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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이야기/schooling127

한 달이 지나고 학교를 옮긴 지 딱 한 달이 지났다. 그래도 명색이 광역시인데 학교 급간 교육 시설 차이가 이렇게 큰 줄은 몰랐다. 사물함도 없고 청소용구함도 없고 칠판은 낡아서 글씨가 잘 쓰이지 않고 뒷게시판은 부직포... 아직도 이런 걸 쓰는 데가 있다니... 아, 참, 교실에 컴퓨터도 없다. 교사가 노트북을 들고 다니는데 영 불편하다. TV도 넘 작고 초라하고... 같은 세금 내고 이럴 수가 있나 싶었다. 교실 환경의 열악함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그곳을 지배하고 있는 어떤 무기력한 분위기였다. 학생들은 가정 환경이 어려워서 생기가 부족한 듯 싶었다. 학비 지원 신청서를 지난 십여 년간 쓴 것보다 올해 더 많이 썼다. 대부분의 사유는 장기간의 실직, 그로 인한 병고였다. 그러다 보니 암 걸린 이도 많고 중풍에 .. 2011. 4. 3.
"선생님, 잘 부탁해요." 전문계고에 내신을 낼 때 주위에서 다들 말렸다. 그렇게 거친 애들 틈에서 어떻게 버티겠냐고. 한 지인은 거기 몇 년 있으면 몸에 '사리' 생길 거라고 농담조로 말하기도 했다. 지원한 계기는 그놈의 호기심 때문이었다. 모든 종류의 학교를 한번 골고루 경험해보고 싶었다. 막상 원하는 대로 전문계고에 발령이 나니 나 역시 걱정이 없지 않았다. 언론에 학생에게 맞는 교사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오는 세상이므로. 내가 맡은 건 1학년 기계과 담임이었다. 입학식에서 처음 본 아이들은 생각했던 것보다는 순한 인상이었다. 몇몇 눈에 띄는 양아치(?)들이 있긴 했으나 전반적으론 얌전했다. 아니, 젊은이답게 발랄하지 않고 다소 기가 죽어 보여서 안타까운 마음도 조금 있었다. 복도에서 한 학생이랑 마주쳤는데 인사를 하길래 안면.. 2011. 3. 3.
교육 시론 _ 내부로의 망명 혹은 낙오자 되기 / 김상봉 제1장 교육과 서로주체성 1. 교육은 인간성의 자기실현의 과정이라는 것. 한국교육이 이미 파탄 상태에 이르렀다는 것은 실상을 공정하게 관찰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다. 이는 한국에서 학교가 더 이상 참된 의미에서 학교가 아니며 교육이 더는 참된 의미의 교육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학교와 교육은 한국에서는 존재이유를 상실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이 학교에 다니는 것은 아직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지옥 같은 생활을 견디고 있지만 학부모들은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지 못하고 또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리하여 학교 아닌 학교와 교육 아닌 교육이 당분간은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자기의 존재이유를 상실한 것은 때가 되면 소멸하.. 2010. 9. 15.
결국 7교시가 부활하는구나 개학하고 넘 바빠서 블로그의 존재를 잊고 있었네. 글은 쓰면 쓸수록 쓸 거리가 많아지고, 안 쓰면 안 쓸수록 쓸 거리가 없어진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쓸 때는 할 말이 넘쳐났는데, 한 달 이상 손을 놓고 있다보니 자판을 두드리는 것이 살짝 어색하다. 다음 주부터 드디어 7교시를 한단다. 중학교에 보충수업이 부활하는 셈이다. 학부모 동의서도 걷지 않고 무조건 신청하라는 가정통신문이 나가고, 결국 그게 말썽이 되어서 새로 통신문이 나갔는데, 거기에는 '불참' 란이 있었다. 그런데 불참 란에는 체크하지 말라고 독려하란다. 북한도 아니고,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니라서 부모님과 의견 일치하에 불참하고 싶은 사람은 불참에 적어내라고 했더니, 전교에서 우리 반에 불참이 제일 많다. (그래봤자 11명에 불과하지만.. 2010. 3. 23.
한 손으로 접은 종이학 “너 장애인이지?” 이 철없는 한 마디로 교실이 발칵 뒤집어졌다. 우리 반 도움실 학생 민지에게 남학생 세 놈이 시비를 건 것이다. 민지는 말귀를 알아듣는 학생이기에 이 사실을 부모님께 전했고, 민지 아버지가 학교에 찾아오시고, 놀린 학생들에게 사과를 받고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학습도움실이란 지체 장애 학생을 위한 특수학급을 말한다. 이 학생들은 수업의 반 정도는 일반 학생들과 같이 통합교육을 받고 다른 절반은 학습도움실에서 특수교육 전공 교사의 지도를 받는다. 도움실 학생을 맡게 되면 일년 내내 긴장한다. 아이들 사이에 말썽이 생기지 않도록 살피는 것이 여사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3월 한 달이 채 가기 전에 놀리는 일이 생겼다. 아직 서로가 서로를 잘 모르는 중에 일어난 일종의 신고식.. 2010. 1. 25.
"선생님은 느껴보셨어요?" 수업 시간에 김용택 시인의 작품을 읽는데 시골학교 아이들과 생활하는 모습을 이렇게 그려놓았다. 그들이 가까이 다가오는 모습이 '보리밭에 오는 봄' 같다고. 그 얼굴들이 '나를 향해 피는 꽃' 같다고. 북한군이 못 쳐들어오는 것이 중2가 무서워서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예측 불가인 중2를 맡고 있던 나는 '어쩜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역시 시인은 시인이구나', '시골 초등학생들이니까 예뻐 보이는 거겠지' 라는 생각을 순간적으로 하면서, 보리밭에 오는 봄이 얼마나 예쁜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한 녀석이 묻는다. "선생님도 이렇게 느껴보셨어요?" 순간 속으로 흠칫했다. 무슨 말만 나오면 꼭 '선생님은요?' 하고 묻는 애들이 있는데 아주 성가신 존재들이다. "글....쎄.... 3월을 맞이하며 .. 2009. 9. 4.
내 마음에 남아 있는 아이 내 마음에 남아 있는 아이 아이들이 입학한 지 채 며칠이 되지 않은 어느 날, 벌써부터 우리 반 녀석 하나가 교무실에서 무릎꿇고 벌을 서고 있었다. 체육 선생님이 다가 와서 카드 놀이하는 것을 보고 빼앗아 왔다며 혼이 단단이 나야겠다는 말을 전했다. 아이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내 눈치만 힐끗힐끗 보고 있었다. 처음부터 눈에 띄는 아이였다. 서른 셋 중에서 유난히 까불고 장난을 많이 쳤을 뿐 아니라 보육원에서 생활하는 아이였기에 내가 기억하고 있었다. 이름도 특이했다. @@이. 다른 학생 같았으면 따끔하게 야단을 쳤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잔뜩 겁을 먹고 있는 @@이 얼굴을 보니 가슴 한켠이 아렸다. 게다가 처음이니 너그럽게 봐주자 싶었다. 일으켜세우며 집에서 하고 학교엔 가져오지 말라고 부드럽게 이른 다음.. 2002. 11.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