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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이야기/schooling127

선생님은 B등급입니다 4월 벚꽃이 다 질 무렵이었을까. 정확히 언제인지는 생각나지 않지만 그 무렵쯤의 일로 기억한다. 핸드폰에 한 통의 문자가 도착했다. 뭔가 싶어 열어보니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선생님의 성과상여급 등급은 B입니다.” 지난 한 해의 업무에 대해 학교 측이 평가한 성과급 등급을 알리는 문자 통보였다. 교사의 성과상여급은 S등급, A등급, B등급의 3단계로 차등 지급되므로 B는 사실상 가장 낮은 등급이었다. 단지 B여서 속이 상한 건 아니었다. 작년에 나는 중학교 3학년 담임을 맡았다. 어느 학교든 고입 원서로 상대적으로 업무가 많은 3학년 담임이 B를 받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교원의 업무는 물건을 사고파는 일처럼 수량화된 성과가 나오는 일이 아니다. 학생을 상담하고 지도하는 일이나 담당 교과의 수업을 .. 2018. 4. 15.
방과후수업 2 "선생님, 방과후수업 꼭 해야 해요?" J중학교에서 이 질문을 들었을 때 조금은 비참한 심정이 되었다. K고에서 학생들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강제 보충수업에 회의를 느껴 중학교로 돌아왔는데 비슷한 질문을 여기에서 또 들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제서야 나는 깨달았다. 이 질문이 내가 가는 학교마다 반복되는 질문이며 비슷한 일이 끊임없이 일어나리라는 것을. 교사들마다 스트레스를 민감하게 받는 부분이 다 다르다. 수업에 스트레스가 많은 교사도 있고, 생활 지도나 담임 업무를 가장 힘들어하는 교사도 있고, 행정적인 업무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교사도 있다. 반면에 행정 업무가 가장 편하다는 교사도 있다. 내 경우에 가장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방과후수업처럼 정규 수업 이외에 학생들에게 배움을 강요하는 것.. 2018. 2. 19.
방과후수업 1 보충수업(방과후 수업)을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을 때는 8월 중순, 한여름의 더위가 채 물러가기 전이었다. 3월 첫날부터 방학 바로 전날까지 보충수업을 하고 2주간의 여름방학을 지나 8월 3일 개학하여 다시 보충수업을 시작했을 때, 나는 더는 견딜 수 없다고 생각했다. 육체적 한계라기보다는 '심리적 한계'였다. 정규수업 7시간을 마치고 피곤한 상태의 학생들에게 8, 9교시 2시간 동안 수능 문제를 푸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했다. 보충수업은 두 가지 방식으로 운영된다. 학생들이 원하는 과목을 선택하는 경우와 정규 수업처럼 일률적으로 배정된 시간표를 그대로 따라야 하는 학교도 있다. 2002년 학생들에게 아침을 먹이자는 밥차 운동이 시작되면서 고교 0교시 보충수업은 폐지되었지만 이후로 각 학교는 편법을 .. 2018. 2. 19.
승진이 뭐 길래 새 학기가 시작된 지 두 달쯤 지났을 무렵이었다. 옮긴 학교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다른 부서에서는 무슨 일이 있는지 잘 모르던 차에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2학년 P반의 담임 이름으로 교무부장이 올라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알기로 2학년 P반의 담임은 기간제 교사로 일하고 있던 이현숙 선생이었다. 자초지종을 물으니 옆자리의 박선생이 해도 해도 너무한다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원리 이선생이 담임을 맡기로 되어 있었는데, 승진 점수가 부족한 교무부장이 점수 때문에 이름만 담임으로 올려놓고 실제 담임 역할은 이선생이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조종례와 담임 업무 모두 이선생이 하고 있으며, 상담일지 작성을 위해 학생 상담은 매일 몇 명씩 불러서 교무부장이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 2018. 2. 17.
중2의 학급 적응기 J중학교는 도심 속 작은 학교였다. 해방 정국에 개교하여 한 때는 한 학년 열 다섯 학급인 시절도 있었으나 도심 인구가 줄어들면서 전교생 수가 급감하여 전교생이 230 여명 밖에 안 되는 작은 학교가 되었다. 한 학급의 인원은 겨우 스물 둘이었다. 한 반에 마흔 명 이상인 시절에 비하면 스무 명 쯤은 거저일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수행평가 등의 채점은 학생 수가 적으니 좀 수월하지만, 소소하게 말썽 부리는 학생 수는 예전보다 훨씬 많기 때문이다. 한 반에서 절반 가량의 학생이 지속적인 관심과 훈육을 필요로 하므로 품이 훨씬 많이 드는 것이 요즘 아이들이다. 2학년 A반도 그랬다. 3월 2일, 담임을 맡은 2학년 A반과 처음 만났을 때 생각했다. '올해 체육대회는 가망 없겠구나' 하고. A반 아이.. 2018. 1. 5.
생각나는 것 메모 ** 창의성 발현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는 분위기. 무수한 시행착오가 허용되는 것. 한 문제 더 맞고 안 맞고에 매달리는 한 창의성은 요원하다. ** 전문가가 되려면 피드백이 필요하다. 교사들에게 자기 수업에 대한 적절한 피드백이 제공되지 않는 게 문제. ** 교과에 대한 아이들의 심리는 단순하다. 아이들은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으로부터 어떤 것을 배울 수 없다. ** 만물의 상호연관성을 깨닫고 배우는 것은 매우 중요하나 그것이 지금의 주제 통합 교육방식으로 얻을 수 있는 건 아니다. ** 배움의 출발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다. 호기심을 학습의 연결 고리로 삼아 우리가 살아갈 세상에 대한 깊은 관심과 이해를 촉진하는 것이 중요. ** 질리안 린(뮤지컬 캣츠, 오페라의 유령 안무가.. 2017. 7. 16.
실패한 정책, 부진아 제로 중3 담임을 맡아 바쁜 나날을 보내던 무렵이었다. 4월 말쯤 되었을 때 갑자기 3학년 국영수 담당 교사와 부장 교사를 대상으로 한 회의가 소집되었다. '학습부진아'에 대한 대책회의였다. 작년까진 아무 말 없다가 갑자기 왠일인가 싶었다. 교육감의 지시 사항이라 했다. 성취도평가의 결과를 학교평가와 교감의 승진에 반영한다는 내용이었고, 그래서 각 학교마다 갑작스럽게 대책회의에 들어간 거였다. 1997년부터 현장에서 일해온 나는 지금껏 수많은 정책사업이 유행처럼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을 지켜봐왔다. 국어과의 예를 들면, 2000년대 초반에는 아침독서가 주류였고 이후에는 디베이트, 책쓰기가 강조되다가 지금은 인문학, 연극 등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런 활동들이 그 자체로는 교육적 가치가 있지만, 각급 학교의 사정을.. 2017. 6. 25.
상혁이의 홀로서기 3월, 새학기가 시작되고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은 때였다. 한 학생이 이유 없이 결석을 했다. 아직 새로 맡은 아이들의 얼굴과 이름도 눈에 익지 않은 때라 '대체 무슨 일이지?' 했다. 옆 반의 정선생이 결석한 학생의 이름을 듣더니, "아, 그 녀석이군요" 한다. 박상혁. 작년에 전학을 왔는데 전학 오기 전 1학년과 전학 온 이후인 2학년 때도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무단결석이 수십 일이 넘었다고 했다. 올 한 해 힘들겠구나 싶어 벌써부터 가슴이 답답해왔다. 상혁이는 전화를 받지 않았지만, 상혁이 어머니와 통화가 되었다. 학생과 연락이 안 될 때 학부모까지 연락이 닿지 않는 경우가 제일 답답한데 연락이 닿아 다행이었다. 나는 상혁이 어머니께 학생, 학부모 상담을 다 요청했다. 상혁이 어머니는 상혁이와 따로.. 2017. 6. 25.
좌파 교과서? 국어 교과서가 국정에서 검인정으로의 전환을 앞두고 있던 2009년의 일이다. 다음 해에 가르칠 23종의 교과서가 도서실에 속속 도착했다. 그간 국정교과서만 사용하다가 교과서를 처음 선정해보게 되어 마음이 조금 설렜다. 교과서 선정 절차는 동교과 교사들로 이루어진 교과협의회에서 3종의 교과서를 우선 추천하면 학교운영위원회가 이 중에서 최종 결정을 하는 것이었다. 당시 나는 교과부장(여타 업무부장과 달리 이름만 부장으로 국어과에서 필요한 사항을 결정하는 직책이다)을 맡고 있어서 교과서 선정의 책임자는 나였다. 교과협의회를 시작하기도 전에 최선생이 K사의 교과서로 정하자고 몇 번 말을 했지만 그다지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국어 교사가 6명이고 어짜피 전체 협의를 거쳐서 결정되기 때문이었다. 몇 종의 교과.. 2017. 6. 22.
배움이 일어나는 조건 _ 다시 중학교로 중학생을 가르치다가 인문계 고등학교 수업을 하게 되면 영혼에 깊은 평화가 찾아온다. 중학교 교실의 소음도, 시간마다 수업을 방해하는 훼방꾼들도,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불쑥불쑥 교실을 돌아다니는 학생도 없다. 고등학생에게는‘조용하라’고 소리 지를 필요도, 친구를 괴롭히지 말라고 윽박지를 필요도 없다. 중학교 남학생들은 말로는 절대 제압되지 않는다. 일정 정도의 위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고등학생들과는 웬만한 건 다 대화로 풀어갈 수 있다. 고등학교 교실의 유일한 단점은 학생들이 자기 몸이 피곤하다보니 자주 조는 경향이 있다는 것 정도다.교사 1인당 학생 수도 중학교보다 고등학교가 적다. 그래서 고등학교는 교사의 주당 수업 시수도 중학교보다 적다. 중학교가 사춘기 학생들을 상대하느라 진을 빼고, 수업도 생.. 2017. 6. 18.
자유를 찾아 떠난 새 다솔이가 학교를 그만둔다고 했을 때 깜짝 놀랐다. 학교 생활을 그 누구보다 열심히 하던 성실하고 발랄한 모범생이 자퇴라니! 다솔이는 K고 2학년 문과반 학생이었다. 당시 나는 1학년 수업을 맡았기에 다솔이를 알지 못했다. 다솔이를 처음 알게 된 건 그 해 5월 교내 시낭송대회에서였다. 다솔이는 다른 고2 여학생 네 명과 한 팀을 이루어 시를 연극으로 발표했다. 다솔이는 할머니 역할을 맡았는데, 어찌나 구수한 연기를 펼치는지 깜짝 놀랐다. 대사 한 마디 한 마디에 세상에 대한 청소년의 신선한 시각과 배꼽 잡는 유머가 깃들어 있었다. 이렇게 맑고 고운 감성의 소유자가 있을까 싶을 만큼 눈빛, 목소리, 표정, 걸음걸이까지 모든 것이 너무나 어여쁜 소녀였다. 다솔이를 다시 만난 것은 10월, '저자와의 만남' .. 2017. 6. 3.
앰뷸런스 소동 여름이 가까워올 무렵, 갑자기 학교에 ‘학업중단숙려제’ 예산이 백만 원 좀 넘게 내려왔다. 고등학생들의 자퇴가 많으니 이를 방지하게 위해 부적응 학생들을 위한 학교 적응 프로그램을 운영하라는 예산이었다. 당시 내 업무는 학교도서관 운영이었지만, 이전에 몇 차례 여행 프로그램 등을 운영해본 경험이 있고 교감의 부탁도 있고 해서 내가 맡게 되었다. 부산 감천마을까지 기차를 타고 여행하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고, 도시를 벗어나 한적한 자연에서 뒹굴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어느 쪽이 나을까 곰곰 생각하다가 D고 동아리 학생들과 함께 걸었던 지리산 둘레길은 한번 가본 경험이 있어서 프로그램 진행이 수월할 것 같았다. 몇 개의 여행 후보지를 두고 고민하다가 나는 최종적으로 지리산 둘레길 3구간으로 결정했다. .. 2017. 5. 28.
뜻밖의 선물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교사상은 이렇다. 십년 만에 졸업생을 만나도 뛰어난 기억력을 자랑하며 '누구야' 하고 우아하고 멋지게 이름을 불러주는 것. 그러나 이것은 희망사항일 뿐, 현실의 나는 언제나 조금쯤 버벅거리며 '이름이 뭐였지?' 하고 되묻게 된다. 수업할 당시엔 알았지만 몇 년 지나고 나면 서로 엇비슷한 이름들이 내 기억 속에서 비빔밥처럼 한데 섞여서 우리 반이 아니고서는 그 중에서 정확한 이름을 골라내지 못하고 마는 것이다. 한 번은 수성못 근처의 까페에 갔을 때다. 친구와 별 생각 없이 테이블에 앉았는데 서빙을 하던 청년이 '김비아 선생님이시죠?' 하며 반갑게 인사를 했다. 우리 반이 아니어서 이름은 가물가물했지만, 훤칠한 이십대 청년의 얼굴 속에서 중학생 소년의 앳된 흔적을 발견하는 데는 그리.. 2017. 5. 20.
모나미 볼펜 D공고에 근무하는 동안 모나미 볼펜을 많이 샀다. 모나미 볼펜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친숙한, 천 원에 한 세트를 주는 값싼 볼펜이다. 수업을 하려면 학생들이 기본적으로 책과 공책, 필기구는 가져와야 하는데 그것이 아무리 말해도 지켜지지 않았다. 나는 모나미 검정색 볼펜을 한아름 사 두고 수업 시간에 펜이 없는 학생들에게 나눠주었다가 거두기를 반복했다. 나눠준 개수 만큼 볼펜이 다 걷히지는 않아서 나는 스무 자루쯤 분실하면 그만큼 다시 사기를 반복했다. 볼펜 개수를 일일이 헤아리면서 아이들과 신경전을 벌이느니 그냥 사는 게 나았다. 7개 반을 맡았는데 그 많은 반을 일일이 필통 검사하고 잔소리를 하며 수업을 시작하는 것은 힘에 부쳤다. 우리 반 한 반이라도 전원 필통을 소지하게 해보려고 했는데, 1학기에는.. 2017. 5. 17.
잊지 못할 도보여행 D공고에 처음 왔을 때 무기력한 학생들의 모습에 많이 놀랐다. 오랫동안 교실에서 패배자였던 학생들에게 교실 수업을 통한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방향은 못 찾고 마음만 괴로울 즈음 ‘책쓰기 동아리’ 공문이 왔다. 지원금 백만 원에 두 눈이 번쩍 뜨였다. 그 돈이면 학생들과 어디든 여행을 떠나는 것이 가능했다. 내가 이곳 학생들에게 경험하게 해주고 것은 ‘도보여행’의 체험이었다. 지금 그들이 보고 있는 것보다 더 넓은 세상이 있다는 걸 보여 주고 싶었다. 자신의 두 발로 조금 힘겹게 다가갔을 때 세상은 비로소 진면목을 드러낸다는 것을, 그렇게 만나는 세상은 머리로 가늠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걸, 우리 가슴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조금 더 크고 조금 더 뜨겁다는 걸 직접 확인시켜 주고 싶었다. 처음.. 2017. 5.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