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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이야기/schooling127

우리에게 필요한 건 날개 공고 학생들의 로망은 오토바이였다. 아이들은 오토바이 타는 것을 그렇게 좋아했다. 그게 좋아서 일부러 배달 알바를 하는 아이도 있다고 했다. 직원회의 시간이면 으레 담임들에게 아이들이 오토바이 못 타게 하라는 당부가 주어지곤 했다. 몇 년에 한번은 큰 사고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4년 전에도 한 아이가 오토바이를 타다가 교통사고를 당해서 여태 식물인간 상태로 누워있다고 했다. 우리 반 기현이도 오토바이광이었다. 기현이는 날씬하고 균형잡힌 체격에 부드러운 인상의 아이였다. 무뚝뚝한 표정의 다른 아이들과 달리 잘 웃고 싹싹하게 인사도 잘했다. 한 마디로 사고랑은 거리가 멀어보이는 녀석이었는데, 오토바이만 보면 훔치고 싶은 욕망을 억제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였다. 중학교 때부터 벌써 여러 대 손을 대었다가 고등학.. 2017. 5. 14.
아픈 사춘기 "아침은 먹었니?" "쌤이 좀 차려주세요." "어머니한테 차려달라고 해야지." "엄마 깨우면 저 맞아 죽어요." "밤늦게 일하시는구나." "예.” "너도 이제 다 컸으니 네가 일찍 일어나 차려 먹지 그래?" "귀찮아요." D공고에서 내 아침 인사는 항상 ‘아침은 먹었니'로 시작되었다. 부모의 손길이 닿지 못하니, 늦잠 자서 지각하는 애들도 부지기수고, 아이가 갑자기 사라져도 부모가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출근해서 내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학교 안 온 녀석들에게 전화를 걸어 누워 자고 있는 애들에게 당장 달려오라고 잔소리를 하는 일이었다. D공고는 공고 중에서도 지역에서 성적이 가장 낮은 편에 속했다. 첫 해에는 학교에 적응을 하지 못해서 애를 먹었다. 그나마 평화로운 시기는 3월 입학식 후 첫 2~3주.. 2017. 5. 7.
준성이의 압력솥 중학교 담임을 하면서 즐거운 추억 중의 하나는 학기말이나 학년말에 연례행사처럼 반 아이들과 요리를 만들어 먹던 일이다. 첫담임을 맡았을 때 우연히 시작한 것이 아이들이 워낙 좋아해서 해마다 하게 되었다. 메뉴는 다양했다. 떡볶이, 김밥, 케이크, 오무라이스. 교실에서 했다가는 다른 반 수업 방해로 난리가 난다. 조용할래야 조용할 수가 없는 활동이었다. 그래서 가정 선생님께 부탁해서 가사실을 빌리거나 했다. 완벽하게 청소해놓겠다고 약속드리면서. 모둠학습실도 많이 빌렸다. N중학교 모둠학습실은 교실과 떨어진 곳에 있었고 방음장치가 되어 있어서 아무리 시끄러워도 밖에서는 잘 몰라서 활동을 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학교에 소문나서 좋을 것은 없었다. 나는 몰래 살금살금 아이들과 놀았다. 요리를 제일 많이 한 해는.. 2017. 5. 7.
담임 바꾸기 새 학기가 시작된 지 약 두 달쯤 지났을 무렵이었다. 이 때쯤이면 학급이 서서히 안정을 찾아야 하는데, 그 해는 유독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새로 만난 아이들과는 아직 대면대면했고 우리 반 교실이 마치 남의 집 같아서 교실에 들어가는 것이 썩 내키지 않았다. 뭔가 탈출구가 없을까 고민하던 차에 재미난 계획이 떠올랐다. 일주일만 다른 반과 담임을 바꿔보는 것이었다. 2학년 열 반의 담임 선생님들 중에서 내 나이 또래의 체육 선생님인 1반 선생님한테 넌지시 말해보았다. 역시 같은 세대는 무언가 통하는 게 있다. 선생님은 흔쾌히 찬성했다. 말대답을 잘하는 드센 우리 반 아이들이 그 선생님 앞에서 어떻게 변할 지 기대되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는 다음 날 교실을 바꾸어 들어갔다. 체육 선생님은 우리 반 교탁 앞에 .. 2017. 5. 5.
어떤 파라다이스 담임을 맡던 처음 몇 년간 내가 골몰한 일 중 하나는 학생들의 자리 배치였다. 매주 한 줄씩이 아니라 전체를 무작위로 바꾸는 것이어서 손이 많이 갔다. 일 년 동안 학급내 모든 친구들과 골고루 앉아보게자는 취지에서였는데 한번 시작하고는 늘 후회했다. 지난 좌석표를 죄다 훑어보면서 이번 주에 새로운 짝과 앉을 수 있게 자리를 배정하는 것이 꽤 품이 드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매주 일요일 저녁이면 나는 속으로 몹시 귀찮아하며 새 좌석표를 만들곤 했다. 어쩌다 내가 잊어버리고 그냥 출근해서 월요일에 자리를 못 바꾼 날이면 학생들은 아우성을 쳤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하루만 기다리라면서 아이들을 달래곤 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어떤 반은 한 달 내내 자리를 안 바꾸어도 학생들의 불만이 없는데, 우리 반은 .. 2017. 5. 3.
정글의 법칙 해마다 연말이 되면 학교는 교사들로부터 업무분장 신청서를 받는다. 다음 학년에 맡을 업무에 대한 수요 조사를 하는 것이다. 나는 3학년을 신청해놓고 동료들에게 말했다. 현수만 우리 반 아니면 아무 걱정 없겠다고. S중학교 3학년 학생들은 다른 학년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수수한 학생들이었고, 1학년 때도 호흡을 맞춰본 적이 있기에 다시 만나는 것이 크게 부담이 없는 학년이었다. 옛말 하나도 그른 법이 없다는 걸 알았다. 말이 씨가 된다더니 하필이면 현수가 딱 우리 반에 배정된 거다. 작년에 사고란 사고, 말썽이란 말썽은 혼자 다 부린 싸움꾼, 안현수! 담임 교사에게 시시때때로 반항을 일삼은 건 물론이다. 3월 새학년 새학기를 시작하는데 마음에 알 수 없는 먹구름이 왔다 갔다 했다. 첫 한 주일은 별일 없.. 2017. 4. 23.
소라의 짧은 여행 N중학교 2학년 2반은 전교에서 가장 시끄러운 반이었다. 수업 한 시간이 끝나면 교사가 쓰러질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만큼 사람 혼을 쏙 빼놓는 애들이었다. 남학생들만 시끄러운 게 아니었다. 여학생들도 드센 아이들만 모아 놓았다. 40명이 와글와글하기 떠들기 시작하면 여기가 대체 교실인지 시장바닥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그 반 아이들이 칠판 앞에서 서로 부딪히면서 장난을 심하게 치다가 칠판이 떨어져 내렸는데 그 때 그만 한 녀석의 손끝이 잘리고 만 것이다. 그 다음 벌어진 일은 무엇일까? 그 잘라진 손끝의 살점을 찾기 위해 온 반 학생들이 오후 내내 쓰레기통 하나까지 다 엎어가면서 찾았다. 찾았으니 다행이었다. 그걸 들고 너무 늦지 않게 봉합 수술을 하러 달려갔고 다행히 수술은.. 2017. 2. 12.
열 세 통의 편지 초임 교사 시절의 나는 화를 참 많이 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젊어서 열의는 넘쳤지만 사람의 '마음'이란 게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잘 몰랐다. 내가 이끄는 대로 잘 따라오지 않는 학생들에게 매섭게 화를 내곤 했다. 이솝우화 '태양과 바람'에 나오는 지혜도 모른 채로 말이다.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것은 사나운 바람이 아니라 따스한 햇빛인데도. 지금 생각하면 교실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필요한 인간관계의 스킬과 자기조절능력이 부족했지 않았나 싶다. 나는 매사에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대응한 적이 많았다. 학생들의 날선 반응을 부드럽게 수용하면서 교재로 연결하는 법을 몰랐던 것이다. 가끔 선배와 이런 이야기를 한다. 지금 우리가 90년대 방식대로 말하고 행동한다면 이미 여러 번 고소를 당했을 거라.. 2016. 1. 8.
다시 돌아온 말 오후 수업을 끝내고 교무실을 향해 저벅저벅 복도를 걸어가고 있을 때였다. 학생들의 사물함이 놓인 모퉁이를 별 생각 없이 지나칠 무렵, 마침 그 앞에 있던 남학생 한 녀석이 인사를 하더니 말을 붙인다. “선생님, 오늘 기분이 어떠세요?” 남학생들이야 복도에서 마주쳐도 대개는 고개만 끄덕 하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 의외의 다정한 인삿말이 바깥 날씨만큼이나 서늘해지던 마음을 순간 온화하게 녹여주었다. 속으로는 ‘오늘 정말 피곤한 날인데’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입 밖으로는 전혀 다른 말이 나왔다. “오늘 꽤 괜찮은 날인 것 같아.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 물어?” 그러자 그 녀석이 이렇게 대답한다.“선생님이 늘 저희에게 오늘은 기분이 어떠냐고 물어보셔서요.”“아, 그랬니?”그 녀석과의 짧은 대화는 .. 2014. 12. 16.
메모 - 곽노현 강연을 듣고 1. 스웨덴은 일 년에 학교에 오는 공문이 서너 개라 한다. 일주일도 아니고 한 달도 아니고 일년에.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개가 쏟아진다. 한국 학교만큼 관료주의가 심한 곳도 없다 한다. 교육부와 교육청이 교육활동을 지원하는 게 아니라 교사와 학교를 통제하는데 골몰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일본이 남긴 식민교육의 잔재로서 해방 후 7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의 학교제도 곳곳에 남아 있다. 제도는 결국 100년을 살아남는 것이다. 제도를 바꾸는 일의 중요성을 다시 생각. 2. 곽노현은 우리나라 학교의 조직 풍토, 즉 교장과 교사, 교사와 동료 교사의 관계가 바뀌지 않고는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민주 시민으로서의 기본 자질을 길러줄 수 없다고 보고 있었다. 공교육이 사교육과 다른 점, 공교육이 반드시 해야 할 일들.. 2013. 11. 8.
자사고와 특목고, 삶의 다양성을 배제한 교육 자사고와 특목고, 삶의 다양성을 배제한 교육 학교 현장에서 십수 년을 근무하며 알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교육에 관한 한 가지 커다란 ‘환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일상적인 삶의 공간과 분리된 어떤 특별하고 좋은 교육이 있다고들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색다른 수업 방식이나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서 교육의 다양성과 질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학교 선택의 기회가 보장될수록 더 나은 교육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자사고와 특목고의 존립을 떠받치고 있는 논리입니다. 교육을 공공재가 아니라 상품과 같은 소비재로 바라보는 시각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러한 논리에 우리가 쉽게 간과하는 함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짜 다양성은 교육 프로그램의 다양성이 아니라 삶.. 2013. 6. 9.
"그 길에 사람이 있었네" - 동아리 여행을 마무리하며 에필로그)) 그 길에 사람이 있었네 - 책쓰기 동아리 활동을 마무리하며 전문계고에 처음 와서 무기력한 학생들의 모습에 많이 놀랐다. 오랫동안 교실에서 패배자였던 학생들에게 교실 수업을 통한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방향은 못 찾고 마음만 괴로울 즈음 ‘책쓰기 동아리’ 공문이 왔다. 지원금 백만 원에 두 눈이 번쩍 뜨였다. 그 돈이면 학생들과 어디든 여행을 떠나는 것이 가능했다. 내가 여기 학생들에게 주고 싶은 건 ‘도보여행’의 체험이었다. 지금 그들이 보고 있는 것과는 ‘다른’ 세상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자신의 두 발로 조금 힘겹게 다가갔을 때 비로소 진면목을 드러내는 세상. 그렇게 만나는 세상은 다르다는 걸, 우리 가슴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조금 더 크고 조금 더 뜨겁다는 걸 보여.. 2011. 12. 13.
천재 시인 성진이 N 중학교 3학년 학생 중엔 독특한 네 녀석이 있었다. 선도부원이었는데 학교에 공부하러 오는 게 아니라 일하러 오는 것 같은 애들이었다. 웬만한 일꾼 저리 가라 할 만큼 일을 잘했다. 학교에는 도서관에 책을 옮기거나 교과서를 배부하거나 학년실로 배달되는 상자를 나르거나 하는 등 소소하게 손이 가는 일이 날마다 있는데 주사님 한 분으로는 부족할 때가 많다. 이 애들이 선생님들 신부름을 비롯해서 학교에 일만 생겼다 하면 카트를 끌고 와서 쓱쓱 처리했다. 2학년 말쯤부터 시작하던 것이 3학년 되어서는 전교에 유명해졌다. 수업 시간에도 수업을 안하고 일하러 가 있는 일이 종종 있었다. 자기들이 워낙에 좋아서 하는 일이라 선생님들도 묵인해주곤 했다. 왜 그리 일을 좋아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자신들이 잘하는 일이라.. 2011. 8. 6.
전문계 고등학교에 와서 드디어 방학. 우여곡절 끝에 한 학기가 지났다. 몇 달이지만 일 년쯤 훌쩍 간 것 같다. 3, 4월 적응하느라 어리버리 지나가고 5월부터는 날마다 가슴을 쳤다. '아니 내가 어쩌자고 여기를 왔지?' 이 모든 걸 미리 알았다면 이곳을 선택했을까. 내 대답은 확실히 '아니오', 이다. 인문계의 야자와 보충을 피해서 이리로 왔더니 그보다 훨씬 더한, 그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비합리성' 이 이곳에 있었다. 냥냥군 왈 "내가 뭐랬어? 가지 말랬잖아. 누난 꼭 그걸 경험해봐야 알아?" 그랬다.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문제는 아니었는데 머리 나쁘면 직접 경험해보고 아는 수밖에.... 내신 쓰기 전, 그저 애들이 공부를 좀 못하겠거니 한 내 생각은 전적으로 잘못되었음이 드러났다. 학생들은 그저 공부를 못하는 것이 아니.. 2011. 7. 17.
핀란드, 스웨덴, 프랑스 혁신학교 지난 목욜, 학교혁신 국제심포지엄에 가서 스웨덴, 핀란드, 프랑스의 사례를 들었다. 통역사와 함께 한 발표라서 내용이 싹싹 안 들어오고 늘어지는 감은 있었지만, 그 나라의 교장/교사가 직접 이야기를 전해주어서 글이 아닌 피부로만 느낄 수 있는 어떤 감응이 있었다. 그분들의 소신과 철학, 그리고 권위라곤 전혀 없는 소탈한 말하기 방식이 좋았다. 유럽의 학교들은 지속적인 '영감'을 줄 수 있는 학교환경을 창조하고자 했고, 어떤 기능/능력이 아니라 '가치'를 기르는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미 교과서 진도를 나가는 방식을 버리고 한 학기 동안 큰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방식으로 공부를 하고 있었다. 핀란드 스트렘뵈리 초등학교 (프레네의 철학을 따름) - 옛 건물을 리모델링하면서 교육환경을 굉장히 .. 2011. 5.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