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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550

어디서 살 것인가/ 유현준 내가 희망도서로 신청해 놓고는 도서관에 찾으러 가는 걸 깜박했다. 그 사이 이 책은 계속 '대출중', '예약중'이었고, 한 달이 훨씬 넘게 지나서 간신히 내 손에 들어왔다. 이 책은 단지 건축에 대한 것이 아니라 건축을 기반으로 하는 '도시'와 그 도시에서의 우리의 '삶'을 들여다보는 책이다. 이때 건축은 삶의 철학과 동의어가 된다. 모든 내용이 흥미로웠지만 특히 기억에 남는 건 두 부분이다. 첫째는, 예전에 일본 여행을 하면서 일본의 목조 건축이 우리와 비교도 안 될만큼 발달한 것을 보면서 놀란 적이 있었다. 일본이 거대하고 화려한 복층 건물을 짓는 동안 왜 우리는 단층밖에 짓지 못했는가. 목재가 흔치 않아서인가, 건축 기술이 부족했는가, 혼자 생각하다 말았는데 그 이유에 대한 답을 이 책에서 우연히 .. 2018. 9. 17.
정희진처럼 읽기/ 정희진 유명 작가들의 독서 경험을 쓴 책이 시중에 많이 나와 있지만 잘 읽히지는 않았다. 타인의 독서 경험이 내가 푹 빠져 읽을 만큼 공감의 여지가 많지 않아서이다. 끝까지 다 읽은 책은 유시민의 '청춘의 독서' 정도다. 이 책 '정희진처럼 읽기'는 예외다. 그냥 한번 훑어보려고 집어들었다가 한 페이지도 빠짐없이 다 읽고 말았다. 저자는 책의 내용을 소개하지 않는다. 책이 자신에게 준 화두를 붙들고 그녀 자신만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건넨다. 그것은 단지 개인적인 이야기만은 아니다. 모든 몸은 '사회적 몸'이듯이 그녀가 통과하고 겪은 삶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책은 저자의 영혼을 울린 책에 대한 이야기일 뿐 아니라 개성적인 글쓰기의 모범 사례다. ## 우리가 접하는 책들은 대개 서울 출신, 남성, 서.. 2018. 9. 15.
우물쭈물하다 끝난 교사 이야기 | 유기창 ㅡ 국어교사의 솔직담백한 교육 인생 회고록 한 국어교사의 36년간 교육 인생의 회고록이다. 1981년부터 2017년까지 저자가 경험한 학교 현장의 이야기를 담았다. 저자는 전교조 해직 교사이기도 하다. 1989년 전교조 가입으로 해직되었다가 5년 뒤에 복직되었다. 이 책은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교육 문제를 고민하고 실천하려 애써온 교육운동 1세대의 기록으로 의미가 있다. 다만 대부분 인문계 고등학교의 이야기이고, 또 저자와 내가 세대가 달라서 고민하는 지점 또한 달라서 내가 특별히 주목할 만한 내용은 없어서 듬성듬성 훝어보았다. 그러다가 반전은 책 마지막에 있었다. 저자의 솔직담백한 고백에 충격과 함께 매우 깊은 인상을 받았다. 36년 교단 회고록의 마지막 내용은 저자가 정년퇴임을 한 학기 앞둔 시점에서 학생들로부터 수업 교사 교체 요구를 받은 .. 2018. 9. 15.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 / 토머스 게이건 미국 변호사의 독일 "사회민주주의" 사회 체험기. 노동법을 전공한 변호사답게 미국과 독일이 법과 제도적 측면에서 노동 환경 및 삶의 질이 얼마나 다른지 조목조목 상세하게 분석한다. GDP가 같다고 삶의 질이 비슷한 수준인 것은 아니다. 미국 시민들은 독일의 5분의 4 정도의 세금을 내지만 사회보장 및 사회적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통로가 독일보다 형편 없다. 두 사회의 자본주의는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색깔을 지니고 있었다. 안타까운 점은 이 책의 '미국'을 '한국'으로 바꾸어도 될 만큼 우리 사회가 놀랄 만큼 미국과 똑같다는 사실이다. 독일 사회 전반을 들여다본 저자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사회를 개선하기 위해 모두들 '교육' 개혁을 이야기하지만 실은 '교육'보다 '노동법'이 훨씬 .. 2018. 9. 13.
중국에서 만나는 한국 독립운동사/ 윤태옥 두 번째로 읽은 중국 대륙 독립운동 답사기. 사실 출판된 것이 두 권 뿐이다. 먼저 읽은 책은 작년에 나온 국어 교사가 쓴 . 이 책은 올해 나온 따끈따끈한 책으로 저자가 중국에서 십 년 이상 다큐멘터리 작업을 해온 중국통 PD다. 두 책은 색깔이 많이 다르다. 전자가 관련 일화들을 풍부하게 스토리텔링하여 소개하는 반면 저자의 역사관은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은 저자가 자기만의 분명한 관점을 갖고 역사를 평가한다. 그러다보니 우리 독립운동사의 맥락이 더 잘 드러나는 장점이 있었다. 두 책이 서로 보완이 되었다. 저자의 답사는 독립운동 1세대인 왕산 허위 선생과 우당 이회영 선생에서 시작한다. 허위 일가는 이회영 일가와 함께 집안 전체가 독립운동을 한 대표적 명문가인데, 구미가 고향이었다. 구.. 2018. 9. 11.
프로이트의 편지 | 김서영 ㅡ 프로이트 심리학 전반에 대한 가장 쉽고 친절한 해설서 프로이트의 "동일시 이론"을 중심으로 프로이트가 말한 자아 이론(이드, 에고, 초자아)을 설명하는 책. "동일시"가 한 인간의 자아 형성에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점을 보여줄 뿐 아니라, 프로이트 심리학 전반에 대한 가장 쉽고 친절한 해설서가 되어준다. 아울러 프로이트가 융 및 라캉과 연결되는 지점도 확인할 수 있다. 정말 좋은 책. ## 정신분석의 목표는 사람들에게 좋은 동일시를 선물하는 것이다. 이는 쉽지 않은 과제인데, 그 이유는 사람과 사람을 연대하게 만드는 에로스와 함께, 남을 밀어내고 배척하고 이용하고 파괴하려는 타나토스적 공격 충동이 인간 내면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공격 충동을 억제하고 에로스를 확장시킬 수 있을까? 이 고민은 전쟁 재발 방지에 대한 프로이트의 논의.. 2018. 9. 9.
내 무의식의 방/ 김서영 아주 오래 전 반복되는 꿈을 많이 꾸어서 꿈 분석을 시도한 적이 있다. 자고 일어나서 꿈을 기록한 후에 꿈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들여다보는 작업인데 몇 번 하다가 말았다. 이 분야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없어서 해석이 안 되었기 때문이다. 고혜경 교수가 쓴 분석심리학에 대한 안내서를 보고 다시금 융에 관심이 생겨 꿈 분석을 검색하던 중 김서영 교수의 책을 발견했다. 이 책의 장점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여러 내담자의 꿈 이야기를 가져온 것이 아니라 십여 년에 걸친 저자 자신의 꿈을 분석한 책이라는 점이다. 저자가 그간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간단히 설명하고 자신의 삶의 고비에 꿈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진솔하게 풀어간다. 그리고 자신의 꿈에 대해 질문하는 법, 꿈이 현실의 어떤 문제를 반영하.. 2018. 9. 7.
칼리의 프랑스 학교 이야기 | 목수정 ㅡ 프랑스 학교의 학생평가 항목 서구의 교육방식이 무조건 우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떤 교육 철학과 교육 방법이 요청되고 실천된 맥락을 보지 않고 그 결과물인 교육 방법만을 마구잡이로 수입한 것이 오히려 우리 교육을 더 엉망으로 만들 때가 많다. 지금 학교 현장에는 온갖 나라의 방법론이 들어와 있지만 그것들은 우리 교육을 바꿀 근본적인 동력이 되지 못하고 일시적 유행에 그쳐버린다. 몇 년 지나면 다른 교육방법이 새로운 유행이 된다. 이스라엘 하브루타까지 수입하면서, 정작 등수 매기기와 상대평가는 없애지 않는다. 이 책의 장점은 단순히 교육방법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프랑스 교육을 관통하는 철학이랄까 관점을 느낄 수 있는 점이다. 프랑스 교육은 그 사회의 전통 혹은 그 사회 구성원이 시간을 들여 합의한 결과일 것이다. 가장 인상적인 .. 2018. 9. 6.
티벳 사자의 서 | 파드마 삼바바 — 가장 높은 차원의 심리학 파드마 삼바바가 말하는 죽은 자가 거치는 세 과정, 치카이 바르도, 초에니 바르도, 시다프 바르도의 이야기가 마냥 허무맹랑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종교 경전을 읽는 것 같은 진지하고 경건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고보니 티벳 사람들에게 사자의 서(바르도 퇴돌)은 경전이다. 정신세계사에서 발간한 '티벳 사자의 서'는 사자의 서 뿐 아니라 칼 융의 해설과 사자의 서를 맨 처음 서양에 알린 에반스 웬츠의 해설을 담고 있어 유익했다. 아래 내용은 칼 융의 해설에서 발췌한 부분이다. ## 이 책에서는 사자에게 나타나는 분노의 신들뿐만 아니라 평화의 신들조차 인간 정신의 투영에 지나지 않는다고 역설한다. 이런 주장에 대해 지성을 가진 현대인이라면 쉽게 동의할 것이다. 그들이 보기에도 그것은 너무도 명백한 사실이기 때문에.. 2018. 9. 3.
여성 혐오가 어쨌다구? / 윤보라 외 ## 가부장제 사회가 작동하는 방식 중 하나는 성별 이슈에는 '과거가 없다'는 인식이다. 성별 이슈를 제기하면서도 페미니즘을 공부하지 않는다. 여성의 역사를 무시한 채 자신이 처음 제기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남성의 역사는 이어지지만 여성은 단절되어, 언제나 자기가 '처음'이다. 여성학자 김은실은 이를 남성의 역사는 '역사', 여성의 역사는 '에피소드'로 간주된다고 말했다. 그래서 처음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게 되면 여성이든 남성이든 '페미니스트'는 모두, 자기 혼자 '이 엄청난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외로운 선구자 의식과 동시에 피해 의식과 울분을 갖기 쉽다. 이전 시대 여성의 삶을 존중하지 않는다. 여성의 경험은 공유되지 않고 여성의 역사는 전수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이 문제가 젠더 체계의 가.. 2018. 9. 2.
행복한 독일 교육 이야기 | 김택환 ㅡ 선행학습을 버린 독일 박성숙의 '독일교육 이야기(1~2)'에 비해 특별히 새로운 내용이 없었다. 박성숙의 책이 훨씬 재미있었다. ## 왜 독일 부모들은 한국과 달리 자녀가 더 뛰어난 성적을 거두도록 미리 공부시키지 않을까? 이에 대한 답은 명료하다. 선행학습이 공부에 대한 흥미를 잃게 하고, 수업 분위기를 망치기 때문이다. 또한 토론과 발표 위주의 독일 수업에서는 선행학습이 성적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국과 독일 교육을 비교했을 때 가장 큰 차이는 '선행 교육의 여부'다. 독일도 한때 선행 교육을 했다. 이미 19세기 미하엘 자이러 등 교육학자들은 선행교육의 문제점으로 폭력성을 지적하기도 했다. 선행교육의 우월주의는 나치와 전쟁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우리 아이는 이미 알파벳을 다 깨우치고 책도 읽을 수 있어요. 다른 아.. 2018. 9. 2.
교장제도 혁명 | 한국교육네트워크 ㅡ 가장 시급한 교육개혁 과제, 교장제도 ## 교장의 자율성이 곧 학교의 자율성이라는 착각에 빠져 있는 우리 교육 현장을 정확히 진단해야 한다. 사회적으로 하루빨리 교육의 기본 원칙에 대해 합의하고 이를 바로 세워야 한다. pp45 ## 한때 중학교 교사들 사이에 "교사는 학생만 없으면 참 좋은 직업이다."라는 말이 있었다. 사실 이건 학생들 가르치기 싫다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교육이 고된 일이라는 뜻이다. 이 고된 일을 하면서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 하는 사람" 취급을 받고, "아무나 할 수 있는 일마저 게으름 피우는 사람" 취급을 받으며 온 사회의 질시를 한 몸에 받는 교사들의 자조감 역시 이 말 속에 들어 있다. 그래서일까? 우리나라 학교에서 교사들은 학생들을 얼마나 많이 접하는가 하는 순서대로 서열이 매겨진다. 많이 접할수록 서열이 .. 2018. 9. 2.
학교를 말한다 | 이성우 ㅡ 식민지 시대에 만든 불합리한 승진 제도 ## 예전과 달리 지금 승진파 교사들 가운데 건강한 교사가 적지 않다는 사실로 현행 승진제도를 정당화할 순 없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 좋은 교사들이 승진의 암흑 터널을 거치지 않았다면 더욱 좋은 교사로 성장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무릇 건강한 국가정책은 개인의 발전과 국가 발전이 함께 가도록 개인을 유인할 것이나, 보다시피 현행 승진제도하에서 이 둘은 정반대로 기능한다. 일제강점기에 이 제도를 만든 취지가 그랬다. 식민지 교사들에게 소모적인 경쟁을 부추겨 교육혼을 말살시키고 그 대열에서 살아남은 가장 비교육적인 인간을 높은 자리에 앉혀 교단을 길들이려 한 것이다. 현행 승진제도의 반교육적 폐해를 누구보다 잘 알면서 이 망국적 제도를 존치해야 한다며 총력투쟁에 나선 분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 2018. 9. 2.
꿈에게 길을 묻다/ 고혜경 ## 여러분이 겪은 5.18은 뼈아픈 역사적 사건입니다. 가해자를 처벌하고 피해자의 명예를 회복함으로써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은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여기 계신 분들은 이미 그런 활동을 활발히 해오셨고요. 이런 작업은 아직 충분히 이뤄지지 못했기에 앞으로도 지속되어야 할 겁니다. 그런데 이 일과 더불어서 여러분 각자가 자신을 위해 해야 하는 일도 그만큼 중요하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사회정의가 실현될 때까지 내 삶이 담보 잡혀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건은 한 세기가 지나야 진실이 밝혀지기도 하고 심지어는 영구히 미제로 남아 진실이 묻혀버리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역사가 말해줍니다. 정의가 실현되는 날까지 일상의 나날이나 세월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해.. 2018. 9. 2.
탈감정사회 / 스테판 G. 메스트로비치 ## 이 책에서 나는 탈감정주의postemotionalism라는 새로운 사회학적 개념을 포스트모더니즘과 모더니즘적 이론들에 대한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한다. 대부분의 사회학적 이론화에서 잃어버린 원료가 바로 감정의 역할이다. 나는 오늘날의 서구 사회가 새로운 발전단계에 접어들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단계에서는 합성된 유사 감정들이 자신, 타자 그리고 문화산업 전체에 의해 행해지는 광범위한 조작의 토대가 되고 있다. 나는 오늘날의 개인들이 우리의 선조들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모더니스트들의 주장에 동의하지만, 모더니즘 이론가들에 반대하여 지식은 행위를 낳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행위는 감정과 지성의 결합을 전제로 한다. 그간 탈감정사회에서는 그러한 결합이 끊어져왔다. 나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2018. 9.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