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이야기173 아프리카엔 테크노폰이 있다 이곳 사람들도 모두 핸드폰을 사용한다. 단 돈 만 원, 10달러짜리 테크노폰이 있기 때문이다. 사진 찍기도 되고 페이스북도 연결된다. 물론 중국제다. 문명사적 관점에서 보면 유럽은 몇 백년간 아프리카를 착취만 했을 뿐 해준 게 별로 없다. 중국제품이 있어서 지금 아프리카 사람들도 최소한의 생필품을 누리고 산다. 이는 중국제가 단지 값싼 상품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궁극적으로 그들 자신을 위한 비즈니스긴 하지만 어쨌든 중국은 아프리카에 유럽이 주지 못한 문명의 혜택을 주고 있는 것이다. 여기 오니 10달러짜리 테크노폰이 내가 쓰는 고가의 애플폰보다 더 놀라운 기술혁신으로 보인다. 2019. 5. 27. 르완다 커피 커피가 나는 곳은 사람 살기에도 적합한 기후라 한다. 아라비카 커피는 적도 인근이면서 동시에 천 미터 이상의 고산지대, 덥지 않은 곳에서 자라기 때문이다(등급이 낮은 로보스타는 저지대에 자란다). 한국에선 별 생각 없이 커피를 마셨는데 여기서 커피는 그냥 커피가 아니다. 제노사이드 비극 이후 국가 재건의 일등 공신이 커피이다. 다른 산업기반이 전혀 없는 르완다는 커피 재배에서 희망을 찾았다. 커피를 잘 아는 지인 말로는 예가체프나 케냐aa 등 유명한 아프리카 브랜드보다 훨씬 맛이 순하고 부드럽다 한다. 신맛과 초컬릿맛이 은은하게 우러난다. 여긴 대규모농장이 없고 각 가정에서 키운 커피콩을 마을조합이 모아 판매한다. 커피원두 한 알 한 알에 이곳 여성들의 땀과 손길, 미래에 대한 소망이 담겨 있다. 2019. 5. 25. 이슬람박물관과 캘리그라피 / 카타르 도하 (2) 카타르는 특이한 나라였어요. 국민소득이 십만 불 정도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부유한 나라인데 시민권자가 거주민의 15퍼센트 정도이고 나머지는 모두 외국인 노동자라고 합니다. 방글라데시, 필리핀, 아프리카 국가에서 온 노동자들이 나라를 지탱하고 있습니다. 카타르 시민권자는 매우 잘살지만 외국인 노동자들의 주거 여건이나 인권은 매우 열악하다고 들었습니다. 아무튼 카타르 고유의 문화적인 무언가가 느껴지는 나라는 아니어서 첫방문에서 크게 매력을 느끼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박물관은 매우 좋았고 인상적으로 기억합니다. 국립박물관은 보지 못했어요. 제가 카타르의 수도 도하를 방문한 때가 올 2월이었는데 국립박물관은 4월 개관 예정이었습니다. 세계적인 건축가가 건물을 장미꽃 모양으로 독특하게 설계해서 유명하며 현대건설.. 2019. 5. 21. 손빨래와 무지개 르완다는 우기와 건기 두 계절이 있다. 우기엔 하루에도 몇 번씩 하늘을 살피게 된다. 날씨가 화창하다가도 순식간에 비구름이 몰려와 소나기를 뿌리고 간다. 그럼 정신없이 옥상으로 달려가 빨래를 걷어야 한다. 햇살 쨍한 날은 빨래 잘 말라서 좋은 날이다. 모든 게 불편하지만 특히 힘든 건 손빨래다. 여기도 세탁기야 있지만 한국보다 훨씬 비싸서 잠깐 체류에 살 필요는 없어서 구입하지 않았다. 한국 가면 세탁기가 제일 반가울 것 같다. 그런데 햇볕이 드는지 비구름이 오는지 수시로 하늘을 살피는 일상이 이상하게도 마음을 평화롭게 할 때가 많다. 아날로그적 일상이 주는 편안함, 자연과의 가까운 접촉 때문이 아닐까. 우기엔 꽃이 만발한다. 연중 봄날씨라 그런지 모든 풀과 나무가 꽃을 달고 있다. 그리고 비 그친 뒤면.. 2019. 5. 21. 검은 옷과 흰 옷 사이에서 / 카타르 도하 (1) 한밤중에 도하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그간 도하를 몇 차례 경유했지만 하루 시간을 내어 공항 밖으로 나간 건 처음이예요. 시내를 한번 보고 싶던 차에 카타르항공이 오성급호텔 무료 1박을 제공해서 내린 선택이었습니다. 새벽에 도착해 한밤에 나가는 일정이라 2박을 예약했습니다. 1박이 무료다보니 2박에 100불이라 괜찮은 가격이었습니다. 홈페이지에서 호텔 목록을 죽 훑어보고 구시가지인 쑥와키프 안에 있는 호텔을 택했지요. 혼자 움직일 때는 안전 때문에 밤이나 새벽에 도착하는 비행편은 꺼리는 편입니다. 어쩔 수 없이 밤에 도착하는 일정이면 항상 공항 픽업을 미리 요청해두는 편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말 바빴던 데다가 출발 며칠 전에 항공 일정이 확정되어 그럴 여유가 없었습니다. 도하가 세계적인 환승지니 뭐, .. 2019. 5. 14. 식민 통치가 낳은 분열의 씨앗, 르완다 제노사이드 기념관에서 1994년을 르완다 사람들은 이렇게 표현한다. 그때 르완다는 이 지구별 안의 어떤 장소가 아니었다고. 르완다는 말 그대로 지옥 그 자체였다고. 키갈리 제노사이드 기념관에서 본 짧은 영상에서 사람들이 눈물을 글썽이며 증언을 하고 있었다. 1994년은 약 80만의 주민이 희생된 르완다 제노사이드가 일어난 해다. 천 개의 언덕을 지닌 이 아름다운 나라에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이 사건의 배경은 르완다가 겪은 식민지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895년 이 땅에 처음 발을 디딘 유럽 국가는 독일이었다. 1차 세계대전 때 독일이 패하면서 르완다는 이후 벨기에의 점령지로 바뀐다. 그리고 콩고에서 고무나무 재배 생산량을 높이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의 손목을 자르는 만행을 저질렀던 벨기에는 여기서도 잔인한 통치방.. 2019. 5. 7. 연해주와 제2차 세계대전 / 블라디보스톡과 하바롭스크에서 블라디보스톡 여행을 준비하며 몇몇 가이드북을 보았습니다. 볼거리로 꼭 등장하는 곳이 블라디보스톡의 '잠수함 박물관'이었어요. 검고 둥그스런 물체가 있는 사진을 보면 별 흥미가 느껴지지 않아 방문 장소에 넣지 않았습니다. 그저 어린이들이나 보러 가는 장소겠거니 했어요. 바닷가를 따라 산책을 하며 걷다가 해양공원에 있는 잠수함을 우연히 보게 되었어요. 일단 그 길이에 깜짝 놀랐습니다. 잠수함이 이렇게 클 줄 몰랐거든요. 그래서 안을 들여다보기로 했죠. 안은 더욱 놀라웠습니다. 입구 쪽은 당시 관련 사진과 여러 자료를 전시한 박물관으로 꾸며져 있었고, 그 다음 칸부터는 잠수함의 실제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각종 기계며 장병들의 침대, 당시 잠수함에 실려 있었던 미사일까지 그대로 전시되어 있었어요. 러시아의 기술.. 2019. 2. 27. 비룽가 화산지대와 마운틴 고릴라 우간다, 콩고(민주공화국), 르완다 세 나라의 국경이 접한 곳에 '비룽가 화산지대'가 있다. 삼천에서 사천미터급의 화산 봉우리 5개가 솟아 있는 곳, 최고봉은 르완다에 있는 4500미터의 '카리심비'다. 이 지역은 등반이 아니라 다른 것으로 유명하다. 비룽가 화산지대는 지구상에서 마운틴 고릴라의 마지막 서식지로 남아 있는 곳이다.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동물들의 서식지도 그만큼 줄어들었다. 아프리카 전역에 살던 동물들은 이제 몇몇 종은 국립공원에서만 볼 수 있다. 마운틴 고릴라도 마찬가지다. 한때 200여 마리까지 개체 수가 줄었다가 보존 노력으로 지금은 800여 마리 정도라고 한다. 우간다 쪽은 브윈디 국립공원, 콩고 쪽은 비룽가 국립공원, 르완다 쪽은 볼케이노 국립공원이 있어 고릴라를 보호한다. 르.. 2019. 2. 26. 아프리카에 관한 편견 르완다에 와서 알았다. 내가 아프리카에 편견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을. 언론의 문제는 몇 가지 부분적인 이미지를 그 사회의 전부인 양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아프리카에 대해 내가 갖고 있던 이미지가 그렇게 편향된 것이었다. 아프리카에 오기 전에 나는 여기가 사람 살기 힘든 동네라고 생각했다. 내 머릿속 아프리카는 기아와 에이즈, 풍토병이 창궐하는 곳이었다. 르완다 키갈리에서 지낸 시간이 한 달을 넘기며 이 모든 게 아주 부분적인 사실이라는 것을 알았다. 물론 르완다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치안이 안전한 나라여서 이 나라의 경우를 아프리카 전체에 적용할 수는 없다. 콩고민주공화국처럼 상태가 안 좋은 나라도 많다고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에 관한 언론의 이미지는 매우 일방적이고 왜곡되었다고 생각.. 2019. 2. 4. 북경의 사라져가는 옛골목, 후퉁 아마 2008년 북경 올림픽 전과 후에 북경을 방문한 사람은 이 도시에 대해 조금은 다른 인상을 지닐 거예요. 중국은 북경 올림픽을 계기로 도시를 새롭게 정비했어요. 컨셉은 ‘회색’이었습니다. 중심가 대로에 면한 건물은 회색 벽돌을 붙여 통일성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어요. 거리도 깔끔하고 통일성 있는 거리 모습도 의미 있었지만 오래된 도시의 느낌보다는 한 번에 정리한 듯한 획일적인 느낌도 있습니다. 수천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도시 치고는 고풍스러운 멋이 덜했어요. 자금성을 둘러싸는 북경성이 사라져서일 수도 있을 거예요. 한양 도성은 일제가 허물었지만 북경성은 모택동의 공산당 혁명 성공 후 파괴되기 시작해서 문화대혁명 기간에 완전히 사라지죠. 문화유산을 단지 봉건 잔재로만 본 무지의 소치였어요. 궁궐 등의 .. 2019. 1. 24. 연해주에서 명멸한 이들을 기억하며 / 하바롭스크 (2) 이번 러시아 여행의 시작과 끝을 장식한 인물이 있어요. 뜻밖에도 우리 여정 중에서 계속 마주친 인물, 누구일까요? 블라디보스톡에 새벽에 도착했기에 첫날은 공항에서 가까운 숙소를 잡았죠. 공항과 시내 사이에 있는 빌라 아르테 호텔입니다. 다음 날 시내로 가기 위해 호텔을 나서면서 호텔 바로 옆에 있는, 지금은 폐업한 식당 문 앞에 뜻밖에 한국말 표지판이 눈에 띄었습니다. 김정일 동지가 여기서 식사했다는 교시문이었어요. 우수리스크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로 9시간을 달려 도착한 하바롭스크. 아무르강 우초스전망대에서 일몰을 바라보다가 전망대 입구에서 또 김정일이 다녀갔다는 표지판을 발견했어요. 또 하바롭스크 북한 식당에는 하바롭스크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방문한 장소가 지도에 표시되어 있었어요. 아무튼 이 하바롭스크.. 2019. 1. 20. 아무르강변에서의 소회 / 하바롭스크 (1) 한밤중에 우수리스크를 떠난 시베리아횡단열차는 9시간을 달려 다음 날 하바롭스크에 닿았습니다. 역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숙소로 가며 먼저 눈에 띈 것은 도심공원이었어요. 하바롭스크는 블라디보스톡과 마찬가지로 다소 퇴락한 느낌이었지만 곳곳에 푸른 숲이 있어 낡았으면서도 우아하고 기품 있는 도시였어요. 아무르강으로 가기 위해 지도를 보니 숙소 인근에서 아무르강변까지도 ‘가로수길’이라는 드넓은 공원이 있었습니다. 도심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공원 숲을 통과하며 구소련의 영광을 짐작했어요. 도심 한가운데 이런 대규모의 공원이 자리할 수 있었던 건 사회주의 계획도시였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거예요. 우리는 중간에 공원을 빠져나와 레닌광장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레닌광장에서 아무르강변에서 가까운 콤소몰 광장까지는 동유럽 분.. 2019. 1. 18. 고려인들의 마음의 고향 / 우수리스크 장장 9288킬로미터의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시작되는 블라디보스톡역. 부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습니다. 고풍스럽고 우아한 분위기의 건물이 이곳에 스민 역사를 느끼게 했어요. 안중근 의사가 여기에서 기차를 타고 하얼빈으로 이동했지요. 역 안에는 자매 결연을 맺은 한국철도공사의 작은 표지판도 보였고요. 철로 사이에는 개통 당시 운행되었던 증기기관차도 전시되어 있는데, 이건 2차 세계대전 전에 미국에서 수입된 것이었어요. 당시 러시아와 미국은 적대국이 아니었지요. 블라디보스톡역에 온 건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아니라 우수리스크로 가는 로컬 기차를 타기 위해서예요. 역에는 아침부터 한국 관광객들로 미어터졌습니다. 블라디보스톡에 있는 패키지 관광은 다 이리로 온 것 같았어요. 우수리스크행 로컬 기차는 패키지여.. 2019. 1. 13. 르완다, 아프리카와의 첫만남 긴 여정이었습니다. 인천에서 도하까지 11시간, 도하에서 3시간 대기 후 환승하여 다시 키갈리까지 8시간, 총 22시간의 여정이었어요. 키갈리 도착 전 우간다의 엔테베에서도 한 시간 대기했습니다. 내가 경험한 최장 비행시간이었죠. 길다면 긴 시간이지만 지구의 ‘크기’를 생각한다면 지구 반대편까지의 약 스무 시간은 감사하게도 짧은 시간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엔테베를 경유할 때 하늘에서 아프리카의 풍경을 처음 보았습니다. 바다처럼 큰 빅토리아 호수의 장관이었어요. 드디어 르완다 키갈리에 도착했을 땐 더할 나위 없이 청명한 날씨였어요. 미세먼지가 전혀 없는 키갈리의 푸른 하늘과 아기자기한 주변 풍경은 산뜻하고 예뻤습니다. 듣자하니 내가 도착하기 직전에 비바람이 몰아쳤는데, 오후 3시가 넘어 거.. 2019. 1. 11. 사그리다 파밀리아 / 스페인 바르셀로나 (2) "사그리다 파밀리아(성가정 성당)"는 대단했습니다. 바르셀로나에서 만날 수 있는 가우디의 작품, 구엘공원, 구엘저택, 까사 바트요, 까사 밀라 모두 가우디 건축의 독창적이고 특징적인 면모를 두루 보여주었지만, 역시 가장 충격적인 작품은 사그리다 파밀리아였어요. 사실 19~20세기는 종교가 저무는 시대입니다. '대성당'을 짓는 시대가 아닌 것이죠. 그런데도 사그리다 파밀리아 같은 중세적인 기획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가우디라는 걸출한 천재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그 결과 사그리다 파밀리아는 단순히 구시대의 재현이 아니라 생의 아름다움, 예술적 가치, 신에 대한 경외 이 모든 것을 새롭게 조명하는 한 도시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이는 순전히 가우디의 천재성과 깊은 신앙심, 그리고 백 년 이상 공들.. 2018. 12. 31. 이전 1 ··· 3 4 5 6 7 8 9 ··· 1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