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sheshe.tistory.com

전체 글1868

리지외의 데레사 요즈음 간간이 리지외의 데레사 성녀가 떠오르곤 한다. 예수아기의 성녀 데레사, 작은꽃(소화) 데레사라고도 불리며, 프랑스의 주보 성인이기도 하다. 갈멜 수녀원에서 스물 네 해의 짧은 생을 살다 갔지만 20세기 가톨릭 교회에 가장 심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그녀의 영성은 '사랑' 그 자체이다. 그녀는 일상의 모든 일들을 놀라운 사랑을 갖고 행함으로써 모든 이가 따라 걸을 수 있는 을 보여주었다. 그녀의 사랑은 지적이고 철학적인 사랑이 아니라 하느님의 현존에 근거한 구체적인 사랑, 존재의 핵심에서 우러나는 사랑이었다. 이 지상에 완전한 사랑이 존재하지 않음을 슬퍼했고 수녀원이라는 한정된 공간 속에서 자기가 맡은 일상의 자질구레한 일들을 세상을 위한다는 기쁨으로 최선의 노력을 바쳐 행했다. 자신의 작은 자.. 2005. 11. 20.
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 - 스티브 도나휴 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 카테고리 자기계발 지은이 스티브 도나휴 (김영사, 2005년) 상세보기 제목이 눈길을 끌어서 읽게 된 책이다. 사막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지 꽤 오래 되었다. 아주 오래 전, 친구가 여행 중에 사막 캠핑에 참가한 남아공 사람을 만났는데, 사막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오직 자기 존재만이 느껴지더라고, 낮에는 방향을 찾기 어려워 밤에 별을 보며 이동했노라고, 아주 놀라운 경험이었다고 말하더란다. 그 이야기를 들은 이후로 사막은 내 가슴속 한 부분을 차지해왔다. 시간이 정지한 듯한 그곳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태초의 시간 속에 젖어들고 싶었다. 지평선 위로 뜨는 별도 보고 싶었다. 물론 사막은 그런 낭만적인 곳이 아니라 실제로는 온갖 위험으로 가득차 있지만. 모로코.. 2005. 11. 19.
설화로 물든 지리산 연하선경 - 지리산의 가을 ③ 한 번 몰아치기 시작한 바람은 쉬 그치지 않았다. 바람은 구름을 모두 흩어버릴 때까지 산을 향해 계속 달려올 모양이었다. 싱싱 불어대는 바람의 노래가 어찌나 신이 나던지 나는 단숨에 장터목 대피소까지 다시 올라갔다. 장터목에 서니 이리저리 오가는 구름 사이로 눈과 서리에 잠긴 산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한 무리의 검은 새들이 떼지어 날아왔다가 저 편으로 사라져갔다. 날씨가 좋아질 걸 생각하니 마음은 길에 대한 기대로 한껏 부풀어 올랐다. 막 출발하려는데, 어제 세석에서 헤어졌던 어린 친구가 대피소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반가워 손짓을 하니 그이 얼굴에는 미소가 한가득이다. "누나, 정말 아름다웠어요." 걸어오는데 갑자기 하늘이 맑아지더란다. 경치가 얼마나 좋던지 자기가 산에서 볼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 2005. 11. 7.
구름이 흩어지자 눈부신 새아침이 - 지리산의 가을 ② 육체적 피로는 역시 가장 좋은 수면제 역할을 했다. 추위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몇 시간은 단잠을 잘 수 있었다. 새벽 여섯 시 반, 하늘에 붉은 기운이 잠시 비치는가 했더니 이내 사그라들었다. 날이 밝기를 고대했는데 간밤에 몰려온 구름은 산을 송두리째 뒤덮고 말았다. 산은 어제의 찬란한 빛을 완전히 감춘 채 짙은 장막 속에 몸을 숨겼다. 오늘 걸을 길은 뱀사골 대피소에서 장터목 대피소까지 18.5km. 내 걸음으로는 꼬박 하루가 걸리는 길이었다. 능선을 따라 이어진 종주 코스라서 길이 그다지 험하진 않지만, 찌푸린 날씨는 산행의 즐거움을 반감 시키기 마련이다. 가을의 운무는 여름과 또 달랐다. 안개에 젖은 신비한 여름 숲속을 습한 공기를 허파 가득 들이마시며 따라갈 때의 낭만과는 딴판으로 가을의 운무는 스.. 2005. 10. 31.
새벽녘에 만난 야생 돌고래들의 춤 - 카이코우라(Kaikoura) 2 카이코우라에 온 이유는 돌고래를 보기 위해서였다. 카이코우라는 야생 돌고래 투어로 유명하다. 배를 타고 인근 해역에 서식하는 야생 돌고래 무리를 직접 찾아간다. 돌고래 투어는 새벽과 오후에 각 한 차례씩 있었다. 새벽이 돌고래를 만날 확률이 더 높다고 해서 나는 새벽 투어를 신청했다. 돌고래를 보는 방법은 두 가지다. 그냥 배에서 구경하는 것과 스킨 장비를 갖추고 돌고래들과 함께 수영하는 것. 수온을 물어보니 18도란다. 오픈워터 다이버인 나는 18도의 바닷물이 얼마나 차가운지 알기에 그 말을 듣자마자 수영을 포기했다. 하지만 서른 명쯤 되는 투어 신청자 중에서 나를 포함한 세 명을 제외하곤 모두 수영을 선택했으니 서양애들의 육체적 강건함은 알아줘야 한다. 다음 날, 투어용 배는 어스름할 즈음에 카이코우.. 2005. 10. 28.
산도 붉고, 물도 붉고, 내 마음도 붉고 - 지리산의 가을 ① 그대가 곁에 있어도 그대가 더욱 그립다고 했던가. 가을이 바로 곁에 다가왔는데도 가을이 한층 더 그리워졌다. 이 가을을 온통 품에 안고 싶어서, 가을의 심장부로 뛰어들고 싶어서 산을 찾았다. 내 생애 최고의 가을, 그 가을이 지리산 속에 있었다. 태풍이 없어서인지 올 단풍은 유난히 고운 빛깔을 뽐냈다. 산에서 보낸 사흘 동안, 원없이 걸었고, 가을의 정수를 오롯이 들이키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한낮의 햇살이 환하게 내리쬘 무렵 뱀사골 계곡의 입구, 반선에 도착했다. 지난 여름 폭우가 쏟아졌을 때 이후 두 달만의 지리산행이다. 계곡길에 들어서자마자 원시림이 주는 광대한 기운이 나를 감동시킨다. 숲은 까마득하게 오래된 느낌을 주는 동시에 막 새 옷으로 갈아입은 듯 해맑은 표정으로 내게 인사를 해왔다. 이.. 2005. 10. 28.
[뉴질랜드] 카이코우라는 아름답다 - 카이코우라(Kaikoura) 1 카이코우라는 아름답다 - 뉴질랜드 카이코우라 1 카이코우라는 아름답다. 뉴질랜드의 하늘빛, 산빛, 물빛, 바다빛, 어느 하나 특별하지 않은 것이 없건만, 이 작은 마을에 도착했을 때, 이곳이야말로 '아름답다'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구나, 생각했다. 날씨도 기분 좋게 선선했고, 산과 바다가 서로를 품에 안은 반도의 지형이 다른 어떤 곳보다 내 마음에 여유와 평온함을 선사한 곳. 다시 말해, 카이코우라의 아름다움은 피오르드랜드의 스펙터클한 아름다움과, 카후랑기의 무성한 숲, 아벨 태즈만의 뜨거운 여름과는 달리, 우리가 편안하게 산책하기 좋은, 국립공원이 아닌, 사람 사는 마을을 옆에 둔 어떤 온화함이 있는 곳. 아무튼 카이코우라는 참 아름다웠다.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언덕 아래 자리잡은 YHA까지 바다를 따라 .. 2005. 10. 23.
[뉴질랜드] 한 번은 사고를 칠 줄 알았어! - 히피 트렉(Heaphy Trek) 한 번은 사고를 칠 줄 알았어! - 뉴질랜드 히피 트렉 (Heaphy treck) 배낭여행의 매력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저마다 생각이 다르리라. 내 경우 그것은 예기치 못한, 우연한 만남이 주는 놀라움 및 기쁨과 결부되어 있다. 모든 것이 꽉 짜여진 일정대로 전개된다면 그건 여행이 아니라 일상이 아닐까. 시간표를 철저히 지켜야 하는 일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여행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요소는 '우연성'이다. 일상에서는 비가 쏟아지거나 흰 눈이 폴폴 쌓여도 해야 할 일은 변함 없다. 꽃이 피고 낙엽이 져도 주어진 일은 마쳐야 하고 퇴근 시간은 지켜야 한다. 하지만 여행은 다르다. 소낙비가 내리면 모든 일정을 접고 까페에서 오전 내내 커피를 마시며 빈둥거려도 좋고, 햇살이 찬란하다면 박물관 대신에 숲길을 .. 2005. 10. 21.
[뉴질랜드] 편안한 휴식, 모투에카(Motueka) 청명한 날씨, 맑은 하늘, 시원한 바람!!! 모투에카에 온 것은 정말 잘한 일이었다. 솔로 여행자에게 숙소는 여행지의 기분을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 낯선 행선지들을 거치다보면 피곤할 때도, 힘들 때도 있는 법. 그럴 때 집처럼 편안한 숙소, 사람들의 미소와 작은 친절, 따끈한 차 한 잔, 정말 작디 작은 것들이 마음에 새겨지고 떠나고 나서도 그곳을 추억하게 만든다. 모투에카 YHA가 바로 그런 곳이었다. 원래 내 일정은 프란쯔 조제프 빙하에서 남섬 북부의 넬슨으로 가는 것이었고 모투에카는 계획 속에 들어있지 않았다. 빙하 트레킹 이후 여독이 한꺼번에 몰려온 게 문제였다. 넬슨은 프란쯔 조제프 빙하에서 하루종일 걸리는 길, 나는 만 하루 동안의 버스 여행을 견뎌낼 자신이 없었다. 중간 지점인 그레이마우스까.. 2005. 10. 20.
[뉴질랜드] 새들이 차지한 곳과 사람이 차지한 곳 - 아벨 태즈만 코스털 트렉(Abel Tasman Coastal Trek) 새들이 차지한 곳과 사람이 차지한 곳 - 아벨 태즈만 코스털 트렉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자연을 만나고 싶다면 뉴질랜드로 오시기를. 만년설로 덮힌 산과 바위, 폭포와 빙하, 에메랄드빛 호수와 숲, 그리고 열대 바다까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길이 다 있다. '트레킹의 천국'이라는 말이 그냥 붙여진 이름이 아니었다. '아벨 태즈만 코스털 트렉', 뉴질랜드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다를 볼 수 있는 이 국립공원은 남섬 북부 골든 베이에 있다. 이 길의 매력은 한적한 바닷길이라는 점이다. 완주하는 데 2박 3일이 걸리며, 밀포드, 케플러, 루트번 트렉과 마찬가지로 뉴질랜드의 아홉 개 'Great walks' 중 하나다. 굳이 종주하지 않아도 좋다. 코스는 다양하며 각자 원하는 구간을 걸을 수 .. 2005. 10. 15.
사랑의 매는 없다 - 앨리스 밀러 사랑의 매는 없다 카테고리 정치/사회 지은이 앨리스 밀러 (양철북, 2005년) 상세보기 아주 멋진 책이다. 우리 마음 속 고정관념을 여실히 까발려 준다. 이 책은 내게 결정타를 날렸고, 내 마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일상적인, 사소한 모든 폭력을 거부해야 함을 깨우쳐 주었고, 지난 날을 가슴 아프게 반성하게 했다. 저자는 어린이의 의지를 꺾고 노골적이거나 혹은 은밀하게 폭력을 휘두르고 조종하고 협박하는 '죽음의 교육'을 강력하게 비판한다. 아기들에게 프로이트가 말한 죽음애적 성향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우리 안의 공격성은 학대받는 경험을 통해서 생겨나는 것이지 선천적 경향성이 아니라는 것이다. 일상화된, 그래서 우리가 무감각하게 받아들이는 폭력에 대해 깊이 분노하고 있으며, 히틀러, 스탈린 등의.. 2005. 10. 13.
[뉴질랜드] 그들과 우리는 자연을 보는 관점이 다르다 - 프란쯔 조제프 빙하(Franz Josep Glacier) 마치 외계 별에 불시착한 사람인듯 [여행기] 뉴질랜드 프란쯔 조제프 빙하 트레킹 ▲ 멀리서 본 프란쯔 조제프 빙하 어린 시절엔 누구나 한 번쯤 남극이나 북극에 가는 상상을 해보았으리라. 하얀 설원 위로 붉은 태양이 떠오르는 광경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다. 지금에 와서는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극지에 가고 싶은 마음은 사실 없지만, 대신에 북극과 가까운 아이슬란드에는 언젠가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뉴질랜드에서 빙하 트레킹을 할 수 있을 줄은 몰랐다. 여행 계획을 세우면서 비로소 알게 된 사실이다. 극 지방만큼 거대한 빙하는 아니겠지만 빙하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무척 기뻤다. 남섬의 빙하 트레킹으로 유명한 곳은 프란쯔 조제프 빙하(Franz Josep Glacier)와 그 옆의 폭.. 2005. 10. 12.
두 사람 - 아파치족 인디언 10월 8일, 지난 토요일, 절친한 후배가 결혼을 했다. 한 살 차이라서 후배라기보다는 그저 친구에 가까운 사이다. 식이 있기 이틀 전 갑자기 전화를 해서 결혼식이 좀 더 의미있기를 바란다고 내가 뭐라고 한 마디 인사를 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 어쩌다보니 축시를 낭송하게 되었다. 지난 십년간 우리의 우정을 간단히 소개한 뒤 아파치족 인디언들의 결혼 축시를 읽었다. 사람들이 감동했다고 해서 신랑도 신부도 너무 좋았다고 해서 나도 무척 행복했다. 결혼식은 그녀의 새출발을 축하하는 동시에 나에게도 지난 십년간 우리가 맺어온 소중한 우정을 추억하는 그런 시간이 되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왔는지 얼마나 많이 함께 울고 웃었는지 화음을 맞춰 함께 부른 노래는 또 얼마나 많았는지 특히 우리가 이십대 .. 2005. 10. 11.
리처드 바크의 소설들... 의 작가, 리처드 바크의 다른 소설이 읽고 싶어서 도서관에서 그의 책 열 권을 죄다 빌려왔다. 하문사 (이라는 제목으로도 출판되었는데 같은 작품임) 현암 미디어 현암 미디어 이 네 권을 읽었다. 가볍게 읽혀서 대강대강 본 편이다. 시리즈 다섯 권은 재미 없어 보여서 그냥 반납하기로 했다. 이후로 그는 '사랑'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는 영혼의 짝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다분히 자전적인 내용이고, 는 의 속편 격인데, 빛과 어둠이 혼재했던 주인공들의 과거를 되짚으며 삶에서 선택이 지닌 힘에 대해 이야기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 기대에 조금 못 미쳤다. 자신의 아내 레슬리 페리쉬와의 운명적 만남과 사랑을 그린 는 재미나게 읽었지만, 더 은유적이고 더 간결한 메시지가 아쉬웠다. 운 좋은 몇몇 사람들.. 2005. 10. 7.
마르크스 프로이트 평전 | 에리히 프롬 이 책은 프롬이 '사상적 자전'이라고 말했듯이, 프롬의 다른 어떤 책보다 프롬 자신이 생생하게 드러난 책이다. 그는 마르크스와 프로이트로부터 큰 영감을 받았는데, 그 까닭을 어린 시절의 몇 가지 중요한 계기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즉 이 책은 프롬의 눈을 통해 본 마르크스와 프로이트에 대한 이야기이다. 마르크스와 프로이트의 공통점으로 프롬은 세 가지를 든다. 회의, 진실의 힘, 휴머니즘이 바로 그것이다. 양자 모두 그 시대의 지배적 이데올로기에 의심을 품고 있었고 무언가 중요한 사실이 감추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마르크스는 사회, 경제적 구조를 기본 현실로 보았고, 프로이트는 개인의 리비도에 주목했다. 이 두 사람은 우리를 둘러싼 환상이 깨어지고 진실이 드러나기를 바랐다. 마르크스는 인간을 소외로부터, 경.. 2005. 10.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