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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일상의 기록408

긍정 어휘 서점가에 유행하는 긍정의 힘 같은 책은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현실에 대한 객관적 인식을 결여하고 환상을 좇기 때문이다. 개개인이 지닌 고유한 꿈이 아니라 오직 하나의 꿈, 부/성공만을 위한 긍정을 설파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헛된 꿈은 언젠가는 깨어질 것이고, 거기에 삶을 낭비하는 것보다는, 현재를 제대로 점검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물론 개중에서 내 삶에 참고할 만한 괜찮은 내용이 아주 없다는 건 아니다. 각론에서는 내가 배울 점도 있을 것이다. 다만 그러한 시류가 싫다는 것이다. 부/성공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만이 최선의 답이라는, 가장 좋은 삶이라는 가치관을 강요하는 것이 문제일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목표지향적인' 긍정 말고, 우리 삶의 순간들을 좀 더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 우리의 하루.. 2009. 9. 7.
걷기가 주는 선물 - 팔공산 평광동에서 "이십대 때는 혼자 여행하는 것이 엄두가 안 났어요. 그런데 서른을 넘으니 많은 것들이 편안해지고 혼자서도 어디든 떠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길에서 만난 아리따운 이의 말이었다. 눈빛이 맑았다. 일찍 결혼했고 아이는 없다고 했다. 나는 답했다. "저랑 반대네요. 저는 이십대엔 부닥치는 모든 것들이 새롭고 독특했기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혼자 길을 나섰지요. 그런데 서른을 넘으니 동행이 없는 것이 아쉬웠어요. 경험을 더불어 나누고 싶어졌거든요." 혼자 여행한다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을, 혹은 세계를, 혹은 세계 속의 자신을 '깊게' 만나고 싶다는 소망의 발로이다. 누군가는 십대나 이십대에, 누군가는 삼십대 혹은 사십대에, 또 누군가는 노년에 그런 소망을 품는다. 어느 시기가 되면 우리의 .. 2009. 8. 29.
'영원'을 사신 분 - 김대중 대통령을 추모하며 어떤 삶이 가치 있는 삶일까. 자연에 순응하는 삶은 아름답다. 자연 속에서 한 포기 풀처럼 들꽃처럼 사는 삶은 아름답다. 그러나 인간은 자연에만 속해 있지 않다. 인간은 역사적 존재다. 자연 속에서 숨쉬는 것과 마찬가지로 역사라는 대기 속에서 숨쉬며 살아간다. 자연이라는 토대 위의 진보, 그것이 역사다. 역사는 공동체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역사는 공동체의 과거와 현재이자 미래이다. 모든 것이 나타났다 사라지고 변하는 것이 세상사지만, 그것이 자연의 법칙이지만, 그 속에서 면면히 이어져 오는 것, 공동체 안에서 끊임없이 새롭게 일깨워지는 것이 있다. 그것은 인간이 품은 ‘뜻’이다. 진리, 선, 아름다움, 존엄, 자유, 평화, 화해, 나눔, 일치, 창조, 투쟁, 저항, 변혁... 그 뜻이 모여 역사를 만들어.. 2009. 8. 19.
시설을 거부하는 장애인들 지난 주말, TV에서 시설을 거부하는 장애인들을 보았다. 17일째 노숙하고 농성하면서도 지금이 태어나서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자유가 있기 때문이라고. 시설에서는 작은 자유도 누릴 수 없다고. 그들은 지체 장애 1급이었고, 자신들이 이 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이들-정신 장애를 가진 이들을 가리키는 것 같다-은 밥 주고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고,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는 것을 모른다고. 한 장애인은 시설에서 나가려고 하다가 정신병원에 갇히기까지 했다가-장애인 한 명당 정부에서 지원금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가 사라진 것을 알고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낸 연인 덕분에 병원을 나와서 두 사람은 결혼을 했고 아이를 가졌다. 연인은 하반신을 전혀 쓰지 못했기에 아이 돌볼 것을 염려하고 있었다. 그러나 시설.. 2009. 8. 18.
별이 지다 인간에게 불멸의 영혼이 있을까. 나는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아상이 아니고 오가는 감정도 아니고 삶에서 겪는 경험 그 자체도 아니다. 그 모든 것을 포함하면서도 그것을 넘어선 한 인간의 가장 맑고 순수하고 고귀한 어떤 정수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불멸하는 것이 있다면 그러한 것이리라. 그것이 사라진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서거하셨다. 인간의 혼을 밤하늘의 별에 빗댄다면 그는 큰 별이었다. 크고 작은 수많은 별들이 가득한 이 우주 속에서 그는 떠돌이별이 아니라 먼 길을 인도하는 길잡이별이었다. 우주의 시간은 굽어 있어서 천만년 전에 사라진 별의 잔영이 오늘밤 우리 시야에 닿는다. 그 분의 빛도 그렇게 오랜 세월 우리 역사를 비추리라 믿는다. “역사를 믿는 사람은 결코 패배하지 않습.. 2009. 8. 18.
움직이지 않는 여행 - 욱수골에서 숲에서 한 달쯤 생활하면 어떨까. 외로울까. 사람이 그리울까. 어떤 낯선 순간들을 맞이하게 될까. 무엇을 더 강렬하게 느끼고 무엇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될까. 숲 가운데 정자에 앉아 쉬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니, 다가오는 어느 방학 때쯤 한번 떠나볼까 싶다. 지리산 자락 아래도 좋고, 강원도 좋고, 네팔 산자락이나 동남아의 작은 해변 마을도 좋을 것 같다. 최근 필리핀 팔라완의 포트바튼이라는 곳이 마음에 다가오고 있다. 먼 거리를 주파하는 여행도 좋지만, 요즘은 한 곳에 머무는 여행, 그런 것에 끌린다. 작년 봄, 함양에 갔을 때다. 버스 타고 가는데, 캠핑카 하나가 옆으로 지나갔다. 기사님이 그걸 가리키면서 외국애들 셋이 지난 겨울에 함양에 내려와서 세 달째 죽치고 논다.. 2009. 8. 11.
욱수골을 온종일 걷다 산이라고 생각하면 조금 아쉽고, 걷기 코스라고 생각하면 만족스러운 길이다. 욱수골은 400미터 정도의 나즈막한 야산이지만 대구와 경북의 경계 지점이라 골이 매우 깊다. 겹겹의 산들이 끝모르게 이어진다. 그동안 나는 이 산을 좋아하지 않았다. 잡목이 너무 많아서 어두컴컴하고 답답한 느낌이 있었기 때문이다. 구청에서 등산로를 정비하면서 근래에 산이 많이 좋아졌다. 나무들을 솎아내면서 숲이 훨씬 밝고 건강해졌다. 더 푸르러지고 싱싱해지고. 체육공원까지 가로등을 설치한 것은 마음에 안 들지만, 전체적으로는 숲도 좋아지고 등산로도 잘 정비되었다. 욱수체육공원에서 만보정, 욱수정 지나서 경산 성암산을 거쳐 덕원고교까지 약 여섯 시간 정도 걸은 것 같다. 큰 산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집 가까이 이렇게 길게, 종일 .. 2009. 8. 9.
같음과 다름, 평범과 비범  한 달쯤 전인가, 지도교수님 및 동료들과 밥 먹다가 나온 이야기. 내가 평범하지 않다는 거였다. 물론 나는 이 정도면 지극히 평범하다고 주장했고.... 내가 다른 사람과 다른 점이 있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다름'일 뿐이지, '비범'은 결코 아니다. 차이가 곧 비범인 것은 아니다. 같음과 다름이 수평적 차이라면, 평범과 비범은 수직적 차이가 아닐까. 내 기준으로는, 비범하지 않은 것은 다 평범한 것으로 간주된다. 내 사고방식이 아무리 타인과 다르다 하더라도(사실, 그다지 다르지도 않다. 그런데 다르게 여겨짐이 늘 신기하다) 나는 평범의 범위에 포함된다. 내게 그다지 비범한 점은 없기 때문이다. 비범함이란, 세상을 앞서가는, 세상의 흐름에 파장을 일으키는, 역사를 만드는, 그런 .. 2009. 7. 26.
미디어법 날치기 통과  직권상정에, 재투표, 대리투표까지, 초딩 반장 선거도 이렇진 않을 거다. 좋은 정책으로 국민들에게 인기를 얻을 생각을 해야지, 할 줄 아는 게 아무 것도 없으므로 미디어법만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밀어붙이는 딴나라당의 이 무능함=악랄함. 이제 질릴 법도 한 데 얘들의 파렴치는 끝이 없고, 계속 버전 업그레이드다. 그러고 나서 이젠 민생 살리기 한단다. 국민을 밥만 먹여주면 되는 존재로 생각하는 것도 우습지만, 얘들이 늘상 입에 달고 다니는 구호 '~살리기'는 '밥만 먹여주면 되지?' '밥 먹여줄테니 죽은 듯이 있어라' 뭐 이런 상징이 들어 있는 듯. 국가가 밥만 먹여주면 된다고 생각하는 딴날당 지지 국민들도 우습고. '민', '민생' 이런 말에서는 국민이 풀처럼 약한 존재, 먹여살려야 하는, 돌봐야 하는.. 2009. 7. 23.
소리와 촉감 벌써 매미가 울기 시작한다. 우리 아파트엔 매미가 많다. 아직 절정이 아니라서 간간이 들리지만, 매미 소리가 한여름을 실감케 하고 있다. 그 소리 사이로 이삿짐 나르는 소리가 들린다. 이 모든 소리가 공간을 또렷이 울리는 건 공기 중에 습기가 많기 때문이다. 며칠째 비가 왔다 갔다 한다. 이미 이미지의 홍수 속에 살고 있어 그런지 시각적이기만 한 정보는 그다지 새롭지도, 쾌락적이지도 않다. 살아있음의 생생함을 불러일으키는 건, 소리, 그리고 시각과 냄새를 포함한 촉감이다. 아침나절, 내 귀를 뚫고 들어오는 숱한 소리들이 신선하다(방학해서 그런가). 약간 무거운 공기 질감도 좋다. 물론 햇살이 비칠 때의 가벼운 입자의 공기도 좋고. 화창한 날의 공기의 산뜻한 느낌은 내게 깊은 쾌락을 안겨 준다. 자연이 좋.. 2009. 7. 17.
우석훈 선생의 특강 - 여전히 남는 아쉬움 저녁에 대구시민단체연대회의에서 마련한 4대강 사업 관련 정책포럼이 있었다. 연사가 우석훈 박사여서 책에 싸인이나 받을까 하고 간 자리였는데, 마음이 편치 않다. 1. 20세기 경제학의 동향을 설명한 부분은 개인적으로 꽤 재미있게 들었는데 강단 학계의 이야기라서 그다지 와닿지 않은 분들도 있는 것 같다. 2. 그동안 우리 나라 경제 발전이 연안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내륙이 소외되었다는 점, 내륙에서 개발을 원하는 힘이 강하다는 점은 이해가 되었다. 이명박이 재벌들에게는 신자유주의를, 지역에는 토건주의(정부의 지나친 개입)를 편다는 것도 정확한 분석이었다. 3. 질문하신 분을 통해서 알게 된 사실인데, 우리 나라 많은 어르신들이 경부고속도로와 경부운하의 차이를(운하가 얼마나 비경제적인지를) 이해하지 .. 2009. 7. 13.
미치겠다 - 지리산댐 이런 류의 뉴스, 사실 더 이상 놀라운 일도 아닌데, 그래도 너무나 놀랍다. 지리산에 케이블카 놓는다 했을 때도 쟤들이 미쳤나 했는데, 이제 댐이라니...허거걱... 그 아름다운 함양 마천이 물에 잠긴다고 한다. 88고속도로 지나 지리산 IC 거쳐 마천 - 백무동 가는 길은 내가 사랑해 마지 않는 아름다운 길, 수없이 갔던 길인데... 제발 지리산 부근은 그냥 냅두길... http://myjirisan.org/home/ 2009. 7. 12.
세파가 남기는 것 세파는 두 가지 종류의 사람들을 만든다. 살아가는 동안 파도에 자신의 모든 부드러운 면이 다 깎여나가고 억세고 모난 부분만 남은 사람. 또는 자신의 강인한 기질이 다 깎여나가고 부드러움만 남은 사람. 물론 전자보다는 후자가 더 아름답다. 그러나 아름답지만 슬프다. 고교 시절 날카롭고 입바른 소리를 곧잘 하셨던 선생님을 7, 8년 후에 우연히 만난 적이 있는데 그 부드럽고 둥글둥글해진 인상에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그 모습이 좋지 않은 건 전혀 아니었지만, 그 선생님을 다른 분과 구별시켜 주던 그 또렷한 눈빛이 사라져서 왠지 슬펐던 기억. 부드러움을 간직하되 가슴 속에는 언제나 세태와 맞서는 칼날 하나를 품은 사람, 약자에게는 한없이 겸손하되, 강자에게는 참으로 당당한 사람, 그가 바로 노무현이었다. 세파.. 2009. 7. 12.
인간의 깊이가 결정되는 지점  예전에 누가 그러더라. 한 인간의 그릇의 크기는 그가 세상과 맞선 그 지점에서 결정된다고. 공부를 하다보면 총명한 사람들을 더러 만난다. 그런데 거기까지다. 총명한데, 머리 회전이 빠른데, 깊이가 없다. 가볍고 얄팍하다. 대화가 더 이상 진전되지 않는다. (홍정욱 같은 이도 머리야 얼마나 좋겠는가. 삶은 영 아니올시다지만..) 목표는 있는데 영감이 없고 야심은 있는데 비전이 없고 이용/적용은 있는데 고민/철학이 없고 이론은 있는데 실천이 없고 지식은 있는데 미학이 없고 행함은 있는데 분노가 없는... 사무침이 없는... 후자가 없는 까닭은 세상의 모순/편견/불합리와 정면으로 마주한 경험이 없어서다. 결국 한 인간의 깊이는 그의 존재가 세상과 부딪힌 그 지점에서 결정된다. 그가 만난 세상의 크기, 그.. 2009. 6. 29.
길 위에서 길을 묻다 예전에 서프 논객(김동렬님이었던가) 글에서 읽은 내용이다. 국민을 널리 모으려고 '참여 정부'라는 이름을 지었는데, 참여하려는 국민이 없다고, '참여 정부'를 자신의 정부로 생각하는 국민이 없고 '참여 정부'의 성공을 우리 모두의 성공으로 여기는 국민이 없다는... 대충 그런 내용이었고... 그래서 '참여 정부'라는 이름이 참 뼈아프게 다가왔던 기억이 있다. 뒤늦게 철학자 김상봉님의 추도사를 읽었다. , , 등의 책을 통해 만난 적이 있고 악에 저항하는 법을 가르치지 않는 한국 도덕교육의 문제점을 고발한 '도덕 교육의 파시즘'은 특히 마음에 깊게 남은 책이다. 추도사에 담긴 절절한 자책이 심금을 울린다. 노무현 대통령의 성공과 한계는 한 시대의 성공과 한계이고 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성공과 한계.. 2009. 6.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