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이야기/schooling127 책을 많이 읽으면 인생이 바뀔까 "인생을 바꾼 책"이라는 제목의 텍스트나 영상을 요즘 부쩍 많이 접했다. 특별한 내용이 없는 것 같아 끝까지 보지는 않았지만 책이 어떻게 우리 삶에 작용하는가 하는 질문 하나가 마음에 남았다. 내가 동종업계에 종사하는 사람 치고 책을 많이 읽은 건 아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사람 평균을 놓고 본다면 꽤 많이 읽은 편에 속할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대답은? 책을 많이 읽으면 인생이 바뀔까? 내 대답은 'NO'이다. 왜냐고? 책은 우리 정서와 인지 영역에 깊이 작용한다. 감정을 촉촉하게 하고 대상을 합리적으로 분석하는 논리를 길러준다. 상상하는 힘을 길러주고 세계를 넓혀주고 공감 능력을 키워준다. 내 생각을 자라나게 하면서 '자아'를 정립해주고 우리 마음을 장기적으로 형성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왜 인생을 .. 2021. 6. 24. 문신 제거 소동 _ 청소년 무료 문신 제거 "이것 좀 봐봐." K선생님이 핸드폰을 내밀었다. 사진 보관함에는 그반 남학생의 사진이 담겨 있었다. 한쪽 팔과 다리에 온통 뱀이 기어다닌다. 학생이 문신을 이렇게 많이 새긴 건 처음 보았다. 흡사 조폭 같았다. "어머, 너무 심한데요? 이런 모양으로 학교 다닐 수 있어요?" 학교에서는 다 가리고 다닌다고 했다. 더운 여름에도 긴 팔과 긴 바지만 입는다고. 뭐 어려운 점 없냐고 학기초에 상담하니 학생이 문신 이야기를 하더란다. 여름에 더워도 절대 팔과 다리를 못 내놓는 게 답답하다고 하더란다. 학생 부친은 어릴 때부터 화가 나면 야구방망이부터 드는 사람이었다. 학생은 '때리지 마세요'가 아니라 '살려주세요'라고 비는 게 일상이었단다. 부친이 그렇게 폭력적이다보니 학생이 중학생이 되자 반항심에 문신을 새긴.. 2021. 5. 30. 또 한 번의 스승의 날을 지나며 이십 여년 담임 생활 중 학생들과 잘 안 맞는 해도 꽤 있었다. 작년도 그런 해 중 하나였다. 와, 진짜 선생 못하겠다 싶은 마음이 하루가 멀다 하고 들었다. 돌이켜보면 2004년, 2010년, 2015년, 2020년이 내겐 별로 떠올리고 싶지 않은 해였다. 저 네 번 중에 세 번은 담임 일만 고되었는데, 2015년은 총체적 난국, 교장하고도 맨날 싸우고(라고 썼지만 대개 내가 괴롭힘을 당하고) 동료와도 손발이 안 맞고. 그때는 정말 사표 쓰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물론 나는 생계형 교사라 절대 그만두지는 못한다. 아무튼 최근에는 2019년에 참 좋은 학생들을 만났고 2020년이 최악이었다. 우리 반에 말썽꾼 남학생 세 분이 포진해 계셨는데, 이 세 분이 시시덕거리며 힘을 합쳐 늘상 규칙을 위반하니.. 2021. 5. 20. "잘하는 아이는 그냥 놔둬요" _ 핀란드 교육제도의 특징 ** 10여 년 전에 대학원 수업 발표 자료로 정리해둔 글. 당시 핀란드 교육이 화두였던 시기다. 요즘은 핀란드 경제가 좀 어렵고 상황도 여러모로 달라졌지만, '잘하는 아이'는 스스로 잘하니 그냥 놔두고, 공교육에서는 '못하는 아이'를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핀란드 교육의 기본 방향은 여전히 우리에게 매우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스마트 시대가 되면서 무기력하거나 문해력이 부족한 학생들의 수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통교육은 이 시대에 매우 중요하다. 국가는 잘난 엘리트만으로 꾸려지지 않는다. 국가의 지원금에 의지하지 않아도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세금을 낼 수 있는 역량을 가진 보통의 시민을 키우는 일이 수월성 교육 이상으로 중요한 일이다. Episode “일본의 교사들은 왜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있지.. 2021. 4. 22. 교육이념에서 '홍익인간'을 빼자고 발의한 정신 나간 국회의원들 세상에나,,, 그것도 민주당 의원들이다. 할 말이 없다... ‘국민’을 ‘시민’으로 바꾸는 건 좋다. 그런데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자는 고조선 이래의 이 아릅답고 전통적인 가치를 왜 삭제하는가. 우리나라가 미래가 없다면, 나는 국가관도 민족의식도 없는 이런 상황이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youtu.be/U9IXzsugPvM 2021. 4. 22. 세월호 수업에 대하여 사람마다 정말 생각이 많이 다르다는 생각을 요새 한다. 내가 좋아하고, 마음이 통하고, 친밀감을 느끼는 교사라 하더라도 교육에 관한, 수업에 관한 생각은 모두 다르다. 페북에서 내가 평소 내가 아끼고 존경하는 교사들이 세월호 수업을 하는 모습을 보았다. 평소 열정적으로 일할 뿐 아니라 학생을 향한 순정한 마음을 갖고 있는 교사들이다. 그래서 그분들의 수업과 그분들이 지향하는 가치를 존중한다.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세월호 수업은 동의하지 않는다. 교육목표를 무엇으로 잡아야 할지 나로서는 판단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아직 진상 규명조차 제대로 되지 못한 사건이다. 우리는 성인으로서 정부를 향해 진상규명을 줄기차게, 끝까지 요구해야 한다. 하지만 이제 열 몇 살 밖에 되지 않은 학생들에게 이 사건을 통해 어.. 2021. 4. 16. '애착'에 대하여 _ 마음을 붙인다는 것 학교에서 학생들을 관찰하다보면 늘 '어울리지 않는 조합'을 발견하게 된다. '아니 쟤들 둘은 왜 붙어다니지?' '왜 쟤는 다른 좋은 애들 다 놔두고 저 농땡이와 어울리면서 태도가 점점 나빠지지?' 서로 '우정'도 '의리'도 전혀 없으면서 계속 붙어다니면서 말썽 피우는 녀석들도 있다. 사건이 터지면 쉽게 배신하면서도(쟤가 그랬어요, 나는 안 그랬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서 또 화해하고 붙어다닌다. 서로가 서로에게 전혀 도움 안 되는 관계라서 교사로서 맘 같아선 뜯어 놓고 싶지만, 교우 관계에 함부로 개입했다간 큰일 난다. 한 번은 우리 반 여학생이 상태가 너무 심각한 다른 반 남학생 K와 어울리기 시작하길래(남학생이 여학생들과 그룹을 만들어 왕따를 주도하는 보기 드문 케이스가 K였다), 여학생이라 알아들을 .. 2021. 4. 9. 수능 국어 - 이게 무슨 국어인가 올해 하두 속시끄러워서 중학교에 정 떨어져서 다시 고등학교 가야하나 하며 수능 문제를 보는 순간, 이게 무슨 국어인가, 밀장난이지. 1번 문제부터 맘에 안 든다. 쉬운 문제라 답은 2번이나 이게 대체 뭔 의미가 있나. 이후 문제도 마찬가지. 2020. 12. 3. 2020 교무실 풍경 금요일 오전. 우리 반 조례 후 1~2교시 연달아 수업. 코로나로 쉬는 시간도 앞뒤로 지키기 때문에 짬이 거의 없었다. 수업 마치고 교무실 오는데 행정실에서 어제 내가 주문한 명찰의 해당 사이트를 알려달라 한다. 교무실에 오자마자 명찰 사이트를 검색하고 있는데 교감쌤 왈, "선생님, 메시지 확인하셨어요." "네?" "내가 메시지를 보냈는데 아직 안 읽으셨네." "아, 예" 여기까지만 말씀하셨으면 걍 끝났을 것이다. 다음에 교감쌤이 하신 말씀. "다른 사람도 아니고 교감이 보낸 메시지는 좀 읽으세요." 평소 같으면 좋은 게 좋은 거다, 넘어갔을 것이다. 나는 뭐가 옳니 그르니 잘 따지지 않는다. 시간 낭비, 에너지 낭비라서. 하지만 오늘 난 2교시 끝날 때까지 잠시도 쉴 새가 없었다. 게다가 오늘 선도위원.. 2020. 10. 16. "우리는 입시교육을 하지 않아요"__ 간디학교 방문 교직생활 20년을 돌아보았을 때, 내게 가장 뚜렷한 자취로 남은 것은 내가 학교를 여기저기 옮겨다녔다는 사실이다. 초등학교 빼고는 모든 종류의 학교를 다 경험했다(초등은 사대부고 교생실습 때 일주일 참관이 전부). 사립고등학교에서 시작해서 공립중학교, 특성화고(공고), 그리고 일반고(인문계고)에서 다 근무했고 대학에서도 시간강사로 잠깐 가르쳤다. 내가 여기저기 기웃거린 것은 실은 학교에 적응을 못해서였다. 어딜 가나 뭔가와 부딪히고 마음이 힘들고 직장 만족도가 낮아서, 다른 데 가면 혹시 더 나을까 싶어 기회 되는 대로 학교를 옮겨다녔다.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내가 있을 만한 곳이구나 하는 데를 발견하지 못하고 방황 끝에 다시 중학교로 돌아왔다. 내가 떠나면서 제일 아쉬웠던 곳은 K고다. 남녀공학이지만 .. 2020. 10. 6. '한 학기 한 권 읽기' 밴드 라이브 재현(가명)이는 모든 면에서 느린 아이였다. 수업 시간에 다루는 내용을 거의 따라오지 못하는 것 같았다. 교사가 이야기하지 않으면 책도 파일도 꺼내지 않고 멍하니 앉아 있기 일쑤였다. 말도 거의 하지 않았다. 물어도 대답을 듣기가 어려웠다. 담임교사에게 듣기로 어릴 때 큰 병을 앓아서 살아난 것만도 다행이라 했다. 그리고 부모님이 지극정성으로 챙긴다 했다. 그래서 과제는 몇 번 이야기하면 늦어도 해오는 편이었다. 그리고 말썽 피우지 않는 착한 아이였다. 그랬던 재현이가 이번 주에 열리는 국어 밴드라이브에 빠짐없이 참석해서 놀랐다. 우리 학교 중1은 이번 주에 등교하지 않는다. 원래는 홀수, 짝수 번갈아 등교했는데, 대구교육청에서 갑자기 3학년 매일 등교, 다른 학년도 학년별 전체 등교를 하라 해서 1학년.. 2020. 9. 17. 무모했던 시절이 그립네 S대에서 교육학 강의 맡은 친구가 현장교사 특강이 하나 필요하다고 일전에 말해서 종일 비대면 영상 자료를 준비했다. 대학 강의는 박사과정 마쳤을 때 잠깐 하고 끝이었는데, 올해 코로나 정국에 이상하게도 요청이 연달아 와서 비대면 촬영을 또 하게 생겼다. 이번엔 그간 교직 경험에 대한 전반적인 스토리가 들어가면 좋겠다 해서 옛날 자료를 뒤적이다 재밌는 걸 발견했다. 수업일기를 찍어놓은 것 몇 컷에서 이젠 까마득하게 지워진 젊은 날의 나를 본다. 그때는 수업 시간에 노래를 다 했구나. 지금 내가 이러면 학생들이 미쳤다 할 텐데, 젊을 때는 뭐든 용서가 된다. 그 시절의 용기랄까 무모함이랄까 그런 게 문득 그립다. 그리고 또 하나, 시 쓰기 시간에 선생님을 소재로 시를 쓴 학생들의 기록. 서른 넷까지만 해도 .. 2020. 9. 12. 전쟁 나도 시험 치실 분들 학생들을 집으로 보내고 난 오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교실에서 조용히 일하고 있는데(그나마 마스크를 벗을 수 있는 공간), 갑자기 교장실에서 호출이 왔다. 국어 담당교사 좀 내려오라고. 2학년 중간고사 시험 실시 때문에 그런다고. 1학년은 시험을 안 치지만, 마침 2학년 국어 담당교사가 모두 육아시간을 써서 일찍 퇴근하고 없으니 대신 잠깐 참석하라는 거였다. 내가 내려갔을 땐 이미 회의가 거의 마무리된 분위기였다. 우리 학교 2학년은 중간고사를 안 치기로 이미 결정이 나 있었는데, 오늘 갑자기 번복이 되었다. 나는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아니, 학생들이 지금 학교도 꼬박꼬박 못 나와서 배운 것도 없는데 무슨 중간고사냐고, 이 시험이 학생들의 배움에 얼마나 도움이 되느냐고, 게다가 국어는 글쓰기 등으로 얼.. 2020. 9. 10. 곤충박사 이도현 개학 첫날, 안 그래도 정신 없는데 동료 한 분이 아파서 결근. 보강까지 있어서 6시간 수업을 한 날이다. 보강하러 들어간 3학년 교실에서 특별한 친구를 만났다. 한 친구가 맨 앞자리에서 뭔가를 하고 있길래 숙제인가 싶어 보니 웬 지도 같은 것 위에 곤충 이름이 한가득이다. 물어보니, 자기가 좋아서 하는 거라고, 학교에 서식하는 곤충, 동물을 다 조사한다 했다. 100가지 찾는 걸 목표로 조사 중인데 아직 덜 되었다고. 살펴보니 공벌레 같은 걸 제외하면 내가 모르는 이름 투성이다. 순간 답답하던 마음이 환해졌다. 공부 좀 하는 학교에서는 중3만 되어도 다들 영수에 올인하는데 자기 고유의 지적 탐구심과 흥미를 가진 아이가 아직 멸종되지 않아서다. 이런 체제에서도 자기만의 호기심이 여태 살아남았다는 것에 감.. 2020. 8. 18. 방학날 편지를 주고 간 아이 학급당 인원이 많아 절반씩 등교하는 우리 학교는 오늘이 짝수번호 방학, 내일이 홀수번호 방학이다. 애들을 다 보내는데 한 아이가 남아서 선물이라면서 코팅한 작은 편지를 주고 갔다. 중1이라 아직 초딩 분위기가 있는 동심이 배어있는 인삿말을 보니 마음이 따스해진다. 어른들도 다들 이런 때가 있었을텐데 우리는 왜 이리 각박해졌을까. 왜 자주 무상한 감정에 빠져들까. 2020. 7. 30. 이전 1 2 3 4 5 6 7 8 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