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sheshe.tistory.com

전체 글1867

철학의 외부 - 이진경 이 책은 외부를 통해 그리고 외부에 의해 사유하고자 하는 시도를 담고 있다. 하나의 사상은 자신이 담을 수 없는 ‘외부’를 가진다. 저자는 사회주의 붕괴라는 ‘사건’을 통해서 모든 것을 설명하는 듯 보였던 맑스주의가 결코 담을 수 없는 ‘외부’를 느꼈다고 한다. 동시에 어떤 사상이건 자신의 외부를 자신 안에 담으려고 시도하는 과정에서 형성된다. 그런 의미에서 외부는 모든 사상과 철학의 내적 조건이다. 저자는 맑스주의를 ‘외부’의 사유로 본다. 오늘날 다시 맑스를 신뢰할 수 있는 이유로서 그는 유물론이 자본주의라는 조건하에서만 인간과 삶과 노동을 사유할 수 있다는 사태를 잘 설명해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푸코와 들뢰즈의 사유가 바로 외부를 사유하려는 노력임을 보여주고 싶어한다. ‘사건’이라는 개념을.. 2006. 5. 1.
매트릭스 매트릭스 감독 래리 워쇼스키, 앤디 워쇼스키 (1999 / 오스트레일리아, 미국) 출연 키아누 리브스, 로렌스 피쉬번, 캐리 앤 모스, 휴고 위빙 상세보기 매트릭스 1. 인간은 구조의 산물이지만 그 구조를 깨달을 수 있는 존재다. 자신의 인식, 자신의 경험을 추적하여 자신의 많은 부분이 프로그램화된 것임을 깨달을 때 그는 비로소 주체의 자격을 부여받는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니오가 구조의 틈새를 발견하고 구조의 외부에 다가서고 결국 그 외부를 통해서 구조를 변혁하는 것처럼. 그 구조는 사회 구조이자 그 사회 구조의 산물인 우리들의 신체다. 우리들의 신체가 코드화되어 있는 한, 우리는 주체가 아니다. 주체라고 착각할 뿐. 매트릭스는 진실을 못 보도록 눈을 가리는 세계라고 모피어스는 말한다. 우리 마음의 감옥.. 2006. 4. 28.
감옥에서 보낸 편지 - 안토니오 그람시 감옥... 모든 것으로부터 단절된 공간... 20년형을 선고받고 세상이 그의 앞에서 문을 닫았을 때도 그람시는 '삶의 끈'을 놓지 않았고 아주 작고 하찮은 일만으로도 삶이 가까이 있음을 느꼈다. 꼽추, 사자 머리... 그를 평생 괴롭힌, 쉴새없이 찾아든 병고 속에서도 한결같이, 의연했던 사람. 무솔리니는 이런 두뇌는 적어도 20년은 가둬두어야 한다고 했지만 파시즘은 그를 죽이지 못했다. 서른 다섯에 감옥에 갇힌 그는 감옥생활 11년만에 병으로 죽음을 맞지만 '옥중수고'라는 방대한 저작을 남긴다. 교육사회학 시간에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과 진지전, 유기적 지식인에 대해 공부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의 혁명가적 생애에 감동받아 도서관에서 이 책을 빌렸다. 꼼꼼이 읽지는 못했지만 그의 인간성을 좀 더 가깝게 느.. 2006. 4. 27.
특별한 부활절 - 그리스도의 교육 수녀회와 함께 그곳은 세상의 '외부'였다. 무수한 아름다운 가치들이 경제적 가치 하나에 묻혀 실종되어 버리는 세상 속에서 수도원은 '다른' 가치가 작동하는, '다른' 아름다움이 살아 있을 수 있는, 자본주의의 '외부'였다. 그래서 그곳에서 깊은 휴식과 삶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얻게 되는 것 같다. 그러한 외부가 많을수록 세상은 한층 아름다워지리라. 그 외부는 세상으로부터 고립된 곳이 아니라 세상의 변혁을 꿈꾸는 해방구. 다른 종류의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그곳에서 보고 느낀다. '미천한 중생에게 베푸는 우리 공동체의 보시'라면서 부활절 축제에 초대해 주신 마리아 수녀님과 그곳 공동체의 넉넉함에 감사와 찬미를. 뭐든 순환시키고 흐르게 해야 한다면서 외부인에게 기꺼이 문을 열어서 이틀 동안 당신들의 삶을 기꺼이 나눠주셨다... 2006. 4. 26.
언어를 두려워하는 문화 인간에게 말은 본질적 요소다. 말은 인간을 인간답게 한다. 우리는 말을 통해서 나와 세상을 연결짓기 때문이다. 느낌을 언어로 분명하게 표현한다는 것은 우리 의지의 표현이고 우리 존재를 더욱 확고한 기반 위에 올려놓으려는 행위이다. 비록 우리에게서 나온 말이 소음과 잡담으로 점철될 때도 말이 그 말을 내뱉은 사람과 분리되어 저 혼자 따로 놀 때도 그럴 때조차 말은 그가 그로써 존재하려는 어떤 의지의 표상이 된다. 세계와 연결되고 싶은 우리 욕망의 발로인 것이다. 우리에게 침묵이 필요할 때도 있다. 입을 닫는 것은 자연스러운 행위는 아니지만 내적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잠시 바깥 세상으로 향한 창문을 닫아놓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 안의 소리가 잘 들리기 때문에. 그리고 침묵에서 막 솟아오른, 침묵으로부터 깨어.. 2006. 4. 25.
들뢰즈와 문학-기계 | 고미숙 ㅡ 문학성은 다른 삶을 생성할 수 있는 능력 들뢰즈와 문학이 만나 만들어낸 유쾌한 변이. 철학과 문학의 '사이'에 선 비평서. 보르헤스, 울프, 스위프트 등의 작품들이 들뢰즈의 개념으로 재창조되어 새로운 기계로 우리와 접속한다. 1부 이진경의 글. 들뢰즈의 문학-기계 이론을 친절하게 설명한다. 낯설고 신선한 개념이다. 적극적인 의미에서 문학을 한다는 것은 다른 삶을 사는 것이고, 작품은 욕망과 그 욕망이 방향지워지는 삶이 출현하는 장소로서, 언제나 외부의 요소들, 독자, 환경, 다른 책과 접속하여 작동하는 삶의 특정한 배치 안에서 작동하는 기계다. 문학성은 문학-기계의 능력으로 다른 종류의 삶을 생성할 수 있는 능력이다. 다양한 배치 안에서 접속하여 작동할 수 있는, 기계의 변환가능한 폭을 말한다. 따라서 모든 적극적인 문학은 정치적이다. 서로 다.. 2006. 4. 19.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 나탈리 골드버그 우리는 왜 글을 쓰는가? 외로워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친구, 소통하고 접속할 친구를 찾기 위해서? 우리 내부에 켜켜이 쌓인 지층을 탐색해보기 위해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의 쓰고, 시고, 달콤하고, 시원한 맛을 더 깊이 음미하기 위해서? 혹은 삶을 사랑하기 때문에? 사라져간 많은 순간을 붙잡아 두기 위해서? 이 책을 읽으며, 중요한 것은 그러한 '왜'라는 질문이 아니라 '어떻게'라는 질문이라는 생각을 한다. 저자는 자신과 글쓰기가 맺고 있는 관계, 자신과 글 사이에서 작용하는 '힘'을 직접 보여줌으로써 새로운 차원의 글쓰기로 우리를 안내한다. 작법에 관한 내용이 아닌, 자신의 선불교 체험을 바탕으로 한 자유로운 글쓰기, 우리 내면에서 일어나는 창조의 불꽃을 사그러뜨리지 않고 활활 살려내는 법을 .. 2006. 4. 19.
주고 받음에 대하여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항상 무언가를 주고 받는다. 때론 우리들의 마음과 감정을, 때론 물질적인 것을, 때론 우리들의 존재를... 우리를 둘러싼 관계 속에서 언제나 주고 받음이 일어난다. 자본주의 사회는 모든 주고 받음을 값을 매겨서 교환 가치로 획일화시켜버린다. 계산적으로 주고 받게 만든다. 내가 준 만큼, 받은 만큼, 내게 이익이 되는 만큼만. 우리가 서로 나누는 풍부한 것들, 미소, 호의, 이런 것들마저도 교환 가치 속에 들어갈 때, 본래의 아름다움은 퇴색되고 다른 이익을 얻기 위한 수단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사람들은 참 많은 것을 주고 받지만 그 주고 받음을 통해서 풍부해지지 못한다. 참된 소통에 이르지 못한다. 주고 받음이 우리 영혼을 건강하게 하고 우리 삶을 더 풍성하게 하는 것, 그것.. 2006. 4. 14.
섹시즘, 남자들에 갇힌 여자 - 정해경 섹시즘 남자들에 갇힌 여자 카테고리 정치/사회 지은이 정해경 (휴머니스트, 2003년) 상세보기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했다. 언어 문화는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생각하고 존재하는지를 보여준다. 이 책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언어 문화를 페미니즘의 렌즈로 들여다보았다. 그러자 우리의 언어가 얼마나 성차별적으로 오염되어 있는지 우리가 얼마나 새로운 언어를 필요로 하고 있는지 밝혀진다. 저자는 구체적인 예를 통해서 쉽고 재미있게 이야기를 전개시켜 나가고 있다. 다이알로그와 모놀로그. 여성의 말은 대화이고 그것은 쌍방향적이다. 여성은 끊임 없이 질문하고 대답하지만 '진실이 하나여야 할 이유가 없다. 너의 진실과 나의 진실, 수백 수천 개의 진실이' 대화 속에서 교차해 나간다. '남성의 방식으로 쓰여진 말은 .. 2006. 4. 10.
오만과 편견 오만과 편견 감독 조 라이트 (2005 / 영국) 출연 키이라 나이틀리, 매튜 맥퍼딘, 브렌다 블레신, 도날드 서덜랜드 상세보기 우리 안의 환상을 여지 없이 부수고 벌거벗은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주는 영화가 있다면 우리를 아기자기하고 따스한 서정 속에 담뿍 잠기게 하는 영화도 있다. '오만과 편견'은 후자이다. 부드럽고, 매혹적이이며, 아름다운 영화. 귀족과 중산층의 신분 차이가 영화의 중요한 배경을 이루긴 하지만 주인공들의 젊음과 순수한 사랑은 그 틀을 가볍고 유쾌하게 넘어서 버린다. 제인, 리지, 빙리, 다아시는 훼손되지 않은 원초적 젊음, 풋풋함, 싱싱함을 담뿍 전해주고 있다. 이러한 서정적인 사랑은 지금 이 시대,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우리라. 우리들의 감정은 그만치 자연스럽게 흘.. 2006. 4. 6.
빛은 사방에 있다 - 김정란 빛은 사방에 있다 카테고리 시/에세이 지은이 김정란 (한얼미디어, 2005년) 상세보기 김정란의 에세이 모음집. 여성 작가들 중 보기 드물게 좋은 글을 써내는 이다. 몇몇 꼭지는 매우 탁월했다. 대부분의 글을 공감하며 읽었으나 지나치게 심리적인 글쓰기를 하고 있어서 선뜻 이해가지 않는 것도 몇 개 있었던 것 같다. 시적인 감수성을 죽 펼쳐놓은 글들에서 세상을 향한 그녀의 눈짓, 손짓, 발짓, 그녀만의 몸부림이 느껴졌다. 남성 작가들이 결코 포착해내지 못하는 세계, 우리 삶의 작고 미세한 떨림을 담아내고 있기에 여성 작가들이 쓴 글을 읽는 건 신선한 체험이다. 여성 작가의 글에는 '일상성'이 살아 있다. 문제는 좋은 작가가 드물다는 것. 안을 깊이 사유하는 게 아니라 '자기 내면의 감옥'에서 헤어나지 못하.. 2006. 3. 27.
힘 - 틱낫한 예전에 이런 종류의 책을 시시하게 여긴 것을 반성했다. 삶은 체험으로만 이해된다. 마음을 오롯이 현재에 머물게 하라는 것, 흔히 듣는 말이지만 실천은 쉽지 않다. 지난 겨울, 만 여드레 동안의 침묵 피정이 없었다면 이번에도 나는 이 책의 언어들을 그냥 흘려보내고 말았을 것이다. 책을 읽으며 벌써 희미해져가고 있던 그 때의 체험을 반추하게 된다. '지금, 이 자리에서 행복하기'를 난 벌써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이 책은 '빛나는 사유'의 기록이 아니라 '빛나는 삶'의 기록이다. 삶의 언어는 단순하기 마련. 그리고 진정으로 빛나는 삶은 심플하고 소박하다. 매 순간을 온마음으로 살고, 열린 가슴으로 세상을 받아들이며, 사랑하는 이 곁에 있어주는 것. 헤아릴 수 없는 복잡함을 통과한 사람은 맑고 깨끗하게 웃.. 2006. 3. 3.
통섭 - 에드워드 윌슨 우리는 어디로부터 왔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 1. 이 책의 각 장을 읽어나가는 것은 마치 조각 그림을 하나씩 맞추어가는 것과 같았다. 이 책이 담고 있는 아이디어가 워낙 풍부해서 각 장을 읽을 때는 전체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12장을 읽을 때에야 내 마음에서 비로소 열 두 조각이 다 연결되는 통섭이 일어났고, 저자가 왜 그토록 통섭을 강조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12장은 내게 인간의 전망에 대한 인문학의 어떤 텍스트보다 훨씬 깊은 울림을 주었다. 우리 존재가 이 우주 전체와 맞물려 있음을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어떤 철학자보다 더 확고한 토대를 갖고 설명한다. 저자는 과학 문화와 과학 이전 문화 사이의 간극이 엄청남에 주목했다. 과학이 발전하지 않은 시대에는 우리는 신비주.. 2006. 2. 21.
왕의 남자 왕의 남자 감독 이준익 (2005 / 한국) 출연 감우성, 정진영, 이준기, 강성연 상세보기 개봉 초에 보았는데, 벌써 천만 관객 돌파라고 한다. 어린 시절의 모성 결핍으로 유아적 행동을 보이는 연산, 그 심리를 이해함으로써 천민에서 후궁의 지위까지 오른 녹수, 그리고 시골 남사당패에서 왕의 궁궐까지 진출한 광대 장생과 공길, 저자 거리, 궁중 무대, 왕의 침소라는 공간의 다이나믹한 배치와 이동,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인물들의 욕망과 소통이 절묘하게 맞물려 이 영화는 첫 장면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긴장감을 자아내었다. 이 영화에서 동성애 코드는 별 의미 없다. 이 영화는 상처와 그에 대한 치유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결코 과거의 한에만 천착하는 신파조로 흐르지 않고 극중 모든 인물들은 운명이 지워준 상흔을 훌.. 2006. 2. 19.
고난의 영성, 부활의 영성 명색이 가톨릭 신자인데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난 십자가의 영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십자가는 내게 어려운 주제였다. 난 오랫동안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를 좋아하지 않았고 이해하지도 못했다. 내가 좋아했던 건 산상수훈, 그 아름다운 말씀을 가르친, 제자들과 먹고 마시며 기적을 베푼 수난 전의 아름다운 예수였지 십자가 위에서 죽은 힘없는 예수가 아니었다. 나는 예수의 선하심과 아름다움, 그분이 선포한 진리를 사랑했지만, 십자가 위에서 죽어버린 예수, 그 처참한 고통은 이해할 수 없었다. 예루살렘에 초라하게 입성할 때부터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까지, 예수의 그 무력함을 이해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했다. 어쩌면 내가 유다였는지도 모른다. 내가 원한 건 힘있는 신, ‘해결사 예수’였기에. 세상의 모든 고통을 싹 .. 2006. 2.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