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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의 운문사 장마가 계속되는 날이면 한옥집이 생각난다. 대청 마루에 앉아서 처마 밑으로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고운 벗과 차 한 잔 나누고 싶다. 아침부터 장맛비가 내리던 일요일, 먼 데서 손님이 찾아와서 비 오는 날이면 더욱 운치가 있는 절, 운문사에 들렀다. 운문(雲門), 구름문.... 극락교, 일반인은 들어갈 수 없어 더욱 아쉬웠을까.. 저 문 너머로 걸어가면 딴 세상과 마주칠지도... 만세루에 앉아서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친구는 이제 '낙숫물'이란 말이 사라질 것 같다고 한다. 대웅보전 지붕 위의 이끼가 정답다. 안녕, 친구... 그대의 익살스러운 표정이 맘에 드네.. 저 꽃문을 열면... 저녁 공양을 위해 아궁이에는 불이 타오르고... 불이문 안을 엿보며... 不二, 둘이 아니라 하나인 세.. 2005. 7. 5.
그 섬에 내가 있었네 - 김영갑 그 섬에 내가 있었네 카테고리 시/에세이 지은이 김영갑 (휴먼앤북스, 2004년) 상세보기 읽고 나서 한참 울었다. 사진에 순교한 작가, 김영갑. 제주에 미쳐 혼신의 힘을 다해 제주를 찍다가 훌훌 이어도로 떠난 사람... 욕망으로 미쳐 돌아가는 세상에 이토록 투명하고 눈부신 영혼이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가난과 궁핍을 감내하며 오직 필름에만 미쳐 보낸 마흔 여덟의 생애. 루게릭병과 싸운 마지막 6년의 몸부림. 그리고 보는이의 마음을 한눈에 사로잡는 그의 사진. 제주의 오름과 바다와 하늘과 들판을 찍은 그의 사진에는 그 전부를 미치도록 사랑했던, 그래서 마침내 그 모든 것과 닮아간, 아름답고, 눈부시고, 고독하고, 광활한 그의 내면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특별한 사진 마다마다에.. 2005. 6. 12.
공부 못 해도 잘 살 수 있는 사회 작년, 학교 일로 너무 힘들어 할 때 친구가 보내준 감동적인 편지, 이 빛나는 문장을 읽을 때면 늘 새 힘이 솟는다. 아이들 문제는 넘 신경쓰지 말았으면 좋겠다. 성적이 중요한 게 아니잖어. 그 아이들이 공부를 잘 못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그런 사회를 우리가 만들어 가는게 중요하지 않겠어. 그런 세상이 올거야. 공부를 잘하지 못해도 낙오되지 않는 사회. 그런 아이들도 이 사회의 다양성을 유지하는 하나의 요소라고 생각을 해야지. 애들을 뜯어고치는 것으로는 답을 얻을 수 없어. 환경을 개선하지 않으면 안돼. 우리 사회가 좀 더 좋아져야 한다구. 성적을 올리는 방법으로는 답을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해. 내 생각은 그래. 이 사회에는 지금 우리 아이들이 보고 있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고 더 다른 세계가 있다는 .. 2005. 5. 13.
술라웨시 섬의 독특한 마을, 따나 또라자 / 인도네시아 여행 술라웨시 섬의 오지 따나 또라자로 가기 위해 깔리만탄 발릭빠빤에서 우중빤당(마까사르)행 비행기를 탔어요. 우중빤당에서 다시 야간버스를 타고 밤새 달려 새벽녘에 또라자 마을에 닿았습니다. 여기 오기 위해 첩첩산중을 지나왔어요. 술라웨시 내륙의 이 작은 마을에는 공항도 있습니다. 따나 또라자는 오지이면서 동시에 유명한 관광지이기 때문이죠. 독특한 주거 문화와 장례 문화로 널리 알려진 곳입니다. 또라자 마을은 혼자서 돌아볼 수가 없어요. 가이드와 차량이 필요하죠. 마리아 게스트하우스로 가서 투어를 시작할 계획이었는데, 또라자 근처에서 버스에 오른 한 가이드에게 낚였습니다. 마리아 게스트하우스에 더운 물이 안 나온다는 말에 깜박 속아서(확인해보진 않았지만 아마 나올 것 같아요) 그가 안내한 호텔로 가서 투어 예.. 2005. 4. 15.
경주 일대를 돌아보고 토함산의 일출...황홀함에 넋을 잃다 경주 일대를 돌아보고 ▲ 봄향기가 찾아든 불국사 삼십대에 들어와 달라진 것이 있다면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예전에 나를 떠밀었던 많은 것들이 이젠 다소 시들해졌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한층 더한 무게감으로 다가오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인연이다. 인연은 예상치 못한 신비로운 모습으로, 때로는 커다란 숙제로 내게 다가오곤 한다. 우연한 기회에 국토사랑방 회원님들과 인연이 닿아서 오랜만에 답사 여행을 떠났다. 도시 계획 쪽의 일을 하시는 분들, 그리고 우리 옛집에 관심이 있는 분들과 함께 경주 일대를 돌아보게 되었다. 예년 같으면 벚꽃이 다 피었을 텐데 아직 꽃 소식이 요원한 3월 마지막 주말, 그래서인지 대구에서 경주까지 가는 길은 전혀 막히지 .. 2005. 4. 9.
[뉴질랜드] 세상의 첫 일주일을 보았으니... - 밀포드 트렉(Milford Trek) 3 세상의 첫 일주일을 보았으니… [뉴질랜드 밀포드 트렉 3] 54km를 완주하다 트레킹 넷째 날 아침이 밝았다. 잠에서 깨자마자 날씨부터 확인했다. 건너편 산봉우리에 구름 한 자락이 걸려 있는 은은한 아침, 맑은 날씨가 참 반갑다. 오늘 걸을 구간은 퀸틴 롯지에서 밀포드 트렉의 종점 샌드플라이 포인트까지 21km이다.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어제 본 서덜랜드 폭포가 멀리서 보였다. 산 전체를 향해 시원스레 내리떨어지고 있는 모습이 신선하다. 바로 아래에서 올려다보았을 때와는 달리 길게 떨어지는 폭포의 윗 부분이 드러나서 580m라는 높이가 실감이 났다. ▲ 서덜랜드 폭포 사람들이 지구를 차지하기 전의 자연은 이런 모습이었을까? 이곳에서 인간과 자연은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 자연만 있으면 충분할 것 같다.. 2005. 3. 31.
[뉴질랜드] 때로는 불편함 속에 여행의 참맛이 있다 - 밀포드 트렉(Milford Trek) 2 때로는 불편함 속에 여행의 참맛이 있다 [뉴질랜드 밀포드 트렉 2] 데이지꽃이 가득 핀 맥키논 패스 ▲ 맥키논 패스에서 본 '마운트 쿡 릴리' 우리가 여행한 곳 중에서 특별한 기억으로 남는 곳은 어떤 곳일까. 자연이 아름다운 곳일까, 역사의 흔적이 서린 곳일까. 아니면 따뜻한 사람들과의 만남이 있는 곳일까. 어떤 장소에 대한 우리들의 평가는 매우 주관적이고 복잡하다. 우리를 무한한 세계로 이끄는 광대한 풍경은 기억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하지만 많은 경우에, 비록 평범한 곳이라 해도 좋은 인연이라든지 기타 여러 가지 이유로 해서 우리는 그곳을 매우 아름답게 기억하게 된다. 굉장히 멋진 풍경이라 해도 한번 본 것으로 족한 곳이 있다. 반면에 그다지 특별하지 않아도 마치 고향처럼 두고두고 그리운 곳들도 .. 2005. 3. 11.
[뉴질랜드] 집 떠난지 사흘, 세상일 모두 잊어버리다 - 밀포드 트렉(Milford Trek) 1 집 떠난지 사흘, 세상일 모두 잊어버리다 [뉴질랜드 밀포드 트렉 1] 줄줄이 쏟아지는 폭포가 수백 개 ▲ 밀포드 트렉 근심 없이 순간 순간에 집중하는 것, 이것이 여행이 주는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순간 순간을 깊이 응시하는 것, 마음과 몸이 함께 움직이는 것, 그리고 살아 있음이 그저 즐거워지는 것. 마운트 쿡에서 보낸 시간은 바로 그러한 것이었다. 집을 떠나온 지 불과 사흘 정도가 지났지만, 작년 한 해 동안 일어난 모든 일을 잊어 버릴 정도였다. 알랭 드 보통이 언급한 대로 여행은 일과 생존 투쟁의 제약을 받지 않는 삶을 내게 보여 주었다. 100% 나 자신을 위한 시간, 그리고 온전한 휴식. 나는 어느새 시간을 천천히 음미하고 있었고, 날씨와 내 주위를 둘러싼 것들에 한층 민감해져 있었다. 밤 사.. 2005. 3. 2.
겨울 속 겨울로의 여행 - 금강산에서 띄우는 짧은 편지 '05 겨울 속 겨울로의 여행 금강산에서 띄우는 짧은 편지 ▲ 구룡연에서 2월, 추위가 마지막 기승을 부립니다. 며칠간 내린 폭설로 금강산은 이름 그대로 설봉산, 눈천지가 되어 있었습니다. 단풍으로 물든 숲과 흐르는 계곡물 소리, 햇살에 반짝이던 옥빛 담소와 봉우리를 신나게 오가던 구름, 정다운 온갖 것들이 한바탕 잔치를 벌였던 가을 풍악산과는 달리 설봉산은 겨울 속의 겨울, 말이 없습니다. 구룡연 코스에서 상팔담은 고사하고 구룡폭포까지만 간신히 다녀온 산행이었습니다. 영하 14도, 바람이 몰아치면 입술이 얼 지경입니다. 겨울의 자연은 혹독하지만 아름답습니다. 하늘의 해조차 눈처럼 시린 흰 빛이며, 바람은 때때로 하얀 눈보라를 일으키고 지나갈 뿐입니다. 단순하고 고적합니다. ▲ 옥류동 계곡 ▲ 옥류동 계곡 기대.. 2005. 2. 25.
[뉴질랜드] 자연의 침묵 속에 머물고 싶어라 - 마운트 쿡(Mount Cook) 자연의 침묵 속에 머물고 싶어라~ [여행기] 뉴질랜드 최고봉 '마운트 쿡'에 가다 ▲ 후커 밸리 트렉에서 야생의 세계, 그 자체로 충만한 자연의 존재 없이 인간이 살아갈 수 있을까. 의 저자 알도 레오폴드는 사람들을 둘로 나누었다. 야생 세계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로. 그는 계속 이야기한다. 더 높은 생활 수준을 위해 자연의, 야생의, 그 자유로운 무수한 것들을 희생시켜도 되는가라고. 텔레비전보다 기러기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더 고귀하며, 할미꽃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언론의 자유만큼 소중한 권리라고. 자연은 늘 우리 곁에 있는 것인 줄 알았는데, 편리한 생활의 대가로 많은 것이 멀어졌다.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 바람과 일몰, 자연이 무상으로 제공하는 소중한 선물들이 이젠 .. 2005. 2. 16.
말아톤 말아톤 감독 정윤철 (2005 / 한국) 출연 조승우, 김미숙, 이기영, 백성현 상세보기 2001년 춘천 마라톤 대회에서 42.195km를 완주한 19세 배형진 군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 자폐아인 주인공과 그를 둘러싼 가족들이 경험하는 갈등과 그 극복 과정을 진솔하게 잘 그려나갔다. 아들이 정말 달리기를 원하는지, 아니면 자신의 욕심 때문에 힘들게 몰아세운 것은 아닌지 괴로워하는 어머니의 모습과,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서 힘든 레이스를 완주하고 마는 주인공의 모습, 그의 인식 세계가 점차로 넓어지는 과정이 감동적이었다. 그리고 달리기 연습을 하던 주인공이 자신의 가슴에 손을 대고 심장의 펄떡임을 느끼는 장면, 단풍과 호수가 어울린 춘천 마라톤 대회의 아름다운 코스를 주인공이 힘차게 달려가는 장면이 .. 2005. 2. 13.
그 때 그 사람들 그때 그 사람들 감독 임상수 (2005 / 한국) 출연 한석규, 백윤식, 송재호, 김응수 상세보기 역겨움. 박정희와 그 무리들에 대한... 그 시대에 대한... 총체적인 역겨움. 구역질이 난다. 그들은 돼지다. 그것이 전부. 김제규가 총탄을 날리지 않았다면 유신은 좀더 오래 버텼을 것이다. 그가 역사 앞에서 적어도 후회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여러 가지 아쉬움은 많은 영화였지만 그 때 그 사람들을 영화로 담았다는 것 자체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영화. 마지막 나레이션은 어울리지 않았다. 진지하고 차분하게 읽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지... 다큐 장면이 삭제된 게 아쉽다. 있었더라면 더 찡하게 다가왔을 것. 2005. 2. 4.
마더 데레사 마더 데레사 감독 파브리지오 코스타 (2003 / 스페인, 영국, 이탈리아) 출연 올리비아 핫세, 님미 하라스가마, 세바스찬 좀마, 마이클 멘들 상세보기 일요일 아침을 잔잔한 감동으로 채워준 아름다운 영화. 멜 깁슨의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보다 훨씬 좋았다. 이 영화는 마더 데레사의 삶을 아무런 과장이나 극적 연출 없이 꾸밈 없이 잔잔하게 그려 보여주는데... 한 인간으로서, 데레사 수녀가 어떤 영혼을 가진 사람인지를 만날 수 있었고 그것은 깊은 감동으로 다가왔다. 1940년대 말 수녀원을 떠나 거리의 삶을 선택하면서부터 1997년 영면하기까지 그가 자신의 삶에서 내린 선택들과 그가 일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겪어야 했던 난관들, 그가 평생을 통해 변함 없이 추구한 사랑... 두 시간이 금세 흘러갔다. 그.. 2005. 1. 30.
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니코스 카잔차키스 (열린책들, 2008년) 상세보기 관념의 노예가 아니라, 신이 부여한 육체로 거침 없이 삶을 헤쳐나가는, 두려움 없이 삶의 온갖 경험에 맞닥뜨리는 한 인물에 대한 생생한 기록. 작가는 잡초 같은 생명력을 지닌 조르바란 실존 인물을 탁월하게 형상화 해냈다. 그의 삶의 궤적에 마음 한 곳이 시원해지는 까닭은 진정 산다는 것, 하늘 아래 숨쉬며 산다는 것의 의미 혹은 단서를 그가 전달해주기 때문이 아닐까. 영혼과 육체는 둘이 아니다.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몸을 통해 구체적으로 경험한다는 것이며 그 경험을 통해 우리의 영혼도 눈을 뜨게 된다. 살아 있는 한 우리는 행동해야 하며, 행동함으로써 앞으로 나아갈 지속적인 에너지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삶 앞에서.. 2004. 12. 26.
"네 엄마가 내 손을 꼭 잡더라" "네 엄마가 내 손을 꼭 잡더라" 아버지 검진 결과 나오던 날, 지옥과 천국을 오가다 ⓒ2004 배수원 얼마 전 동생이 아버지의 맥을 짚어보더니 심장 쪽이 좀 안 좋은 것 같다면서 병원 검진을 한 번 받아보시라고 권했다. 그래서 아버지는 대학병원에서 검사를 받게 되었다. 막상 병원에 가고 보니 심장은 괜찮은데, 폐 쪽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는 소견이 나왔다. 엑스레이 판독 결과, 폐에 하얀 동그라미가 보이고, 물도 찬 것 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CT 촬영을 비롯한 정밀 검사를 받기로 날을 받아 두었다. 병원에서는 만약 많이 아프면 응급실로 오라고, 입원해서 수술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병원에서 돌아온 아버지는 아무 말씀 없이 줄곧 컴퓨터 앞에 붙어앉아 계셨다. 내가 뭐하시나 싶어 슬쩍 보니 인터넷으로 .. 2004. 12.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