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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일상의 기록408

호안 미로의 동심 아이들의 그림엔 잘 그리건 그렇지 않건 원초적 생명력이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남을 의식하지 않는 발랄함이다. 그 생기를 어른이 되서도 유지하는 사람이 위대한 예술가가 되는 것 같다. 걸작엔 아이들 그림에서 느껴지는 활달한 힘이 느껴진다. 바르셀로나에 갔을 때 스페인 까딸루냐 출신 화가 피카소, 달리, 호안 미로 중에서 난 미로가 제일 좋았다. 아이들의 신나는 낙서를 모방한 것 같은 그 낙서에 활달한 생명력과 아름다움을 부여한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동심이 살아있는 그림들이다. 피카소가 아이가 되고 싶지만 결코 될 수 없는 어른의 슬픔이 느껴지는 그림이라면 미로는 자유분방한 동심이 넘쳐흐르는, 신비롭고 따스하며 몽환적인 그림을 그렸다. 생각나 화보를 뒤적이다가 미로의 그림을 몇 장 올린다. 개인적으로 피카.. 2021. 12. 12.
생일 편지 D와 나는 생일과 결혼기념일에 꼭 편지를 교환한다. 둘 다 편지 쓰기를 좋아해서 어쩌다보니 그렇게 된 건데 이제 드디어 쓸 말이 점점 옅어지는 찰나 D가 이번 생일에 편지를 안 썼다. 편지 달라고 며칠 종용한 끝에 받았는데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구절. 한용운 시인의 시다. “내가 모를 줄 알았지? 나 한용운 시는 죄다 읽었거든. ㅋㅋ” 이 시를 다시 보니 감회가 새롭다. 사랑에 관한 한, 정말 명시다. 2021. 12. 9.
그리운 만남, KTX 타고 포항 가다 이제 오십을 넘겼건만 언니는 대학생 때와 똑같이 청순하고 우아하고 아름다웠다. 코스모스 같고 소녀 같았다. 향기 있게 살아온 삶이 미소에 눈빛에 손길에 고이 배어 있었다. https://youtu.be/jDKL1fpvaYk 2021. 11. 18.
펌) 실버 취준생 분투기 (이순자) 일흔 다 되어 작가로 데뷔, 이렇게 좋은 글을 써내신 분이 올해 돌아가셨다 한다ㅠㅠ 삶이 스민 글이란 이런 것. http://mnews.imaeil.com/page/view/2021062614521106205?fbclid=IwAR2yOgusRHQhb6SmDf5wACg0xLCnKFyA3KtUmhWhlhHQGiv6wRAlbrm23iQ [2021 매일 시니어문학상 수상작] 논픽션 부문 '실버 취준생 분투기' - 이순자 이순자... mnews.imaeil.com 2021. 11. 17.
진리와 의견 우리가 하는 모든 생각은 그것이 얼마나 합리적이고 정합적이든 간에 모두가 '의견'이다. 진리가 아니라. 권위 있는 사람의 말도 예외가 아니다. 세상은 '의견'들의 집합이다. 지구가 태양을 도는 것, 낙엽이 지는 것, 사람이 죽는 것처럼 확고부동한 것만이 진리이다. 우리에게 상처를 주는 대부분의 것들은 누군가의 '의견'일 뿐이다. 의견을 그저 참작할 만한 의견으로 대접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로 수용하기 때문에 갈등이 생긴다. 우리가 하는 모든 말, 모든 생각이 그저 하나의 '의견'임을 인지하면 좀 더 평화롭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생각은 부분적으로만 옳을 뿐 전체적인 진리와는 언제나 거리가 있다. 그래서 '단견'이다. 공부를 잘해야 밥 먹고 산다, 공부 다 소용 없다, 결혼을 해야 한다.. 2021. 11. 8.
27개국을 갔구나 _ 여행에서 배운 것 내가 몇 나라나 가보았는지 세어보았다. 한 번에 한 나라만 방문한 적이 많아서 이십대부터 여행한 것 치고는 아주 많은 나라는 아니었다. 동북아시아 - 일본, 중국, 몽골, 북한(금강산), 러시아(연해주) 동남아시아 - 인도네시아,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태국, 미얀마, 대만 서남아시아 - 인도, 네팔 유럽 - 프랑스, 이태리, 스페인, 포르투갈, 터키 중동 -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이스라엘 아프리카 - 르완다, 탄자니아, 남아공, 우간다 북미 - 캐나다 오세아니아 - 뉴질랜드 총 27개국, 남미 빼고 모든 대륙에 한 번은 발을 딛었네. 유럽을 많이 못 갔는데, 2006년 살인적인 더위로 고생한 이후로 여름에 유럽에 가는 게 두려웠기 때문이다. 겨울 유럽은 너무 춥고. 날씨가 안 맞아 못 갔다. 남.. 2021. 9. 9.
우리집이 일출 명소였다니! 아파트 뒷베란다 일출. 다섯 시 반에 일어나야 보이므로 몇 번 봤다. 화장실 가느라 일찍 깬 날만. 사진 찍고 다시 침대로!! 내가 자랑했더니 한강변에 사는 형제가 사진을 보내왔다. 우리집보다 다섯 배쯤 비싼 동네지만 그래도 내겐 우리집이 최고!!! 2021. 8. 4.
아빠의 마지막 순간 성당 후배 부친 장례미사에 참석했다. 부부가 다 우리 성당 교리교사 출신인데 지금은 같은 성당에서 주일학교 교장을 한다고 한다. 코로나라서 세속적 절차를 생략하고 미사로 마무리하기에 병원장례식장 대신 미사에 가게 됐다. 부부의 동기 신부님들이 많이 와서 뜻깊었고 이 부부 가족윽 잘 아는 신부님이 강론하며 그간 투병 때 있었던 이야기들을 들려주어 기억에 남았다. 이분들에겐 죽음을 정리할 시간이 충분히 주어졌다. 강론하신 신부님과 병자성사도 드리고 마지막엔 가족만 참석하는 미사도 같이 드릴 기회가 있었는데 고인이 그때 그렇게 기뻐하셨다 한다. 그리고 투병으로 절뚝거리면서도 고인이 평일미사에 자주 가셨다 한다. 아빠 생각이 많이 났다. 안타깝게도 우리 아빠는 너무 급작스럽게 모든 일이 진행되고 병원과 응급실을.. 2021. 7. 29.
구독자 100명?? 어제 유투브 구독자 100명 알림이 온다. 대체 얼마만이지? 세어보니 일 년 반 정도이다. 작년에 온라인수업으로 유튜브를 활용하기 시작하여 몇 달 이상 잊어버리고 있다가 여행 자료가 아까워 조금씩 만들기 시작한 영상. 뭐, 귀찮아서 하다가 말다가 한다. 그런 채널이 일 년 넘어서 구독자 100명이라고 알려줌. 보통 100명 되는데 한 달 걸린다는데 자그마치 일 년 반? ㅎㅎㅎ 내게 유튜브는 전적으로 취미다. 시간이 정말 남을 때만 하는 거고 그래서 이걸 언제까지 할 지는 모르겠다. 문학관 관련 영상은 수업자료로 쓰려고 틈나는 대로 작업하려고 하는데, 이것도 귀찮아 잘 안 된다. 영상 만들기에 손이 너무 많이 가기 때문. 내 영상은 특별한 내용이나 타인의 눈길을 끌 만한 내용이 전혀 없다. 수업자료로 쓸 .. 2021. 7. 19.
시간의 기억에서 당신을 지우는 일은 없을 것이다 _ 서초동 아크로비스타 & 맨하탄 9.11 메모리얼 비자 거부의 트라우마 때문인지 오랜 시간, 관심 밖이었던 미국. 한 친구의 이야기가 호기심을 자극했다. 친구는 코로나가 시작되기 바로 전 해에 뉴욕에 다녀왔다. 뭐가 좋더냐고 물으니 대답이 뜻밖이었다.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9.11 메모리얼'이라고 답한다. 2001년 9.11 테러 당시, 이른 아침에 어머니가 소리쳐 불러 TV 화면을 바라봤던 기억이 난다. 뉴스에서 믿을 수 없는 영상이 송출되고 있었다. 영화 세트장처럼 현실감 없이 110층 짜리, 세계무역센터가 있던 쌍둥이빌딩이 힘없이 무너져내렸다. 쌍둥이빌딩이 있던 그 자리에 기념공원이 세워졌다고 한다. 안에 들어서자마자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리더란다. 그 아픔과 슬픔이 그대로 전달되어 친구는 내내 눈물을 훔쳤다고 했다. 그리고 미국에 .. 2021. 7. 12.
광화문 미국대사관의 기억 미국에 대한 나의 첫인상은 미국 본토가 아니라 광화문에 있는 주한미국대사관에서 결정되었다. 내가 가려고 했다가 '외압'에 의해 못 간 나라가 딱 하나 있으니 바로 미국이다. 미국대사관 비자인터뷰가 존재하던 90년대말의 추억(?)이다. 이십대 중반, 임용시험을 어찌어찌 끄트머리로 붙었다. 끄트머리로 붙다 보니 봄에 발령이 안 나고 2학기인 9.1일자로 발령이 나게 되었다. 발령 전까지 몇 달 여유가 생긴 거다. 시험을 친다고 심신이 지친 상태라 딱히 가고 싶은 데는 없었다. 그냥 미국이나 한번 보자 싶었다. 당시만 해도 비자 발급 절차가 까다로웠다. 미국대사관에 본인이 직접 인터뷰를 하러 가야 했다. 마침 IMF 직후라 비자 거부율이 높다고 했다. 나는 교육청에 여행 간다고 장황하게 설명하고 장학사의 달갑.. 2021. 7. 12.
장마 전, 하늘의 선물 새벽 기차를 타기 위해 5시에 일어난 날, 베란다 창문으로 붉은 빛이 진하게 번져나오는 걸 보고 깜짝 놀라 달려갔다. 아파트 창밖으로 야생과 다름 없는 광대한 하늘이 열리다니! 분홍, 보라, 오렌지빛이 섞인 하늘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 이 시각에 일어난 적이 없으니 이처럼 가까이에 자연이 힘차게 움직일 줄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새벽녘, 아직 어둠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시각에 장엄한 일출을 바라보다가 알았다. 내가 잃어버린 감각이 바로 이것이었구나. 소싯적 배낭여행을 할 때 이런 생각을 하곤 했었다. 왜 이렇게 일출, 일몰을 자주 보지? 네팔에서도, 뉴질랜드에서도, 발리에서도,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에서도 일출 시간에 맞춰 산을 오르거나 일몰 시간에 맞춰 해변을 서성거렸다. 여행지에서 내가 챙기는 많은 것들.. 2021. 7. 4.
김 여사와 하모니카 어릴 때와 사춘기 때 접한 것은 무엇이든 마음에 조각칼로 새긴 듯 일평생 지울 수 없는 인상을 남기는 것 같다. 그 시기가 정말로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고. 그때 처음 들었던 몇몇 클래식 곡은 말 그대로 영혼을 휘몰아치게 했다. 음악감상 시험을 위해 처음 들었던 스메타나의 몰다우나 슈베르트, 베토벤 등등 그땐 사실 G선상의 아리아만 들어도 전율이 왔다. 바이올린이나 첼로 소리는 다른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신비한 울림이 있었다. 지금은 뭘 들어도 그만큼의 감흥이 없어서 아쉽다. 나는 하모니카엔 별 감흥이 없다. 관련된 추억도 없고. 하지만 김 여사는 다르다. 십대 때 하모니카를 기가 막히게 불던 동네 오라버니가 있었는데 저녁 나절이나 밤이면 그 하모니카 소리가 집까지 들려왔단다. 그 소리가 얼마나 좋던지 지.. 2021. 6. 29.
주말의 라이온즈파크 토욜에 D가 야구 보자 해서 라팍에 갔더니 어마어마하게 긴 줄. 사람이 정말 많았다. 모여든 사람들만큼이나 주위엔 흥겨운 에너지가 한가득 번지고 걍 사람 구경 하러 갔는데 삼성이 한 회에 6점 내주다가 연이어 홈런을 치고 홈런 하나는 바로 내 곁으로 날아와서 보는 즐거움도 있었던 경기. 물론 9회까진 난 못 지킨다. 코로나 이후론 이렇게 사람들이 북적이는 건 처음 보았다. 사람들이 모여 즐기는 모습 자체가 신선하게 다가왔던 저녁. 코로나의 긴 터널로부터 벗어날 날을 기다린다. 2021. 6. 28.
"이만하면 다행이다" M과의 통화는 늘 이 말로 끝을 맺는다. "이만하면 다행이라고 생각해라." M은 음악 선생님이다. 내가 첫 발령을 받은 모중학교에서 이십대 때 처음 만났다. 키가 작고 얼굴이 갸름하고 몸매도 마른 편이다. 87학번이니 나보다 다섯 살 많지만 서로 나이가 들면서 니네 하며 친구처럼 지낸다. 내가 주말에 시험 문제 내느라 골머리를 앓을 때면 전화해서 "그러게 왜 국어를 했어? 음악을 하지." 하면서 놀리곤 한다. 음악은 일 년 내내 지필고사를 치지 않아도 된다. 그러면서 자기는 음악이니까 선생을 하지, 국영수면 선생 못 할 거라면서 다음 생에서는 꼭~~ 음악을 하라면서 부아를 지른다. M은 젊을 때 고생을 많이 했다. 부잣집 딸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기사 딸린 자가용 타고 다니다가 (내 기억에 88올림픽 전.. 2021. 6. 25.