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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일상의 기록408

역전마을 인터뷰 3 - 대를 이은 자전거가게 **10월부터 경산시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인 지역 스토리텔링 부분에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총 11분을 인터뷰해서 글로 옮기는 작업인데 내가 쓴 글이라 기록으로 남겨둔다. 대를 이은 자전거가게, 박00씨 초등학생 때부터 배운 일 경산역 앞 역전네거리에서 경산교 방향으로 몇 걸음 걸아가면 바로 보이는 가게, ‘삼천리자전거’. 박00 씨가 약 30년째 운영하는 가게다. 안으로 들어서니 100평 정도 되는 매장에 다양한 종류의 자전거가 한가득이다. 한 칸은 성인용, 한 칸은 어린이용 자전거가 전시되어 있고 자전거 부품과 수리 용품이 있는 공간이 따로 있다. 박영석 씨는 이곳 역전마을 토박이로 대를 이어 자전거가게를 운영해오셨다. 지금 가게가 있는 자리는 경산에서 자전거 가게를 시작한 박00 씨의 아버지가 세 번.. 2020. 11. 30.
역전마을 인터뷰 2 - 여기가 제일 편하죠 **10월부터 경산시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인 지역 스토리텔링 부분에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총 11분을 인터뷰해서 글로 옮기는 작업인데 내가 쓴 글이라 기록으로 남겨둔다. 여기가 제일 편하죠, 전00씨 감나무가 있는 집 경산역 입구에서 철로를 따라 남쪽으로 역전마을에 들어서면 지나가던 걸음을 멈추게 하는 예쁜 집이 한 채 있다. 소박하지만 나무로 지어진 멋스러운 단층집이다. 집앞 마당에는 까치밥 몇 개를 매단 감나무가 그림처럼 서 있고 그 옆으로는 불 땐 흔적이 있는 아궁이가 정답게 고개를 내민다. ‘황보당’ 주인장 전00 씨의 집이다. 십 년 전에 남편 분이 이 집을 직접 지었다 한다. 집안에도 시골집의 정취가 물씬 풍긴다. 손수 짜맞춘 원목식탁이 분위기를 돋우고 베란다에는 감물로 색을 낸 커튼이 곱게 .. 2020. 11. 30.
역전마을 인터뷰 1 - 40년 단골이 즐비한 가게 **10월부터 경산시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인 지역 스토리텔링 부분에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총 11분을 인터뷰해서 글로 옮기는 작업인데 내가 쓴 글이라 기록으로 남겨둔다. 40년 단골이 즐비한 가게, 박00씨 일당 100원 시절 경산역 앞 역전네거리 모퉁이에는 40년을 한결같이 그 자리를 지킨 가게가 있다. 1982년 문을 연 이발사 박00 씨의 가게, ‘국민이용소’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세월의 감촉이 느껴진다. 거울도 의자도 세면대도 오래되었지만 정갈하다. 한쪽 선반에 놓인 액자 하나가 눈에 띈다. 100원 짜리 지폐가 들어 있는 액자다. 1965년 4월 13일이라고 날짜도 쓰여 있다. 무슨 사연인가 여쭤보니, 이용사 자격증을 따고 받은 첫 일당이란다. 자격증을 따기 전에는 80원을 받다가 처음 100.. 2020. 11. 30.
친구 온다고 밥 하는 남자 주말에 지인들과 점심 약속이 있었다. D도 부산에서 친구 와서 오후에 만나러 간다고 신경 쓰지 말고 나가란다. 점심 먹으며 D에게 밥 잘 챙겨먹었냐고 전화하니 친구가 집으로 오기로 했다면서 밥이랑 제육볶음 하고 있다고 했다. 나는 으레 그려려니 전화를 끊는데 지인들이 깜짝 놀란다. 아니, 무슨 남자가 친구 온다고 밥을 하냐고. 여자들도 안 하는데, 블라블라. 듣고보니 그런 것 같기도 했다. 남자가 친구 온다고 밥 하는 일이 흔치는 않을 것이다. D는 십 년 넘는 해외생활로 혼자 음식 해먹는 게 매우 자연스러운, 그것이 몸에 밴 남자다. 김치도 종류대로 다 담글 줄 안다. 결혼 전엔 엄마가 해준 김치를 먹다가 결혼 후엔 남편이 한 김치를 먹고 살 줄은 나도 몰랐다. D가 특히 잘하는 요리는 동파육, 수육 .. 2020. 10. 29.
비행기에서 삼백만 원을 분실한 뒤 __ 왕초보의 주식 입문기 아프리카행 비행기는 달랐다. 두세 번의 환승과 20시간이 넘는 긴 여정만 다른 게 아니다. 그 비행기에서 나는 거금 3백만 원을 잃어버렸다. 3백만 원이라고 해야 봉투는 얇았다. 200유로 짜리와 100달러 짜리로 환전하면 정말 몇 장 되지 않는다. 그 얇은 봉투를 열어보니 200유로와 100불 짜리 지폐는 간 곳 없고 기분 나쁠 정도로 낡아빠진, 꼬깃꼬깃한 1달러 짜리 몇 장만이 고개를 내밀었다. 원래 나는 여행하면서 주로 카드를 쓰지 현금을 들고 다니지 않는다. 작년에는 르완다에 8개월 정도 체류할 예정이고 인근 국가를 여행하거나 할 때 현금이 필요할 일이 있을까봐 일부러 챙겨온 거였다. 헌데 막상 도착하니 별로 쓸 일이 없었다. 봄에 유럽에 잠깐 다녀와야지 한 계획도 귀찮아서 말았고(외국에 있으니 .. 2020. 10. 5.
30년 넘은 벼루와 먹 지난 주말, 경주 구시가지 골목길을 지나다가 우연히 취연벼루박물관에 들렀다. 왕년에 kbs와 영남일보 기자를 지낸 분이 만든 개인 박물관이었다. 벼루에 빠져 50년 동안 벼루를 천 점 이상 모았다고 한다. 난 초딩 때 서예를 배운 세대라 정말 오랜만에 보는 벼루의 세계가 나름 반가웠다. 80년대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전시물을 보니 각 지역에서 생산되는 돌에 따라 벼루의 종류가 달라졌다. 집에 돌아와서 그간 한 번도 풀지 않고 상자 속에만 있었던 벼루를 꺼내보았다. 내가 초등학생 때 쓰던 물건인데 당시 비싼 값에 산 거라서 엄마가 버리지 않고 갖고 있다가 이번에 이사올 때 주신 거였다. 보자기를 풀어보곤 깜짝 놀랐다. 벼루 뿐 아니라 내가 초딩 때 쓰던 문진과 큰 붓, 쓰다 만 먹도 그대로 있었기 때문이다.. 2020. 9. 23.
작은 새 출근길에 인도에서 꼼짝 않는 새를 보았다. 참새는 아닌 것 같은데. 가까이 다가가도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피곤한가, 어디 아픈 걸까, 아니면 다리를 다쳤나, 동물보호센터에 연락해야 하나... 잠깐 사이 많은 생각이 오갔지만 출근이 급했다. 빨리 걷지 않으면 8시 20분까지 못 가는데. 작은 새를 안쓰러운 마음으로 지나쳤다. 퇴근길에 그 장소를 두리번거렸지만 새는 사라지고 없다. 제 갈 길로 갔을까, 아니면 다른 분이 도움을 주었을까. 도심 한복판에서 우연히 만난 작은 새에 마음이 쓰인 날. 2020. 9. 16.
이제 그만 먹을래 _ 육수 우려낸 멸치 된장 끓일 때 쓴 육수용 멸치를 버릴 때 알았다. 드디어 내가 한국 입맛에 완전히 적응했구나. 귀국한 지 딱 일 년만이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그동안 육수 우려내고 남은 멸치를 버리지 않았다. 내장을 발라낸 뒤 간장, 설탕, 고추 넣고 다시 볶아서 반찬으로 먹었다. 그런데 오늘, 국물 다 빠진 멸치가 더는 먹기가 싫다. 아프리카에선 모든 물자가 귀하다. 동남아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특히 르완다 같은 작은 내륙국가에서는 더더욱. 바다 생선이 없는 건 그렇다쳐도 유제품도 귀하다. 현지 우유는 특유의 냄새로 도저히 먹을 수 없었다. 요거트도 벨기에 수입품만 먹을 만하다. 그런데 요플레 작은 것 만한 게 5000원쯤 해서 가끔 먹었다. 고소한 서울우유가 얼마나 먹고 싶던지 귀국길에 인천공항에서 젤 먼저 먹은 .. 2020. 9. 14.
평민 지식인의 등장 _ 동학과 서학 지난 여름 휴가에서 안동, 천안, 수원, 공주, 네 개의 도시를 만났다. 이들 도시는 모두 그 나름의 역사적 두께를 간직한 곳이어서 도시마다 서로 다른, 의미 있는 화두를 던져주었다. 하지만 그 중에서 가장 가슴 저미는 무언가를 남긴 곳이 있다면 단연, 공주 우금치다. 전봉준이 이끄는 동학농민군 최후의 격전지. 지금은 그곳에 우금치 터널이 만들어져서 옛 흔적이라곤 터널이 지나는 도로가의 오래된 나무 두 그루와 두리봉 정도 뿐이다. 하지만 1894년 봄, 거기만 지나면 서울이 눈앞이라고, 새로운 세상을 열 수 있다고, 맨몸으로 우금치를 통과하고자 했던 동학 농민군의 투혼을 생각하면 이곳만큼 역사적 무게를 지닌 곳도 많지 않을 것 같다. 그들은 기울어가던 조선에서 가장 뜨겁게 나라를 사랑했던 사람들이고, 가.. 2020. 9. 11.
문득 눈길이 머문 자리 어제 D가 쿠팡 주문을 했던가 보다. “아침에 도착했다는 문자가 왔는데, 왜 택배가 없지?” 두리번거린다. 핸드폰에 전송된 도착 사진을 보더니 “9층에 간 것 같은데,,”라고 한다. 울 집은 19층인데. 나갔다 오더니 택배를 찾아왔다. 9층에 있었다고 한다. 얼마 전, 엄마집 앞에도 커다란 상자가 있어 “뭐예요?” 했더니 다른 집으로 갈 게 잘못 배송된 거였다. 요즘 코로나 시국에 택배 주문이 많긴 많은가 보다. 배송 착오도 간간이 일어나는 걸 보니. 퇴근하고 저녁 산책으로 동네 한 바퀴 돌고 집으로 들어가는 길. 엘리베이터를 막 타는데 피자 배달하는 분이 내 뒤를 따라 쓱 들어오신다. 나는 무슨 피자인지 궁금해서 피자 상자만 쳐다보는데 그분이 갑자기 2층에서 내리며 내게 “안녕히 가세요” 인사하신다. .. 2020. 9. 9.
겸허해지는 밤 _ N포세대 백수녀 채널 하루를 마감하며 페북을 훑어보는데 후배의 글이 눈에 띄었다. 유투브에서 N포세대 백수녀 채널을 자주 본다고 했다. 퇴사 후 고시원에서 생활하는 이야기란다. 후배는 처음엔 자기 삶은 그것보다 낫다며 위안 삼아 보다가문득 더 불행한 사람은 자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자신은 항상 타인을 의식하며 뾰족하게 살아가는데그녀는 비록 고시원에서 일주일 만 원으로 버텨도그처럼 명랑쾌활하게 자기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가끔 케익 쿠폰을 쏴주면서 공감하는 이들과 인간적으로 교류하며 살아간다고. 호기심이 일어 채널을 클릭해보았다. youtu.be/uUf1zNoWwLM한두 개만 봤을 뿐인데, 나 또한 후배의 이야기에 공감이 갔다. 만일 내가 몇 년간 취업이 안 되어 고시원 생활을 택했다면 그녀처럼 웃으면서 내 삶을 .. 2020. 9. 8.
음식과 위안 볼일 있어 좀 늦게 들어오니 D가 차려놓은 식탁. 손수 만든 수육 요리. 허겁지겁 먹다가 생각나 사진을 찍었다. 힐링푸드...라는 말이 있다(이런 영어 단어가 난무하는 건 영 맘에 안 들지만). 고단한 월요일이었는데 한 끼 조촐한 식사가 삶의 모든 온기를, 위로를, 그 안에 품고 있다. 2020. 9. 7.
엄마의 라면 태풍 마이삭 가자마자 또 하이난이 온다는 소식이 들리는 일요일. 도시의 나는 별 걱정이 없지만 화순에 계신 D의 어머니는 벼가 알곡이 차서 무거워서 바람 불면 다 넘어지는데, 하며 걱정이시다. 태풍은 내일 아침에 부산 인근 동해에 상륙해서 내일 밤이면 북한 청진 쯤에 도착해 소멸한다고 한다. 대구는 내일 모든 학생이 원격수업이다. 산책 좀 하고 책 좀 들춰보고 하니 하루가 다 갔다. 집에 있는 감자를 빨리 먹어야 해서 저녁으로 백종원 유투브를 보고 간단히 감자스프를 시도해서 먹고(양송이까지 넣어서 완전 맛있음), 이것저것 정리하니 8시. 벌써 어두컴컴하다. 그새 날이 많이 짧아졌다. 19층 우리집은 앞이 확 트여서 밤하늘 풍경이 그대로 전해진다. 여름 같으면 밤 10시 같은 깜깜한 분위기다. 날씨도 썰렁.. 2020. 9. 6.
일상을 쓴다는 것 간밤에 바람소리에 잠을 깼다. 몇 시인지는 모르겠으나 태풍이 아마 그때 지나갔나보다. 깜박 잊고 베란다 창문을 조금 열어뒀더니 잠을 깨울 정도로 휘몰아치는 바람 소리가 컸다. 일어나 창문을 닫고 다시 잠들었다가 아침에 일어나니 파란 하늘이 보인다. 태풍이 지나간 거다. 아직 휙휙 바람 소리는 더러 났지만, 군데군데 트인 파란 하늘 아래, 건너편 산들의 선명한 초롯빛에 감동했다. 먼지가 다 씻겨나가고 더없이 청명한 날씨였다. 눈부신 햇살 속에서 출근했지만, 공기는 얘전과 달랐다. 후덥한 기운이 완전히 사라지고 어린 시절, 가을 운동회 할 때 같이 피부에 맑게 감기는 공기의 감촉. 그리고, 저녁에 자연과학고를 한 바퀴 돌며 산책할 때, 확실히 알았다. 아, 오늘부터 가을이구나. 얼마 전에도 저녁엔 더러 선선.. 2020. 9. 3.
태풍 마이삭, 생각나는 그날 태풍 마이삭이 대구를 관통한단다. 규모가 큰 태풍이라 한다. 올해 태풍이 많이 왔지만 대구를 바로 지나간 건 잘 없다. 이 지역은 비 피해도 크지 않았고. 그러더니 결국 막바지에 큰 놈 하나가 오나보다. 낮에 교육청에서 관련 공문이 왔다. 내일 전교생 10시 등교라고. 교무실에선 교감 쌤이 태풍 매미는 정말 대단했는데 젊은 쌤들은 모르지? 이런 이야기를 신나게 늘어놓으셨다. 경력 있으신 쌤들이 다들 한마디씩 거든다. 그러고보니 내게도 태풍과 관련된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대략 20년 전 신규교사일 때다. 첫 발령 받은 학교는 집에서 꽤 멀었다. 버스로 한 시간 거리여서 아침 6시 반이면 집에서 출발해야 했다. 하지만 그때는 그게 전혀 힘들지 않았다. 임용시험에 턱걸이로 간신히 붙은지 얼마 안 .. 2020. 9.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