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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550

나의 꿈 사용법/ 고혜경 ## 아메리카 인디언 원주민들은 꿈을 '조상들의 이야기'라고 말한다. 광주민주화항쟁 희생자 분들과 꿈 작업을 하기 전에 나는 이 층위에 대해 확신이 없었다. 광주에서 이분들의 집단 트라우마를 함께 나누는 동안 내 개인의 가족사, 즉 증조 할아버지, 고조 할아버지 때 집안에서 일어난 일을 꿈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꿈은 조상에 관한 것이다'라고 하는 말을 실감하게 되었다. 한국 근대사는 상처로 점철되어 있다. 식민지를 겪었고 전쟁을 치렀고 분단의 비극에 더해 이념 투쟁의 소용돌이를 겪었다. 독재의 상흔에다 악명 높은 성 불평등까지, 고도 성장의 이면에 드리운 그림자가 짙다. 흥미롭게도 전쟁을 겪은 사람들에게만 등장하는 꿈을 전후에 태어난 우리 세대가 꾸는 것을 목격한다. 이들의 이야기를 추적해보면.. 2018. 8. 31.
정유정, 이야기를 이야기하다 | 정유정, 지승호 — 세상이 원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라 ## 나는 독자가 내 소설 안에서 온갖 정서적 격랑과 만나기를 원한다. 기진맥진해서 드러누워버릴 만큼 극단의 감정을 경험하길 원한다. 분노, 절망, 슬픔, 비애, 사랑, 감동...... 소설이라는 이야기 형식 안에서 안전한 거리를 두고 겪는 감정경험들은 세계에 대한 우리의 시선을 확장시키고, 인간에 대한 이해의 깊이를 만들어주고,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 또한, 독자가 주인공과 함께 절정까지 내달리기를 원한다. 앞서 말했다시피 절정에는 이야기의 영혼, 즉 작가가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이 숨어 있다. "나는 세계를, 삶을, 인간을, 이렇게 바라본다"라고. 바꿔 말하면 작가는 이 메시지를 절정부에 숨겨놔야 한다. 이것은 이야기의 의미이기도 한데, 의미 자체가 재미인 경우도 있다. 아마도 가장 바람직한 형태일 것.. 2018. 8. 30.
낯선 시선/ 정희진 ##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제, 다르게 생각하기가 생존의 문제가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지식 정보화 사회의 '진정한' 의미는, 언어/사유의 힘이 중대해졌다는 사실, 그리고 사회적 약자가 자기 언어를 갖지 않으면 존재 양식을 잃는 시대라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돈이나 물리력이 없다. 절대 다수인 사회적 약자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자원은 윤리와 언어뿐이다. 그리고 남녀를 불문하고 여성주의는 이 과정에 '지름길'이 될 것이다. 이것이 여성주의 윤리학과 정치학이 모델로 하는 메타젠더이다. pp17 ## 대의제가 무너진 지 오래지만,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자기 이익을 대변할 사람보다는 자신이 욕망하거나 동일시하는 사람에게 표를 주기 시작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나 안철수 '현상'이 대표적이다. 민주.. 2018. 8. 29.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 무라카미 하루키 — 상상력은 기억이다 ## 이건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만일 당신이 뭔가 자유롭게 표현하기를 원한다면 '나는 무엇을 추구하는가'라는 것보다 오히려 '뭔가를 추구하지 않는 나 자신은 원래 어떤 것인가'를, 그런 본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보는 게 좋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무엇을 추구하는가'라는 문제를 정면에서 곧이곧대로 파고들면 얘기는 불가피하게 무거워집니다. 그리고 많은 경우, 이야기가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자유로움은 멀어져가고 풋워크는 둔해집니다. 풋워크가 둔해지면 문장은 힘을 잃어버립니다. 힘이 없는 문장은 사람은-혹은 자기 자신가지도- 끌어들일 수 없습니다. 그에 비하면 '뭔가를 추구하지 않는 나 자신'은 나비처럼 가벼워서 하늘하늘 자유롭습니다. 손바닥을 펼쳐 그 나비를 자유롭게 날려주기만 하면 됩니다. 그렇게.. 2018. 8. 29.
치유의 인문학 / 인문학자 10인 '치유'를 화두로 진중권, 서경식, 박노자, 박상훈, 조국, 고혜경, 정희진, 이강서, 황대권, 문요한 10인의 인문학자들의 강연을 모은 책이다. 철학자, 사회학자, 여성학자, 법학자, 역사가, 꿈분석가, 농부, 정신과 전문의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지금 한국 사회의 현실과 문제를 그들 전공의 관점에서 분석한 '엑기스'를 강연투의 입말로 쉽게 정리한 책이어서 모든 장이 재미가 있었다. 특히 정희진의 글은 한 구절도 빼놓을 수 없을 만큼 우리가 얼마나 통념에 사로잡혀 있는가를 보여주었다. 하나가 전체적 스토리여서 여기서 발췌는 하지 않았지만, 고혜경의 세월호와 꿈 이야기도 신선한 감동이 있었다. ## 힐링과 멘토링이 넘쳐나는 것은 일면 우리 사회가 굉장히 병들어 있다는 징후입니다. 또 다른 측면에서 이 문.. 2018. 8. 29.
나는 여행기를 이렇게 쓴다 | 무라카미 하루키 — 자기 안에서 변경을 만들어내기 이 책에 나오는 여행기는 사실 그다지 재미가 없다. 의미 있는 부분은 책의 서문 격인, 여행과 글쓰기에 대한 '작가의 말'이었다. ## 여행을 떠날 마음이 있고 여행 경비를 마련할 수 있다면 세계 어느 곳이든 갈 수 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아프리카의 정글이나, 남극여행도 즐길 수가 있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래서 여행을 더나는 데 있어, 설사 아무리 멀고 아무리 외진 산간벽지라고 해도 '그다지 특별한 일은 아니다'라는 인식이 먼저 머릿속에 자리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도한 계획이나 지나친 의욕 같은 것은 삼가고, '말하자면 어느 정도 비일상적인 일상'으로 여행을 생각하는 점에서부터 이 시대의 여행기는 시작해야만 한다. pp6-7 ## 어쨌든 여행을 하는 행위의 본질이 여행자의 의식.. 2018. 8. 28.
한국독립운동사/ 박찬승 ## 1980년대 이후 학계 안팎에서는 독립운동의 주류를 무엇으로 설정할 것인가와 관련하여 크게 세 가지 관점이 제시되었다. 첫째는 민족주의 세력 중심론이고, 둘째는 민족협동전선(민족통일전선) 세력 중심론, 셋째는 사회주의 세력 중심론이다. 민족주의 세력 중심론은 그 내부에서 이동녕-김구로 이어지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중심론, 미주의 이승만 세력 중심론, 그리고 국내의 실력양성 운동 세력 중심론 등으로 다시 나뉜다. 두 번째의 민족협동전선 세력 중심론은 신간회, 민족유일당 운동, 임정의 좌우 세력 포괄, 여운형의 건국동맹 조직 등을 강조하는 거인데, 이는 다시 안재홍과 같은 중도우파 세력을 중심으로 보는 견해와 여운형과 같은 중도좌파 세력을 중심으로 보는 견해로 나뉜다. 세 번재의 사회주의운동 중심론에는 국.. 2018. 8. 25.
단재 신채호 평전/ 김삼웅 신채호 선생의 글을 많이 인용한 것이 이 책의 장점이었다. 평전에서 내가 특히 눈여겨본 부분은 3.1운동 직후 임시정부를 둘러싼 갈등이다. 임시정부 초대 국무총리로 이승만이 추대되는데, 이승만이 미국에서 한국을 위임통치해줄 것을 건의하는 문서를 보낸 것을 재미동포의 편지로 알게 된 신채호 선생과 김창숙 선생은 대노하여 임시정부에서 이승만을 제거하려고 애를 쓴다. 이승만은 국무총리로 추대되었으면서도 상해에 오지 않고 미국 현지에서 머물며 대통령 직함만 사용하고 있었다(당시 임시정부는 내각제여서 국무총리임에도 불구하고). 하지만 신채호 는 이승만을 몰아내는데 실패한다. 과반 이상의 사람들이 반대를 표했고, 성격이 불 같은 당시 경무국장이던 김구 선생도 임시정부가 막 결성된 상태여서 임시정부 자체가 와해될 수.. 2018. 8. 22.
시험 국민의 탄생 | 이경숙 ㅡ 시험제도에 대한 탁월한 역사적 분석 시험에 대한 역사적/철학적/사회학적 분석을 시도한 책. '시험'이 '교육'을 대체한 한국 현실에서 시험과 교육이 각각 제자리를 찾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 뒤틀린 현실을 정확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은 '뻔하지 않은' 관찰과 분석으로 독자들에게 그런 귀한 기회를 제공한다. ## 학교 안이건 밖이건 대한민국 사람들 모두에게 공통되는 생애의 교육과정이 하나 있다면 단연코 '시험'이다. 시험을 통해 배웠고, 시험을 통해 지식을 선정했고 시험을 통해 인생의 순간을 결정했다. 천 년 세월 동안 과거 시험으로 인해 만들어진 양반의 삶과 국가권력, 일제시대를 통해 사회적 일상공간에까지 뿌리 내리게 된 다양한 경쟁시험, 그리고 해방 이후 객과닉 위주의 시험방법이 학교와 사회를 장악하게 된 시간. 오랜 세월 동안 한.. 2018. 8. 21.
곤란한 결혼 / 우치다 타츠루 __ 노동의 표준화가 가져온 현상 ## 현대의 결혼 문제는 사실 절반 이상이 '고용 문제'입니다. 결혼이 어려워진 원인 중 하나는 고용 상황이 악화된 것과 관계 있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일본의 현재 고용 상황은 완전히 국가 주도로 만들어진 상황으로, 청년층이 철저히 착취당하는 고용 환경이지요. 남녀고용기회균등법이라는 법률이 있습니다. 이를 남녀의 차별을 없애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법률'이라고 환영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만, 어째서 재계가 이 법률 제정을 서둘렀을지를 생각해보면 그다지 낙관적 태도를 취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 법률은 단적으로 말해 '저임금 고급 노동자의 대량 공급'을 노린 것입니다. 임금은 낮지만 일은 잘하는, 어떤 고용 조건이라도 받아들이는, 과로사할 때까지 일하는, 그런 임금노동자들을 대량으로 배출해내기 위한 구.. 2018. 8. 20.
하루키씨를 조심하세요 | 우치다 타츠루 ㅡ 우리가 함께 결여하고 있는 것 하루키는 내 취향이 아닌데(옛날에 세 권 정도밖에 안 읽음), 이 책을 보고 다시 하루키를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취향이 바뀔 지는 알 수 없지만. ## 우리가 세계의 모든 사람들과 '공유'하고 있는 것은 공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실은 함께 '결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비평가들은 이러한 역설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알고 경험할 수 있는 것은 다른 사람도 알고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을 설명했기 때문에 무라카미 하루키가 세계성을 획득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알지 못하고 경험할 수 없는 것은 다른 사람도 알지 못하고 경험할 수 없다'는 것, 오로지 그것만을 이야기했기 때문에 세계성을 획득했습니다. 우리가 '함께 결여하고 있는 것'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임에도 우리 산 자의 행동이나.. 2018. 8. 20.
혼자 못 사는 것도 재주 | 우치다 타츠루 ㅡ 자기 안의 타자와 공생하는 능력이 이웃 사랑으로 이어진다 ## 인간의 적성이나 능력이나 소명은 노동하는 인간이 '주관적으로 그렇게 되고 싶다'는 바람이나 '그래야 한다'고 믿는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 어떠한 '실재하는 객관적인 소산'을 이 세상에 내어놓음으로써 사후적으로 결정된다. 능력이나 적성은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뒤'에 발견된다. 어떤 일을 '해냈다'는 사실이 자신에게 그 일을 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비로소 본인에게 가르쳐주는 것이다. (...) 대개의 경우 외부의 능력 평가가 본인의 가치평가보다 객관성이 높다. 예술창조보다는 노동 쪽이 완성도에 대한 판정 기준이 훨씬 '녹록하다.' 예술은 어느 정도 고도의 기술이나 숙련, 노력의 성과가 있다고 해도, 만들어낸 작품이 '다른 사람과 똑같다'면 가차 없이 '무가치'한 것으로 판명난다. 하지만 노동은 .. 2018. 8. 19.
그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김태빈 나와 관심사가 비슷한 분을 만났다. 저자는 국어 교사이면서 북경국제학교에서 근무할 기회를 얻게 되어 중국에 있을 때 항일 독립운동 유적지를 답사한다. 중국을 남부, 북부, 서부로 나누어 거의 전역을 답사했다. 그 장소의 분위기에 대한 묘사라든가, 개인적 소회와 느낌을 많이 쓰지 않은 점은 아쉬웠지만, 대신에 각각의 장소에 얽힌 수많은 사람들의 일화를 소개하여 독립운동사를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는 점이 이 책의 장점이었다. 현상금 60만원의 김구 선생을 몇 년씩이나 몰래 숨겨준 중국인들, 충칭 임정청사가 보존되도록 애쓴 재중동포(독립운동가의 후손)의 일화 등도 인상 깊었다. 이 일화들을 읽으며 스토리는 영웅 한 사람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숱한 조연들이 있어서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스토리는 많은 사람들.. 2018. 8. 19.
학교지식의 정치학 | 마이클 애플 ㅡ 표준화된 교육과정과 교직에서 '노동의 가치 하락' 번역투 문장이 쉬운 내용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 미국 뿐 아니라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및 그 외 지역에서도 공공정책에서의 강조는 불이익을 극복하기 위하여 국가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하는 쟁점에 두어지지 않았다. 예컨대 평등 문제를 보자. 평등 개념은 넓은 의미로 보든 좁은 의미로 보든 재규정되었다. 이제 평등은 더 이상 과거에 그러했듯이 집단 알력과 불이익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평등은 단순히 '자유 시장'의 조건 아래 개인의 선택을 보장하는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따라서 (다양한 의미를 가지며 사회적으로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는) '수월성'이 강조되는 현재 추세는 교육적 담론의 성격을 바꾸었고, 그 결과 학업 부진은 또다시 학생의 잘못으로 인식되는 사례가 늘어나게 되었다. 학생의 학업 실패는 최소한.. 2018. 8. 19.
뉴스는 어떻게 조작되는가 / 최경영 우리 언론의 못된 '아젠다 세팅'에 늘 비판적 시선을 가져왔지만, 기자가 직접 쓴 이 책을 보며 내가 얼마나 기존 언론이 세상을 해석하는 관점에 무의식적으로 동조해왔는지 알게 되었다. 저자는 서른 가지 정도의 사례를 들고 있고 그 사례들이 다 한번 돌아볼 만한 것이다. 그 중 기억에 남는 것은 언론이 자주 쓰는 '강남불패' 신화와 부동산 '거래절벽'에 대한 호소이다. 강남 부동산은 정말 내린 적이 없는 것일까. 강남불패는 특정 지역에 한정되는 이야기일 뿐 타워팰리스만 하더라도 2006년에 비해 6억 이상 내렸다. 부동산 거래절벽도 마찬가지다. 집이라는 것은 물건처럼 쉽게 사고 파는 게 아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일생에 몇 번 정도, 십 년에 한 번 정도 거래하는 것이다. 부동산 '거래절벽'이라며 언론은 정.. 2018. 8.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