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이야기/schooling127 칠판 가득 개학 인사 7반 학생들이 흥이 많다. 그만큼 시끄러워져서 힘은 좀 들지만. 열네 살 짜리들의 귀여운 아부~ 2022. 8. 19. 여자 반장의 위엄 나보다 낫다 ㅋㅋ 2022. 8. 16. 삼각김밥과 자존감 학생문화센터에 학년 전체가 체험학습을 간 날, 아이들은 도시락을 준비해와야 했다. 점심시간에 펼치니 각양각색 개성 넘치는 도시락들이 그야말로 예술이었다. 부모님들의 사랑이 물씬 느껴지는 도시락이었다. 옆반의 한 친구는 삼각김밥을 싸왔다. 학교에서 자해 소동을 두세 번 벌인 적 있는 유명한 분이다. 수업시간마다 자기는 오래 안 살 거라는 둥, 곧 죽을 거라는 둥 넘 심한 말을 반복해서 아예 발언권을 잘 주지 않는다. 혼자 삼각김밥 먹는 게 남들 보기에 창피했던지 담임쌤 말로는 혼자 주빗주빗 일어나서 다른 곳으로 가더란다. 점심은 거른 채. 우리 반의 J도 삼각김밥을 싸왔다. 하지만 공부도 꽤 잘하는 편이고 가족관계도 좋은 J는 아무렇지도 않게 펼쳐서 먹고는 오히려 여기저기 기웃거리면서 다른 애들 김밥, 반.. 2022. 7. 3. 소금사탕 소설 수업 중 주인공 문기처럼 집에 남몰래 숨겨놓은 물건이 있냐니까 우리반 모씨, 언니가 먹을까봐 소금사탕 숨겨두셨다고. 소금사탕이 뭐냐니까 소금맛 나는 일본 사탕이 있다고. 다들 넘 궁금해해서 다같이 소금사탕을 맛보기로 했다. ㅋㅋㅋ 오늘 드디어 택배 도착. 내일 1교시에 풀기로 ㅎㅎㅎ 2022. 6. 23. 교실 안의 다양성 한 분은 무술 발차기 연습하다가 청소용구함 발로 차서 문짝을 깨시고 (거리도 못 재는 넘이 뭔 무술이냐고 한 소리) 또 한 분은 시키지도 않았는데 쉬는 시간에 심심하다고 청소용구함을 싹 정리해놓으셨다. 둘 다 남학생. 심심해서 문짝 깨신 분과 심심해서 정리하신 분. 이래서 세상이 돌아간다 ㅎㅎ 2022. 6. 10. 연극, 시간을 파는 상점 “오늘의 평범한 시간이 내일의 특별한 시간이 된다.” 동아리 전일제 체험학습으로 동성로 여우별아트홀에서 본 서울 공연중인데 울 학생들 위해 하루 내려온 팀. 4명 배우들의 1인 다역과 고등학생 연기가 공감과 매력을 선물. 마치고 스벅 쿠폰으로 늦은 점심. 자라 쇼핑 후 집에 오니 한 것도 별로 없는데 넘 피곤하다. 벌써 체력이 다 되면 안 되는데 5월 들어서 계속 비실비실.. 나이 탓인가. 학교 근무가 체력적으로 넘 힘들 때가 많다. 2022. 5. 17. 세종대왕 생신날 아침에 카톡이 주르르 왔길래 열어보니 울반 아이들 릴레이 인사. 반장이 시작하니 줄줄.. 나도 얼른 답장. 뒤늦게 반톡 본 아이들로부터 오후에 드문드문 개별톡. 저녁에야 사태 파악한 녀석들 톡. “사랑합니다”를 한 사람으로부터 들을 때와 여러 사람으로부터 종일 들을 때 느낌이 다르다. 숙연해진다… 실은 담임이 항상 넘넘 적성에 안 맞아서 내년엔 어떻게든 안 해보려고 뭔 부장을 해야 하나, 잔머리 굴리고 있었는데.. 말 한마디의 힘. 따스한 하루. 2022. 5. 15. 광기의 현장 올해 반 뽑기를 잘했다. 심각한 학습결손 학생 없고 남학생들이 성품이 모두 점잖으시다. 산만하거나 튀는 분들 없고 여학생들도 분위기를 휘어잡는 분 없고 반장, 부반장 의젓, 다들 무난하고 수수하다. 그래서 남녀 다 친하다. 하지 말라고 딱 한 마디 하면 다들 지킨다. 3월부터 한 번도 소리친 적도 화낸 적 없다. 이러기가 정말정말 어렵다. 그래서 10년에 한 번 걸릴까 말까 한 조합. (재작년엔 폭탄 조합이라 사표 쓸 뻔) 3월초에 칠판 낙서 금지라고 한 마디 했는데 다들 너무 잘 지켜서 중간고사 끝나면 하루 날 잡아 점심시간에 맘껏 낙서할 기회를 주기로 했다. 그날이 오늘. 소소하게 몇이서 그림 그리겠지 하며 교실 갔다가 애들 보고 뒤집어짐. 낙서가 아니고 광란의 장. 칠판 전체를 다들 미친 듯이 칠하.. 2022. 5. 4. 세상을 똑바로 보기 전시회를 가면 유명작보다 의외의 것들이 눈길을 사로잡을 때가 있다. 간송문화전도 그랬다. 예전 서울 DDP와 대구미술관에서 봤는데, 대구 전시는 회화 위주였었고 난 서울 전시에서 놓친 신윤복의 ‘미인도’를 보러 갔다. 미인도는 물론 훌륭했으나 놀라움을 안긴 작품은 따로 있었다. 조선 전기 선비들의 그림 두 점. 왜 놀라웠냐고? 그들이 그린 소가 조선의 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뿔을 보면 우리소랑 다르다. 아마 중국?? 그리 대단한 존재라 할 수는 없는 소조차 눈에 보이는 대로 못 그리는 선비들의 정신세계가 당황스러웠다. 관념적 이상향을 그리는 게 당시 화풍이라 해도 소까지 그럴 필요가 있을까. 사대주의라 하기에도 너무 남루했고.. 그런 그들이 한글을 어떻게 대접했을지는 뻔하다. 소도 보이는 대로 못 그리.. 2022. 2. 22. 제발 줄 좀 그만 세우자 내가 보기에 우리나라 고등학교는 답이 없다. 내신 등급 체제를 고수하는 한. 1등급이 몇 명 이상이면 그 학교 1등급이 없어지길래 어떻게든 시험 문제 꼬아서 내야 하고, 한 문제 때문에 등급이 갈리고, 애들 피말리고, 그래서 무슨 교육이 된단 말인가. 수능은 더 문제고. 줄을 공정하게 세우는 것이 교육의 목표인가. 교육이 줄 세우기인가. 개인의 깨어남이지. 책장 정리를 하다가 옛날 책 사이에서 성적표가 하나 툭 나왔다. 자그마치 약 30년 전의 성적표. 등수 보고 내가 깜짝 놀랐다. 아니 나 공부 잘 했었네? 등수에 큰 관심 없었고 또 고3 때만 잘해서 내가 공부 잘했다는 자의식이 거의 없었다. 지방국립대를 나와서 잘난체 할 것도 별로 없었고. 지방대를 나온 건 인간성에는 아주 도움이 된다. 뭐, 잘난 .. 2022. 2. 6. 배움은 책상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1월 1일 일출을 보러 동네 천을산에 올라간 날, 학생들이 친구들끼리 많이 올라왔다. 울 학교 학생들도 몇 만났으니까. 해돋이를 보고 하산하는 길, 고등학생 몇의 대화가 귓전에 박힌다. 대륜고 같았다. "여기가 해발 천 미터쯤 되나?" 다른 녀석이 말한다. "여기 해발 써도 되나?" 참다참다 못해서 참견했다. "여기 200미터예요." 실은 156미터다. 학생이 100미터에 충격받을까봐 대충 200미터라고 말해줬다. 그리고 학생들을 지나쳐 내려가는데 뒤에서 난리가 났다. "야 이 바보야, 아주머니께서 얼마나 답답하면 말해주고 가셨을까?" "한라산이 1800미턴가 그런데 여기가 우째 천 미터겠노?" "완전 바보다 바보.... 어쩌구저쩌구...." 한라산은 1950미터인데, 난 속으로 말했다. 그리고 알았다... 2022. 1. 14. 지식과 지혜의 차이 지금까지 들은 설명 중 가장 간명하고 핵심을 잘 표현했다. - 지식 : 쌓는 것, 아는 것이 많은 것. 고정관념을 갖게 됨. - 지혜 : 지식과 반대 방향. 고정관념이 없는 것, 사물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음. 그동안 배운 지식을 내려놓는 것, 생각이 열려 있고 선입견이 없기에 창의적. 해체의 지혜. 허무는 게 지혜이므로 머리가 좋다고 되는 게 아니고 모든 사람이 갈 수 있는 길. 불교 수행의 길. https://youtu.be/rfkuHFQEYg8 2022. 1. 14. 엘리베이터에서 본 한 장면, "학교 안 가면 안 돼?" 우리집 19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데 아래아래층 쯤에서 세 가족이 탔다. 대여섯 살 되어보이는 여자아이와 삼십대로 보이는 부부. 키가 작은 그 꼬맹이가 갑자기 심각한 눈빛으로 엄마를 올려다보며 또록또록 말을 한다. "엄마, 나 학교 안 가면 안 돼?" 아이의 엄마, 아빠도 갑작스런 질문에 당황한 표정으로 물어본다. "왜?" 아이의 대답. "문제가 너무 어려워." 이어서 너무나 진지하게 당부를 한다. "나 입학 안 하면 안 돼? 학교 안 가면 안 돼?" 대여섯 살이 아니고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인 모양이었다. 엘리베이터는 1층에 금방 도착했고 가족은 사라졌지만, 내가 본 그 장면이 한동안 마음을 떠나지 않았다. 딱 보니 짐작 가는 상황이다. 초등 입학한다고 선행학습을 빡세게 시켰던 듯. 아.. 2022. 1. 10. "내 시간에는 안 그러는데..." / 교사가 하지 말아야 할 말 수업시간에 심하게 방해하는 학생들이 있다. 페북에서 구본희 선생님은 그 학생들이 자기 시간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어느 시간에나 그럴 것이 뻔하므로 자기라도 계속 말을 한다고 했다. 다른 선생님들은 왜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본인의 수업 장악력이 떨어진다는 소리를 들을까 겁내서다. 당연히 말썽 많은 학생이 내 시간에만 말썽을 피울 리가 없다. 다만 그 학생도 사람인지라 1교시부터 7교시까지 항상 말썽을 피우진 않는다. 지도 사람인데 조용히 보내는 시간도 있고 선생님이 좀 더 만만하거나 아니면 지 기분에 따라 수업을 흔드는 것이다. 또 일주일에 한두 시간 든 과목과 매일 든 과목이 학생 관찰에선 차이가 나기도 한다. 작년 동학년은 가장 마음과 손발이 안 맞는 학년이었다. 나도 그 이유가 대체 뭔가, 몇.. 2021. 10. 20. 부모의 역할 vs 교사의 역할 내 친구들의 자녀가 이제 대체로 중고딩이 되었다. 초딩도 있지만 중딩이 더 많다. 대부분 자녀교육에 대한 걱정들을 토로한다. 그 이야기를 죽 듣다가 알았다. 많은 이들이 부모와 역할과 교사의 역할을 혼동한다는 것을. 부모와 스승은 역할이 다르다. 부모가 모든 것을 다 해줄 수가 없다. 부모와 가족이 보살핌과 애정을 주는 존재라면 스승은 인생의 방향을 밝혀주는 존재다. 어떤 것에 강한 호기심을 갖게 되거나 매혹되거나 열정을 쏟게 되는 건 그 길을 보여주는 스승이 있기 때문이다. 꼭 사람이 아니더라도 자연일 수도 있기에 교사보다는 스승이라는 단어를 썼다. 학생이 공부하는 주제를 사랑하게 만드는 게 교사의 역할이다. 공부를 좋아하게 하는 건 부모가 할 수 없다. 부모가 할 수 있는 최상의 일은 어릴 때부터 정.. 2021. 8. 22. 이전 1 2 3 4 5 6 7 ··· 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