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일상의 기록408 주고 받음에 대하여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항상 무언가를 주고 받는다. 때론 우리들의 마음과 감정을, 때론 물질적인 것을, 때론 우리들의 존재를... 우리를 둘러싼 관계 속에서 언제나 주고 받음이 일어난다. 자본주의 사회는 모든 주고 받음을 값을 매겨서 교환 가치로 획일화시켜버린다. 계산적으로 주고 받게 만든다. 내가 준 만큼, 받은 만큼, 내게 이익이 되는 만큼만. 우리가 서로 나누는 풍부한 것들, 미소, 호의, 이런 것들마저도 교환 가치 속에 들어갈 때, 본래의 아름다움은 퇴색되고 다른 이익을 얻기 위한 수단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사람들은 참 많은 것을 주고 받지만 그 주고 받음을 통해서 풍부해지지 못한다. 참된 소통에 이르지 못한다. 주고 받음이 우리 영혼을 건강하게 하고 우리 삶을 더 풍성하게 하는 것, 그것.. 2006. 4. 14. 고난의 영성, 부활의 영성 명색이 가톨릭 신자인데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난 십자가의 영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십자가는 내게 어려운 주제였다. 난 오랫동안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를 좋아하지 않았고 이해하지도 못했다. 내가 좋아했던 건 산상수훈, 그 아름다운 말씀을 가르친, 제자들과 먹고 마시며 기적을 베푼 수난 전의 아름다운 예수였지 십자가 위에서 죽은 힘없는 예수가 아니었다. 나는 예수의 선하심과 아름다움, 그분이 선포한 진리를 사랑했지만, 십자가 위에서 죽어버린 예수, 그 처참한 고통은 이해할 수 없었다. 예루살렘에 초라하게 입성할 때부터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까지, 예수의 그 무력함을 이해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했다. 어쩌면 내가 유다였는지도 모른다. 내가 원한 건 힘있는 신, ‘해결사 예수’였기에. 세상의 모든 고통을 싹 .. 2006. 2. 14. 2005. 11. 24 지금까진 그래도 만 나이로는 서른이라고 자위하며 살았는데 며칠 전, 드디어 만 서른을 넘기고 말았다. 흑흑.. 세부 전공 정하느라고 좀 분주한 나날을 보냈는지라 친구가 전날 밤에 문자를 보내오기 전까진 생일인지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 24일 아침, 여느 때와 다름 없는 날이었지만, 생일을 자축하고 싶어서 작은 케잌을 사들고 학교로 갔고 같은 방 대학원 식구들과 웃으며 잠시 잠깐 즐거운 한 때를 보냈다. 그리고 수업 마치고 오니 그세 손빠른 수정씨와 다른 식구들이 만든 카드가 나를 반겼다. 서로를 환영하는 것, 인사를 건네는 것, 함께 삶을 축하하는 것, 이 웃음이, 이 미소가 삶을 빛이 나게 한다. 만남은 축복이다. 지금의 나를 먹이고 키워 온 숱한 손길들, 나의 가족과 벗들과 스승들, 그리고 자연과 우.. 2005. 11. 24. 리지외의 데레사 요즈음 간간이 리지외의 데레사 성녀가 떠오르곤 한다. 예수아기의 성녀 데레사, 작은꽃(소화) 데레사라고도 불리며, 프랑스의 주보 성인이기도 하다. 갈멜 수녀원에서 스물 네 해의 짧은 생을 살다 갔지만 20세기 가톨릭 교회에 가장 심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그녀의 영성은 '사랑' 그 자체이다. 그녀는 일상의 모든 일들을 놀라운 사랑을 갖고 행함으로써 모든 이가 따라 걸을 수 있는 을 보여주었다. 그녀의 사랑은 지적이고 철학적인 사랑이 아니라 하느님의 현존에 근거한 구체적인 사랑, 존재의 핵심에서 우러나는 사랑이었다. 이 지상에 완전한 사랑이 존재하지 않음을 슬퍼했고 수녀원이라는 한정된 공간 속에서 자기가 맡은 일상의 자질구레한 일들을 세상을 위한다는 기쁨으로 최선의 노력을 바쳐 행했다. 자신의 작은 자.. 2005. 11. 20. 지능에 대한 고정관념 그저께 사람들과 IQ에 대해 토론했다. 인간의 머릿속 능력을 재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의 문제에 대해. 비네가 처음 시도한 이래, 우리가 주로 사용하는 IQ 문제라고 해봐야 고작해야 괄호 채우기나 단답형 형식인데 그걸로 어떻게 학생들의 사고력, 문제해결력을 측정할 수 있냐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재려고 하는 것이 태어나기 전부터 가지고 온 능력인지, 아니면 어린 시절의 경험을 통해 후천적으로 형성된 능력인지도 불분명했다. 물론 나는 IQ 자체를 그다지 신뢰하지는 않지만 학생들의 학습 능력에 대한 참고 자료 정도는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것 역시 고정관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석탄이 옷의 원료가 될 수 있는가? 지금 같으면 될 수 있다는 대답이 가능하지만 이만년 전에 이 질문을 던진다면, 석탄은 결.. 2005. 9. 23. 마운틴 고릴라의 우정 다이안 포시. 르완다에서 야생 마운틴고릴라와 18년을 함께 살며 고릴라 연구와 보호에 몰두한 여성 과학자. 결국 밀렵꾼의 총에 목숨을 잃게 되는데, 성장 과정도 그렇고 죽음도 그렇고, 길지 않은 생애를 고독과 병마와 싸워온, 결말까지 지극히 비극적인 인생이어서 기억에 남아 있다. 아니, 그녀의 이 말을 난 잊지 못하고 있다. 그녀는 고릴라말로 고릴라와 의사소통을 할 정도로 고릴라화된 사람이었는데, 마운틴고릴라에게 친구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경험한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놀랍고 감동적인 것이라고 했다. 인간들 사이의 관계에서는 늘 우선 순위가 있어서 이를테면 가족이 제일 소중하고 그 다음엔 친구가 소중하고 그런 식으로 사람들이 복잡한 관계망 속에서 일정한 자리를 차지하는 식이라면, 한 고릴라가 다른 고릴라와 .. 2005. 9. 12. 마지막 인사 밖에서 바라보아야만 항상 진짜가 보이는 것일까. 마지막 출근날, 개학이라서 인사를 하러 학교에 들렀다. 내 자리엔, 새 담임 선생님이 앉아 계셨고.. 그 자리가,, 그렇게도 힘들고 괴로웠던 자리였는데 떠나려고 보니 그 가시방석이, 그냥 가시방석이 아니라 얼마나 황홀하고 아름다운 가시방석이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바랐던 대로 잘 되지 않는 일들 때문에 나는 의기소침했고 실망했고 그리고 아주 많이 고통스러워했었다. 그러나 오늘에 와서, 비록 실수투성이고 일을 매끄럽게 잘 하지는 못했지만 나 자신 적어도 대충 살지는 않았음을 내가 여기서 보낸 시간이 복된 시간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다만 나는 너무 성급했었고, 우리의 만남 속에 깃든 작은 빛을 알아보지 못하고 일상의 괴로움 속에만 함몰되어 있었다. 그 이유는, .. 2005. 8. 22. 광복 60주년 행복하다. 내게 이 있어서.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이 있어서. 나의 이 식민지와 독재의 긴 터널을 빠져나와 눈부신 비상을 준비하고 있어서. 광복 60주년. 친일인명사전이 편찬되어서, 남북이 함께 광복적을 축하하게 되어서, 늦어도 한참 늦었지만, 바야흐로 친일 청산 작업이 시작되어서, 노무현이 대통령이어서, 청계천에 전태일 거리가 조성된다고 해서, 그래서 행복하다. 어찌 이 나라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 땅을 지키기 위해 피흘려온 수많은 젊음들이 있었는데.. 이제서야 속속 밝혀지는 역사의 진실을 확인하면서 확신하곤 한다. 머지 않아 국사 교과서가 새로 씌어지리라는 것을. 김대중과 이회창. 이회창이 대통령이 되었더라면, 이 모든 변화가 적어도 이삼십년은 늦어졌겠지. 6. 15는 상상도 할 수 없었겠.. 2005. 8. 15. 공부 못 해도 잘 살 수 있는 사회 작년, 학교 일로 너무 힘들어 할 때 친구가 보내준 감동적인 편지, 이 빛나는 문장을 읽을 때면 늘 새 힘이 솟는다. 아이들 문제는 넘 신경쓰지 말았으면 좋겠다. 성적이 중요한 게 아니잖어. 그 아이들이 공부를 잘 못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그런 사회를 우리가 만들어 가는게 중요하지 않겠어. 그런 세상이 올거야. 공부를 잘하지 못해도 낙오되지 않는 사회. 그런 아이들도 이 사회의 다양성을 유지하는 하나의 요소라고 생각을 해야지. 애들을 뜯어고치는 것으로는 답을 얻을 수 없어. 환경을 개선하지 않으면 안돼. 우리 사회가 좀 더 좋아져야 한다구. 성적을 올리는 방법으로는 답을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해. 내 생각은 그래. 이 사회에는 지금 우리 아이들이 보고 있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고 더 다른 세계가 있다는 .. 2005. 5. 13. "네 엄마가 내 손을 꼭 잡더라" "네 엄마가 내 손을 꼭 잡더라" 아버지 검진 결과 나오던 날, 지옥과 천국을 오가다 ⓒ2004 배수원 얼마 전 동생이 아버지의 맥을 짚어보더니 심장 쪽이 좀 안 좋은 것 같다면서 병원 검진을 한 번 받아보시라고 권했다. 그래서 아버지는 대학병원에서 검사를 받게 되었다. 막상 병원에 가고 보니 심장은 괜찮은데, 폐 쪽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는 소견이 나왔다. 엑스레이 판독 결과, 폐에 하얀 동그라미가 보이고, 물도 찬 것 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CT 촬영을 비롯한 정밀 검사를 받기로 날을 받아 두었다. 병원에서는 만약 많이 아프면 응급실로 오라고, 입원해서 수술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병원에서 돌아온 아버지는 아무 말씀 없이 줄곧 컴퓨터 앞에 붙어앉아 계셨다. 내가 뭐하시나 싶어 슬쩍 보니 인터넷으로 .. 2004. 12. 5. 정의가 강물처럼, 고 김승훈 신부 KBS 인물 현대사에서 고 김승훈 신부와 정의구현사제단의 활동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1970년대 유신 치하, 아무도 감히 입을 열지 못했던 시절, 가장 먼저 비판의 소리를 낸 것은 젊은 사제들이었다. 지학순 주교의 구속을 계기로 해서 사제들은 정권에 항거하기 시작한다. 당시만 해도 가톨릭은 속세에 관심을 끊어야 구원을 받는다는 교리가 지배적이었으나, 젊은 사제들은 하느님은 세상 속에서 세상과 더불어 계심을 실천하고자 했다. 그들의 입에서 새어나온 진실의 소리는 물결처럼 번져나갔다. 1987년,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이 일어났을 때, 사건의 진실을 가장 먼저 밝힌 사람도 정의구현사제단의 맏형 김승훈 신부였다. 명동성당에서 그는 정부의 책임 회피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고문 수사야말로 군사정권을 유지.. 2004. 11. 10. 수학자 안재구 KBS 인물 현대사. 경북대 교수, 수학자 안재구. 그는 60-70년대 이미 세계 수학계로부터 인정받은 장래가 촉망되는 학자였다. 유신 체제에 반대했던 그는 남민전 사건으로 사형을 선고받는다. 세계 수학 협회의 탄원에 의해 간신히 무기징역으로 감형된다. 어린 시절, 항일독립운동가의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중학교에 다닐 때 초콜렛이 많이 팔리면 엿장수가 어떻게 먹고 사냐며 경제 등 각 분야에 관심을 가진 수재였다. 그는 자신이 원하기만 했으면 편안하게 살 수 있었다. 통일운동가로 14년의 세월을 감옥에서 보냈는데 91년에 남북이 합의한 내용은 그의 주장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분단된 조국 때문에 수학자로서의 그의 삶은 깨어지고 만다. 그는 자신의 양심을 따르는 편을 택했다. 누구는 생명도 바치는데, 다른 .. 2004. 11. 2. 고암 이응노 선생 TV 진품명품에서 본, 화가 고암 이응노 선생. 그는 프랑스로 건너가 작품 활동을 하며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은 유명한 화가였다. 화가로서의 그의 생은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지만 그에겐 큰 비극이 있었다. 그의 아들이 북한 땅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베를린에서 아들에게 연락을 취하게 되었는데, 그 때문에 동베를린간첩단 사건 즉 일명 동백림 사건으로 모진 고문을 당하고 옥고를 치르게 된다. 그는 그 이후 89년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고국 땅을 한번도 밟지 못했다. 그는 조국에 대한 그리움을 붓으로 표현했는데, 특히 한글 자모를 이용한 문자추상화가 유명하다. 두고 온 아들에 대한 그리움, 고국 땅에 대한 그리움, 그는 그림을 통해 동양 정신을 구현하고자 했다. 그는 예술도 투쟁인데, 서양 사람들과 싸워.. 2004. 11. 2. 백범과 안두희 어제 KBS 인물 현대사를 보며 경악했다. 백범 선생을 암살한 안두희가 6.25가 터지자마자 육군 소위로 복귀해서 59년까지 이승만 정권 하에서 육군 대령까지 지냈다니. 세상에나... 그는 단순한 암살범이 아니라 미 군정하 CIC에서 미군 정보원으로 일했고 이승만 정권 때는 정치 사찰의 제 일인자로 반대파를 숙청하며 정권 유지에 협력했다. 그게 그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이리라. 4.19가 터져 세상이 달라지면서 그도 도망자의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는 끝까지 참회하지 않았다. 친일 세력은 통일된 조국에서 자신들이 살아 남을 수 없음을 알고 친미 반공으로 화려한 변신에 성공해서 오십년 동안 떵떵거리고 살았음을 확연히 알 수 있었다. 프로그램에서 김구 선생이 UN에 보낸 편지도 나왔는데 그는 미군과 소련.. 2004. 9. 24. 강의석군의 용기 이런 젊은이들이 있어 세상은 아름답다. 기독교 고등학교에 다니며 학교의 강제 예배를 거부하는 바람에 퇴학을 당하고, 다시 복학해서도 자신의 권리를 위해 삼십일 넘게 단식 중인 고3 학생 강의석. 그는 단식이 가장 비폭력적인 방법이라서 그것을 선택했다고 한다.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는 그의 모습이 참 아름답다. 노예가 아니라 자유인의 삶을 살기로 한 그 용기에 박수를. 세상은 이런 사람들 덕분에 한 발짝씩 진보해간다. 2004. 9. 16. 이전 1 ··· 24 25 26 27 2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