학생들을 픽업하려는 자가용이 학교 앞에 잔뜩 대기한다. 말끔한 차림의 학생들은 자기들끼리 영어로 대화하며 각자의 차로 사라진다. 또 하나는 집 아래 흙길을 따라 내려가 건너편 언덕으로 향하는 길이다. 일반 주택가를 지나면 우리 식으로 달동네 같은 마을이 나온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엔 상하수도 시설이 없다. 르완다 정부는 마을마다 한 곳씩 수도를 설치했고 아침저녁으로 이곳은 사람들이 제일 붐비는 장소다. 어른들은 큰 물통을, 아이들은 작은 물통을 들고 삼삼오오 모여든다. 빨래도 수돗가 근처에서 한다. 마을에서 내게 호기심 가득한 눈길을 보내는 이.. 2019. 8. 20. 나무 자전거 나무자전거를 보았다. 키부호수 일대를 둘러보고 꼬불꼬불 산길을 넘어 키갈리로 돌아오는 길. 풍경을 감상하러 잠시 정차했다가 길 가는 세 명의 소년을 만났다. 그 중 한 아이가 두 바퀴 달린 나무자전거를 갖고 있다. 신기해서 요모조모 살펴보았다. 직접 만들었다고 한다. 멋지다고 마구 칭찬하니 페트병으로 만든 악기도 보여준다. 자랑스레 깜짝 공연까지 곁들이면서. 허락을 구하고 영상을 찍으니 수줍어한다. 모처럼 만난 재미나고 유쾌한 친구들이었다. 도시야 차 있는 사람도 많고 부자도 많다. 허나 이런 오지에선 자전거야말로 필수품이지만 꽤 비싸다. 나무로 정성스레 깎아 만든 자전거와 한 음만 낼 수 있는 페트병 전통악기. 소년들은 싱그럽게 웃으며 제 갈 길을 가는데 나무자전거가 계속 내 뒤를 따라왔다. @2019 2019. 8. 20. 비닐 사용 금지국 르완다는 비닐 사용이 금지다. 마트에 가면 고기를 제외하곤 전부 종이봉투에 담아준다. 쌀이나 설탕, 채소도 종이로 포장한다. 종이가 비닐보다 훨씬 비싼데 그 비용을 감당하는 것이다. 독일 같은 선진국이면 그러려니 할 텐데 국민소득 천 불도 안 되는 나라가 시행중인 선진적 제도가 신선했다. 분리수거는 아직 안 한다. 비닐 사용이 적다보니 개도국 어디나 넘쳐나는 비닐쓰레기가 여긴 잘 없다. 거리 청소도 열심이다. 아프리카에서는 드물게 구역마다 직업청소부가 있고 매월 마지막 토요일(우무간다 데이)은 전국민이 청소하는 날이다. 그러다보니 르완다는 수도나 지방 어디를 가나 깨끗하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삶의 질이 확 올라간다. 물론 이 나라에 난제는 많다. 국가재정의 상당 부분을 원조에 의지한다(약 40%라 들음).. 2019. 8. 10. 옥수수 한 개 르완다 사람들은 하루에 한 끼를 먹는다. 우리 식으로 식탁에 차려진 식사는 저녁 한 끼다. 그 밖에는 옥수수나 고구마 등으로 가볍게 때운다. 굶어죽는 사람은 없다. 거지나 노숙자도 보지 못했다. 자연재해나 내전 등의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면, 현재 아프리카에 기아는 잘 없는 것 같다. 아프리카 대륙이 워낙 넓어 단언하긴 어렵지만 동아프리카쪽은 그렇다. 하지만 식량생산이 충분치 않아 풍족하게 먹지는 못한다. 아이들은 평소에 늘 배가 고프다. 코이카가 원조하는 농촌마을 행사에 갔을 때 점심은 삶은 옥수수 한 개였다. 마을 아이들이 몰려와 옥수수를 서로 받으려고 난리였고 옥수수는 순식간에 동이 났다. 나는 딱딱하고 맛 없어 못 먹겠는데, 늦게 달려와 못 받은 꼬마들도 있었다. 내가 받은 옥수수를 반 잘라 안 먹.. 2019. 8. 10. 살아남은 이들과 사라진 이들 16세기 이래 천만 명 이상의 아프리카인들이 대서양 건너 아메리카로 끌려갔다(당시 지구 인구를 고려하면 더욱 어마어마한 수치다). 아프리카인들은 수십 세대에 걸쳐 끔찍한 고통을 겪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에 와서 가장 불운한 쪽은 아프리카계 흑인이 아니라 아메리카 원주민이 되었다. 현재 미국엔 아메리카인디언보다 아프리카계 흑인이 훨씬 많다. 아프리카계 흑인은 인권운동을 활발히 전개했지만 원주민의 처지는 그보다 못하다. 캐나다에선 이제야 이뉴잇을 대상으로 한 학살과 인종차별에 대한 보고서가 나오는 형편이다. 쿠바 등 카리브해 연안 국가에서 원주민은 사실상 멸족되었다. 유럽인이 옮긴 전염병 때문이었는데 그래서 이 지역엔 원주민보다 끌려온 흑인노예의 후손이 더 많다. 아프리카가 빈곤과 내전을 비롯한 .. 2019. 6. 26. 아프리카에서 조선을 상상하다 여행은 공간을 이동하는 것이다. 그런데 공간이 바뀌면 시간 감각도 달라진다. 동남아가 우리의 70, 80년대를 연상케 한다면 아프리카는 우리의 시선을 좀 더 멀리, 백 년 전으로 향하게 한다. 아프리카는 산업화가 되기 전, 우리 모두의 과거를 상상하게 하는 땅이다. 여기도 도시와 시골의 격차가 커서 도시 부유층은 모든 걸 누리지만 시골 사람들은 몸을 누일 집과 간단한 조리도구 말고는 아무것도 없이 산다. 흙집에서 살고 세 끼를 다 챙겨먹지 못했으며 가구나 물건을 누리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구한말 우리 조상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면서 이해가지 않는 것은, 백 몇 십여 년 전 조선은 부족 중심의 아프리카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문명국가’에다 사람들의 재주와 솜씨도 뛰어났는데 서민들의 물질적 삶이 왜 그렇게.. 2019. 6. 26. 아프리카엔 테크노폰이 있다 이곳 사람들도 모두 핸드폰을 사용한다. 단 돈 만 원, 10달러짜리 테크노폰이 있기 때문이다. 사진 찍기도 되고 페이스북도 연결된다. 물론 중국제다. 문명사적 관점에서 보면 유럽은 몇 백년간 아프리카를 착취만 했을 뿐 해준 게 별로 없다. 중국제품이 있어서 지금 아프리카 사람들도 최소한의 생필품을 누리고 산다. 이는 중국제가 단지 값싼 상품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궁극적으로 그들 자신을 위한 비즈니스긴 하지만 어쨌든 중국은 아프리카에 유럽이 주지 못한 문명의 혜택을 주고 있는 것이다. 여기 오니 10달러짜리 테크노폰이 내가 쓰는 고가의 애플폰보다 더 놀라운 기술혁신으로 보인다. 2019. 5. 27. 르완다 커피 커피가 나는 곳은 사람 살기에도 적합한 기후라 한다. 아라비카 커피는 적도 인근이면서 동시에 천 미터 이상의 고산지대, 덥지 않은 곳에서 자라기 때문이다(등급이 낮은 로보스타는 저지대에 자란다). 한국에선 별 생각 없이 커피를 마셨는데 여기서 커피는 그냥 커피가 아니다. 제노사이드 비극 이후 국가 재건의 일등 공신이 커피이다. 다른 산업기반이 전혀 없는 르완다는 커피 재배에서 희망을 찾았다. 커피를 잘 아는 지인 말로는 예가체프나 케냐aa 등 유명한 아프리카 브랜드보다 훨씬 맛이 순하고 부드럽다 한다. 신맛과 초컬릿맛이 은은하게 우러난다. 여긴 대규모농장이 없고 각 가정에서 키운 커피콩을 마을조합이 모아 판매한다. 커피원두 한 알 한 알에 이곳 여성들의 땀과 손길, 미래에 대한 소망이 담겨 있다. 2019. 5. 25. 손빨래와 무지개 르완다는 우기와 건기 두 계절이 있다. 우기엔 하루에도 몇 번씩 하늘을 살피게 된다. 날씨가 화창하다가도 순식간에 비구름이 몰려와 소나기를 뿌리고 간다. 그럼 정신없이 옥상으로 달려가 빨래를 걷어야 한다. 햇살 쨍한 날은 빨래 잘 말라서 좋은 날이다. 모든 게 불편하지만 특히 힘든 건 손빨래다. 여기도 세탁기야 있지만 한국보다 훨씬 비싸서 잠깐 체류에 살 필요는 없어서 구입하지 않았다. 한국 가면 세탁기가 제일 반가울 것 같다. 그런데 햇볕이 드는지 비구름이 오는지 수시로 하늘을 살피는 일상이 이상하게도 마음을 평화롭게 할 때가 많다. 아날로그적 일상이 주는 편안함, 자연과의 가까운 접촉 때문이 아닐까. 우기엔 꽃이 만발한다. 연중 봄날씨라 그런지 모든 풀과 나무가 꽃을 달고 있다. 그리고 비 그친 뒤면.. 2019. 5. 21.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